헌신하면 헌신짝 됩니다

최선을 다했는데 헌신짝 된 내 마음의 비극, 어떻게 끝낼 수 있을까.
BY | 2018.01.23
예전에 굉장히 좋아한 남자가 있다. 내가 일 년 정도 따라다녀서 사귀게 됐다. 그리고 얼마 안 돼서 그의 가족들을 만났다. 우리 집은 불화가 많아서 내가 가족 콤플렉스가 좀 있다. 근데 그의 아버님 어머님이 나를 친딸처럼 아껴주셨다. 취직을 했을 때도 아버님이 우리 회사 임원 중에 아는 사람을 찾아내서 “내 딸이나 다름없으니 잘해줘라”고 부탁을 해주셨다. 그의 형도 너무 좋았다. 회사가 가까워서 틈나면 밥도 사주고 잘 챙겨주었다. 그와 결혼하면 그 가족의 일원이 될 수 있다, 이 사람들의 딸, 동생이 되는 거다 생각하니까 절대 놓칠 수가 없었다. 정작 나한테 함부로 한 건 남자친구 당사자였다. 나는 수원에 살고 그는 성북동에 살았는데, 항상 그의 집 근처에서 데이트를 했고, 집에 바래다주지도 않았다. 친구들에게 나를 소개해준 적도 없었다. 상처받을까봐 물어보진 않았지만 나를 부끄러워하는 것 같았다. 귀찮아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도 많았다. 하지만 결혼하면 달라질 거라 생각했다. 부모님이 워낙 행복하게 사는 걸 보고 자랐으니 그도 결혼하면 그럴 거라고. 그래서 그에게 다 맞춰줬다. 결국 힘들어서 헤어지고 나서도 그 부모님은 2년 가까이 연락을 해오셨다. “우리 OO이 아직 여자친구 없는데 다시 만나면 안 되겠니?”라고 물어보기도 하셨다. 정작 그는 한 번도 다시 연락하지 않았다. 니가 사는 그 집(35세·회사원)
외국에서 성공한 사업가들이 조강지처와 헤어지고 20살짜리 슈퍼모델과 재혼해 카메라 앞에 설 때, 사람들은 말한다. “트로피 아내로군.” 이건 아주 특별한 남자들의 얘기가 아니다. 늘 경쟁하도록 습관 지어진 남자들은 예쁜 여자친구를 성공에 따른 보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니 남자가 친구들에게 여자를 소개해주지 않는다는 건 이유가 뻔하다. 게다가 여자의 경우 가족 콤플렉스가 있다고 했는데, 어린 시절 불안정한 애착관계를 경험한 사람들은 연애를 할 때도 상대방이 자신을 싫어하리라 믿으면서 자신의 위치를 낮게 평가하고, 힘든 상황에 처했을 때 상대가 자기 편이 되어주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아주 사랑받고 있는 순간에도 상대를 이상화하고, 그가 자신에게 흥미를 잃을까봐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러니 여자가 남자한테 질질 끌려다니는 건 당연지사. 언젠가 그가 변할 거란 기대를 갖지만, 연애에 있어서 미래의 관계는 현재 관계의 연장선일 뿐이다. 닫힌 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기분이 들 때면 가차없이 돌아서야 한다. 관계를 끝내는 것은 어렵지만 시간을 끌면 끌수록 점점 더 어려워진다.
이건 내 친구 얘기인데, 걔가 어릴 땐 그렇게 비굴하게 남자를 만났다. 열심히 알바해서 남친 명품 지갑 사주고 자기는 가X치 지갑을 들고 다니는 애였다. 한번은 그 친구가 강의실에서 교X치킨을 쐈다. 웬일이냐 그랬더니 남친한테 사 주려고 주문했는데, 그 남친이 둘X치킨을 먹고 싶다고 했다는 거다. 남친한테는 새로 주문해서 주고 남은 걸 우리한테 먹인 거다. 남자친구 군대 보내놓고도 그렇게 바리바리 챙겨주더라. 사흘이 멀다고 면회를 갔다. 그 여자애가 그 남자를 정말 좋아했다. 원숭이같이 생긴 남자였는데. 친구가 하도 “내 남자친구 정말 잘생기지 않았어? 잘생겼지? 잘생겼지?”라고 강요하길래, 내가 버럭 화를 내면서 “못생겼어! 못생겼다고! 니 남친 못생겼어!”라고 소리를 지른 적도 있다. 근데 남자한테 잘 해주는 건 다 부질없는 일이다. 여자가 잘 해주니까 그 남자는 점점 시건방지게 변하더니 결국 딴 여자 만난다고 떠나갔다. 그때도 친구는 어찌나 울고불고 진상을 떨던지. 니 남친 못생겼어(30세·회사원)
미국의 임상심리학자 일레인 N. 아론은 ‘순위 매기기’와 ‘관계 맺기’라는 이론으로 불평등한 남녀 관계를 설명한다. 순위 매기기란 자신을 타인과 비교해 순위를 매기는 것이다. 누구나 실패의 경험이 있고, 내면에 ‘못난 나’가 있다. 그런데 타인과 비교해 나 자신의 순위가 낮게 매겨지면 그때부터 ‘못난 나’가 걷잡을 수 없이 튀어나온다는 거다. 자신의 장점은 못 보고 단점만 보게 되는 것. 그게 관계 맺기와 결합되면 사랑도 권력의 문제가 된다. 기본적으로 이타적인 성향이 강한 사람들, 특히 여자들은 연애 관계에서 권력을 회피하기도 한다. 그래서 스스로 시녀를 자처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여자가 헌신적일수록 남자의 애정이 떨어진다는 건 과학적으로도 입증된 사실이니, 스스로 자존감을 찾을지어다.
늘 같이 어울려 다니던 여자친구들 중에 한 명이 굉장히 가정사가 복잡하고 자존감이 떨어지는 애가 있었다. 남자에 대한 집착도 심했다. 계속 이 남자 저 남자 만나고 다니다가 동거를 시작했는데, 그 남자가 굉장한 악당이었다. 여자한테 빌붙어 살면서도 맨날 폭언을 일삼고 친구들한테 걸레라고 욕하고 다니고. 우리가 헤어지라고 계속 말렸는데 친구가 말을 듣지 않았다. 자기는 행복하다면서. 뭔가 정신줄을 놓은 것 같았다. 정신차려 이 친구야(32세·프리랜서)
그 남자가 자신과 잘 안 맞고 질이 나쁘다는 건 여자친구인 그녀가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 바쳐온 시간과 노력도 아깝다. ‘저 남자 싫다’는 생각과 ‘그동안 저 사람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쳐왔는데’라는 두 가지 모순된 생각이 들 때, 즉 심리학에서 말하는 ‘인지 부조화’ 현상이 생길 때, 사람들은 두 가지 중 한 가지 생각을 버림으로써 심리적 안정을 찾으려 노력한다고. 문제는 투자한 시간과 비용이 아까워서 ‘저 남자 싫다’는 생각을 버리기가 힘들다는 것. 일명 ‘매몰 비용 효과’다. 그래서 ‘나는 행복하다’고 자기 최면을 건다. 나쁜 남자에게 끌려다니는 여자들 중에 이런 케이스가 많다. 이럴 때 주변에서 헤어지라고 종용하는 건 별 도움이 안 된다고.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어지는 이른바 ‘심리적 반발’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스스로 헤어질 때까지 내버려두는 수밖에 없다.
7년 동안 바람둥이와 연애를 했다. 사귄 지 5년 됐을 때 그가 데이트를 펑크 낸 적이 있다. 그러고는 며칠 뒤 고백하는 거다. 사실은 그날 딴 여자와 데이트를 했다고. “술자리에서 만난 여자인데, 걔는 날 남자로 느끼게 해줘”라는 쓸데없는 말도 곁들였다. 그러면서 나랑 헤어질 생각은 없고, 단지 거짓말하기 싫어서 얘기해두는 거라나. 기가 막혀서 헤어지자고 했다. 그런데 그 다음 날부터 이 남자가 미친 듯 매달리는 거다. 나를 시험해보고 싶었던 건데 어떻게 헤어지자고 말할 수 있냐며 나를 탓하기도 했다. 매일 집 앞에 찾아오고 무릎 꿇고 빌고. 그래서 결국 2년을 더 만났다. 사실 그 남자의 문제는 바람기만이 아니었다. 같이 노는 친구들이 죄다 양아치였다. 내 친구들은 교우관계만 봐도 뻔하다고, 걔도 양아치일 거라고 헤어지라 그랬는데, 한참 사귈 때는 그 말도 귀에 안 들어왔다. 결국 7년을 사귀고 헤어져 보니 양아치 맞더라. 잃어버린 7년(29세·동시통역사)
바람둥이들은 헤어지기로 마음먹으면 일부러 다른 여자와 만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여자가 제풀에 떨어져 나가주길 바라서다. 그들이 가장 싫어하는 건 상대방이 구질구질하게 매달리는 거다. 하지만 여자가 기다렸다는 듯 헤어지자고 하면 그건 그것대로 자존심이 상한다. 그럴 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잡는다. 때론 심리적 협박을 가하고(‘네가 떠나면 나는 망가질 거야’), 양심의 가책을 느끼도록 만든다(‘필요 이상 가혹하게 나를 벌주지 마’). 그건 그들이 거절 당하기 싫고 책임지기도 싫고 자기밖에 모르는 나르시시스트이기 때문이지 그녀를 사랑해서가 아니다. 하지만 여자들은 마음이 약해진다. 그래서 픽업아티스트를 위한 매뉴얼을 보면 ‘여자를 미안하게 만들어라,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라는 공식이 있다. 사랑한다는 말에 이용당하지 말자.
지금 남자친구와 사귄 지 2년 정도 됐다. 키도 크고 직업도 좋고 집안도 좋은 남자다. 남편감으로 괜찮을 것 같아서 나도 현모양처감으로 보이려고 노력했다. 그 집안이 독실한 크리스천이라서 신앙 깊은 며느릿감을 원한다기에 교회도 다니기 시작했다. 그런데 1년쯤 만나고 나서 왜 부모님에게 소개해주지 않느냐고 했더니, 내가 아직 신앙이 부족해서 부모님이 안 좋아할 것 같다는 거다. “나는 괜찮은데 부모님이….” 그의 핑계는 늘 그거다. 사실 그와 만나는 동안 데이트라도 할라치면 맛집 찾고 장소 정하고 이런 것도 혼자 다 알아서 했다. 얼마 전엔 같이 여행을 가기로 했다. 정보 찾고 예약하고 다 준비해놨는데 당일 날 그가 전화를 해서 “엄마가 결혼 전에 같이 여행 가는 건 좀 그렇대”라고 펑크를 냈다. 마마보이라기보단 개념이 없는 것 같다. 사실 이젠 그와 헤어진다고 해서 크게 충격을 받을 것 같지도 않다. 근데 내가 먼저 끊어내기도 싫다. 다시 애인 없는 서른두 살로 돌아간다는 게 너무 끔찍하다. 그가 헤어지자고 할 것 같지도 않다. 그는 나름대로 이런 관계에 만족하는 것처럼 보이니까. 차라리 그의 부모님을 만나서 시원하게 “이 결혼 반댈세”라는 말을 들으면 포기가 될 것 같다. 차라리 니가 날 버려(32세·회사원)
한 번 관성에 빠져들면 상대방의 결심이나 외부적인 요인 같은 게 없는 한 끝내기 힘든 게 연애다. 더구나 30대에 결혼까지 생각하고 있다면 흐리멍텅한 남자라도 속 시원하게 차버릴 수가 없다. 하지만 기왕 딴 남자를 만날 거면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찾아보는 게 유리하지 않을까? 이 남자와 끝까지 잘해볼 생각이면 좀 훈련을 시키든가. 왜 매번 데이트 장소를 직접 정하나? 여행 예약은 왜 직접 하고? 강아지에게 앞발 내미는 훈련을 시키려면 앞발을 내밀었을 때 간식을 줘야 한다. 간식부터 주고 앞발을 내밀게 하면 훈련이 안 된다. 그러다 싸우면 그거야말로 당신이 기다리던 결정적 계기가 될 테니, 밑져야 본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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