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 성장의 문을 통과하다

<거침없이 하이킥>의 귀여운 ‘범이’는 잊어도 좋다. <에덴의 동쪽>의 동철은 막 스무 살을 통과한 김범의 배우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말간 얼굴의 해맑은 미소를 짓는 소년의 모습 이면엔 카멜레온처럼 다양한 면모가 숨겨져 있다. 보여준 것보다 보여줄 게 훨씬 많은 김범의 자화상.
BY | 2016.04.06
대한민국에서 ‘시트콤’이란 장르는 어린 배우들의 대표적인 등용문이다. 그런데 이 마법의 문에는 양날의 칼이 숨어 있다. 극중에서 자기 이름에 역할을 덧씌워 등장한 어린 배우들은 대중들의 기억 속에 명확히 각인될 수는 있을지언정, 다른 역할로의 변신을 허락 받기란 좀처럼 쉽지 않다. 대중은 성공적으로 배우의 자리에 안착한 얼굴만을 기억한다. 그러나 그 뒤로 캐릭터의 틀을 깨지 못한 많은 이들이 자기 자신과 역할의 경계가 지워진 채 잊혀져간다. 어쩌면 어떤 문을 열고 등장했느냐가 아니라 어떤 문을 계속해서 열어 나가느냐 하는 데 핵심이 있을 것이다. 이쯤에서 우리는 걸작으로 추앙받는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이 낳은 청춘 스타들의 얼굴을 떠올리게 된다. 그 중 넉살 좋은 모범생 ‘김범’으로 출연한 김범은 함께 스타가 된 친구들 사이에서 유독 눈에 띄는 행보를 보인다. 드라마 <에덴의 동쪽> 이후 어떻게 지내나? 학교(중앙대 연극학과)에 다니고 있는데 일본에서 팬 미팅이 있어서 그 준비 때문에 정신이 없다. 이것저것 준비도 하고 일본어 레슨도 받는다. 일본에서? 어떤 작품 때문에? <거침없이 하이킥>은 종영한 지 좀 됐다. 그런데 <에덴의 동쪽> 송승헌 아역으로 주목을 받게 됐다. <에덴의 동쪽>이 그리 쉬운 선택은 아니었을 것 같다. 굉장히 설레고 기대가 컸던 게 사실이다. 50부작의 첫머리를 맡는다는 것, 톱스타인 송승헌 아역인 것도 그랬다. 부담도 만만치 않았고. 게다가 1, 2회 대본을 지난 1월에 봤는데 동철이란 인물에 전혀 공감을 할 수 없었다. 몰입하기가 힘들어서 큰일났다 싶었다. 어떤 인물을 연기하는 사람이 역할을 이해 못하고, 감정을 못 따라간다는 건 큰 문제다 싶어, 이 역할은 나랑 안 맞나보다 하고 포기하려고 했었다. 그래도 감독님이 끝까지 믿어주시고 작가님이 도와주셨다. 해법은 대본을 계속 읽는 것뿐이었다. 대본이란 게 한 번 읽을 때랑 두 번 읽을 때, 열 번 읽을 때가 다 다르니까. 겨우 동철을 이해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연구 분석이 가능해지더라. 격한 감정 신도 여러 번 등장하던데. 주변의 선배님들이 모두 쟁쟁하신 분들이다. 도움도 많이 받았다. 아무리 내 감정이 부족한 상황이어도 주변에서 대선배님들이 눈물을 뚝뚝 흘리고 계시면 나도 같이 울 수밖에 없다. <에덴의 동쪽>을 계기로 ‘김범이 변했다’, 혹은 ‘김범의 재발견’이라는 평가를 많이 받았다. 극중에서 동철이란 인물이 성장을 한다. 처음엔 고향에서 리어카를 끌고 시장통을 돌아다니고, 동생 대신에 소년원에 끌려가고 어두운 세계에도 들어갔다. 연기를 하면서 성장하는 동철을 직접 보고 느끼면서 나 역시 달라졌다. 많은 분들이 격려를 해주셨다. 나 자신에게도 힘이 됐고 자신감도 키웠다. 부담도 물론 컸지만 이번 작품을 계기로 배우라고 말씀해주시는 분들이 생겼다. 그게 좋다.
<거침없이 하이킥>에 함께 나온 또래들 중 가장 많은 필모그래피를 쌓았다. 작품을 고를 때 적극적인가? 다작? 그런가?(웃음) 출연작을 결정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내 자신이라고 생각하긴 한다. 배역이 나와 맞지 않으면 그렇게 몇 개월을 살 수가 없다. 그래서 내 의견을 가장 많이 반영한다. 물론 회사와 주위 선배들과 의논하기도 한다. 영화 <뜨거운 것이 좋아>에서는 ‘소희’의 상대역으로 주목을 받았지만 배역은 작은 편이었다. <거침없이 하이킥>이 끝나고 첫 작품이었다. 9개월 넘게 ‘김범’이란 캐릭터로 살아왔는데 팬들도 많이 생기고 사랑도 받았기 때문에 나 역시 애정이 컸다. 그런 차에 <뜨거운 것이 좋아>의 ‘호재’를 만났는데, ‘김범’의 연장선에 있을 법한 캐릭터인 거다. 마지막으로 ‘김범’을 다시 해보자 싶었다. <고사 : 피의 중간고사>의 반항적이고 선 굵은 캐릭터가 발판이 되어 동철로 옮겨간 것 같다. 처음엔 내 연기 스타일이나 기존 이미지와는 전혀 안 맞을 것 같았다. 그래서 출연할 생각이 없었다. 그러다 시나리오를 읽고 생각이 바뀌었다. 영화적이면서 만화적인 느낌이 났다. 특히 ‘강현’이란 역할이 그랬다. 해봐도 나쁘지 않겠다, 재미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공포영화라는 장르가 현장에서 촬영했을 때 상상할 수 있었던 화면 그 이상으로 결과가 나오니까 정말 신기하더라. 공포영화보다는 스릴러를 좋아하긴 하지만 흥미로운 경험이었던 것만큼은 분명하다. 미니홈피의 멘트가 예사롭지 않아 보이더라. “사람들이 울고 웃고 싶어하는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 배우는 자신의 ‘자유욕’을 버릴 수 있다”고 씌어 있다. 대학에서 ‘인간의 욕구’라는 주제로 리포트를 쓸 일이 있었다. 나는 이 사회에서 배우로 활동하는 사람이니까 그 입장에서 인간의 욕구에 대해 글을 썼다. 중요한 리포트는 아니었는데 주제가 무척 흥미로운 소재여서 굉장히 긴 리포트를 낸 기억이 있다. 리포트 가운데 그 구절이 마음에 들어서 미니홈피에도 올린 것이다. 인용한 게 아니고? 직접 썼다. 글 쓰는 걸 좋아한다. 시나리오 쓰는 게 꿈이다. 특별히 시간을 내서 글을 쓰지는 않지만, 일상 속에서 리포트를 쓴다거나 메모를 틈틈이 쓴다. 영화가 될 만한 재미있는 얘기 같은 거. 소재는 많은데 시나리오 작업까지는 못했다. 기회가 된다면 연출도 해보고 싶다. 쉴 때는 주로 뭘 하나? 운동하는 게 좋다. 축구, 헬스를 하거나 심심하면 집 앞에서 줄넘기라도 한다. 술은? 많이 마시지는 않고, 그냥 술자리는 좋아한다.
보이는 이미지와 달리 굉장히 신중한 성격인 것 같다. 생각이 많지만 다른 사람들 걱정을 끼칠 정도는 아니다. 그냥 놀아야 할 때는 열심히 놀고, 일할 때는 후회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서 일하고, 진지할 땐 진지한 편이다. 그보다도 사실은 하나에 빠지면 끝장을 봐야 하는 성격이다. 이 얘긴 거의 모든 인터뷰에 빠지지 않고 나온다.축구 같은 스포츠 경기할 때도 그렇고 남들은 사소하게 생각할 수 있는 거라도 지는 걸 무척 싫어한다. 어렸을 때부터 잘생겼단 소리를 들었을 법하다. 배우는 어릴 때부터 꿈이었나? 어릴 때 인상은 지금과 많이 달랐다. 나를 무서워하는 친구들도 많았고. 잘 웃지도 않는 성격이었고. 물론 잘생겼다는 소리는 몇 번 들어봤지만. 근데 연예인을 하기엔 좀 애매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얘기하니 시작이 궁금해진다. 어떻게 연기쪽에 발을 들였나? 이쪽 일을 하고 싶단 생각은 해본 적도 없었다. 또래들처럼 연예인에 열광하는 성격도 아니고. 꼭 팬이 아니더라도 연예인이 나타나면 신기해서 달려가지 않나. 나는 그런 게 전혀 없었다. 그런데 중학교 3학년 마치고 겨울방학으로 넘어가는 사이, 아는 분의 소개로 대한민국 영화대상 시상식장에 가게 됐다. 그때도 ‘영화배우는 영화에서 봤으면 됐지 왜 직접 보러 다니나’ 싶었다. 그러다 경험 삼아 한번 가보기나 하자, 한 거다. 그런데 거기 가보니 배우가 하고 싶어지더라? 2층 객석에 앉아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자 1층 객석에 레드카펫을 밟고 영화인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서로 다른 작품에서 서로 다른 연기를 했던 배우들, 감독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서로 축하해주고 분위기를 즐기고 있는 모습을 보니까 너무 매력적인 거다. 나도 언젠가 저런 멋있는 사람들이랑 함께, 저 자리에 같이 있고 싶다고 생각한 것 같다. 마음을 먹고 나서는 순탄했을 것 같다. 전혀! 부모님 도움은 없었다. 나 혼자 하고 싶어서 연극, 영화, CF, 드라마 오디션을 찾아다녔다. 개인으로는 한계가 느껴져서 나중엔 매니지먼트회사를 찾아갔다.
성장통은 없었나? 특별히 성장통이랄 것은 없었다. 그렇지만 <거침없이 하이킥>이 끝나고 나선 무척 초조했다. 어려 보이는 ‘김범’의 이미지가 남아 있는데 주변에서 성인 연기자로의 변신을 요구 받았으니까. 그런데 성인 연기자와 아역 연기자라는 게 경계가 굉장히 애매모호하지 않나. 성인 연기라는 게 성인을 연기한다기보다는 조금 다른 의미를 품고 있고. 경계가 애매하니까 성인 연기자로의 변신에 부담을 느끼면 굉장히 초조해지고 불안해진다. 또 자기 자신만 그러면 모를까 나를 믿어주는 사람들까지 그렇게 만들어버리면 서로 신뢰하던 시스템이 무너져버린다. 그런데 <에덴의 동쪽>을 촬영하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내가 이만큼 준비한 걸 보여주고 성장하는 걸 보여주면 보시는 분들도 그렇게 느껴주시는구나, 성인 연기를 해야지 하는 부담을 안고 하는 게 아니라 그냥 동철이가 되는 게 정답이구나, 그렇게 집중하면서 6개월을 보내니까 나도 정말 성장한 것 같다. <에덴의 동쪽> 2부 첫 등장과 5부 마지막 모습을 보면 나도 내가 달라졌다는 걸 느낀다. 롤모델이 필요할 시기인데, 누군가? 조인성은 정말 좋아하는 선배다. 데뷔 전부터 거의 유일하게 좋아했던 배우고. 그냥 좋다. 부드러운 인상, 그리고 때로는 남자다운 모습까지. 나처럼 어릴 때 시트콤으로 얼굴을 알렸다는 점이 비슷한데 나중엔 연기로도 인정받지 않았나. 영화에서는 또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어렸을 때 데뷔했어도 식상하지 않고 항상 새로운 느낌이다. 차기작이 <꽃보다 남자>다. 이번에도 역시 만만찮은 부담이 될 것이다. 정말 그렇다. 원작이 너무 유명하고 벌써 대만과 일본에서 드라마가 나왔다. 내가 어떻게 하더라도 비교를 당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 드라마는 원작에 가장 가깝게 만들어질 예정이라서 나 역시 원작의 ‘소지로’에 가까운 ‘소이정’을 연기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여러 가지 준비할 게 많을 텐데. 내면적인 아픔을 아무렇지도 않게 감추고 살아가는 인물인데 최고의 바람둥이로 나온다. 물론 사연이 다 있기 때문이라 그런 부분을 잘 살려야 한다. 지금 역할 분석을 하고 있는 중이다. 일본에 다녀오면 집중력을 발휘해서 열심히 해야 하는데, 시간은 없고 배울 건 너무 많다. 원작에서는 ‘소지로’가 다도를 하는데 이번 드라마에서는 명문 도예가 집안의 아들로 나온다. 상류층 엘리트 친구들이라 스포츠도 승마, 럭비, 테니스, 골프 같은 해보지 않은 것들을 해야 하고 색소폰도 배워야 하고. 10월 말에 촬영이 시작되는데, 일본 갔다 오면 23일. 큰일났다, 지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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