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패션을 입는 법
90년대가 남긴 찬란한 유산, 그에 대한 지독한 향수가 이번 계절을 가득 채운다.
BY | 2016.04.13
2000년대 초반, 패션 매거진 속에는 언제나 90년대에 대한 지독한 그리움과 열망이 가득했다. 마치 그 시절의 에디터들은 붙잡을 수 없는 속도로 흩어지는 사랑을 되돌리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한 사람처럼 보였다. 헬무트 랭과 앤 드뮐미스터, 커트 코베인과 리버 피닉스로 점철되는 그 시절의 반항적이며 맹랑한 태도, 그리고 그와는 이질적으로 모든 것에 초연한 듯 무심한 마음과 허무한 기분이 뒤섞인 90년대에 대한 애착. 40년대 재즈나 80년대 펑크와 신시사이저, 90년대의 얼터너티브와 같이 어떤 뚜렷한 문화나 사조 없이 모든 것이 범람하는 인터넷 시대를 사는 요즘 세대에겐 그런 태도가 낯설면서도 흥미로울 것이다. 특정 브랜드나 디자이너에게 종교와 같은 맹목적인 찬사를 보내고, 당시 패션과 어떤 유대관계를 지녔던 것처럼 행동하며, 암묵적으로 어떤 ‘나만의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처럼 보이니까. 무엇보다 90년대 특유의 분방하고 자유로운 기운이 패션 전반을 가득 메우며, 젊은 세대들은 책이나 영화, 전시 등 90년대를 둘러싼 여러 문화를 접하며 그 시절의 단서를 찾으려고 발버둥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특정 시대 안에서 그 시절의 문화와 신념을 경험하고 이해하지 못했기에 커트 코베인이나 위노나 라이더, 케이트 모스처럼 입고 다녀도 그건 그저 우스운 ‘코스프레’에 불과해 보였다. 무엇보다 의도적으로 불균형과 부조화를 연출하던 최근 몇 년간의 하이패션 또한 유사한 맥락으로 아주 우스꽝스럽게 느껴졌다. 고고한 태도를 유지하던 콧대 높은 하우스 브랜드들이 스트리트 문화가 유행하자 갑작스레 월마트에서 팔 법한 티셔츠에 그들의 로고를 미친 듯 찍어냈던 현상과 같은 것들이 말이다.
그런데 요즘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을 보면서 90년대가 만들어낸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조금 알 것 같았다. 그들은 타미 힐피거나 폴로, 게스, 베네통처럼 큼직한 로고나 메이커에 대한 거부감이 없었고, 거기에 베트멍이나 고샤 루브친스키, 퍼킹 어썸, 트레셔와 같은 브랜드를 대담하게 섞고 제멋대로 겹쳐 입고 있었다. 그렇다고 구찌나 루이비통, 셀린, 로에베와 같은 하이패션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은 것도 아니었다.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하우스들이 패션에 접근하는 고전적인 방식을 받아들이고, 그들의 독보적인 예술성과 아름다운 심미안을 탐구했다. 삶의 방식도 그들이 옷을 입는 방식과 비슷했다. 대학에서 전공하지 않은 것, 즉 전문적으로 배우지 않은 것이라 할지라도 그저 흥미와 관심이 있다면 지독할 정도로 깊게 파고들었다. 물론 결과물도 끝내줬다. 자신과 다른 분야에서 일하거나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사람들과도 거리낌 없이 지냈다. 그들이 삶을 살아가는 방식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보고 있자면 마치 90년대를 살았던 당시 청춘들의 분방함이 눈앞에 선했다. 요즘 젊은 세대들의 이런 태도야말로 90년대가 남긴 유산의 동시대적인 재해석처럼 다가왔던 것이다.
물론 이런 방식과 기질은 패션에서 아주 극명하게 드러난다. 90년대라는 특정 시대가 이번 계절을 아름답고 충만하게 수놓는다. 무엇보다 이는 동유럽을 기반으로 한 디자이너들에게서 짙게 배어난다. 베트멍의 뎀나 즈바살리아와 고샤 루브친스키를 필두로, 올해 LVMH 프라이즈에 노미네이트된 와이 프로젝트나 알토, 웨일즈 보너, 코셰 모두 하이와 로우를 오묘하게 섞고, 그런지를 기반으로 한 드레스 다운적인 접근을 통해 놀랍도록 새로운 스타일을 선동하고 있다. 무엇보다 그 기반에는 에디 슬리먼과 마크 제이콥스, 피비 파일로, 킴 존스, 알렉산더 왕처럼 오랜 전통을 지닌 하우스의 수장을 지내고 있는 자들이 있다. 90년대에 20대를 보낸 그들이야말로 레이브 컬처와 얼터너티브 그런지, 힙합과 같은 문화를 패션에 오묘하게 녹여내며 그 시절의 패션을 누구보다 찬란하게 수놓았던 사람들이 아닌가. 특유의 하위 문화적이고 분방하며 자유롭던 감성이 하이패션이라는 필터를 거쳐 전혀 예상치 못했던 럭셔리를 만들어냈던 90년대 쿨 키즈 스타일. 그 시절, 그런 옷을 보고 입으며 자란 새로운 세대인 뎀나 즈바살리아나 로타 볼코바 아담과 같은 자들이 동시대적인 접근 방식을 통해 90년대를 2016년식으로 재창조하여 우리 앞에 내놓고 있는 것이다.
점점 세상은 쉽고 편안하게 흐른다. 그렇기에 모든 것이 가볍고 쉬워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그 과도기를 경험했던 지금 세대 디자이너들이 90년대에 지독한 갈망을 보내고, 이를 옷에 짙은 흔적으로 남기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익숙해서 지루해진 것들을 멋대로 부수고 갈기갈기 찢어놓았던 90년대식의 분방한 태도. 속옷을 입지 않은 채 드레스나 티셔츠를 즐겨 입었던 케이트 모스, 찢어진 청바지에 목이 늘어난 티셔츠를 입고 다녔던 위노나 라이더, 한참은 빗지 않은 듯 헝클어진 헤어스타일을 고수했던 코트니 러브처럼 당시의 패션, 즉 스타일과 애티튜드는 언제나 그들 곁에서 늙지 않는 불멸의 존재였던 것이다. 그렇기에 90년대 스타일은 그 어떤 것보다 눈부시고 찬란하며 아름다워 보인다. 유스 컬처가 범람하는 시대에서 젊은이들의 문화를 탐하며 젊어 보이길 애쓰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90년대에 대한 애정 어린 지독한 집착이 느껴진다. 무엇보다 이런 시점에서 문득 궁금증이 생긴다. 지금의 시기를 지나 다음 세대, 즉 2000년대에 10대를 보냈던 자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지 말이다.
4가지 단서
혼란스러웠기에 더욱 눈부셨던 90년대. 그 시절을 규정 짓는 네 가지 스타일.
1 Alternative Grunge
커트 코베인과 코트니 러브는 90년대 음악을 규정 지었던 전설이자 사조다. 그들이 즐겨 입었던 플란넬 체크 셔츠나 너덜너덜한 청바지, 꼬질꼬질한 운동화야말로 얼터너티브 그런지의 핵심이다.

1 N°21 198만원.
2 세컨 플로어 19만5000원.
3 생로랑 가격미정.
4 발렌티노 180만원.
5 이자벨 마랑 198만원.
6 이자벨 마랑 에뜨왈 18만원.
2 Clean Minimal
90년대 패션을 규정하자면 누가 뭐래도 질 샌더와 캘빈 클라인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보여주었던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되 그 어떤 것보다 힘있던 미니멀리즘. 그 아름다움은 여전히 유효하다.

1 유니클로 앤드 르메르 3만9900원.
2 멀버리 149만8000원.
3 르메르 68만원.
4 에르메스 가격미정.
5 캘빈 클라인 플래티늄 75만8000원.
6 피에르 아르디 가격미정.
3 Youthful Street
90년대에는 크리스 크로스나 TLC, 로린 힐과 같이 흑인 가수처럼 입고 싶었던 사람들이 수두룩했다. 골반 아래 한껏 청바지를 내려 입고 두 치수 정도는 큼직한 티셔츠를 입어야 한다.

1 비비안 웨스트우드 108만원.
2 LMC 7만9000원.
3 버쉬카 5만5000원.
4 생로랑 80만원.
5 필라 오리 지날레 10만9000원.
6 겐조 가격미정.
4 Classic American
스웨트 셔츠, 단단한 데님 재킷, 야구모자처럼 미국적인 캐주얼 스타일에 대한 집착이 유독 두드러진다. 차분한 감색이나 회색에 성조기나 큼직한 글씨가 새겨져 있으면 금상첨화다.

1 샤르망 Z by 시원 아이웨어 56만4000원.
2 헤리티지 플로스 14만9000원.
3 에잇세컨즈 3만9900원.
4 뉴발란스 3만4000원.
5 리바이스 34만9000원.
6 라이풀 7만9000원.
7 뉴발란스 15만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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