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훈이라는 남자의 정체

그를 어디에서 처음 보았는지 도통 떠오르질 않는다. 이상하다. 김지훈의 짙은 외모라면 제법 진한 잔상을 남겼겠건만, 얼풋한 기억 속에 ‘진짜 김지훈’은 없다. 이 순간, 눈앞에 있는 김지훈이 못 견디도록 궁금한 까닭은 이전의 김지훈과 또 다른 김지훈이기 때문이다. 이 남자, 도대체가 미궁이다.
BY | 2016.04.15
김지훈은 잘생겼다. 김지훈은 느끼하다. 김지훈은 반듯하거나 귀엽다. 김지훈은 섹시하다. 김지훈은 소년 같고, 김지훈은 남자 같다. 김지훈은, 김지훈은 그렇다. 생김새마저도 하나의 형용사로 설명하기 힘든 이 청년은 소년의 담백한 웃음을 짓다가도 돌연 씀벅씀벅한 눈을 비비며 체념을 아는 어른의 씁쓸함을 풍긴다. 한 사람의 정체성은 타인의 시선의 조합이다. 은밀한 내면 세계 따위는 보여지지 않는 한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니, 누군가의 ‘진짜’와 마주하게 된다는 건 어쩌면 환상에 불과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치자면 김지훈은 없는 게 맞다. 김지훈은 김지훈이 아니라 박현수고 이복수였으며 조기동이었으니까. <상상플러스>에서 보여지는 까불이 김지훈조차 ‘진짜 김지훈’은 아니라고 눈앞의 진짜 김지훈이 말하고 있으니, 이쯤 되면 뭐 무수한 월리들 사이에서 진짜 월리를 찾아야 하는 수준이다. 김지훈과 마주하는 내내, 홍콩 감독 두기봉의 근작 를 떠올린다. 주인공 번 형사는 인격을 읽는 능력을 지녔다. 다른 사람의 눈에 그는 그저 미친 사람일 뿐이지만, 그는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인격을 본다. 건실한 청년에게서 겁쟁이 소년을, 번듯한 형사에게서 살인자의 인격을 보는 식이다. 다중인격의 새로운 해석이고 한국식으로 치자면 빙의에 가까운 얘기지만, 에디터는 이처럼 인간 내면의 복잡다단한 구조를 농밀하고 실제적으로 풀어낸 영화는 더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아, 오해는 말자. 김지훈이 다중인격이라거나 미쳤다거나 뭔가에 홀린 듯 얼빠진 놈이었더라는 그런 생트집을 늘어놓고픈 게 아니다. 한마디로 김지훈 안에는 그만큼 다양한 버전의 김지훈이 구비되어 있다는 말이다. 그 전환이 마치 스위치 하나로 조작 가능하듯 번뜩번뜩 이루어진다는 데서 김지훈은 명백한 배우감이다. 그러니 속지 말아야 할 것이다. 당신이 보는 김지훈은 김지훈이 아닐 수도 있다. 지금부터 보여지는 김지훈도 온연한 에디터의 시선일 뿐이다. 하지만 이 순간의 김지훈은 박현수도 조기동도 이복수도 까불한 김지훈도 아닌 진짜 김지훈이었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는, 무수한 당신들이 그러하듯, 김지훈이 만들어내는 ‘순간’을 믿는다. 그 순간이 환상이라 해도 좋다.
사람들에게 ‘김지훈’을 물었더니 대답이 모두 달랐다. 반듯하다, 섹시하다, 잘생겼다, 느끼하다, 귀엽다, 4차원이다 등등. 실제의 김지훈은 이 중 무엇과 가장 근접할까? 그게 다 나다. 어떤 건 버리고, 어떤 건 남겨놓고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니까. 나조차도 가끔씩 내 외모가 부담스러울 때가 있는데, 생긴 건 바꿀 수도 없고. 속옷 화보를 찍으면 섹시해 보이고, 드라마에서 반듯한 역할을 맡으면 반듯해 보이고, 매체를 통해서 나의 다양한 일부분이 보여지는 것뿐이다. 복잡한 ‘나’라는 사람을 한 번에 보여준다는 건 불가능한 것 같다. 사실 나도 나를 잘 모르기도 하고. 방송이란 게 그렇다. 드라마에서 어떤 역할을 맡으면 실제로 내가 그런 것처럼 보여지고, 반대의 모습을 보이면 또 이런 사람일 수도 있구나 하는 거다. 사람들은 ‘보여지는 모습’을 받아들이기 마련이다. 그런 다양한 나의 모습들이 다 좋다. 다양한 모습을 갖고 있다는 건 연기자에게는 재능이지 않을까? 확실히 연기자에겐 장점이다. 비슷한 역할만 주야장천 하는 것보다 작품마다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게 좋다. 정형화된 이미지가 없다는 게 연기할 때 되레 매력이 되는 것 같다. 그런 면에선 나의 종잡을 수 없는 성격이 많이 도움이 되긴 하나 보다. 전공이 심리학이던데, 연기에도 영향을 미쳤나? 알게 모르게 보탬이 되고 있다. 다만 좀 아쉬운 게 있다면, 대학교 때 VJ로 데뷔를 한 후로는 쭉 일을 하면서 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사실 수업을 소홀히 했다. 평점 2.0을 겨우 넘기고 간신히 졸업했는데 지나고 나니 참 아쉽다. 정말 제대로 공부해보고 싶은 분야여서 들어간 과였는데, 당시에는 한 번에 두 가지 일을 한다는 게 쉽지 않았다. 그래도 4년 동안 2점 몇이라는 학점만큼 배우긴 배웠다. 반이라도 말이다. 연기를 하다 보면 내 캐릭터건 상대방의 캐릭터건 남들보다 깊고 폭넓게 이해하게 된다. 심리학에서 배우는 게 어떤 행동의 원인과 결과다. 사람의 말과 행동에는 모두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다 보면 더 이해를 잘할 수 있고, 그래서 연기를 할 때도 어떤 마음으로 해야 하는지 몰입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런 습관 덕인지 몰라도 실제의 나도 화를 잘 안 내게 된다. 화를 내는 건 상대방의 의도를 이해할 겨를이 없거나 그럴 의지가 없다는 건데, 누가 나를 한 대 때리면 나는 되레 ‘어, 왜 때렸지?’ 생각하고 이해가 되면 그냥 넘어간다. 착해서라기보다는 생각이 많아서인데, 이게 때로는 피곤하다(웃음). 어쨌든 김지훈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은 외모라고 생각한다. 잘생긴 건 좋은 거지만, 너무 짙은 인상은 되레 제약이 될 테니까. 신인일 때는 특히 그랬다. 주인공을 맡을 만큼 내세울 것도 없고, 아무래도 감초 역할이나 조연을 해야 하는데, 사실 전형적인 감초형 얼굴은 아니어서 제약이라면 제약이 되었달까. 그래서 캐스팅이 어려웠던 적도 있다. 역할과 안 어울리게 너무 번듯한 이미지라 극이 산만해질 수도 있단 이유로 중간에 취소되기도 했고. 뭐 어쨌든 그런 건 다 연기로 극복해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럼, 스스로의 외모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부모님께 감사할 따름이다(웃음). 사실 내 의지로 이렇게 된 건 아니니까. 어머니가 잘 만들어서 내보낸 것도 아니고, 신이 뺑뺑이를 돌렸는데 우연히 이런 꽤 괜찮은 조합이 된 격이지 않나. 우리 어머니도 가끔씩 TV 보다가 “내가 낳았지만 어떻게 이렇게 잘났니? 참 잘생겼다”고 말씀하신다. 자기 아들을 보면서 뿌듯하신 거다. 솔직히 운이 좋다고밖에. 외모는 부모님 마음대로, 내 맘대로 되는 것이 아니니까. 어렸을 때 김지훈은 어땠나? 개구쟁이였을 것 같다. 확실히 지금보다 못됐었지(웃음). 남 생각 전혀 하지 않는 이기적인 아이였다. 초등학교 때도 그냥 재미로 놀리는 게 아니라, 상대방한테 비수가 돼서 꽂힐 말인 줄 알면서도 일부러 하기도 하고 그랬다. 생각 없이 행동하고, 막말도 잘하고. 지금도 그런 직설적인 성격이 남아 있는 편이지만 그래도 많이 사람 됐다. 그런데 어렸을 때는 다들 그런 개념 없는 면이 있지 않나? 그런 김지훈이 내년, 내후년이면 곧 서른이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내가 보는 나는 스무 살 때나 스물여덟인 지금이나 늘 똑같다. 단지 내 나이의 숫자가 많아지면서 상대방이 그에 걸맞은 행동을 요구하게 되고 거고, 나는 대체로 그런 요구에 잘 부응하는 편이다. 그래서 어디서든 욕은 안 먹고 다니는 것 같다. (웃음) 사실 나이 먹는 것에 그리 연연하지 않는다. 서른이 되는 게 싫다고 해서 피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저 담담하게 나이를 한 살씩 더 먹는 것 정도. 자고로, ‘어른 남자’란 어때야 한다고 생각하나? 무엇보다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 스스로를 책임지고 가족을 책임지고 일을 책임질 줄 알아야겠지. 지나치게 감정적인 행동도 자제하게 되고, 참아야 되는 일도 많아지고, 아는 게 많아지는 만큼 억눌러야 하는 것도 많아질 테고. 아까 ‘어른 남자’를 콘셉트로 촬영할 때, 김지훈이 보여준 모습은 참 피곤해 보였다. 역시, 어른 남자는 피곤한 존재라고 생각하나? 당연히 피곤할 수밖에 없다. 이것저것 생각할 게 너무 많은데 어찌 삶이 고단하지 않겠나? 스트레스 받는 일도 많아지고 말이다. 일이 잘되도 바빠서 스트레스고, 안되면 안돼서 스트레스 받고…. 어른은 피곤하다. 지금의 나도 그렇다.
남자 김지훈과 소년 김지훈의 가장 큰 차이는? 음. 아무래도 여러 면에서 능숙해졌겠지. 당연히 여자를 대하는 태도도 달라졌을 테고(웃음). 경험은 사람을 발전하게 한다. 내 삶을 관통하는 모토가 있다면 그건 발전이다.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늘 좀더 발전하려는 마음가짐으로 살다보니 조금씩 예전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다. 여자를 대할 때도 예전에는 미숙하고 모자랐던 부분이 많았다면 그때보다 여유도 생긴 것 같다. 단적인 예로 여자친구를 사귈 때도 갑자기 연락이 안 되면, 지금 같으면 ‘내가 싫어졌나 보다’ 하겠지만 어렸을 때는 그런 쿨함 따위 없었다. 만나던 여자애가 전화를 안 받으니까 화 나고 열받고 걱정이 돼서 받을 때까지 전화했다. 스토커처럼 말이다. 그렇게 하루 종일 전화를 했더니 결국 나중에 받더라. 차라리 싫으면 싫다고 하면 될 것을, 그 아이도 어렸던 탓에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는데, 그때는 나도 순진해서 계속 “왜 그래? 왜 전활 안 받아?” 하고 따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서툴렀지. 드라마 <연애결혼>에서도 ‘박현수’는 서툰 남자의 매력이 있는 캐릭터다. 그런데 만약 <연애결혼>처럼 일과 사랑 중에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생긴다면? 지금과 나중의 대답은 다를 것 같다. 지금은 아무래도 일이다. 나중에 원하는 만큼 성취를 한 다음에는 정말 그래야만 하는 상황이라면, 일을 버릴 수도 있겠지. 그래도 역시 그런 상황은 안 왔으면 좋겠다. (웃음) 사실 이 문제는 현재의 내가 당면한 고민이기도 하다. 일하면서 만난 여자친구들은 늘 일을 우선시하는 나 때문에 힘들어 했으니까. 표면적으로도 늘 바쁘고 시간이 없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스스로를 달랬지만, 상대방이 힘든 만큼 나도 힘들어졌다. 사실 내 나이 또래라면 누구나 미세하게나마 마음이 일 쪽으로 좀더 치우치지 않나? 일:사랑의 비율이 51:49 정도로 말이다. 김지훈이 정말 잊지 못하는 연애 스토리도 있나? 쪽팔린 경험은 하나 떠오른다. 이것 역시 순진하던 고3 시절 이야기인데, 아, 대체 왜 여자들은 헤어지고 싶으면 헤어지자고 말하면 되지 그냥 잠수를 타는 걸까? 전화도 안 받고 말이다! 어리니까 그럴 수도 있었겠지만 여튼 그땐 나도 어려서 더 이해를 못했던 것 같다. 그러니까, 수능 100일 전에 만나서 사귄 여자친구가 수능 50일 전부터 갑자기 연락이 안 되는 거다. 왜 그럴까, 왜 연락이 안 될까, 뭐가 문제일까 계속 혼자 고민했다. 마침, 수능 50일 선물로 여자친구에게 주려고 산 머리핀이 있었는데, 사실 비싼 건 아니었지만 정말 그냥 머리핀이 주고 싶어서 샀던 건데, 시험 기간에 갑자기 그걸 줘야겠다는 생각에 공부가 손에 안 잡혔다. 마침 비도 오고, 끼고 있던 이어폰에서는 서태지의 ‘널 지우려 해’가 흘러 나오고. 그대로 벌떡 일어나 빗속을 뚫고 그 친구가 다니는 독서실로 달려가 사물함에 머리핀을 넣어두고 왔다. 지금 생각하니 정말 쪽팔리지만(웃음) 그때는 정말 애틋했고 그만큼 순진했었다. 나중에 그 친구는 꽤 의아했을 것이다. 내가 줬다는 표시도 없이 그냥 핀만 놓고 왔으니, 누가 놓고 간지도 몰랐을 테고. 연기 욕심은 어떤가? 아직 방송에서만 활약하고 있는데, 영화 욕심도 꽤 있을 것 같다. 연기자니까 당연히 욕심도 있고 관심은 더더욱 많다. 연극도 언젠가는 꼭 한번 해보고 싶은데, 사실 아직 방송으로 더 많은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시기라 생각해서 연극은 좀더 여유가 생기면 도전해보고 싶다. 영화는 지금 당장이라도 몹시 하고픈 상태지만 아직까지 기회나 운 때가 잘 맞지 않았던 것 같다. 사실 영화를 하고 싶다고 해서 아무 영화나 할 수도 없고, 내가 하고 싶다고 해서 하게 되어지지도 않는 부분이니까. 좋은 감독님과 좋은 시나리오와 좋은 역할이 모두 충족되어야 할 텐데, 아직까지 그런 기회가 없었다. 어쩌면 내가 너무 욕심을 부리는 걸 수도 있지만, 괜히 어설프게 하는 것보다 이왕 한다면 제대로 잘하는 모습을 선보이고 싶은 건 배우로서 당연한 욕심이다. 그렇다면 어떤 역할을 탐하나? 남자답고 거친 모습? <영화는 영화다>의 소지섭 역할 같은 것도 좋겠다. 혹은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 역할. <추격자>에서의 하정우처럼. 앞으로 어떤 연기를 보여주고 싶은가? 할 때마다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극과 극을 오가면서, 다양한 스펙트럼의 연기를 선보이고 싶다. 사람들이 나에 대해 ‘김지훈은 이런 배우’라는 굳어진 이미지를 갖지 않고, ‘김지훈이 다음에는 무얼 할까?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하는 궁금증을 가졌으면 좋겠다. 사실 아직은 경력도 짧고, 연기의 폭도 매우 좁지만 조금씩 조금씩 양쪽으로 그네를 타듯 넓혀가다 보면, 언젠가는 김지훈이라는 배우가 갖는 한계의 폭이 확장되지 않을까. 최근 <상상플러스>에 출연하면서 예능계의 신성으로 주목받고 있다. 드라마에서 보여지는 캐릭터와는 또 다른 의외의 모습도 발견하게 되고, 여튼 재밌다 처음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과연 어떤 모습을 얼마만큼 보여줘야 하는 건지 꽤 고민했다. 사실 누가 처음 출연하면 다들 기대치가 없다. 당연하다. 그 전에 ‘이게 나요’ 하고 보여준 게 없으니까, 대충 드라마 캐릭터 중 하나를 기대했을 것이다.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해 나를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에 어떻게든 열심히 했다. 그러다 보니 진행 아나운서에게 들이대는 콘셉트가 ‘재밌다’고 통했고, 사람들이 계속 그 모습을 보기를 원하니 (연기자의 천성 탓인지 몰라도) 일부러 더 그렇게 하게 되더라. 이젠 작가들이 알아서 그런 멘트를 써준다. 물론 그것도 나의 모습의 일부지만 <상상플러스>에서 보여지는 게 완전한 내 모습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것도 일종의 연기인 셈이니까. 그렇다면 ‘진짜 김지훈’은 어떻게 보여지길 바라는지? 가식 없는 사람. 누구나 호감을 느낄 수 있는 사람. 안티 없는 배우. 사실 두 번째, 세 번째는 말 그대로 욕심이다. <상상플러스>에 몇 번 출연하고 나니, 친히 미니홈피를 찾아와 굳이 욕을 퍼붓고 가는 분들이 계시는 한 말이다. 안티팬이나 악플에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해도 그게 잘 안 된다. 일단 기분이 나쁜 것을 감출 수 없게 된다. 그런 면에서 나는 참 가식 없는 사람이다. 그거 하나는 확실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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