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주 감독, 나라 요시토모를 만나다
2등신에 가까운 소녀의 삐죽거리는 얼굴, 로큰롤을 외치는 소녀의 스피릿. 반듯한 흰 종이가 아닌 편지봉투나 박스 조각에 그려진 나라 요시토모의 그림 앞에 서면 잊고 있던 누군가가 생각 나 입가에 미소가 떠오른다. 독창적인 작품 세계로 전 세계의 보편적 정서를 건드리는 화가 나라 요시토모를 <건축학개론> 이용주 감독이 아오모리 현지로 날아가 인터뷰했다. 악동
BY | 2016.04.17
나라 요시토모가 록 음악과 격투기를 좋아하던 소년 시절을 보낸 고향, 아오모리는 눈의 나라였다. 공항에서 내려 마주한, 흰색으로 뒤덮인 도시에는 눈 내리는 소리만이 가득했다. 아오키 준이 설계한 아오모리 현립 미술관도 마찬가지였다. 일 년에 반 가까이 눈에 덮여 있는 아오모리를 고려해, 눈이 왔을 때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설계 되었다. 직선과 곡선이 순백의 거대한 큐브를 이루고 있었다.
고개를 돌리자 눈동자에 은하수를 머금은 듯한 소녀가 보였다. 처음 만났지만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나라 요시토모의 소녀였다. 익히 알려져 있듯 나라 요시토모는 일본 네오팝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화가이다. 그의 그림에는 슬픔, 반항, 공포 같은 감정을 얼굴 가득 표정으로 말하는 소녀가 산다. 아무것도 몰라야 마땅한 어린아이는 미칠 듯 귀엽긴 하나 절대 순진해 보이진 않는다. 당신이 알고 있는 것쯤은 나도 다 안다는 표정이다. 단 한 번만 봐도 그의 작품임을 가려낼 수 있을 만큼 자신만의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보여주는 나라 요시토모는 앙팡테리블의 허무하고 차가운 표정 등을 담아내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화가로서는 드물게 전 세계적으로 형성 된 광적인 팬덤, 장르적 구분이 오히려 그의 작품을 제대로 들여다볼 수 없게 만든다(한국에서도 2005년 로댕 갤러리에서 열린 그의 전시회에 8만 명이 넘는 관람객이 다녀갔다). 나라 요시토모의 그림은 주변 누군가를 떠올리게 한다. 단발머리에 동그란 얼굴을 가진 여성 중에 그의 그림 속 소녀를 닮았다는 얘기를 들어보지 않은 사람이 드물다. 이 지점이 그의 작품이 가지는 힘이다.

그의 그림은 공감을 자아낸다. 태어난 이후 경험한 모든 걸 소재로 삼는다는 그의 작품에는 방에 틀어박혀 록 음악을 들었던 어린 시절부터 화가로 살아가는 지금까지 고민하면서 살아가는 그 자신이 있다. 그는 전시 공간에 ‘작은 집’을 짓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자신의 방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 한 공간을 만들어 관객들을 미술관이 아닌 자신의 공간으로 초대한다.
작품 세계는 이미 한 궤도에 올라 있고 입지 또한 굳건하지만 나라 요시토모는 끊임없이 진화하려고 노력하는 화가다. 꾸준히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고, 예술을 방패 삼아 세상으로부터 숨지도 않는다. 특히 일본에 큰 상처를 남긴 지진을 겪으며 사회와 함께 호흡하려고 애쓰고 있다. 그의 초기작만 보았던 사람들은 그가 유년기에 머물러 있다고도 말한다.
하지만 그 자신의 자화상이기도 한 작품들은 변하고 있다. 실제로 아오모리 현립 미술관에서 만난 소녀들은 변해 있었다. 가슴이 나오기도 하고 굽슬굽슬 아줌마 퍼머를 하고 있기도 했다. 곧 흰머리의 소녀가 말을 건넬지도 모를 일이다. “문학과 록을 좋아해서 시인과 뮤지션을 동경했지만 실제로 그런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지 못했는데 미술을 계속한 덕분에 다양한 직종의 프로들과 만나게 되었다”라고 나라 요시토모는 말한 적 있다.
전혀 다른 장르의 아티스트와 크리에이티브한 대담을 즐기는 그를 위해 <싱글즈>는 수십 명의 인터뷰어 리스트를 꾸준히 보냈고, 나라 요시토모는 단 한 명 <건축학 개론> 이용주 감독에만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건축을 공부하다가 영화로 전향했다는 점, 공간에 대한 공통의 관심으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라는 게 이유였다.
‘나라가 선택한 남자’ 이용주 감독 역시 흔쾌히 대담을 수락했다. 화성에서 온 나라, 금성에서 온 이용주로 보였건만, 두 남자는 은근 죽이 잘 맞았다. 모여서 축구 보는 남자들 싫다고 공감대를 형성하더니, 금연에 대해 또 한 번 토론을 했고, 록 그룹과 걸 그룹 이야기로 한참 이야기꽃을 피웠다.
아오모리에서는 전혀 다른 색깔을 띤 그의 전시가 두 곳의 미술관에서 동시에 열리고 있었다. 첫날에는 아오모리 현립 미술관에서 < I Don’t Mind, If You Forget Me >를, 이튿날에는 토와다시 현대미술관에서 <푸른 숲의 작은 작은 집>을 함께 관람했고, 대담은 수시로 이루어졌다. 보편적인 정서를 크리에이티브한 방식으로 아름답게 주무르는 두 아티스트의 만남은 보는 이들을 흥분하게 했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서로에 대한 호기심을 주고받으며 편안하게 대화를 이어갔다.

이용주(이하 이) 두서없더라도 양해하시고 수다 떤 다고 생각하고 편하게 답해주세요.
나라 요시토모(이하 나라) 네, 그러시죠.
이 한동안 그림에 배경이 없었는데 토와다시 현대 미술관에 전시된 작품을 보면 집 그림이 있어요.
나라 보셨던 그림은 지진 이후에 그린 거예요. 지진 때문에 집이 비딱하고 불안정한 상태죠.
이 아이들 표정도 바뀌었어요. 계기가 있었나요?
나라 어른이 된 게 아닐까요? 과거에는 그림을 그릴 때 일단 떠올리면 바로 그렸는데 지금은 곱씹어서 생각한 다음에 그리죠. 어린아이처럼 울고 싶을 때 울고, 소리 지르고 싶을 때 소리를 질렀다면 지금은 일부러 그런 감정을 참고 조용함이 전달되게끔 하고 있어요.

새 종이에 그리지 않고 편지봉투, 박스에 그림을 그린다. 나무를 조각조각 이어 붙여 판넬도 직접 만든다.
이 극단의 감정이 희미해진 느낌이 듭니다. 대신 아이들 표정은 더 디테일해졌어요. 눈가에 약간 눈물이 맺혀 있는 그림은 예전에는 없던 표정이에요.
나라 그래서 보는 사람이 다가가지 않으면 놓칠 수 있어요. 예전에는 살짝 봐도 바로 알 수 있었죠. 저는 항상 좋은 평가만 받아온 것은 아니에요. ‘이런 그림은 누구나 그릴 수 있다’거나 그냥 ‘귀엽다’거나. 그런 걸 신경 쓰는 편은 아닌데, 저도 모르게 그런 흐름이나 세상에 동조한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궤도를 수정하고 더 깊은 곳을 바라보려고 해요. 특히 지진 이후에는.
이 책임감을 느끼신 건가요?
나라 제 작품이 인정받기 시작하면서 작품을 보여줘도 될지 안 될지 생각하지도 않은 채 손에 잡히는 대로 그렸어요. 말하자면 스스로에 대한 책임감이에요. 다른 사람들 말에 따라 행동하던 것을 더 이상 하지 않는 것.
이 타인과 소통을 하기 위해서 자신과 다시 소통을 시작하신 건가요?
나라 네, 맞아요.
이 언젠가 후배 블로그 대문이 작가님의 칼 든 소녀 그림이었어요. ‘가까이 오지 마, 찔러버릴 거야’ 라고 적혀 있었죠. 그 친구는 실연 당한 상태였어요. 그림에서 상처 받기 싫은 마음이 느껴졌어요.
나라 초기에 그런 작품이 많은데 상처에 대한 제 감정은 그림에 나오는 아이들보다는 덜해요. 그런 아이들을 그리면서 공격하고 싶은 마음이나 상처가 사라져요.

이 아오모리에서 초·중·고등학교를 다니셨죠. 고등학교 때 어떤 학생이었나요?
나라 부모들이 무조건 좋은 학교를 가라며 공부를 시키기 시작한 첫 세대였어요. 초등학교까지는 산이나 숲에 들어가 모험을 하는 잘 노는 아이였어요. 중학교에 들어가니 모두 공부를 하기 시작 하더라고요. 그때부터 담배를 피우고 밤에 집에 들어가지 않았죠. 고등학교 때는 대학생들과 어울렸어요. 그들과 똑같이 술을 마시고 여대생과 사귀고. 그때 대학생들이 공부하는 문학이나 예술을 많이 배웠어요. 하지만 진정한 친구라 부를 수 있는 존재는 없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역시 혼자 지내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이 친구들을 부정하는 것일 수도 있네요. 작품에서 보이는 고독이나 외로움은 본질적으로 뿌리가 깊은 것인데, 소녀를 볼 때면 작가님 자신을 그리고 있다는 생각도 많이 들어요.
나라 가장 싫어하는 것도 나 자신이고, 가장 좋아하는 것도 나 자신이에요. 그렇게 나와 대화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말이 통하지 않는 독일에서 혼자 지내면서 어릴 적 나 자신과의 대화가 시작됐고 그런 그림이 나왔어요.
이 꿈도 자주 꾸실 것 같아요.
나라 제가 가장 좋아하는 건 잠자는 거예요. 늘 영화를 보듯이 꿈을 꿔요. 마치 영화관에 가고 싶어지는 것처럼 침대에 가서 눕고 싶어져요.
이 많이 질문 받겠지만, 왜 소녀를 그리나요?
나라 저에게는 나이 차이가 많은 형이 두 명 있어요. 저는 부모님이 계획적으로 낳은 아이가 아니에요. 스무 살이 되었을 때, 어머니가 공항에 바래다주면서 이야기를 해줬죠. 저를 임신했을 때 ‘어떻게 하면 좋을까?’ 했다고요. 그때 우리 집은 가난해서 형 두 명을 키우기도 버거웠어요. 결국 하느님이 주셨으니 낳자고 했는데, 지금은 잘했다고 생각한다고요. 그리고 실은 누나가 있었다고 말씀하시더군요. 그림 속 소녀가 혹 태어나지 않은 내 누나인가 싶을 때도 있어요.
이 결핍 때문에 생긴 것일 수도 있겠네요.
나라 그림을 그리다가 그림 속 아이가 뒤에서 보고 있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어요. 쉬려고 하면 빨리 완성시켜달라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계속 그린 적도 있었어요. 책 작업을 같이 했던 요시모토 바나나 씨가 점을 보러 간 적이 있어요. 저는 독일에 있었고 같이 일하기도 전이었죠. 그런데 점쟁이가 바나나 씨 어깨에 작은 단발머리 소녀가 있다고, 그 소녀는 눈이 날카롭고 유럽에서 왔다고 했다더군요(웃음). 제가 소녀를 그리는 이유는 모르겠어요. 이것밖에 그리지 못하는 데는 여러 숨겨진 이유가 있는 것 같아요.

토와다시 현대미술관 전경.
이 저는 남자들과 친해지기 힘들고 오히려 여자 친구들이 많아요. 작가님도 그러지 않을까요?
나라 그럴지도 모르겠어요(웃음). 마초 스타일은 잘 안 맞아요. 하지만 어릴 적에 제 안에 상냥한 마음이 있는 것이 싫었어요. 풀이 불쌍해서 풀을 밟지도 못했죠. 그래서 일부러 스포츠도 했어요.
이 소녀가 무국적으로 보이기도 해요. 작가님과 어떤 연관이 있을까요?
나라 저 자신 역시 무국적이 되어가고 있어요. 더 많은 것이 섞여 있는 곳에 나를 두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4년 전 월드컵 축구 예선 때 일본과 호주의 시합이 있었어요. 일본이 점수를 먼저 내서 2:0까지 갔죠. 그때까지는 저도 일본을 응원했는데, 그 이후에 저도 모르게 호주를 응원하고 있는 거예요. 불리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 크게 와 닿았던 거죠(웃음).
이 역경을 이겨내고 열심히 사는 태도에 의미를 부여하시는 것 같아요. 자기 느낌대로 그리는 예술가와 달리 모범생 같은 느낌도 들어요.
나라 너무 열심히 하고 스스로 성실한 것 같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대충 하는 것처럼 속일 때도 있어요. 일본에서는 성실한 게 별로 멋있지 않거든요.
이 답답해 보이죠. 한국도 그래요.
나라 재능 있는 사람은 성실하지 않아도 쭉 성장 하잖아요? 하지만 성실하게 노력해야 얻을 수 있는 것도 있지 않을까요?

1 최근 그의 작품 성향을 볼 수 있는 작품. 아오모리 현립 미술관에서 전시중이다. 2 아오모리 현립 미술관의 상징 아오모리켄.
이 역경을 딛고 일어서는 건 어쩌면 상처를 치유하는 것과 같을지도 몰라요. 그래서 지진 이후가 작가님 작품의 분기점이 되지 않았을까요?
나라 지진은 제가 지금 살고 있는 곳 근방에서 일어났어요. 모두가 충격을 받았겠지만 제 충격은 더 컸어요. 그림을 그린다는 건 평화로운 일상이 있어서 성립되는 행위라는 것을 알게 되었죠. 감사하다기보다 그런 행위를 하는 내가 죄송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래도 되나?’라는 생각에 그림을 그리지 못하는 상태가 몇 주씩 계속됐어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다녔죠. 물건을 운반하는 봉사활동도 했어요. 일단 해야겠다는 마음에 움직였는데 머리를 식히고 생각해보니, 저 만 할 수 있는 일이 있었어요. 피해 지역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그곳에 그림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지진이 나고 반년 후에 졸업한 학교를 찾아갔죠. 그곳에서 점토로 작업을 시작했어요. 내 안에 있는 마음 전부를 폭발시키는 것처럼 점토와 싸웠어요. 그리고 초심으로 돌아가 다시 한 번 시작할 수 있었어요. 지금 아오모리 현립 미술관에 전시 중인 브론즈 조각이 그때 작품이에요. 지금도 자선 경매가 있으면 작품을 제공하고 센다이, 동북 지방에서 록 페스티벌이 있으면 자선 티셔츠를 만들어요. 이렇게 저 스스로 극복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예전에는 어떤 심상이 소녀 표정으로 드러났다면 이번 일을 겪으면서 거친 재료로 옮겨오는, 작품의 외형이 넓어진 것으로 봐도 될까요?
나라 네, 맞아요.

싱글즈 화이트고스트나 아오모리켄을 보면 아이들이 뭔가에 잠겨 있는 느낌이에요. 다리가 생략 되기도 하죠. 눈이 오면 도시 전체가 하얗게 변하는 아오모리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라 제가 가장 좋아하는 색이 흰색이에요. 햇빛이나 달빛을 받으면 따뜻한 흰색도, 차가운 흰색도 돼요. 첫눈이 온 다음 날은 눈 뜨자마자 알 수 있어요. 창문 밖이 정말 밝아요. 창문을 열면 다양한 색이 있던 곳이 전부 흰색으로 덮여 아무것도 없어져요. 그렇게 덮인 상태가 정말 좋아요. 두 발로 서 있는 것 말고 어딘가 모르게 자유롭지 못한 상태, 그래서 역설적으로 자유를 볼 수 있는 상황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요즘 아이들은 원하는 것은 모두 가질 수 있어요. 음악을 하고 싶은 게 아닌데도 그냥 해보고 싶다는 마음에 기타를 사달라고 하죠. 자유로운 음악이 나올 수는 있겠죠. 그런데 저는 기타를 살 수 없는 상황임에도 어렵게 자기 힘으로 사는 사람에게서 나오는 음악이 소중하다고 생각해요.
이 절실함에 대한 것이죠.
나라 네, 맞아요. 좋아하는 말 중에 하나예요.

어두운 공간에 조명을 밝혀 인상적이었던 작품.
이 어렸을 때 동네를 기억해서 그린 지도가 인상적이었어요. 항상 자신의 공간을 규정하고 거기부터 시작하던데 ‘작은 집’과도 관련이 있나요?
나라 도시를 옮길 때마다 새로 얻는 집은 원래 다른 사람이 살았던 장소라 처음 문을 연 순간은 개성이 없는 죽은 공간이죠. 그곳을 활기찬 내 공간으로 만드는 작업을 좋아해요. 내 공간이 완성되면 다음에는 동네를 산책합니다. 나만의 세계에서 나와 밖을 돌아다니면 비로소 ‘나의 도쿄’가 되고 ‘나의 쾰른’이 되고 ‘나의 아오모리’가 됩니다. 그런 식으로 공간을 만들어갔던 것 같아요. ‘작은 집’을 만들 때도 새로운 소재를 사용해서는 만들 수가 없어요. 왜 못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개성이 없어서 그런가? 버려진 물건을 찾아와서 만들어요. 그러고 나면 정말 버릴 수 없게 되죠.
이 기억과 관련된 게 아닐까 싶은데요?
나라 오래된 것에 대한 기억을 유발하는 장치로 ‘작은 집’을 만들어요. 작은 집은 각자 개인의 기억을 불러일으키죠. 공유할 수 없는 기억을 누구나 가지고 있다는 가치관을 공유하고 싶어요.
이 동시대성으로도 읽히더군요. 취향을 여쭤보고 싶었어요. 특히 독일 유학 시절은 취향과의 치열한 싸움이었던 것 같아요. 딱 자기 것을 만든 순간부터 작품이 시작된 느낌이 들거든요.
나라 맞아요. 그게 너무 기쁜 나머지 심하게 많이 만들었죠. 그래서 초기 작품에는 좋은 것도 있고 좋지 않은 것도 있어요(웃음). 격차가 심해요.
이 저는 건축을 하다가 영화로 오면서 취향을 찾았어요. 예전에 건축 할 때 좋은 건물이 뭐냐고 물어보면 했던 대답은 진심이 아니었어요. 영화를 하면서 비로소 남들이 다 재미없다고 하는 영화도 어? 재미있는데?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어요.
나라 이제야 대학을 졸업한 듯한 마음이에요. 스스로나 관객이 만족하는 것뿐만 아니라 내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남는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어요. 미래 사람들이 그림만 보고 감동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더 오래 살고 싶어졌어요.

1 토와다시 현대미술관 한쪽 벽면에 그려져 있는 소녀. 옥상에 올라가면 잘 보인다. 2 토와다 시내는 전시회를 알리는 현수막이 가득했다.
이 혹시 죽음에 대한 고민은 하시는지요? 요즘 제가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이기도 해요.
나라 생물체로서는 죽을 때가 되면 더 살고 싶다고 생각할 거예요. 죽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면 안될 만큼 다양한 경험을 했기 때문에 죽음에 대한 공포는 없어요. 다만 작품이 한층 더 깊은 곳에 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고 손이 닿을 듯한 느낌이 들어서 조금 더 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어요.
이 죽음을 두려워한다기보다 작가님 머릿속 한켠에 죽음이라는 단어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라 이제 내 몸이 스스로 몇십 년 지나면 끝날 거라고 말하는 것도 알겠어요. 아버지가 78세로 돌아가셨는데 거꾸로 계산해보니 저에게도 25년 정도가 남았더군요. 죽음은 늘 곁에 있고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이 그런 생각이 작품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요?
나라 죽음에서 나아가 영원히 존재하는 것을 만들고 싶어요. 예를 들면 루브르 미술관의 모나리자 그림 앞에 섰을 때, 모나리자라는 여자가 저기 서 있고 한 발짝 앞에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있었구나 그려져요. 죽음이 영원에 연결되는 장치인 셈이죠. 제 작품이 그렇게 기능해준다면, 죽고나서 하늘에서 보다가 기쁠 것 같아요.

1 나라 요시토모가 이용주 감독에게 남긴 메시지. 오타를 즉석에서 그림으로 변신시켰다. 2 이용주 감독이 선물한 <건축학개론> DVD. 나라 요시토모는 콘티북이 인상적이라고 말했다. 3 지하 창고에서 꺼내온 와인.
싱글즈 예전에 자신은 과대평가되어 있다라는 말씀을 하셨어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나라 이제 그런 생각은 안 들어요. 예전에는 사람들이 내 작품을 이해해주지 않는 건 제가 부족해서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어요. 모든 사람들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없어요. 자신에게 거짓말하지 않고 더 깊이 파고들면서 살고 싶어요.
이 뻔한 질문 안 하려고 노력했는데 어땠는지 모르겠습니다. 시간 내주셔서 감사드려요.

인터뷰 후 나라 요시토모는 <싱글즈> 일행을 단골집으로 안내했다. 100년 넘게 3대째 이어오고 있는 잡화점은 정겨웠고 없는 게 없었다. 가게 구석 나라 요시토모 전용석(?)에서 다 함께 와인을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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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독
화가
인터뷰
그림
이용주
나라요시토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