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운 우리 새끼>, 진짜 밉네요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 SBS <미운 우리 새끼>라는 프로그램을 보게 됐다. 일단 보기 시작하니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근 몇 년 새 가장 강렬한 오싹함과 어리둥절함, 불쾌함 혹은 답답함이 폭죽처럼 내 복장을 터트리는, 실로 극적인 50분이었달까.
BY | 2016.10.031 오싹: ‘다시 쓰는 육아일기’라고?

<미운 우리 새끼> 방송 화면 캡처
얼마 전 동생 부부가 출산을 했다. 지난 추석 연휴에 조카를 보러 갔더니 아기가 얼마나 자고 얼마나 먹고 얼마나 쌌는지 등을 꼼꼼하게 기록해놓은 엑셀 문서가 있었다. ‘21세기형 육아일기는 이런 건가봐’라고 싱글 고모는 생각했다. 조카는 두 시간 간격으로 모유를 먹이고 기저귀를 갈아주고 밤이고 낮이고 울음을 터트리면 안아서 달래주어야 했다. 아기는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다(일은커녕 자기가 누워 있는 자세를 바꾸지도 못한다).
SBS가 매주 금요일 밤으로 정규편성한 예능 프로그램 <미운 우리 새끼>의 컨셉트는 ‘다시 쓰는 육아일기’다. 홈페이지에 있는 기획의도를 찾아봤다. “걸음마를 뗀지 470개월이 지났고 ‘엄마’ 입을 뗀지도 480개월이 지났지만 엄마는 아들의 성장기를 다시 쓰려고 합니다.” ...예? 뭐라고요?!

<미운 우리 새끼> 방송 화면 캡처
이거 뭐야 이상해 1) 생후 30일이 채 안 되는 조카의 육아일기가 왜 필요한지는 ‘육알못’인 나도 알 것 같다. 그런데 다 크다 못해 슬슬 늙어가는 성인들의 육아일기는 대체 왜 필요한 거지?
이거 뭐야 이상해 2) 멀쩡한 나이를 놔두고 굳이 월령(“생후 581개월”)으로 표기하는 이유는 뭘까? 나이를 묻는 질문에 “스물열세짤~” 한다고 딱히 더 어려지거나 귀여워지지 않는다는 거 우리 다들 경험으로 알잖아.
이거 뭐야 이상해 3) <미운 우리 새끼>에는 왜 딸이 없을까? 혹시 이 프로그램의 제작진이 “남자는 몇 살이든 결혼을 안 하면 애고, 여자(엄마든 아내든)의 보살핌 없이는 제대로 살 수 없다”고 진지하게 믿고 있는 사람들이어서...? 에이, 설마.
이거 뭐야 이상해 4) ‘혼자 사는 남자’는 뭐든 안 하고 못 하는 게 디폴트인가? 깨끗한 싱글남의 집을 보며 “남자 집이라곤 믿기지 않는” 같은 말을 하면서도 뭔가 이상하다는 걸 못 느끼는 걸까. (엄마, 쟤들 좀 이상해!)
2 어리둥절: 설마 아직도 ‘엄마의 허락’이 필요한 거야?

<미운 우리 새끼> 방송 화면 캡처
<미운 우리 새끼>는 스튜디오에 출연한 엄마들이 아들들의 일상을 미리 촬영한 영상으로 지켜보는, 일종의 ‘편집 CCTV’ 같은 포멧이다. 엄마들은 아들들의 행동에 당황하거나 부끄러워하고, 자기도 모르게 화를 냈다가 막상 남이 흉을 보면 갑자기 아들의 역성을 들고, “기승전-더 늦기 전에 결혼해야지”의 주장을 펼치다가도 여전히 타협의 여지 없이 확고한 ‘며느리론’을 피력한다. 국제결혼은 절대 안 되고, 기어이 국제결혼을 해야만 한다면 일본인 며느리 정도는 받아들일 수 있고, 클럽에서 만난 여자라니 으아니 그건 말도 안 되고, 며느리가 결혼 후엔 하던 일을 그만 두고 육아와 살림을 했으면 좋겠고, 음식도 잘 하고 예뻤으면 좋겠다. ‘이상적인 며느리’의 구체적인 모델도 있다. 이를 테면 “결혼하면 일을 접고 애를 셋 낳을 거예요”라고 방송에서 말한 적이 있다는 성유리(라고 김건모의 엄마 이선미 씨가 말했다). 내 아들 나이가 몇 살이든 며느리가 나이 많은 건 싫다. 이유는 “아이를 못 낳으니까”.

<미운 우리 새끼> 방송 화면 캡처
<미운 우리 새끼>의 엄마들에게 ‘며느리’란 ‘아들과 인생을 함께할 동등한 파트너’라기보다는 ‘나 대신 내 아들 밥 해먹이고 집안 돌보고 자식 낳아줄 여자’일 뿐이다. 아들이 독립된 인생을 사는 성인이라는 것을 엄마들은 여전히 받아들이지 않는 눈치다.
심리적인 탯줄을 완전히 자르지 못한 것은 아들들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허지웅은 “무뚝뚝한 나 대신 (예전) 여자친구가 엄마에게 딸처럼 굴길 바라는 마음에 괜히 둘 앞에서 못되게 굴곤 했다”고 했는데, 그 말을 들은 MC 한혜진은 “(허지웅이)속이 깊다”며 칭찬을 했고, 훈훈한 배경음악과 함께 스튜디오가 감동 버무리가 되는 와중에, 입을 떡 벌린 내 머릿속에는 “고갱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효도는 셀프입니다!”라는 비명이 울려퍼졌다.
3 불쾌: ‘엄마들’은 왜 은근슬쩍 악역을 맡고 조롱까지 당할까?

<미운 우리 새끼> 방송 화면 캡처
엄마들은 <미운 우리 새끼>의 ‘재미 요소’(만약 그걸 재미있다고 느낀다면)이자 ‘갈등의 핵’이다. 지금까지 전혀 몰랐던 아들의 모습을 공개된 자리에서(“설마 이거 방송에 나가는 건가?”) 목격했을 때, 전문방송인도 아닌 60-70대의 ‘보통 사람’이 표정관리를 하는 건 애초에 불가능하다. 순진한 줄로만 알았던 아들이 클럽이라면 껌뻑 죽는다는 걸 처음 본 순간, 개그맨 박수홍의 엄마는 하늘이 무너진 동시에 지옥불처럼 화가 끓어오르는 표정이었다. 아들이 소주 전용 냉장고를 사들이는 걸 지켜보는 김건모의 엄마는 ‘눈빛으로 등짝 스매싱을 날린다면 아마 저런 거겠지’ 싶은 표정으로 화면을 노려보았다.
사실 이 엄마들은 이미 ‘지난 세대’의 사람들이다. 젋은 세대에겐 다소 완고하게 들리는 그분들의 결혼관은 개인의 성향이라기보다 그 세대의 사고방식일 뿐이다. (상대적으로)젊은 세대의 시청자 중 한 사람으로서, 그분들의 생각에 동의하진 않지만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살 수가 없다. 이것은 한국의 모든 나이 들어가는 자식이 엄마에게 구해야 할 이해이기도 하다. “엄마, 엄마를 사랑하지만 저는 엄마가 원하시는 방식으로만 살 순 없어요.”

<미운 우리 새끼> 방송 화면 캡처
정말 불쾌한 것은 이 프로그램이 엄마들을 보여주는 방식이다. 그들은 방송이 익숙지 않은 엄마들을 스튜디오로 초대한 후 감정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표정을 화면에 담는다. 그리고 그 옆에 “멘붕” “어머 쟤가 미쳤어” “아이고 어머니” 같은 자막을 붙인다. MC 세 사람은 흥분한 엄마들을 짐짓 달래는 듯 하다가도 “아들이 국제결혼 하면 어떨까요?” “클럽이 얼마나 좋은데요~” 하며 은근히 화를 돋운다. 분위기에 휘말린 엄마들은 자신도 모르는 새, 결과적으로는 ‘잠재적 며느리’들이 흠칫 놀랄 이야기만 골라서 하고 만다. 아들의 소개팅 상대가 아나운서라는 사실을 알게 된 김건모의 엄마는 마치 스스로를 위로하듯 이렇게 말한다. “뭐, (결혼하고 나서) 일 그만두면 되지.”
일상 다큐 형식이라곤 하지만, 방송에 익숙한 아들들은 자신이 카메라에 어떻게 찍혔으며 그것이 어떤 식으로 편집돼 방송에 나가는지 절대 모르지 않을 것이다. 시청률 10%를 돌파하며 한창 승승장구 중인 이 ‘쇼’에서 철저히 소외된 유일한 존재가 있다면, 매주 금요일 밤 마치 오늘이 처음인 것처럼 감정의 롤러코스터에 탑승하시는 이 애처로운 엄마들 뿐이다.
4 답답: 아하! 이래서 여기서 사는 게 그렇게...(이하 생략)

<미운 우리 새끼> 방송 화면 캡처
<미운 우리 새끼>는 현재 5회까지 방송됐다. 그러나 파일럿 프로그램이었을 때는 주요 출연자로 부각됐던 김제동이 1회와 2회에는 단 1분도 방송에 나오지 않았다. 김제동의 어머니는 스튜디오에 출연했는데 정작 아들의 영상은 없는 기이한 상황. 3회 때가 되어야 약 3분 분량으로 편집된 김제동의 영상이 나왔고, 그때는 이미 “(김제동의)일정 문제로 촬영 스케줄을 맞추기 힘들어 하차”하며 “외압 같은 건 전혀 없었다”는 제작진의 공식 발표가 있은 후였다. ‘외압’ 얘기가 나온 이유는 이 하차 결정이 공교롭게도 김제동이 지난 8월 5일 경북 성주에서 열린 ‘한반도 사드 배치 철회’ 집회에서 논리정연한 반대 의견을 피력한 후에 일어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하차한 진짜 이유를 시청자로선 확인할 길이 없다. 다만 이 사실 하나만은 분명한 것 같다. 정치적 소신을 밝혔다는 이유로 방송인이 프로그램에서 잘리는 일이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고, 적지 않은 이들이 의심을 품는 나라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 엄마 박동연 씨가 방송에서 한 이 한 마디는 백 마디 구구한 설명보다도 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세상 다니면서 바른 소리 하면서 부모 간장 다 녹이는 거, 너는 속이 시원할지 몰라도 엄마는 속 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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