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력으로 요리하는 여자 셰프들 2
레스토랑의 키친은 가정의 부엌과 다르다. 남자들도 버티기 힘들다는 주방을 당차게 꾸려나가는 여성 셰프들의 이야기.
BY | 2017.02.08미쉐린의 검증

김지영(발우공양 셰프)
주방은 성별, 나이, 경력에 상관없이 모두에게 엄격한 공간이다. 매일 마음을 다잡으며 사찰 음식을 연구해온 김지영의 노력이 미쉐린 가이드 원 스타로 인정받았다.

1 삼색전과 산초장아찌, 사찰만두.
2 사찰냉면.
3 프라이빗한 룸으로 구성된 발우공양의 내부.
4 독특한 디자인의 레스토랑 로고.
오랜 시간 사람들의 호기심과 기대를 끌어모았던 미쉐린 가이드 서울이 지난 11월 발표됐다. 원 스타 이상의 레스토랑 중 각각의 레스토랑을 대표하는 여성 셰프는 단 두 명. 그중 한 명이 원 스타를 획득한 사찰 음식 전문점 ‘발우공양’의 김지영이다. 미쉐린에서 발우공양을 방문해 그녀를 인터뷰하던 날을 회상하면서 그녀는 재미있게도 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꿈에서 물쑥 뿌리를 캤는데, 뽀얀 게 하얀 더덕 같았죠. 꿈을 꾸고 나서 혹시나 하는 마음은 있었지만, 당시 발우공양을 리뉴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라 큰 기대는 없었어요. 그렇다 보니 정작 미쉐린으로부터 초대장을 받았을 때도 실감이 나지 않더라고요. 물론 매우 자랑스럽죠.” 사찰 음식 자체가 대중들로부터 거리가 있는 만큼, 사찰 음식을 다루는 레스토랑의 수도 몇 개 되지 않는다. “발우공양은 양념으로 사찰의 전통장만을 사용해요. 버터나 올리브 오일 등 서양에서 익숙한 재료가 아니라 5년 이상 숙성된 된장과 간장, 최상급 참기름과 들기름을 쓰죠. 한국의 토종 식재료만으로 메뉴를 구성하려고 노력하고요. 아마 그런 점을 미쉐린에서 높게 평가해준 것 아닐까요?”
조계사 건너편에 위치한 발우공양은 대한불교조계종 한국불교문화사업단에서 운영하고 있다. 한국불교문화사업단은 오래된 문헌이나 경전에 나오는 사찰 음식을 연구하고 보존하기 위해 노력한다. 노스님들이나 음식이 맛있기로 유명한 사찰로부터 비법을 전수 받아 기록하는 한편, 다양한 레시피를 연구하기도 한다. 그렇게 축적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사람들이 실제 사찰 음식을 맛볼 수 있도록 소개하는 곳이 바로 발우공양이다. “메뉴는 계절별로 달라져요. 사찰 음식은 기본적으로 제철 식재료를 쓰기 때문이죠. 손님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은 메뉴는 ‘승소’ 코스에 나가는 사찰냉면과 전, 통도사 두부구이와 산초장아찌, 사찰만두예요. ‘승소’는 ‘스님들을 미소 짓게 만든다’는 뜻이죠.” 사찰 음식은 예로부터 파, 마늘, 양파, 부추, 달래의 5가지 재료, 즉 ‘오신채’를 사용하지 않는다. 당연히 맛이 담백하고 자극적이지 않다. 어린이와 노인, 외국인까지도 모두 즐길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사찰 음식을 만드는 주방이라고 해서 여느 주방과 다를 것은 없다. 한 번의 실수가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으니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다. “주방은 철저하고 냉정한 공간이에요. 여자라서 보호 받을 수도 있다는 식의 사회적 통념은 유효하지 않죠. 항상 긴장해 있다 보니 서로 예민하게 굴기도 해요. 그래서 주방 분위기만큼은 최대한 밝고 부드럽게 유지하려고 노력하죠.”
독특하게도 김지영 셰프는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했다. 20대 후반에 들어 뒤늦게 요리를 배우기 시작한 것은 평소 워낙 사람들을 대접하는 것을 좋아했고, 전통 음식을 하신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서다. 궁중 음식, 반가 음식, 일식, 중식 등을 다양하게 배우던 그녀는 사찰 음식 명장인 선재 스님을 만나면서 사찰 음식을 처음 접했다. “당시에는 사찰 음식이 좋지만 재미없는 음식이라고 생각했어요. 화려하지 않고 식재료나 소스가 다채롭지도 않아서 쉽게 배울 것만 같았고요. 그러다 2012년 토리노에서 열린 국제 슬로푸드 페스티벌에 참가하면서 선재 스님을 다시 뵙게 된 것이 제 요리 인생의 전환점이었죠. 단순한 양념, 제한된 식재료만으로 맛을 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제야 깨달았어요.” 그 뒤로 스님과 함께 일하면서 사찰 음식을 연구하던 그녀가 발우공양의 주방을 맡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앞으로도 그녀는 한국의 다양한 식재료와 새로운 조리법을 계속 연구해나갈 예정이다. 후배 조리사들을 양성하면서 자신이 가진 노하우와 음식 철학을 전하고 싶다는, 미쉐린을 넘어선 커다란 소망은 여전히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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