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만하게 보이는 사람을 위한 생존서
만만한 사람은 태어나지 않는다. 다만 만들어질 뿐이다. 다른 사람이 자신을 만만하게 본다고 느낀다면, 빨리 백신을 맞아야 한다.
BY | 2018.05.30
이제 착하다는 말이 칭찬으로 들리지 않는 세상이다. 그만큼 착한 사람을 이용하려는 마수가 널려 있다. 이 살벌한 세상에서 휘둘리지 않을 최소한의 대책이 필요하다. 상황과 난이도에 따라 경우의 수는 늘어나지만, 딱 세 가지를 기억해야 한다.

사소한 습관이 쌓여 사소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한다. 무심코 보이는 습관에서 상대가 만만하게 볼 여지가 돌출한다. 언제나 인간관계는 상호작용 아닌가. 남을 깔아뭉개는 데 희열을 느끼는 사람도 상대를 봐가면서 조준한다. 틈을 보이지 않아야 밀고 들어오지 않는다. 우선 헐겁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니까 ‘아… 네… 뭐…’ 3종 세트를 달고 사는 사람. 보통 이런 습관은 주눅 들어 보이게 하는 클리셰 같은 요소다. 말버릇으로 치부하기엔 손해 보는 게 많다. 물론 이 습관 다음에 명쾌하고 기발한 답변이 이어지면 상관없다.
하지만 우린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다. 최소한 말투라도 간결하게 정리하는 게 좋다. 말끝을 흐리는 습관도 사회생활에선 백해무익하다. 한 문장이 완결되지 않는다면 말이 힘을 잃는다. 주장할 때도, 거절할 때도, 일상에서 얘기할 때도 맥없이 공기 속으로 흩어진다. 사회화된 시대라도 집단의 본성이 남아 있다. 힘이 없어 보이면 언제고 내려다볼 사람들 천지다. 굳이 스스로 몇 층 아래로 내려갈 필요가 없다.
주눅 들지 않아야 하는 관점에서 아껴야 하는 단어도 있다. ‘죄송합니다.’ 자매품으로 ‘잘못했습니다’가 있다. 당연히 실수하면 인정하고 해야 하는 말이다. 하지만 습관적으로 남발하면 부작용이 생긴다. 예의 바른 사람이 아니라 눈치 보는 사람으로 보인다. 실제로 예의 바른 의도로 말했을지라도. 처음에는 좋게 바라보다가도 빈도수가 높아지면 효과가 급감한다. 상대가 말버릇으로 인식하면 자신감 없는 존재로 규정한다. 엄청난 틈이 벌어지는 셈이다.
말투뿐 아니라 자세도 영향을 미친다. 진짜 몸의 자세 말이다. 바른 자세를 유지하면 자신감이 생긴다는 심리학 연구 결과도 있다. 초등학교 때부터 들은 말이지만 사회에서도 통용된다. 덧붙여 바른 자세와 함께할 때 효과가 배가하는 부록 같은 습관도 있다. 말할 때 시선 피하지 않기. 바른 자세로, 시선 피하지 않으며, 똑바르게 말하는 사람. 언뜻 생각해도 만만하게 보이지 않는다.


틈을 보이면 사방팔방에서 손을 내민다. 세상은 약육강식이라는 살벌한 표현까지 쓸 필요도 없다. 그냥 편하다는 이유로 부탁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부탁을 많이 받는다는 건 두 가지다. 부탁 받을 거리가 많은 높은 자리에 있든가, 부탁하면 잘 들어주는 사람으로 자리매김했다든가. 역시 보통 후자다. 이런 사람은 ‘착한 아이 콤플렉스’가 뼛속 깊이 새겨져 있다.
정말 착한 사람이라면 자기 마음의 평화를 위해 해주면 그만이다. 자기가 피해 보더라도 부탁을 들어주며 그 이상의 만족감을 얻으니까. 성자와 어깨동무하는 극소수 얘기다. 그렇다면 대체로 울며 겨자 먹기로 부탁을 들어준다는 뜻이다. 착한 사람 되려다가 착잡한 생활만 이어나간다. 악순환의 사슬을 끊어야 한다. 즉, 거절해야 한다.
거절하지 못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눈치 보여서. 거절하면 상대가 날 싫어하면 어쩌지, 하고 눈치. 거절하면 조직에서 내 입지가 약해지지 않을까, 하고 눈치. 거절하면 내 평판이 나빠지지 않을까, 하고 눈치. 주변 사정만 고려하다가 자기 생활 곪는 건 방치한다. 중요한 건 걱정하는 것만큼 눈치 볼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알랭 드 보통이 명쾌하게 정리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극히 소수이며, 단지 약간만 미워할 뿐이며,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에게 별로 신경 쓰지 않는 점을 기억하라.” 착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지만, 세상은 당신이 착한지조차 그리 관심이 없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거절해도, 자기를 챙겨도 세상이 등돌리지 않는다. 애초에 부탁에는 거절당할지 모른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하지만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면 그 전제는 점점 희미해진다. 나중에 거절하면 전제 대신 성격을 논하는 식으로 변질된다. 해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도 수백 년 전에 이렇게 말했다. “거절할 때는 나중에 하는 것보다, 처음에 하는 것이 훨씬 쉽다.” 거절할 건 거절해야 마음의 평화를 얻는다.

만만하게 본다는 것 자체에는 사실 큰 문제가 없다. 그건 상대방의 생각일 뿐이니까. 하지만 언제나 생각은 행동으로 반영된다. 부탁(을 빙자한 일 떠넘기기) 같은 노골적인 행동만이 아니다. 은연중에 당신을 건드리는 수많은 제스처를 남발한다. 농담의 대상이 된다거나, 의사를 묻지 않고 진행한다든가. 심지어 일상적 대화에도 말투가 달라진다. 이런 숱한 행동은 환절기 몸살처럼 시도 때도 없이 몸을 뒤흔든다. 단지 만만하게 보였을 뿐인데. 어쨌든 만만하게 보인 이후다. 이 상태로 가만히 있으면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다. 아, 당신의 삶이 점점 망가진다.
해결하는 방법은 명료하다. 건드리면 반응해야 한다. 의도를 떠나 당신이 상처 받았다면 티 내야 한다. 반응하지 않으면 변하지 않는 걸 떠나 더 악화된다. 관계의 병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일본의 화술 심리학자 나이토 요시히토는 저서 <만만하게 보이지 않는 대화법>에서 이렇게 제안한다. “상처 받았다면 무심코라도 웃지 마라.” 보통 기분 나쁜 말을 들었을 때도 당시 분위기를 생각해 웃음으로 넘기는 경우가 많다. 어색한 웃음이라도 상대방은 농담으로 받아준다고 인식할 확률이 높다. 그냥 지나치면 점점 강도와 횟수가 증가하리라는 건 굳이 말하지 않아도 빤하다. 이 악순환을 끊는 방법은 반응하는 것뿐이다. 반응이라고 해서 책상을 뒤엎거나 멱살을 잡으라는 뜻은 아니다. 막무가내로 쏟아 부으면 후유증도 감당해야 한다.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짧고 단호하게 표현하는 게 정답이다. 포괄적으로 말하면, 지금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드러내라는 뜻이다. 정확하게 표현할 때야 정확하게 받아들인다. ‘무심코라도 웃지 마라’는 말은 최소한이라도 표시하라는 뜻이다. 당신이 볼 눈치를 상대가 보게 하면 성공이다. 한 실험 결과도 이 방법에 무게를 더한다. 미주리 대학의 케네스 셸든 심리학 박사가 집단을 실험해 이렇게 결과를 발표했다. “제대로 반격하자 상대방이 친절하고 협력적인 대접을 시작했다.” 안타깝게도, 세상은 참는 자에게 복을 주지 않는다. 심리학자 수잔 캠벨의 말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똑바로 사는 것보다 솔직하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 너무 예의 차리다가 예의 없는 상황에 시달린다. 반응만이 돌파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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