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 긋기의 기술
때로는 누군가와의 적당한 거리가 삶을 평화롭게 만든다. 어떻게 하면 일상의 관계에서 제대로 선을 그을 수 있을까?
BY 에디터 황보선 | 2018.09.17

얼마 전부터 친구들과의 모임에 참석하는 것이 힘들어졌다. 연애를 하지 않는 사람을 인생의 패배자라고 여기는 친구들 때문이다. 나를 제외하고는 곧 결혼을 앞뒀거나 이미 기혼자다. 연애 혹은 결혼을 꼭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귀에 못이 박이도록 이야기한다. 나도 이런 분위기에 휘둘려 소개팅을 밥 먹듯 하고 있는데, 빨리 연애 단계로 나아가고 싶다는 내 성급한 생각 때문인지 도무지 썸에서 연애 단계로 넘어가질 않는다. 내게 문제가 있는 걸까? 나도 연애 좀 하고 싶다. 최이정(32세·직장인)
선 긋기의 기술ㅣ‘릴라밸’을 찾아라
워라밸만 외칠 것이 아니다. 관계에도 적절한 밸런스가 필요하다. 상대방과 거리가 왜 좁혀지지 않는지에 대해 고민하기보다 일단 자신은 어떤 성향의 사람인지 파악하자. 예를 들면, 혼자 있는 시간이 꼭 필요한 사람이 있다. 상대와 데이트를 한 후 집으로 돌아가 간식을 먹으며 영화를 보기 좋아하는 사람이 그렇다. 이런 사람은 연애를 할 때도 너무 당기기보다는 선을 그었다 지웠다 다시 그리는 식으로 상대와 편안한 거리를 설정해야 한다. 호감 있는 상대가 있다면 처음부터 그와의 거리를 0으로 만들려고 하지 말 것. 상대를 탐색하며 멀찍이 선을 긋고 이 선은 언제든 지울 수 있는 것이라는 신호를 보내야 한다. 소개팅 후 3주 동안 그 사람의 장점을 찾아보라. 장점이 많다면 이제는 조금씩 둘 사이의 거리를 좁혀도 된다. 존중 받는 관계가 된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다.

내가 무슨 말만 하면 ‘네가 뭘 아냐’며 나를 무시하는 듯한 태도 때문에 그를 만날 때마다 도대체 연애를 하는 건지, 학교 교무실에 와 있는 건지 알 수가 없다. 그와 만나면 만날수록 자존감이 곤두박질친다. 이에 대한 피해의식 때문인지 그에게 사랑을 갈구하고, 그의 마음을 갈구할수록 집착이 심해진다. 연애를 하고 있지만 세상에 나 혼자 남겨진 듯한 기분이 들 때가 많다. 김후영(가명·30세·병원 근무)
선 긋기의 기술ㅣ실선이 아닌 절취선을 그려라
자존감이 짓밟히는 연애는 당장 멈추는 것이 좋다. 상대와 함께할수록 나의 자존감이 바닥까지 떨어질 것 같다면, 그리고 이에 대한 개선의 여지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면 이제는 그와 나 사이에 실선이 아닌 절취선을 그릴 때다. 혹시 하루 종일 그만 생각하며, 그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나. 가치 없는 행위는 당장 그만두고 삶의 가치를 자기 자신을 중심으로 재배치하라. 이를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되묻는 것이다. 내가 잘하는 것은 무엇인지, 좋아하는 일은 무엇인지 안 후에야 상대방과 민주적인 관계 설정이 가능하다. 세상 그 누구도 당신을 무시하고 당신의 자존감을 짓밟을 권리는 없다. 연애도 나 중심으로 생각하고 선택하라. 우선 내가 행복해져야 상대방에 대한 배려도 가능한 법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직장에서 퇴근할 때까지 엄마의 참견은 하루 종일 계속된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엄마의 전화나 카톡 때문에 안 그래도 힘든 업무 위에 정신적 피로가 더해진다. 나를 사랑하는 마음은 알겠는데, 일분일초도 혼자 두지 않으려고 하니 이제 지친다. 더 큰 문제는 내 연애사까지 관여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내 남자친구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나에게 그와 헤어져야 하는 이유에 대해 잔소리를 퍼붓기 시작했다. 그 세뇌 덕에 정말 나는 그와 헤어졌다. 언제까지 엄마의 소녀로 살아야 하는지 자괴감이 든다. 김세영(29세·직장인)
선 긋기의 기술ㅣ진심을 담아 편지를 써라
엄마에게 자신의 고충을 털어놓은 적이 있나. 아니면 엄마 앞에만 서면 입이 떨어지질 않았나. 그렇다면 차라리 진심이 담긴 편지를 써볼 것. 편지 한 장 읽는다고 평생 그렇게 살아온 엄마의 행동이 바뀔까? 물론 아니다. 하지만 엄마는 지금 당신이 어떤 마음인지 그동안 전혀 몰랐을 거다. 엄마가 편지를 읽고 바로 달라지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딸이 어떤 마음인지는 알았으니 앞으로 무슨 말과 행동을 하든 당신을 의식하게 될 것이다. 지금 하는 말이 당신에게 짐이 되지는 않을까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어떤 관계든 나를 기만하고 병들게 하는 관계라면 끊어야 한다. 그 관계를 앞으로 지속할지 말지는 시간을 두고 천천히 생각해봐도 늦지 않다. 물론 칼로 베듯 부모와 자식 사이를 가를 수는 없다. 그러니 이 관계는 기본적으로 점선을 긋는다고 생각하자. 평생 이어가야 하는 관계인데, 최소한의 선이라도 그어 놔야지 그렇지 않으면 평생 스트레스에 시달릴지도 모른다.


자주 어울리는 그룹 중에 항상 사람을 깔보듯 이야기하는 친구가 있다. 바라지도 않는 조언을 한다거나 상대방의 기분을 생각하지 않고 무조건 무시하는 태도를 보인다. 그녀가 말하기 시작하면 당연히 모임의 분위기가 나빠진다. 만나면 서로 기분이 나빠지는 이 모임을 왜 지속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그녀의 태도에 대해 핀잔을 주는 사람도 없다. 날로 더 심해지는 그녀의 입버릇을 당장 고쳐주고 싶다. 최민아(27세·편집 디자이너)
선 긋기의 기술ㅣ침묵은 금이다
사람은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마음 깊숙한 곳에 열등감이나 비굴함이 자리하고 있다. 상대방을 깎아내리고 공격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런 마음을 털어내려고 자기가 상대방보다 우월하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어한다. 이런 인간 유형은 확실히 좀더 멀리 선을 그을 필요가 있는 사람들이다. 그후 더 넘어오지 말라고 반드시 경고를 해주어야 한다. 다만 대놓고 “선 넘어오지 마!”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상대를 살짝 무시함으로써 선을 그었다는 사실을 눈치채게 만들어야 한다. 그녀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몇 초간 침묵을 지키며 눈을 가만히 바라본다거나 일부러 웃음기를 뺀다거나 하는 식으로 어떤 수를 쓰든 나를 약간 어려워 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 어느 정도 거리가 확보된 다음부터는 상대가 내 눈치를 살피며 말과 행동을 조심하게 될 것이다. 당당하게 선을 그을수록 오히려 그녀와의 관계가 회복될 테지만, 회복된 후에도 금세 거리를 좁히지는 말 것. 사람 성격은 크게 변하지 않으니까.

항상 이놈의 SNS가 문제다. 너무 궁금해서 안 볼 수는 없는데, 볼 때마다 내 피드를 장악하는 잘나가는 친구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대기업에 다니면서 멋진 남자친구와 시도 때도 없이 해외 여행에 나서는 친구들이 부럽고 질투가 난다. 반면 나는 일이나 일상 모두 내세울 게 없다. 시간이 갈수록 점점 차이가 더 벌어질 것이라 생각하면 초조한 마음이 든다. 이민경(28세·직장인)
선 긋기의 기술ㅣ‘나답게’ 살자
지금 내게 열등감을 안겨주는 친구가 있다면 그 친구와 나의 거리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 정하기 전에 내 마음 상태부터 점검하자. 타인과 나는 추구하는 바도 삶의 방식도 다르다. 그러니 비교하는 것은 당연히 의미가 없다. 높은 지위와 연봉, 고급 외제차와 명품을 잘나가는 증거로 생각하는 것은, 자신도 모르게 각인된 남 중심 선택에 휘둘린 것이다. 남 중심으로 생각하며 타인과 나를 비교해 자신감을 잃고야 만다. 이제 남 중심 선택을 멈추고 내가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는 선택이 무엇인지 고민하자. 일본의 마에노 다카시 교수는 행복을 과학적을 분석한 책 <행복의 메커니즘>에서 행복의 네 가지 요소 중 하나로 ‘나답게 사는 것’을 꼽았다. 나 중심으로 선택하며 앞으로 나아가면 자연스레 행복도 뒤따라온다. 지금 당장 스스로 가장 자랑스러웠던 때를 떠올려볼 것. 내가 행복했던 순간을 머릿속으로 재현하는 것만으로도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다. 반면 자기 자신이 자랑을 늘어놓는 타인에 관대한 성향인지도 잘 생각해보자. 만약 귀엽게 잘 받아주는 성향이 아니라 그대로 스트레스를 받는 성격이라면 그 사람과의 거리를 벌리고 선을 긋는 것도 방법이다.

그동안 아무리 마이웨이로 살았다지만 사무실에서 소외감을 느낄 때가 있다. 사무실 동료들이 모여서 즐겁게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그 틈에 끼어들기가 너무 힘들다. 업무상으로 함께 일하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는데, 동료들과 어울리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 아무래도 나에게 문제가 있는 걸까? 조아라(28세·영화홍보사 근무)
선 긋기의 기술ㅣ절대 무리하지 마라
나는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다고 감정의 존재를 애써 부정할 필요는 없다. 소외감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다음에 다시 자신에게 묻자. 그래서 그게 무슨 문제가 될까? 사실 사무실에서 동료들과 어울리지 못한다고 해서 인생이 뒤바뀌는 불행이 닥치지는 않는다. 그동안 마이웨이로 살아왔다면 더욱 그렇다. 다만 여기서 오는 불안감은 ‘남들이 나를 왕따로 생각하면 어떡하지?’ 하는 남 중심적 사고 때문이다. 굳이 그 동료들의 무리에 끼어들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면 남들이 어떻게 보든 무슨 상관일까? 이렇게 가볍게 생각하면 놀라울 정도로 마음이 편해진다. 물론 직장 내 관계를 무 자르듯 자를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그 자리가 불편하거나 다른 약속이 있는데도 억지로 무리해서 끼지는 않아도 된다. 회사 생활에서 선을 그을 때 가장 중요한 기준은 내가 무리하지 않는 수준이다. 선을 긋는다고 해서 욕하는 사람은 없다. 그리고 욕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그 사람의 문제이지, 내 문제는 아니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부장님은 늘 화가 나 있다. 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일하고 있는데, 사사건건 지적하고 조금만 실수를 해도 크게 화를 낸다. 나는 늘 성과를 올리는 가장 좋은 방법에 대해 생각하는데, 업무 외 사소한 일을 가지고 나를 따라다니며 잔소리를 퍼붓는다. 그 탓에 업무량은 점점 늘어나고 매일 야근이 이어져 퇴사 마일리지만 열심히 쌓는 기분이다. 이은지(가명·30세·출판사 근무)
선 긋기의 기술ㅣ전략적으로 도피하라
나를 힘들게 하는 상사에게 대응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상사와 똑같이 감정적으로 대응하며 나도 꿈틀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게 좋을까? 동료에게 상사의 뒷담화를 퍼부으면 스트레스가 풀릴까? 이건 문제를 본질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다. 상사에게 감정적으로 대응해봤자 둘의 사이는 더 나빠질 것이 뻔하다. 상사의 욕을 하는 것도 그때뿐, 상사와의 관계가 변하는 것은 아니다. 이럴 때는 그 관계에서 도망치는 것 또한 하나의 전략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상사가 꿱꿱 소리를 지르더라도 가만히 서서 의식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것이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다는 것과 같다. 그 후 상사의 잔소리에서 해방되면 아껴두었던 감정적 에너지를 내가 실수하거나 잘못한 일을 보강하는 데 쓰자. 상사의 말을 순순히 듣고 반발하지 않으면 오히려 화를 낼 명분이 사라진다. 상사를 불편해하지 말고 좋아하기 위해 노력할 필요도 없다. 그저 내가 이 회사에서 이루고 싶은 목표를 향해 달린다는 각오로 일하면 그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에는 마음이 덜 쓰인다. 내가 힘을 빼면 상대도 힘을 빼기 마련이다. 그러니 상사의 잘못된 생각을 고친다거나 그를 변화시키겠다는 욕심은 애초에 버릴 것. 상사와 나 사이에 거리를 얼마나 둘 것인지만 고민하면 된다.

우리 팀에는 일을 잘 못하는 후배가 있다. 아직까지 경험이 부족해서 일을 못하는 건 어쩔 수 없는데 시키는 일도 제대로 못 끝내고 차분하게 주의를 주어도 도무지 반성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질문할 거리도 많을 텐데 먼저 질문하지도 않고 기껏 설명해주면 다 까먹는다. 팀에 좀더 도움이 되는 사람으로 성장했으면 좋겠는데, 아무 의지나 생각이 없는 모습을 보이면 나도 모르게 화가 치민다. 후배도 그런 내 마음을 눈치챈 듯한데, 앞으로 이렇게 계속 불편한 관계로 지내야 하는 걸까? 이민정(33세·마케터)
선 긋기의 기술ㅣ과제를 분리하라
이런 경우 심리학자 알프레드 아들러가 말하는 ‘과제의 분리 법칙’을 떠올려라. 가령 아이가 공부를 하지 않아 부모가 화를 낸다면, 그것은 ‘공부를 하지 않는 아이의 과제’가 아니라 ‘화를 내는 부모의 과제’라는 것이다. 이를 직장 생활에 적용해보자. 후배의 일은 누구의 과제일까? 그건 오롯이 후배의 것이다. 나는 내 과제만 어떻게 해결할지 생각하면 된다. 하지만 이를 명확히 분리하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다. 후배의 태도에 계속 화가 날 것이다. 그럴 때마다 화를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해두자. 옥상에 올라가서 심호흡을 한다거나 다른 동료와 이야기를 나누는 등 화를 내는 빈도수를 줄이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후배를 고치려고 하기보다 적당히 선을 그어두고 내가 힘들어지지 않기 위해 업무 분담을 다시 하는 등 대처 방안을 모색하는 편이 더 낫다. 애정을 가지고 잔소리한다지만 그건 자신의 생각일 뿐, 후배 에게는 부탁하지도 않은 일에 간섭하는 불편힌 꼰대일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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