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적인 연애를 하는 사람들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사랑이 존재한다. ‘정상연애’의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원칙과 방법으로 주체적인 연애를 실천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BY 에디터 김루비 | 2020.03.09폴리아모리스트
승은, 지민, 우주
비독점적 다자연애를 뜻하는 폴리아모리. 두 사람 이상을 동시에 사랑하는 다자간 사랑이다. 물론 파트너의 동의하에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는 점에서 바람과 다르다. ‘정말 그게 정말 가능해?’라고 묻는다면 이들의 이야기가 그 답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한 집에 함께 사는 연인들 승은, 지민, 우주다.

(왼쪽부터)지민 인권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다. 노무사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이기도 하다. 승은 집필 노동자, 글쓰기 안내자, 퀴어 페미니스트. 우주와는 7년, 지민과는 5년째 연애 중이다. 셋이 함께 살게 된 지는 만 2년이 되어간다. 우주 낮엔 회사에 다니고 밤엔 여러 활동을 한다. 다양한 관계방식과 가족 구성에 대한 이야기를 확산하기 위해 정당, 시민단체 등에 참여하고 있고, 최근엔 번역과 유튜브 채널 운영을 시작했다.
국내에도 조금씩 폴리아모리스트들이 늘어가는 추세지만, 여전히 생소하게 느끼는 사람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폴리아모리는 어떤 연애 방식인가?
승은 폴리아모리도 하나의 덩어리가 아니어서 사람마다 정의하는 방식이 다를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흔히 알려진 ‘다자연애’보다 ‘비독점적 관계를 위한 노력’에 방점이 있다. 여러 명을 만나는 사람, 곰곰이 생각해보면 특별하게 생소한 모습은 아니지 않나? 바람, 오피스 와이프, 일부다처제 같은 다양한 형태로 꾸준히 주위에 존재해왔으니까. 이런 형태와 폴리아모리가 다른 점이라면, 평등하게 합의하려고 노력하는 과정 자체에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연애 관계가 ‘독점’을 전제한다는 걸 인지하지 못할 때가 많다. 독점이 당연하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사랑과 독점은 정말 같은 말일까? 독점성으로 인해 생긴 다양한 문제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요즘 ‘안전이별’ ‘삼일한(삼일에 한 번씩 여성이 연인이나 부부 관계에서 상대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 같은 언어가 많은 사람에게 낯설지 않을 거다. 왜 그런 사건이 생겼는지 들여다보면 다양한 권력 관계가 교차하지만, 독점성에 따르는 부작용과 뗄 수 없다. ‘네가 감히 다른 남자를 만나’라며 소유를 당연하게 여기는 심리가 내재되어 있다. 검색창에 ‘감히’만 입력해도 다양한 데이트 폭력, 아내 살해 같은 기사가 뜨는 현실이다. 서로 소유하는 걸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하나하나 합의하고 맞춰가는 게 폴리아모리라고 생각한다. 그 합의의 과정 중에 ‘다자관계’에 대한 협상과 합의도 있을 거고. 무엇보다 이성애자, 비장애인의 일대일 연애만이 정상으로 여겨지는 ‘정상연애 이데올로기’가 아닌, N명의 사람만큼 N개의 사랑 방식이 존중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지금 사회에서 승인한 정상적인 사랑의 범위는 너무 좁고 허술하기에 다양한 사랑의 모습이 가능해야 하고, 드러나야 한다.
지민 폴리아모리라는 이름에 평등과 합의, 비독점이 빠지면 그걸 폴리아모리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일대일의 배타적 독점관계 외 모든 관계를 ‘논모노가미’라고 한다. 그 논모노가미 안에는 무수한 관계들이 있다. 가령 오픈 릴레이션십, 바람, 스윙(스와핑), DADT(묻지도 말하지도 않기로 합의하는 방식) 등이 있고, 그중 하나로 폴리아모리가 있다. 다른 관계에 대한 윤리적인 판단을 내려놓고 보더라도, 각자의 개념에 상이한 지점들이 있기 때문에 구분된다. 물론 이름이 모든 걸 설명해주진 않고, 이름 안에서 다양한 방식의 합의와 관계 양상이 나타날 수 있다. 그래도 우리가 어떤 개념을 사용하기로 했다면 그 안에는 일정한 약속이 있을 건데, 폴리아모리는 평등과 합의, 비독점이 그 약속이라고 생각한다.
우주 폴리아모리는 단지 ‘연애’에만 한정된 관계방식은 아니다. 연인에게만 정서적 교류와 경제적 의존을 ‘몰빵’하면서 연애관계를 특권화하는 방식은 자연스럽게 연인에게 과도한 기대와 헌신을 요구하게 되는 독점적 관계로 나아갈 가능성이 높은 것 같다. 불확실한 삶에서 발생하는 심리적 불안이나 금전적 어려움을 분담하고 안전망이 될 수 있는 관계의 지평이 반드시 연인관계에만 한정될 필요는 없다. 깊은 감정과 돌봄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 성애적 감정을 공유하는 단 한 명의 연인이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폴리아모리는 우리가 좀더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며 상호의존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상상력을 제공한다. 폴리아모리는 우리가 오랫동안 유지해왔던 일대일의 독점적인 연애 방식이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유일한 친밀성의 방식이 아닐 수도 있으며, 관계를 평등, 소통, 비독점 등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게 돕는 일종의 인식론이라고 볼 수 있다.
맨처음 이메일로 인터뷰 요청을 했을 때 회신에 ‘저와 애인들이 가능한 시간은’이라는 단락에서 개인적으로 시공간을 초월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세 사람이 다자연애적 가치관을 갖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승은 아, 그랬나? 나와 내 주위 친구들은 이제 자연스럽게 서로에게 “지금 만나는 애인은 몇 명이야?”라고 묻곤 한다. 무엇이 자연스럽게 여겨지는지는 문화에 따라 충분히 달라질 수 있는 것 같다(웃음). 가치관을 갖게 된 뚜렷한 계기는 없었다. 우주와 만나면서 어떻게 우리가 서로를 존중하며 만날 수 있을지 다양한 가능성을 논하다가 폴리아모리라는 개념을 공부하게 됐다. 우주와 연인이 된 지 3년 정도 되었을 때 지민을 만나게 됐고. 두 사람과 함께 폴리아모리를 공부하고 여러 합의를 거쳐서 지금이 됐다. 우리가 페미니즘을 공부하면서 당연하다고 믿어왔던 성별 이분법을 질문하고, 모든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질문하고, 해체하고, 새롭게 정의하는 과정에서 어떤 모습으로든 서로 합의할 수 있다면 괜찮다는 믿음도 작용했다.
이전에는 일대일 연애를 오랫동안 맺어왔었다. 한번은 내가 노브라가 편하다고 하니까 상대가 상처 받았던 적이 있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성적인 존재로 보일까 봐 불안하다는 게 이유였다. 나는 브래지어를 하면 소화도 안 되고 가슴이 답답해서 싫었는데 당시에는 그가 요구하는 걸 들어줬다. 하다못해 브래지어도 그런데, 다른 부분에서 상대가 어떻게 내 일상과 몸을 통제하려고 했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예상 가능할 거라고 생각한다. 가장 사적이라고 여겨지는 연애관계에서부터 나는 평등을 원했고, 그 고민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서 함께 노력했기 때문에 가능해졌다.
지민 ‘다자연애 가치관’을 가진 적은 없었고, 지금도 잘 모르겠다. 승은을 만나면서 비독점적이고 평등하고 합의 가능한 관계라는 걸 상상하게 됐고, 그게 지금 우리의 모습이다.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시작하기 전부터 사랑이 끝난 뒤까지 사랑과 연애에 관해 너무 많은 것을 당연한 듯 전제하고 있다. 많은 미디어가 그렇게 그리고 있기도 하다. 썸을 탈 때는 어떤 모습이고, 고백은 어떻게 하고, 사귀는 동안은 어떻고, 권태기는 어떻고, 헤어질 땐 어떻고 같은 것들. 이런 것들에 학습된 우리는 합의한 적 없이 당연한 듯 서로에게 ‘허락’을 구한다. 나는 지금 만나는 관계를 통해 이런 것들에 대해 질문할 수 있었다. ‘왜 당연하다고 생각했지?’ ‘나는 상대와 얼마나 이런 이야기를 나눴지?’ ‘상대가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가능성은 왜 불가능하다고 믿었지?’ 이런 질문과 고민, 합의를 함께 해나가는 사람들을 만나게 됐고, 그 관계를 폴리아모리라고 부르게 됐다. 물론 그 과정에서 언어를 찾고 공부를 하는 과정도 필요했지만.
우주 나도 지민처럼 여러 사람과 연애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졌던 건 아니다. 승은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우리 셋이 같은 공간에서 지낼 수 있었던 건 그저 평등한 관계를 어떻게 만들어나갈 수 있을까 고민하던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이런 삶의 방식이 우리가 처한 상황과 조건에 가장 알맞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개개인이 자기 삶을 주도적으로 기획하고 살아가면서도, 서로 사랑을 유지해나갈 수 있는 관계를 맺는데 파트너의 수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런 생각을 갖기까지 여러 부침을 겪었지만. 나 역시 일대일의 독점적인 연애만 해왔기에 다자연애는 매우 생소한 관계방식이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얻은 것은 우리가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던 감정들이 실제로는 오랫동안 학습된 것일 수도 있겠다는 교훈이었다. 관계 내에서 당연하다고 생각해왔던 것들을 의심하게 된 계기가 됐다.

앞서 말한 대로 폴리아모리의 대전제는 합의다. 세 사람이 현재 한 집에 살고, 서로 폴리아모리적 연애관계를 유지하면서 반드시 지키는 규칙이 있다면.
승은 일주일에 한 번씩 가족회의를 한다. 회의 안건은 가사노동 분배, 월세 및 다양한 회계 상황 보고, 서로의 건강과 지난 일주일은 어땠는지 묻고 듣는 시간이다. 함께 살기 전에도 다양한 논의를 해왔다. 가령 일주일에 어떤 요일에는 누구와 함께 보낼지, 한 사람과 데이트를 할 때 다른 사람과의 연락은 어떻게 할지 같은 점들을 의논했다. 초반에 가장 어려웠던 점은 크리스마스나 새해, 생일에 누구와 보낼까 하는 것들이었다. 하루를 반으로 쪼개서 오전부터 저녁까지는 우주와, 저녁부터 밤까지는 지민과 보내기로 결정하기도 했다. 그런 점들이 유독 어려웠다. 함께 산 지 2년이 넘어가는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셋이 함께 살면서 이제는 내 생일에 우주와 지민이 함께 깜짝 생일파티를 준비하기도 하고, 우주 생일이나 지민 생일에도 함께 파티를 준비한다. 지난 크리스마스와 연말에도 우주, 지민, 나 그리고 사랑하는 여러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또, 섹스에 대한 규칙도 있다. 우리 모두 비혼, 비출산을 지향하기 때문에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다. 그런 가치관을 알았기에 내가 초반에 두 사람에게 정관수술을 요구했고, 두 사람 모두 수술을 했다. 혹시 모를 성병 예방을 위해서 콘돔은 꼭 쓰기로 합의했다. 함께 만든 규칙 중에는 ‘키스마크 남기지 않기’도 있다. 몸에 흔적을 남겨서 괜한 질투심을 만들 필요는 없으니까. 앞으로도 살면서 다양한 규칙과 합의가 생기고 사라질 거다. 그런 노력이 어떤 관계에서나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기에 폴리아모리만의 특별한 규칙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질투나 집착, 불안의 감정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려울 것 같다. 함께하는 사랑이 처음부터 쉽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어땠나.
승은 나는 중간(꼭짓점) 위치라 중간에서 겪는 어려움이 있었다. 두 사람 사이에서 약속과 일정, 다양한 감정을 조율하고 살피는 역할을 해야 했기에 소진되기가 쉬웠다. 특히 초반 1년 정도는 두 사람 모두 힘든 시기를 보냈기 때문에 나도 함께 힘들었다. 상대가 힘든데, 내가 혼자 즐거울 리 없지 않나. 관계 초기에는 불안감, 죄책감이 항상 따라다녔다. 폴리아모리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나오기 전이었기 때문에 참고할 만한 자료가 없던 것도 어려운 점이었고. 또, 나부터도 일대일 연애가 당연하다고 길들여져왔기 때문에 둘 중에 누구와 정리해야 하는 건 아닌가, 둘 다와 헤어지는 게 맞는 건가 싶은 마음도 자꾸 올라왔다.
하지만 그때마다 나를 붙잡은 게 두 사람이다. “승은, 우리 더 노력해보자. 승은이도 정말 고생한다.” 그 말을 듣고 펑펑 울었던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사람들이 폴리아모리를 상상할 때, 주로 <아내가 결혼했다>를 대입한다. 그 영화에서 제일 욕먹는 사람은 주인아(손예진 분)다. 이기적이고 무책임하다고. 그 영화에 빗대서 나를 욕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런데 오히려 두 사람이 내가 이 관계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걸 가장 가까이에서 알아주고 보듬어줬다. 그런 부분이 나 스스로에 대한 의심을 덜어주었다.
지민 이 부분을 이야기하려면 사실 책 한 권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웃음). 간략히 말하면, 관계를 시작한 처음 한 달은 전혀 안 힘들었고, 그 후 1년은 지옥의 시간이 펼쳐졌고, 지옥에서 나온 뒤로 많이 좋아졌다. 처음 한 달이 안 힘들었던 건, 개념이 나를 압도했기 때문이다. ‘폴리아모리는 비독점적이고 평등한 관계를 합의하며 만들어나가는 거잖아’ 스스로 주문을 걸었다. 그래서 그때는 정말 우주와 승은이 데이트를 하면서 승은이 행복한 시간을 보내면 나도 행복하다고 생각했다(주문을 걸었다). 근데 한 달이 채 안 갔다. 아마 기대가 커지면서 점점 힘들어졌던 것 같다. 상대를 사랑하는 마음이 커질수록 상대에게 받고 싶은 사랑과 관심도 함께 커졌고, 그게 충족되지 않는다고 느끼니까 외로웠다. 질투도 생겼고. 다른 한편으로는 우주와 승은이 3년 즈음 만났을 때 나는 조금 늦게 관계를 맺은 위치였지 않나. 거기서 생기는 불안도 컸다. 참 우스운 표현이지만, 언제든 버려질 수 있다는 생각도 했다.
실제로 폴리아모리 서사를 다룬 대부분의 작품들은 늘 ‘중심관계’를 위주로 그려진다. 사르트르와 보부아르도 그렇고, 웹툰이나 영화도 그렇고. 신뢰감과 유대감, 친밀감이 굉장히 높은 둘이 사랑의 ‘실험’을 하면서 폴리아모리를 ‘실천’한다. 그리고 세 번째로 등장하는 사람은 대부분 이름도 모른다. 때로는 중심관계를 돈독하게 해주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이런 식으로 나는 내가 주변부이고, 단단하게 자란 나무에 달려 있는 나뭇가지처럼 느끼기도 했다. 아, 난 어쩌면 실험대상, 혹은 언제든 사라질 수 있는 존재일 수 있겠구나. 여하튼, 이때 제일 도움이 됐던 건 역시 승은이었다. 이런 내 마음과 상태를 충분히 알아줬고 공감해줬다. 그것만으로도 많은 힘이 됐다.
우주 머리로는 폴리아모리를 굉장히 괜찮은 관계방식이라고 생각해왔지만, 실제 몸으로 겪은 폴리아모리는 그렇지 않았다. 파트너와 메타무어에게 느끼는 질투심도 컸고, 내가 온전히 사랑 받고 있는지에 대한 불안감이나 자기 의심 또한 커서 무척 힘들었다. 가령 나에게 부족한 부분이 있어 승은이 그것을 지민에게서 충족한다는 생각이 들 땐 자존감이 마구 떨어졌다. 물론 사랑의 크기가 정해져 있어 그것을 사람 수대로 나눠 쓰는 것은 아니라고 스스로를 설득했지만, 그럼에도 기존의 일대일 연애 방식에 익숙해져 있던 내가 하루아침에 습관을 바꾸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그럴 때마다 승은은 내가 대체 가능한 사람이 아니라 그 자체로 사랑 받을 만한 고유한 사람이라는 걸 끊임없이 상기시켜주었고, 지민은 메타무어끼리 경쟁적이고 적대적인 사이가 되지 않도록 시간 배분이나 규칙 설정을 세심히 도와줬다. 하지만 내가 느꼈던 부정적인 감정이 폴리아모리를 실천하는 사람들에게만 생기는 특별한 감정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일대일 연애관계나 친구관계에서도 질투심이 생기곤 하니까.

솔직히 아직까지는 폴리아모리스트를 대하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욕망을 분출하는 이기적인 연애’라고 의심을 품기도 한다.
승은 역설적으로 작년에 개봉한 영화 <가장 보통의 연애>에서 표현하는 ‘보통의 연애’의 모습이 무척 이기적이고 위험해 보였다. 그런 보통의 연애가 아닌, 어떻게 하면 서로 평등하게 관계를 맺을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하고 노력하는 지금의 연애가 더 안전하고 이타적으로 느껴진다. 타인의 시선에서는 보통이 아닌 ‘비정상적인 연애’라고 이름 붙여질지 몰라도. 얼마 전, 장애인의 성과 사랑을 다룬 책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들>을 읽었다. 책의 저자 천자오루는 마리 퀴리의 말을 인용하면서 말한다. “살면서 두려워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삶은 그저 이해되어야 할 뿐이다. 이해하는 것이 많아질수록 두려움은 줄어든다.”
사회에서 정한 ‘정상’ 규범을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순간, 누구나 공격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 공격의 이면에는 두려움이 있다. 낯설기 때문에 틀렸다고 말하고, 쉽게 판단하고 간단하게 부정해버린다. 그 두려움을 없앨 수 있는 방법은 ‘알려는 노력’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알면 사랑하고, 모르면 혐오한다는 말처럼. 그래서 사람들에게 내 몫의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 글을 쓰고 있다. 5월에 폴리아모리 에세이 <그 이상,한 사랑>이라는 단행본이 나올 예정이다. 폴리아모리스트로 느끼는 구체적인 고민과 진솔한 모습을 글을 통해 나눌 수 있길 바란다.
우주 폴리아모리가 단순히 다자관계나 바람의 욕망을 용인하는 이야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편견 가득한 비난을 듣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설령 폴리아모리가 특정한 욕망을 드러내는 연애 방식일지라도 그런 비난은 부당하다. 어떤 욕망은 사회적으로 용인되는데, 어떤 욕망은 그렇지 않다. 그 경계가 얼마나 역사적이고 정치적인지 함께 고민해본다면 타인의 존재 방식을 그렇게 덮어두고 비난할 수는 없을 거라 생각한다. 폴리아모리를 지향해야 한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각자가 처한 상황이나 맥락에 따라 각자가 추구하는 관계방식은 모두 다를 수 있다. 다만 낭만적 연애의 이데올로기, 독점적 사랑의 관념들이 어떤 부작용을 낳아왔으며 어떻게 평등한 관계를 가로막아왔는지 성찰하는 동시에, 새로운 관계 구성에 대한 상상력을 막지 말아달라는 당부를 드리고 싶다.
지민 더 사랑하고, 현재의 관계에 더 집중한다. 그리고 공부한다. 대체 왜 어떤 관계는 비정상으로 여겨지는지, 정상과 비정상은 무엇인지, 이런 구획은 누가 왜 어떻게 만들었는지, 그로 인해 사회적으로 어떤 차별을 받으며 살아가는지, 이런 공부를 하고 언어를 찾는다. 그리고 이 문제가 가족구성권, 연애중심주의, 이성애중심주의, 성별이분법 체계, 가부장제, 시민권 등등의 문제와 연관되어 있고, 사회적으로 변화해야 할 문제라는 점을 깨닫고 그걸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비독점 다자연애라는 새로운 관계를 추구하면서 세 사람의 인생에는 어떤 변화가 생겼나.
지민 폴리아모리 관계를 맺으면서 변화한 것도 분명 있겠지만, 승은과 우주, 두 사람을 만났기 때문에 변화한 것이 많다. 둘과 함께 공부를 하고 대화를 하면서 세상을 보는 관점과 태도가 바뀌었고, 둘과 함께 지내면서 나를 많이 돌아보게 됐다. 폴리아모리도 결국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그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 아닐까? 나는 ‘폴리아모리를 한다!’가 아니라 승은과 우주라는 사랑하고 멋진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있다.
우주 일대일 독점연애에서는 서로를 소유하기에 너무나 당연해진 감정과 일상의 노력들이 누군가의 과도한 부담이나 책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는 당연한 것에 의문을 가지고 사소한 문제를 공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소통 연습을 하고 있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가장 크게 변화한 지점이다.
승은 폴리아모리여서 특별히 행복하거나 큰 변화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내 주위 사람들이 변했다. 아빠가 군인이신데 이제는 통화할 때마다 “지민하고 우주는 잘 있냐?”고 물으신다. 한번은 “그렇게 괜찮은 애들이 왜 너를 만나냐. 내 딸이지만 이해가 안 된다”고 장난스럽게 말하기도 하고. 엄마도 마찬가지다. 처음엔 남들에게 부끄러워서 숨겼는데, 이제는 오히려 엄마의 친구들과 형제들에게도 말한다.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이상한 게 아니라 정말 노력하는 관계라고. 가까이에서 보면서 엄마, 아빠의 편견도 깨졌다. 지난 새해에는 우주의 부모님과 지민, 나까지 다섯 명이 함께 밥을 먹었다. 그날 우주 어머니가 “두 사람 덕분에 우주가 많이 성장하고 있다. 나도 옆에서 많이 배우고 있다. 고맙다”고 말씀하셨다. 낯설어서 깜짝 놀라고 불편하던 감정이 서서히 이해와 존중으로 변하는 모습을 보는 것, 그 변화를 볼 때 행복하다고 느낀다.
서로에게 바라는 점, 함께 이루고 싶은 꿈은 무엇인가.
승은 셋이 함께 긴 여행을 떠나보는 것? 바라는 점은 특별히 없다. 지금처럼, 서로 대화하고 관계를 위한 노력을 놓지 않기를 바란다. 비단 우리뿐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이 혼자 살아도, 동성과 사랑해도, 셋이 사랑해도, 그 형태가 무엇이든 사회에서 쫓겨나거나 낙인찍히지 않고 존재 자체로 존중 받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우주 서로 자유롭게 사랑하면서 서로의 삶을 제약하지 않고 함께 성장하는 관계를 오랫동안 이어나가고 싶다. 그리고 우리가 관계 맺고 살아가는 모습이 새로운 가족 구성을 상상하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힌트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
지민 허황된 꿈일 수도 있지만, 지금처럼 앞으로도 영원히 함께하길 바란다.
사진제공
www.shutterstock.com
일러스트
노여진
연애
연애상담
데이트폭력
폴리아모리
탈연애
폴리아모리스트
가스라이팅
성평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