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리를 찾아가는 이준영
노래와 춤, 연기와 그림, 이준영은 이 소란스러운 세상에서 부지런히 움직인다. 방위표를 뒤집어놓은 심벌을 지닌 채 어디에 있든, 원래의 자신의 자리를 찾아간다.
BY 에디터 임준영 | 2020.06.03
셔츠 브룩스 브라더스, 재킷과 보타이 모두 로비테일러, 팬츠 리차드 제임스 by 미스터포터, 실버 커프링크스 S.T. 듀퐁 파리, 슬립온 로퍼 크리스찬 루부탱.

롱 코트와 타이 모두 엠포리오 아르마니, 팬츠 라르디니, 슬립온 로퍼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시끄러운 것을 거부하고 조용함을 무엇보다 좋아한다는 이준영은 아이러니하게도 말이 참 많다. 그것도 꽤나 재미지고 능청스럽게 술술 말이다. 카페에서 몇시간이고 친구들과 수다 떨기가 가능하지 싶다. OCN 채널 드라마 [미스터 기간제]의 소시오패스 살인마역 유범진과 매칭이 되질 않아 자꾸 그의 얼굴을 확인하게 된다. [싱글즈] 촬영장의 인테리어에 감탄하며 휘둘러보다가 상의 탈의신 촬영 10분 전에 펌핑한다며 신호 달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문득 배를 붙잡고는 심각한 표정으로 최근에 생긴 고민을 털어놓는다.
“하루 여섯 끼를 먹어도 살이 점점 빠지는 이유는 뭘까요?” 살이 빠져서 얼굴 근육의 움직임까지 쪼갠 표정 연기가 가능하다는 우스갯소리를 슬픈 표정으로 중얼거린다. 대체 살이 어디에 있다고. 이준영은 홍삼, 비타민 D·C, 철분 등 몸에 좋은 건 밥보다 먼저 챙겨 먹는 스타일이다. 개인적인 일을 할 때는 아직도 지하철을 타고 다닌다. 보통 사람 이준영은 부지런하고 또 부지런하다. 하루가 너무 바빠서 살찔 틈이 없는 것은 아닐까. 욕심을 내려놓고 소소하게 예술가로 살고 싶다는 그에게 24시간은 한없이 부족해 보인다.
이곳(촬영 장소) ‘원더랜드’ 같지 않나? 완벽한 존재 ‘킹스맨’이 정말 어울리는 공간 같다. 내 머릿속에 박혀 있는 ‘킹스맨’ 이미지는 단정함과 더불어 칼같이 주름 잡힌 수트가 한 치의 빈틈없이 몸을 감싼 극강의 카리스마를 표현하는 캐릭터인데, 이곳의 인테리어가 나의 예상치를 빗나가면서 오히려 신선하고 좋았다. 이곳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미스터 기간제]에서 유범진이 꿈꾸던 왕국의 복선이 떠오르기도 했고.
이준영의 왕국을 건설한다면? ‘맹수끼리 싸우지 말자, 나눠 먹을 사슴은 충분히 많으니까’라며 서로 배려하자는 유범진 대사가 있는데, 사실 그런 왕국을 만들고 싶다. 이준영도 유범진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 얼굴 붉힐 일 없이 ‘좋은 게 좋은 거다’란 슬로건을 내세워 사람끼리 부대끼면서 사는 정 많고 행복하며 조용하고 평화로운 느낌의 그런 왕국을 건설하고 싶다.
공식적인 화보 인터뷰는 이번이 처음이다. 소풍 가기 전날의 어린아이처럼 좀더 설레었던 것 같다. 많은 의상을 체인지하면서 촬영하는 것이 사실 생소했고, 한 번도 접하지 못 했던 스타일의 옷과 헤어, 메이크업을 바꿔가는 것부터 새로운 경험이었으니까. 촬영 내내 텐션이 올라가는 걸 숨기느라 혼났다. 아, 티가 났을까(웃음)?
평소 본인의 패션 감각에 점수를 준다면? 사복점수는 60으로 하겠다. 편하면서 멋을 낼 수 있는 올드스쿨 감성의 뉴잭스윙 스타일, 레트로 등이 주를 이루는 스트리트 브랜드를 선호하는 편이다. 외출할 때는 클러치 백과 향수를 챙긴다. 사람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향기로 그 사람을 기억하고 인식하지 않나. 그런 디테일에 신경을 쓰는 편이다.
주변에 닮고 싶은 힙한 패셔니스타가 있나? 내 기준에서 100점 만점의 패션 센스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레디 형. 이번에 곡 작업할 일이 있어 자주 만났는데, 힙하고 나이스하게 잘 입는다.

터틀넥 톱 쇼앤텔, 셔츠 8 by 육스, 재킷 산드로옴므.
다른 여러 인터뷰마다 질문을 반복해서 받다 보면 같은 대답이 자동적으로 나오지 않나? 얘기하는 걸 워낙 좋아해서 다른 방향으로 대답한다. 이 작품을 하면서 느낀 점이 한 가지, 한 종류가 아니기 때문에 똑같은 답변은 할 수가 없으니까. 질문의 유형이 비슷하다 뿐이지, 사실 얘기하자면 굉장히 다양한 답변들이 나온다.
스마트해 보인다. 절대, 네버. 머리가 그렇게 좋진 않다. 너무 어릴 적부터 연예계 활동을 시작한 연차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책을 읽고, 그림도 그리며, 곡 작업을 하면서 생각을 정리하는 타입이라 이러한 작업들이 말을 잘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 같다. 말하는 법과 생각을 정리하는 법을 너무 일찍 터득해서 ‘애늙은이’란 별명이 생겼으니까(웃음).
2014년, 꽤 어린 나이에 유키스에 합류했다. 팀내 형들과의 거리감 등이 걱정되진 않았나? 17, 18살? 와… 미성년자였다. 내가 합류하기 전 이미 유키스라는 그룹은 6년차였고 간절하게 데뷔를 원하던 내 마음, 감정을 우선시하기 전에, 과연 날 받아줄까에 대한 불안함과 의문이 컸다. ‘유키스’라는 브랜드의 옷을 입었을 때 형들과 같은 핏이 되어 한 팀처럼 보여야 하니까. 막막한 숙제가 주어졌고 시행착오를 겪긴 했지만 원만하게 잘 푼 것 같다.
해외에서 가수로서 솔로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나도 사람인지라 두 가지 이상의 일을 하게 되면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힘들기도 하다. 겸업을 추천하는 편은 아닌데, 이걸 3년 동안 해온 사람으로서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성취감이 남다르다는 것이다. 얻는것도 많고, 경험도 두 배로 하게 되니까. 물론 겸업하는 현장들이 달라 그 맛을 더 느끼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초반에 수면 시간이 부족해 너무 힘들다는 생각은, 짬이 날 때 자두면 된다는 긍정적 마인드로 바뀌고 이젠 몸이 익숙해졌다. 분명 마지노선이라는 게 있어서 조금만 넘어가면 힘들 텐데, 아직은 버틸 만해서 스스로도 신기해하는 중이다(웃음).
겸업을 한다는 것은 그만큼 재능이 많다는 얘기다. 본래 포지션인 랩뿐만 아니라, 보컬과 댄스 등에서도 두각을 나타내지 않았나? 사실 포지션에 대한 고민은 초반부터 항상 해오던 거였다. 댄서로 출발해 팀에서 랩 포지션이었던 내가 어느 날 갑자기 ‘유앤비’의 메인 보컬이 되다니, 상상해본 적도 없고 바래왔던 건 더더욱 아니었다. 사람들은 누구나 본인이 가장 자신 있고 잘하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하지 않나? 나에게는 랩이 그러했다. 하지만 주어진 환경에서 연습을 거듭하다 보니 뮤지컬이란 기회가 찾아왔고, 발성 또한 좋은 방향으로 달라지면서 보컬과 랩이 합쳐진 ‘멜로디랩’을 할 수 있게 됐다.
오히려 편하게 표현하는 방향이 넓어졌다. 퀄리티가 아주 재미있게 완성되고 스스로에게도 좋은 영향을 끼쳤다. 그때가 아니었다면 이렇게까지 여러 장르의 예술을 접할 수 없었을 거다.

실크 셔츠와 재킷 모두 벨루티.

셔츠 브루넬로 쿠치넬리, 재킷 벨루티, 베스트와 팬츠 모두 로비테일러. 타이 S.T. 듀퐁 클래식, 안경 퍼블릭비컨.
댄스, 보컬, 랩, 연기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는 완벽 그 자체의 캐릭터가, 사회에 경종을 울렸던 드라마 [미스터 기간제]의 ‘유범진’을 보는 것 같다. 본인 역시 완벽주의자인가? 완벽주의를 원하고, 그렇게 되려고 한때 노력도 했었다. 욕심이 끝이 없었고, 어느 것이든 잘하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 욕심들을 많이 덜어놓은 상태여서 굳이 이 일을 하지 않아도 행복해질 자신이 있다. 혹자는 삶에 너무 치여서 내려놓은 것이 아니냐는 걱정을 하는데 오히려 그렇게 치여왔던 시간들이 나에게는 플러스였다. 욕심을 없애고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다 보면 생각이 정리되고 아울러 성숙해진다. 모든 관점에서 시야가 넓어지긴 하더라.
욕심을 한창 부릴 때 아닌가? ‘잘한다, 독기 있다’라는 좋은 말들이 나를 더 깎아내렸다. 데뷔했을 때 가수로서의 성공과 인정을 바랐지만 높은 벽에 부딪치는 현실을 마주할 때마다 스스로에게 많은 채찍질을 했다. 안 될 걸 알면서도 기대하고 상처 받는 반복된 시간이 길었고, 결국 욕심이란 단어는 나를 마모시켰다. 그래서 지금 이제 겨우, 형태가 다소 덜 잡힌 조각상 정도가 되지 않았나 싶다. 욕심을 좀더 버려서 예쁜 조각상으로 완성되고 싶다.
[미스터 기간제]의 유범진 역을 맡은 후, 캐릭터의 어떤 부분에서 많은 생각을 했나? 한 대본을 가지고 오랜 시간 동안 반복된 연습을 통해 라이브로 공연을 하는 뮤지컬은 리허설 때 분석했던 캐릭터와 공연 초반, 중반, 후반을 나눠서 볼 때의 캐릭터가 디테일부터 확연하게 달라지더라. 뮤지컬로 캐릭터 분석하는 법을 다시 공부하면서 유범진을 새롭게 연구했다. 천재들은 왼손잡이가 많다는 설정을 토대로 왼손으로 밥을 먹기도 하고 글씨도 써보는 등 이런 부수적인 것들이 캐릭터의 완성도를 높이는 것이라 생각해 천재들이 할 법한 일들을 분석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기본을 갖추는 거다. 대본에 충실하고, 대본 외우면서 법에 대한 공부를 많이 했다. 무슨 내용인지 알아야 대사가 자연스럽게 나올 테니.
유범진은 이준영에게 많은 공감대를 형성시킨 캐릭터 같다. 빙고. 의외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남들 앞에서의 표현이 서툴다. 아니, 하지를 못한다. 유범진은 본인의 이미지 때문에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거지만. 아이돌이라는 직업을 빗대어 봤을 때 슬픈 일이 있어도 항상 웃어야 하는 직업이니까 그런 것에 공감이 많이 됐다. 유범진은 어떻게 보면 너무 어른스러워서 오히려 안쓰러운 캐릭터다. 범진아, 완벽함과 똑똑함, 지식 그런 것들을 그렇게 쓸 거면 나에게 달라고(웃음).
어릴 때 공부 잘했나? 누구나 하는 얘기지만 중학교 때까진 잘했다. 그 이후에 검정고시 치르고.

셔츠와 수트 모두 킹스맨 by 미스터포터, 타이핀 S.T. 듀퐁 파리, 타이와 포켓스퀘어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터틀넥 톱 쇼앤텔, 셔츠 8 by 육스, 재킷과 팬츠 모두 산드로옴므, 포켓 행커치프 구찌 by 미스터 포터, 로퍼 카르미나 by 유니페어.
본인의 학창 시절은 어땠나? 천방지축이었다. 춤추면서 다녔거든. 과도기도 있었다. 당연히 중2병도 좀 걸렸고. 아버지가 엄격하신 분이라 진짜 많이 혼났었다. 그래도 혼나고 꾸중을 들음으로써 지금의 이준영이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유범진을 마지막에 잘 놓아주었나? 살인을 할 때도 요란스럽게 하지 않는 유범진은 소시오패스임에도 불구하고 후반부에서 폭주를 한다. 학교라는 왕국에서 왕이었던 그는 어느 순간부터 등을 돌려버리는 주변인들과의 관계를 경험해본 적이 없어 그때부터 미쳐갔던 거지. 완벽하리라 생각했던 계획이 틀어지는 순간 미친놈처럼 날뛰니까. 유범진으로서 얘기하자면 완벽주의자지만 미성숙한 소시오패스였기에 일을 벌여놓고 수습을 못한 채 죽었다는 억울함과 분함이 결국 마지막 신에 눈물이 맺히게 만들었다. 아쉬워서 잘 놓아주진 못한 것 같다.
연기 레슨을 받지 않는다고 하는데 어떻게 준비하는지 궁금하다. 다섯 번 정도 받아봤는데… 선생님의 지도를 받는 것보다 스스로 생각하고 분석하는 캐릭터가 훨씬 더 흥미있고 재미를 느끼게 된다. 우선 연기할 때 캐릭터보다는 대본 분석을 먼저 한다. 제작자분들이나 감독님을 만나 얘기할 때 내 생각 정도는 표현할 줄 알아야 하니까. 유범진역의 오디션 때 캐스팅 비화를 얘기하자면 ‘유범진은 어떤 캐릭터 같나?’라는 질문에 ‘완벽하고 그런 건 다 알겠지만 난 얘가 당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잘 모르겠다’란 대답에 감독님이 무릎을 치면서 ‘바로 그거야!’를 외치셨다(웃음). 솔직함을 항상 무기로 내세우니 정직한 결과가 오는 것 같다. 잘 보이기 위해 거짓말을 둘러대지 않고 내 주관을 뚜렷하게 얘기하는 게 먼저라고 생각하니까.
본인이 꼽는 명장면은? 나 죽는 거. 흔히 어른들이 ‘나쁜 놈은 광화문 네거리에서 공개적으로 망신을 줘야 한다’고들 하셨는데, 마침 유범진이 광화문 네거리, 청계천 위에서 공개 죽음을 맞이했다. 게다가 침 흘리는 장면을 보면서 진짜 리얼한 연기라며 뿌듯해하고 있는데, 회사 스태프들이 침이 왜 이렇게 많이 나오냐며 뭐 문제 있는 거 아니냐는 바람에 환상이 초전박살당했다.
취미로 그림을 그리는데, 계기와 주제는 무엇인가? 유앤비로 활동하고 있을 때 멘탈 관리가 어려웠다. 지금 [싱글맨로그]에 ‘독수공방’을 연재 중인 필독 형의 권유로 다시 붓을 잡았다. 예전 미술 실기를 했을 때 반복적인 석고상 데생이 너무 싫어 관둔 경험이 있어 살짝 주춤했지만 휴대전화에 메모해 두었던 내 감정을 상기시키며 뇌리에 꽂힌 것들을 몇 번이고 곱씹어 추상화로 표현하니 스트레스가 풀리더라. 이런 건강한 취미를 통해 해소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지금까지 그렸던 작품 중 가장 맘에 드는 것은? 지금 휴대전화 배경화면에 있는 그림. 이미 팔린 그림이라 보여드릴 순 없지만 ‘입’에 대한 주제로 그렸다. 다양한 사람의 감정은 입을 통해 표현되고 좋은 일, 상처 받는 일 모두 입으로 전달이 된다. 흰색은 긍정적인 의미, 노랑, 파랑은 추억, 가장 바깥쪽에 그려진 빨간색은 단 한 번의 상처로 인해 그동안 간직했던 추억들이 가려지는 것을 표현했다.
나를 위한 휴식 시간이 주어진다면? 들깨칼국수 먹으러 갈 거다.
차기 작품으로 SBS 드라마 [굿캐스팅]에 바로 투입되었다. 국정원 요원들의 잠입수사 내용이고, 이번엔 톱스타 배우 역을 맡았다. 좀 재수없지만 사랑스러운 캐릭터로, 재수없어 보여야 하는 게 관건이다. 손동작이나 제스처가 아주 디테일하게 캐릭터의 성격을 말해준다. 보고 있자면 한 대 치고 싶을 정도로 재수없게 구는 대사와 표정에 상대역인 인영 누나가 고생 많이 하셨다(웃음).
올해 안에 이루고 싶은 이슈가 있을까? 올해는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좋은 성과를 이뤄내서 이젠 마무리를 잘하는 게 목표다.
나만의 슬로건이 있다면? 내 그림들을 보면 위로 향한 화살표가 있는데 숫자 4처럼 보이겠지만 방위표를 뒤집어놓은 거다. 동서남북 어디에 있건 내 위치를 지키겠다는 나만의 심벌. 동서남북은 굉장히 함축적인 의미다. 내가 본업이 아닌 부업에서도 활동하고 있으니 내가 어디에 있든 나는 흔들리지 않고 중심을 잡겠다는. 그러니 어디에서라도 이준영을 본다면 반갑게 인사해주길 바란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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