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올 바 재킷의 위대한 탄생

바 재킷의 탄생은 패션계 판도를 뒤집은 일종의 혁명이었고, 디올 하우스의 정신을 잇는 영원한 유산이다.
BY 에디터 김다혜 | 2020.08.18
THE START
1 1947년 당시 바 재킷의 생산 대장. 2 ‘코롤’과 ‘8’이라는 두 가지 실루엣에 대한 설명이 적혀있는 디올 1947 S/S 컬렉션 프레스 노트. 3 포토그래퍼 윌리 메이왈드(Willy Maywald)가 파리 센강에서 찍은 전설적인 뉴 룩 사진. 4 2012년 마리옹 코티아르가 모델로 참여하고 장-밥티스트 몬디노(Jean-Baptiste Mondino)가 찍은 첫 번째 <디올> 매거진에도 아이코닉한 바 재킷이 등장했다. 5 좀 더 모던한 모양새를 갖춘 지금의 바 재킷. 6 1949 F/W 컬렉션에서 선보인 뉴 룩은 유네스코(Unesco) 수트라는 이름이 붙었다.
1947년 2월 12일 파리. 전후의 우울함과 혹한의 추위에 도시 전체가 떨고 있었지만, 꽃으로 가득 채운 몽테뉴가 30번지 살롱만은 전혀 다른 공간이었다. 크리스찬 디올의 첫 번째 패션쇼가 있던 날이다. 프레스 노트에는 두 가지 메인 실루엣을 강조하고 있었다. 얇은 허리 아래로 넓게 퍼지는 스커트를 의미하는 ‘코롤(Corolle)’과 허리 라인을 좁히고 골반을 강조한 재킷을 칭하는 ‘8’이다. 관객들은 차례로 등장하는 90벌의 옷을 보며 충격과 환희를 동시에 느꼈다. 상체의 곡선을 드러내고 스커트 자락을 풍성하게 연출한 디올의 작품은 전쟁이 끝난 후에도 여전히 경직돼 있던 당시에는 찾아볼 수 없는 패션이자 내심 기다리던 장면이었으니까. 이른바 뉴‘ 룩’이 탄생한 순간이다. 무슈 디올이 자주 드나들던 플라자 아테네 호텔 바에서 아이디어를 따온 ‘바(Bar)’ 재킷은 뉴 룩을 가장 잘 드러내는 대표 아이템이다. 가는 허리, 부드러운 어깨 라인, 골반을 강조하는 바스크, 오픈 네크라인 등 여성의 몸을 그대로 본떠 만든 듯한 유려한 실루엣은 그야말로 혁명이었다. 디올은 이를 완벽하게 구현하기 위해 자신의 건축가적인 재능을 십분 발휘했다. 퍼케일로 안감을 대고 모든 솔기에 테이핑을 했으며, 가슴 부분에는 뼈대를 세우고 허리 안쪽으로 벨트까지 덧대었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전통을 되찾고자 옷감도 풍성하게 사용하고, 쿠튀르 제작 기술까지 총동원했다. 재킷에만 실크가 4m 가까이 들었으며, 엉덩이 라인에 패드를 넣어 좀 더 둥글고 우아한 형태를 만들어냈다. 당시 그의 어시스턴트였던 피에르 가르뎅이 모델의 빈약한 몸매를 풍성하게 보이도록 하기 위한 패드를 사러 심부름 다녔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남아 있을 정도. 한편에서는 과도하게 사용된 천과 노골적인 실루엣에 대한 비판도 있었다. 하지만 이는 디자이너의 의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탓이다. 디올은 오로지 여성들이 행복하길 바랐으니까. 오랜 전쟁으로 지쳐 있던 그녀들이 다시 자신의 아름다움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며 즐길 수 있도록 한 선물과도 같다. 그리고 그렇게 태어난 작품은 위대한 유산으로 남아 아직까지도 수많은 여성과 디자이너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THE PRESENT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바 재킷을 만드는 과정에는 변함이 없다. 정교한 노하우와 복잡한 절차는 무슈 디올 시절과 크게 다르지 않다. 최고 전문가들이 모인 아틀리에에서는 디자인 스튜디오로부터 전달받은 드로잉을 바탕으로 모형 샘플(캔버스)을 제작하고, 최종 의상이 제작될 때까지 최소 3번의 피팅이 이루어지는 동안 최종 원단과 디테일을 함께 결정한다. 원단이 준비되면 커팅 후 바느질 작업을 통해 조립 과정을 거친다. 수트의 경우엔 특히 엄격한 작업이 필요해 바 재킷 한 벌 만드는 데 150시간이 넘게 걸린다고. 지금의 바 재킷이 과거와 다른 점은 따로 있다. 여성성에 대한 접근이다. 꽉 조인 허리가 아름답게만 보이는 시절이 아니라는 거다. 오늘날 여성들은 입기 편한 옷을 선호한다. 결과적으로 패션 역시 다양한 목적에 어울리는 형태로 변하는 중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디올을 이끌고 있는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의 존재는 의미가 남다르다. 하우스 최초의 여성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그려내는 실루엣은 온전히 여성친화적이다. 바 재킷 역시 특유의 라인은 살리되 웨어러블 해졌다. 체크 패턴이나 데님 소재를 적용하기도 하고, 오히려 남성복에 가까운 룩을 선보이기도 한다.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2020 크루즈 컬렉션에서 일어났다. 혼자가 아닌 협업을 통해 디 자인을 완성한 것. 아프리카계 미국인 비주얼 아티스트 미칼린 토머스는 시그너처인 콜라주 작업으로 재킷의 커브 라인을 강조했고, 영국 디자이너 그레이스 웨일스 보너는 크로셰와 카리브식 자수 기술을 혼합한 이국적인 장식을 더했다. 오랜 유산을 역사 속에 묻어두는 것이 아니라 좀 더 무궁무진하게 재해석할 수 있는 방식을 찾아낸 셈이다.
THE STAR
우아함은 기본이다. 자신만의 스타일로 바 재킷을 소화한 셀러브리티들.
THE HISTORY
1 1947년 크리스찬 디올의 첫 오트 쿠튀르 패션쇼. 이 전설적인 컬렉션을 대표하는 바 재킷은 여성의 관능적인 아름다움과 욕망을 우아하게 담아낸 실루엣으로, 등장과 동시에 고요하던 패션계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2 1987년 마크 보앙은 전임자 이브 생로랑이 깨버린 디올의 실루엣을 재정비하며, 다시 우아하고 고상한 고전주의로 돌아갔다. 패션 역사에는 크게 기록되지 못했지만 당시 고객들은 그를 추앙했을 정도. 1961년부터 1989년까지 가장 오랜 시간 하우스를 안정적으로 지켜냈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3 1991년 건축학을 전공한 이탈리아 출신 디자이너 지안프랑코 페레는 17세기 바로크 시대의 호화로움을 사랑했다. 바 재킷의 한층 풍성해진 형태나 주름 같은 요소 역시 그의 취향을 반영한 결과.
1 2009년 존 갈리아노의 디올은 극적이며 거침이 없었다. 럭셔리와 저속함의 경계를 오가는 그의 대담한 재능은 과장되고 호사스러운 바 재킷을 만들어냈다. 우아함을 기대한 기존 고객들은 외면했지만 젊은 여성들은 이에 열광했고, 디올은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2 2013년 2012 F/W 시즌 오트 쿠튀르 컬렉션은 라프 시몬스의 데뷔 무대인 만큼 그가 앞으로 보여줄 하우스의 미래에 대해 선언하는 자리였다. 더없이 순수한 모습으로 재탄생한 바 재킷을 마주하고 디올에도 미니멀리즘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깨달았다. 3 2020년 2017 S/S 시즌,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는 첫 디올 컬렉션에서 ‘We Should All Be Feminists’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하우스가 추구해야 할 새로운 여성상을 제시했다. 아이코닉한 형태는 유지하되 몸이 편한 디자인으로 각기 다른 취향을 지닌 여성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바 재킷처럼 말이다.

사진

이기현

사진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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