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휘의 무비스토리
데뷔를 위해 몸부림치던 긴 시간. 이동휘는 영화 덕분에 그 힘든 날을 견뎠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직접 고른 영화와 캐릭터를 연기하며 영화에 진 빚을 조금씩 갚기 시작한다.
BY 에디터 김용현 | 2020.10.30
가죽 재킷과 데님 팬츠, 안경 모두 본인 소장품, 줄무늬 티셔츠 아크네 스튜디오.
버팔로 66 옥살이를 마치고 나온 남자와 그에게 납치된 여자가 보낸 하룻밤의 이야기.
극장에 가는 건 즐겁다. 좋은 사람과 함께 재미있는 영화를 보며 시간을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오롯이 나만의 것이 되는 두 시간 정도 동안은 현실에선 불가능한 경험을 만끽하기도 한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배우도 극장에 가는 걸 즐긴다. 자신의 연기는 물론 뛰어난 배우의 모습이나 감독의 연출을 보기 위해 극장을 찾는다. 배우 이동휘도 마찬가지다. 어릴 적부터 시간만 나면 극장에 가던 소년은 어느덧 자신의 세계를 단단하게 구축한 배우로 성장했다. 그는 아무리 바빠도 보고 싶은 영화가 생기면 주저하지 않고 극장에 간다고 말한다. “생각이 많은 날에는 영화를 보는 동안 고민을 잊을 수 있어요. 힘이 들 때는 영화를 보며 위로를 받습니다.” 그가 '응답하라 1988'의 동룡을 통해 익숙한 웃음기 가득한 표정이 아닌, 지난달에 개봉한 영화 '부라더'의 마지막 오열 장면이 떠오르는 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기한다.

킷과 팬츠 모두 카루소, 벨벳 슬립온 슈즈 살바토레 페라가모.
그랜드 부다페스트트 호텔 세계 최고의 부호 마담 D의 피살 사건을 독특한 스타일과 이야기로 그린 영화.
영화광 이동휘에게 기억에 남는 영화나 캐릭터를 화보를 통해 재현하자고 제안했다. 처음에 그는 조금 당황했던 거 같다. 좋은 영향을 끼친 영화가 많기도 하겠지만 자신의 욕심만큼 다양한 캐릭터를 한정된 페이지에 풀어내는 게 쉬운 일은 아닐테니까. 그에게서 다섯 편의 영화와 캐릭터가 도착하기까지 꼬박 이틀이 걸렸다. 긴 고민 끝에 고른 건컬트 영화 '버팔로 66'을 만들며 주인공까지 연기한 빈센트 갈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귀여운 로비보이, '저수지의 개들'에서 인상적인 수다 연기를 선보인 스티브 부세미, 침대 머리맡에 놓을 정도로 각별하게 여기는 '그녀' 속 테오도르와 잠깐의 등장만으로 엄청난 존재감을 풍긴 '아비정전'의 양조위. “다섯 편의 영화를 꼽는 건 정말 힘들었어요. 이 중에 딱 하나만 선택하는 건 애초에 불가능하니까 묻지 마세요(웃음). 모두 각별한 의미가 있거든요. 그래도 뭔가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웨스 앤더슨이 만든 영화에 출연하고 싶단 생각을 많이 합니다. 그가 만든 세계관의 일부가 되어 웨스 앤더슨 감독의 스타일 속으로 들어가고 싶어요. 굳이 그가 연출하지 않더라도 한국에서 이런 분위기의 영화를 만든다면 욕심이 날 거 같네요.”
이동휘는 영화 보는 걸 “인생의 유일한 낙”이라고 말한다. 스트레스마저 영화를 통해 푼다. “특별히 선호하는 장르가 있는 건 아니에요. 공포영화를 제외하고 거의 모든 영화를 봅니다. 영화 자체에 대한 사랑이랄까? 무엇보다 영화는 시간과 장소를 먼저 정해야 하는 친구와 달리 제가 보고 싶을 때면 언제든 극장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영화에 쓰는 돈이 아깝지 않다는 그에게 그래도 딱 한 편의 영화를 골라달라고 부탁했다. 순식간에 너무 많은 영화가 떠오른다는 그는 한참동안 대답을 미루다 겨우 입을 연다. “대학생 때 본 '여인의 향기'가 기억나요. 그 영화가 남긴 인상이 큽니다. 명장면으로 잘 알려진 탱고를 추는 신은 슬픈 장면이 아닌데도 펑펑 울었어요. 알 파치노란 대배우의 표현력과 연기로 전하는 감동에 많이 놀랐던 거 같아요.” 어린 시절부터 시작된 영화에 대한 경험은 결국 배우라는 직업으로 이어졌다. “제가 영화를 통해 얻은 걸 다시 사람들에게 돌려주고 싶었어요. 알 파치노처럼 능숙한 배우가 되길 꿈꿨죠.”

블랙 수트와 셔츠 모두 살바토레 페라가모, 타이 드레익스 by 유니페어, 스트레이트 팁 슈즈 로크 by 젠틀커브, 선글라스 본인 소장품.
저수지의 개들보석 도매상을 털기 위해 모인 6명의 도둑들이 서로를 의심하며 벌어지는 사건.
오랫동안 준비를 하고 다소 늦은 나이에 데뷔를 한 그지만 사람들은 배우 이동휘란 이름을 듣고선 알 파치노 대신 코믹한 이미지를 먼저 떠올린다. “괜찮아요. 아쉽지 않습니다. 제가 출연한 작품을 모두 본 사람이라면 그렇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을 테니까. 계속 연기 활동을 하며 풀어야 할 숙제라고 생각해요. 꾸준히 다양한 작품에 출연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배우 이동휘의 모습을 매번 새롭게 보여주면 극복할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금방 될 거라고 생각 안 해요. 50대가 넘어야 해결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이런 과정을 통해 결국 좋은 배우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거 같아요. 그게 제 궁극적인 목표이기도 하고.” 그렇다고 해서 그가 작품보다 캐릭터를 우선으로 생각하는 건 아니다. 이동휘란 배우가 어떻게 보여지는지보다 좋은 대본을 찾고 좋은 작품에 출연하길 바란다. 사실 그의 화려한 애드리브도 모두 대본에 적힌 것이다. 오랫동안 고민을 하고 수없이 연습을 한 다음에 만든 어엿한 대사다.
“애드리브도 상대 배우와 호흡이 맞지 않으면 효과가 없어요. '부라더'의 애드리브는 장유정 감독, 마동석 배우와 함께 석 달정도 준비를 한 끝에 만든 결과물입니다. 영화 '원라인'도 마찬가지고. 준비를 하지 않으면 불안해요. 그래서 작품에 들어가기 전에 감독님이나 동료 배우에게 SOS를 칩니다.” 연습과 노력은 데뷔를 준비하던 때부터 꾸준히 해오던 거지만 작품을 고르는 기준은 얼마 전에 바뀌었다. “예전에는 작품을 고를 때 캐릭터를 먼저 봤습니다. 숲을 보기보단 잘 키울 수 있는 나무를 먼저 찾았지만 단막극 '빨간 선생님' 이후에 모든 게 바뀌었죠. 좋은 작품 안에 좋은 캐릭터가 살고 있단 걸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숲을 보기 시작한 거예요. 재미있는 시나리오는 길이가 어떻든간에 기승전결이 분명하고, 등장하는 인물이 살아 있단 느낌이 듭니다. 거기에 빠지면 역할의 크기는 중요하지 않아요.” 하긴 그가 고른 캐릭터 중 '아비정전'의 양조위는 2분 30초 정도만 출연한다.

점퍼 YMC, 줄무늬 셔츠 드레익스, 치노 팬츠 에디시옹 M.R by 비이커, 가죽 벨트 폴로 랄프로렌, 안경 본인 소장품.
그녀 her 인공지능 OS인 사만다와 사랑에 빠진 연애 편지 대필 작가 테오도르.
이동휘는 인터뷰를 하는 동안 천재성, 재능이란 단어가 나올 때마다 고개를 흔든다. 겸손함의 표현이 아니다. “한 장면을 연기하기 위해서 수없이 연습을 반복해요. 집에서도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연기를 대하는 가치관의 차이다. 그는 팀워크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혼자만 잘해서는 좋은 결과물을 낼 수 없습니다. 작품을 준비할 때나 연기를 할 때는 다른 배우나 스태프와의 호흡을 통해 만들 수 있는 시너지를 먼저 고민하죠. 축구와 비슷해요. 동료 선수와 함께 좋은 패스를 주고받다 보면 골을 넣을 수 있고, 거기에 몰두하면 어느새 큰 점수 차로 승리를 거둘 수 있어요. 같은 팀 선수와 경쟁을 하면 경기를 망칠 가능성이 커요. 축구처럼 드라마나 영화 역시 배우 한 명이 만드는 게 아니잖아요.” 스물아홉 살에 데뷔한 이동휘의 머릿속은 온통 영화로 가득하다. SNS에 올릴 때마다 화제가 되는 그의 스타일도 마찬가지다.
“'버팔로 66'의 빈센트 갈로는 재능이 뛰어난 배우이자 감독인 동시에 패션 아이콘이기도 해요. 이 영화에 푹 빠졌던 때는 빈센트 갈로처럼 입고 그처럼 행동하려고 애썼죠. 지금도 종종 그의 이름을 검색해봐요.” 그는 화보 촬영을 위해 빈센트 갈로와 가장 잘 어울릴 옷을 집에서 직접 챙겨 왔다. “얼마 전, 뉴욕 여행 중 브루클린의 빈티지 숍에서 구입한 가죽 재킷이에요. 옷을 사면서 ‘언젠가 빈센트 갈로처럼 화보를 찍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빨리 이뤄질 줄은 몰랐습니다. 사실 바지도 오늘 함께 입으려고 어제 산 거예요(웃음).” 사진, 미술, 그림, 음악에 대한 관심도 영화와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다. “깊이는 조금 부족할지 몰라도 많이 알고 있는 게 연기할 때 더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다양한 분야에 호기심을 갖고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지내요.” 일종의 연기 수업인 셈이다. 이동휘의 이야기는 결국 영화와 연기로 돌아온다. 최근에 본 영화 중 한 편을 추천해달라는 부탁에도 연기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영화 '내 사랑'에서 에단 호크와 샐리 호킨스가 펼치는 연기가 너무 좋아요. 감정을 과하게 드러내지 않는 절제된 연기로도 보는 사람을 슬픔의 폭풍 속에 가두는 영화입니다. 특히 샐리 호킨스의 연기는 정말 대단해요. 진정한 사랑이 뭔지 고민하게 만들어요.”

수트와 베스트 모두 이스트 하버 서플러스 by 샌프란시스코 마켓, 드레스 셔츠 오리앙 by 샌프란시스코 마켓, 시계 까르띠에, 몽크 스트랩 슈즈 로크 by 젠틀커브, 타이 메멘토 모리.
아비정전 왕가위 감독의 두 번째 영화. 사랑을 믿지 않는 남자의 쓸쓸한 인간관계를 다룬다.
이동휘는 드라마 '자체발광 오피스' 이후로 잠깐 숨 고르기를 하고 있다. 더 좋은 연기를 위해서다. “스스로를 돌아보는 과정을 통해 재충전을 하고 있어요. 제겐 준비가 중요하니까요.” 짧은 휴식이지만 극장 안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좋은 영화를 보고 나면 고민이 많아져요. 걸으면서도 계속 생각을 합니다.” 어느 날, 극장 근처에서 생각에 빠져 하염없이 걷고 있는 그를 보면 모른 척해주자. 영화 속에 푹 빠진 배우 이동휘를 목격했다는 게 더 큰 의미가 있을 테니.
사진
장덕화
화보
스타
인터뷰
응답하라1988
이동휘
동룡
영화화보
부라더
애드리브장인
애드리브천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