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추얼 인플루언서의 탄생
태초에 사이버 가수 아담이 있었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 컴퓨터그래픽 기술은 ‘불쾌한 골짜기’를 뛰어넘어 억대 연봉의 버추얼 인플루언서를 탄생시키고 있다.
BY 에디터 김희성 | 2021.03.24
인스타그램이라는 세계를 돌아다니다 보면 멋지거나 닮고 싶거나 엿보고 싶은 이들을 팔로하게 된다. 남다른 패션 센스와 쿨한 애티튜드에 반해 팔로하게 된 릴 미켈라(@lilmiquela)는 LA에 거주하는 팔로어 300만 명의 인플루언서다. 샤넬, 프라다, 몽클레르 등 유수의 패션 브랜드와 컬래버레이션한 지금 가장 핫한 인플루언서. 모델이자 뮤지션이기도 한 그녀의 첫 번째 싱글 은 음원 차트 8위에 올랐고 스포티파이에서 스트리밍되고 있으며 뮤직비디오 촬영은 물론 패션 매거진의 커버도 여러 번 장식했다. 인스타그램 프로필에는 #BlackLivesMatter 해시태그를 써놓는 등 사회적 이슈에 자신의 소신을 당당하게 밝힐 줄도 안다. 수많은 브랜드가 탐내는 쿨한 10대다.
릴 미켈라가 컴퓨터그래픽 기술로 만든 가상의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의 충격과 배신감이란! 인위적인 느낌을 풍기긴 해도 실제라고 믿을 수밖에 없었던 건 진짜 ‘사람’ 친구들과 어울리고 뮤지션 테야나 테일러와 음반을 내며 의류 브랜드 ‘Club 404’를 론칭하는 등 현실 세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릴 미켈라뿐만 아니다. CES 2021에서 LG전자의 프레스 컨퍼런스에 등장한 주인공은 가상 인플루언서 김래아(@reahkeem). 서울에 거주하는 23세 뮤지션인 그녀는 여느 20대처럼 한강에 놀러 가기도 하고 피크닉, 나이스웨더 같은 핫 플레이스에서 인증샷을 찍길 즐긴다. 핑크 단발머리가 찰떡같이 어울리는 이마(@imma.gram)는 이케아 재팬 모델로 발탁되며 국내에도 널리 알려졌다. 이케아 하라주쿠 전시장에서 3일간 생활하며 가구를 조립하고 요가를 하며 집순이 일상을 보내는 등 여느 또래들과 비슷해 모두들 ‘저 사람 누구냐’고 생각했지만 33만 팔로어, 연봉 7억원을 자랑하는 가상 인플루언서다.

싸이더스스튜디오엑스가 낳은(?) 국내 최초 가상 인플루언서 오로지(@rozy.gram)는 올해 설을 맞아 한복을 입은 셀피를 업로드하며 다음과 같은 포스팅을 남겼다. ‘떡국을 아무리 먹어도 forever young~! 작년에도 올해도 스물두 살’. 로지의 말처럼 가상 인플루언서는 늙지도 죽지도 않는다. 코로나19에 걸릴 위험도 없고 아프지도 피곤하지도 않다. 음주운전이나 마약으로 물의를 일으킬 염려도 없다. 소속사에서 아무리 철저하게 관리해도 막지 못하는 순간적인 일탈 따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광고주에 위약금을 물거나 갑작스레 활동을 중단해야 하는 일도 없을 테고. 어디 그뿐인가. 여러 곳에 출몰해 스케줄을 소화할 수도 있다. 수입도 어마어마하다.
릴 미켈라의 인스타그램 포스팅 단가는 1회당 약 8500달러(939만원). 전자상거래 기업 온바이에 따르면 연수익은 약 132억원으로 추정된다. 특히 요즘 같은 코로나 시대에 이들의 장점은 더욱 부각된다. 미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코로나19로 인간의 외부 활동은 위축됐지만, 가상 세계 인간들은 활동 영역이 넓어지고 있다’고 한다. 전 세계 어디서든 활동할 수 있는 버추얼 인플루언서는 언뜻 보면 인간의 단점을 뛰어넘은 새로운 인류처럼 보인다. 비용 절감은 물론이고 완벽하게 컨트롤 가능해 수많은 기업에서도 적극적으로 마케팅에 활용하고 있다. 딥페이크 기술로 각종 범죄나 포르노에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성폭력처벌법 제14조 2항에 따르면 ‘사람의 얼굴, 신체 또는 음성을 대상으로 한 딥페이크 촬영물’만 처벌 대상이 된다. 버추얼 인플루언서는 사람으로 인정되지 않아 범죄에 노출돼도 보호받을 수 있는 규정이 없다. 제작사가 폐기를 결정할 경우, 이들의 세계관은 한순간에 사라진다. ‘불쾌한 골짜기’를 넘어 어마어마한 돈을 벌어들이고 있는 버추얼 인플루언서는 인간 인플루언서와 경쟁하게 될까? 사이버 가수 아담처럼 전설로 남게 될까?
버추얼 인플루언서의 인기가 얼마나 유효할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우리가 스타를 좋아하는 이유가 단지 예쁘고 멋지고 완벽해서는 아니기 때문이다. 최고의 자리에서 조금씩 내려오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이효리의 라이프에 열광하는 것도, 한결같이 무표정한 셀카만 찍는 지진희를 더욱 애정하는 것도 오히려 이들이 완벽하지 않아서다. 과거의 실패를 딛고 일어난 스타의 이야기나 나날이 연기가 발전하는 배우들의 성장담이 버추얼 인플루언서에게는 없다. 완벽한 그들의 세상을 응원하는 사람들의 유효기간은 과연 얼마나 될까?
일러스트
노여진
사진제공
크리에이터
모델
이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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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G
릴미켈라
김래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