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기주, 위하준, 김혜윤의 미드나이트
<악마를 보았다> <마녀> 제작진이 들리지 않아 더욱 위태로운 공포심을 전달한다. 본격 음소거 추격 스릴러 영화 <미드나이트>의 세 배우 진기주, 위하준, 김혜윤이 만든 고요하고도 극적인 세계.
BY 에디터 조영아 | 2021.06.23
재킷과 베스트 모두 포츠 1961, 이어 커프 넘버링.

오버올 막시제이, 검지에 착용한 링 락킹에이지, 소지에 착용한 링 골든듀, 워커 8 by 육스.

셔츠와 스커트 모두 핑크공, 오른쪽 귀에 착용한 이어 커프와 이어링, 왼쪽 귀 아래에 착용한 이어 커프 모두 넘버링, 왼쪽 귀 위에 착용한 이어 커프와 검지에 착용한 링 모두 아프로즈×아몬즈, 뮬 렉켄.
진기주의 집착
진기주는 어떤 것을 시작하든 진지하게 파고드는 성향이 있다. 인터뷰어에서 인터뷰이로 입장이 바뀐 지금에도 그 습관은 남아 있어, 한마디 질문에 백마디의 답변이 쏟아진다. <미드나이트>의 청각장애인 경미 역을 위해 등록한 수어학원의 선생님은, 그의 태도를 보고 수어자격증도 딸 수 있겠다며 노력과 습득력에 감탄했다. 무엇이든 허투루 하지 않는 진기주는 언젠가 아직 완성되지 않은 젊은이들의 인생을 대변하는 인물을 연기해보고 싶다고 말한다. 그 첫 번째 관문으로, 피하지 말고 부딪쳐서 이겨내는 경미를 선택했다.
청각장애인 경미의 고군분투 <미드나이트>에서 극의 중심을 이끌어가는 경미는 청각장애인이라는 극단의 요소가 있다. 청각을 제외한 감각만으로 살아야 하고 범인으로부터 도망쳐야 한다. 내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촬영이 시작되기 전까지 상상만으로는 너무 막연했다. 어느 날 감독님께서 이어플러그를 한 채로 잠을 자고 일어나 하루를 시작해보라고 권유하셨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내 숨소리밖에 느껴지지 않는 멍멍함이 도움이 될 것 같았다.
테스트 촬영을 하는 곳은 복잡한 골목의 인적 드문 주택가였다. 곧 철거 예정인 건물들이 한 블록 건너에 있었다. 어둠 속으로 이어플러그를 꽂고 걸어가자 소리가 없어지면서 자꾸만 고개를 돌려 주위를 확인하게 된다. 어디를 가더라도 일상의 공포가 느껴졌다.
달리기 스승, <아이돌 스타 육상선수권대회> <미드나이트>에서의 경미는 ‘달려라 하니’도 아닌데 끊임없이 달린다. 감독님과 첫 만남에서 ‘잘 달려줬으면 좋겠다’는 말 한마디에, 초등학생 때부터 달리기만 하면 겅중겅중 뛰는 모양새였던 나는, 화면에 잘 나올 수 있도록 달리는 폼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잘 달리는 아이돌들의 폼은 일단 빨라 보이고 멋있어서 <아이돌 스타 육상선수권대회> 영상을 참고로 죽기 살기로 뛰었다.

진기주 셔츠 분더캄머, 오른쪽 귀의 이어 커프 마마카사르, 왼쪽 귀의 이어 커프 허라디×아몬즈, 네크리스 타니 by 미네타니, 뱅글 쉐레. 위하준 톱 SSY, 팬츠 송지오, 벨트 아더에러.
손의 언어를 통한 배움 수어를 교육하는 전문 교육원에서 배우기 시작했다. 수업 시작과 동시에 일단 목소리를 잠그는 것이 암묵적 룰이다. 얌전히 수어만 배우다가 농인들의 일화를 들으면서 무심하게 생각해보지 않았던 많은 것들에 대해 깨닫고 배우게 됐다. 우리가 흔히 생활 소음으로 여기는 것들도 농인들에게는 아예 정보가 없다. 예를 들어 화려한 네온사인은 반짝반짝하기 때문에 농인 입장에서는 소리가 있을 거라는 상상을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나둘씩, 소리와 수어의 관계에 대해서 알아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시나리오에 있는 대사만 배울 예정이었다. 영화 촬영 중에 애드리브도 넣을 수 있다는 생각에 다른 단어들과 신조어까지 배우게 됐다. 경미는 청인의 입술을 읽는 구화도 가능한 캐릭터라 그동안은 늘 눈을 보고 연기를 했는데 <미드나이트> 촬영장에서는 입술을 봐야 했다. 그게 습관이 돼서 한동안 상대방의 입술을 보면서 연기하게 되더라(웃음).
영광스러운 부상 살인마 도식 역할의 하준 씨와 함께 만들어가야 하는 그림이 많아, 서로 마음으로 서포트하고 배려하는 게 일상이었다. 나는 맨발로 뛰는 설정이어서 그 충격이 무릎과 허벅지를 타고 올라왔고, 하준 씨는 쿠션이 높지 않은 신발을 신고 나를 쫓아오기 때문에 추격신 촬영 후엔 어김없이 물리치료실에서 사이좋게 빨간 불(적외선 치료)을 쬔다(웃음). 촬영장에서는 스포츠 테이프를 붙이는 소리와 파스 냄새가 끊이질 않았다.
디테일이 살아 있는 서스펜스 대본을 읽고 있으면 감독님이 원하는 사운드와 컷이 눈앞에 그려질 정도였다. 장면마다 오마주하는 신들을 집어넣고, 편집하는 과정에서는 속도감을 조금 더 선택했다는 것까지 느껴졌다.
살 떨렸던 도끼 신 내 뒤에서 도식(위하준 분)이 도끼로 내리치는 장면이 있다. 나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역할이라 아슬아슬하게 피하는 합을 맞추는 게 관건이었다. ‘누나는 너만 믿는다’를 주문처럼 외면서 했던 것 같다.
진기주의 미드나이트 뒹굴뒹굴하면서 TV를 본다. 손에 착 감기는 리모컨을 누르는 맛이 있다.

수트 핑크공, 네트 소재 톱 휴고 보스.
위하준의 건강한 메소드
훈훈한 이미지의 위하준이 악역을 한다는 것은 의외의 스트레스다. 운동과 격투기를 좋아하는 그는,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어제까지만 해도 진지하게 체육관을 알아봤을 정도지만, 다칠까 봐 몸을 사린다. 그에게 <미드나이트>는 몸이 좀 고생스러운 영화지만, 배우로서 한 번쯤 욕심나는 캐릭터인 도식은 도전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
동방신기의 ‘Rising Sun’ 춤을 추면서 퍼포먼스형 아이돌을 꿈꿨던 중학생 시절, 댄스 동아리를 만들 정도로 춤을 좋아했던 그가 연기에 빠진 계기는 2009년, 배우 장영남의 연극 <너무 놀라지 마라>를 본 후다. 연기는 사람을 반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며 다양한 색의 캐릭터를 경험하고 싶은 위하준이 선택한, 도식의 얼굴이 궁금하다.
사이코패스 도식 스릴러 장르의 작품에는 다양한 스타일의 살인마들이 나온다. 도식은 살인 놀이를 더 완벽하게 하기 위해 두 얼굴로 사람들을 기만한다. 항상 본인에게 유리한 지점을 만든다. 세상 그 누구보다 우위를 선점했다고 생각하는 영리한 살인마다.
내 안의 광기 촬영 전부터 감독님과 얘기를 주고받으며 도식이라는 인물에 대해 탐구했다. 잘하고 싶다는 생각에 도식처럼 행동하고 생각하면서 살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날카로워졌다. 눈이라도 잠깐 마주치면 이상하게 쳐다보고 가시는 분들이 꽤 있었다. 순간적으로 나도 모르게 삼백안으로 상대방을 예의 주시하는 거다. 역할에 몰두하다 보니 그런 습관이 들었던 것 같다.
살인마에 몰입하는 과정 평소 예민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도 중요했다. 연쇄살인범들을 프로파일링한 <마인드헌터>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을 참고로 살인범들의 감정을 이해하고자 했고, 그들은 왜 그렇게 됐으며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 등을 분석했다. 매일 자기 전까지 스릴러물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물론, 그런 영상을 계속 보면 악몽을 꿔 쉽게 피곤해진다.
안 그래도 평소 친구들로부터 ‘너 좀 차갑네’라는 이야기를 듣는데 도식이를 준비할 때는 더 그랬던 것 같다. 살도 빠져서, 체력적으로 힘들고 정신적으로도 다운된 모습에 한동안 친구들을 멀리했다(웃음). 졸려도 자지 않고 골목길을 어슬렁거리는 모습은 내가 봐도 섬뜩하다.

재킷 오프화이트, 이어링 다미아니.
미안 미안해 사실, 스릴러라는 장르 자체가 관객의 심장을 얼마나 쫄깃하게 옥죄고 푸는지가 관건이지 않나. 경미와 붙는 신에서는 ‘독 안에 든 쥐’라고 생각하며, 몇 번이고 리허설을 통해 합을 맞췄다. 머리채를 잡는 신이 있었는데, 머리 가죽이 벗겨질 정도로 고통스러웠다는 얘기를 듣고 너무 미안했다. 상대 배우가 다칠까 봐 조심했지만, 이런 신은 제대로 한 번에 가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일부러 강도를 좀 더 높이게 되더라. 액션 스쿨을 다니면서 합을 많이 맞춰봤지만, 라이브한 액션이라 현장감이 생명이어서 리얼함을 추구할 수밖에 없던 나를 용서하길….
추격자 달리기 포즈까지 연습한 진기주 씨에게 정말 미안하지만, 내가 원래 진짜 잘하는 운동 종목이 달리기다. 하하! 처음에 너무 금방 잡힐 것 같아서 어느 정도 조절을 했는데도 신이 반복되니까 기주 씨가 힘들어했다. 그런데, 테이크가 길어짐에 따라 무릎이 점점 아파오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그다음부터는 최선을 다해 뛰어도 자동적으로 속도가 줄어드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됐다(웃음). <미드나이트>의 관전 포인트는 속도감, 추격신 등이라 감독님이 신경 써서 연출했던 기억이 난다. 우린 그저 열심히 뛰어다니기만 했다.
<맨 인 더 다크> 액션이 많은 스릴러 장르를 좋아해서 인상 깊게 본 영화다. 눈 먼 노인의 집에 들어간 빈집 털이범들과 이를 알아챈 노인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암전 속에서 엎치락뒤치락한다. 숨 막히는 긴장감이 스티브 랭의 완벽한 연기와 함께 극 전체를 감싼다.
위하준의 공포 발연기까지는 괜찮은데, 자료로 남아 있는 것이 제일 공포스럽다(웃음).

진기주 톱 해브레스 for 하고, 스커트 드미어, 위쪽 이어 커프와 링 아프로즈×아몬즈, 중간 이어 커프 마마카사르, 후프 이어링 허라디×아몬즈, 벨트 알라이아 by 10꼬르소꼬모. 김혜윤 드레스와 안에 입은 톱 모두 리유니, 이어링 타티아나, 오른손 검지에 착용한 링 구찌, 왼손 약지에 착용한 링 이든.
김혜윤의 쫄깃한 텐션
96년생인 김혜윤은 2013년 <삼생이>를 통해 배우로 데뷔 후, 50여 편의 작품에 출연했다. 가리지 않고 배역을 맡으며 단역 시절에 쌓은 현장 경험치를 통해 과 <어쩌다 발견한 하루>에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더욱 깊게 다양한 방송 분야를 배울 수 있다는 일념으로 대학에 들어갔지만 역시 숨통이 트이는 것은 연기였다.
예능 프로그램과 다큐멘터리, 라디오 등에서의 활약도 어릴 때부터 주체할 수 없었던 기운에서 비롯됐다. TV 속에 들어가 있는 것 같아 즐거워서 연기를 시작했다는 그는 영화 <미드나이트>에서 사이코패스 살인마에게 납치된 소정 역을 맡았다. 다양한 캐릭터를 경험한 김혜윤에게 소정은 또 하나의 새로운 부캐릭터다. 배우로서 가장 빛나는 자신만의 무기로 ‘웃음’을 꼽은 그가, 웃음을 제거한 채 맞닥뜨릴 공포는 어떻게 표현될까.
단호하고 꿋꿋한 캐릭터 ‘소정’ 유도와 복싱으로 다져진 보안업체 팀장 종탁(박훈)의 동생 역이다. 하늘 아래 둘만 의지하는 의좋은 남매다. 듬직하게 잡아주는 종탁(박훈 분)과의 케미를 기대해도 좋다. 도식에게 끌려간 후에도 굴하지 않고 ‘우리 오빠한테 걸리면 너 죽어’라는 말을 내뱉을 정도로 용감한 성격이다.
김혜윤의 큰 그림 <미드나이트>는 지금까지 해왔던 작품 중에서도 또 다른 긴장감을 준다. 기대와 설렘이 컸던 건, 대학교 졸업 작품에서 내가 직접 쓰고 연출한 시나리오가 스릴러였기 때문이다. ‘택배를 가장한 범죄’에 대한 이야기로 생활 공포를 살려 연출했다. 영화 속 캐릭터가 가진 장치를 좋아해서 등장인물을 ‘휘파람을 부는 범인’으로 설정했을 만큼 스릴러에 대해 진심이었다. <숨바꼭질> <살인자의 기억법> 등의 스릴러 영화에 출연했던 것은 <미드나이트>를 하기 위한 큰 그림이 아니었나 생각했다(웃음).

블랙 드레스 레지나표.
리얼함의 경계선 소정과 경미의 첫 만남에, 도식이 다가오는 신이 있다. 대본을 여러 번 보고 리허설 때 액션의 합을 맞췄지만 쉽지 않겠다고 느꼈다. 막상 슛이 들어가니까 뿌리치고 도망치면서 오로지 살아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체력 소모가 엄청나더라. 아스팔트처럼 매끈한 도로가 아닌, 울퉁불퉁한 돌길 위에서 안전장치를 하고 촬영했지만 현장에는 언제나 긴장의 무게만큼 파스 냄새가 맴돌았다.
소정이를 위한 준비 스릴러 장르는 심장이 쫄깃해지는 맛이 포인트다. 어떤 마음으로 스릴러라는 장르를 대해야 하는지가 관건이다. 긴박함과 안타까움이 교차하는 순간도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오빠와의 관계성에 중점을 뒀다. 남매의 각별함과 애틋함이 강조되어야 사건이 벌어졌을 때 오빠도 나를 위해 뛰어다니는 이유가 생길 테니까. 될수록 극적인 요소가 부각되어야 한다.
정적인 연기의 고충 박훈 씨는 나를 찾아야 하니까 밖에서 계속 뛴다. 상대적으로 나는 묶여서 계속 누워 있으니 한여름 밤 촬영장에 손님으로 온 모기 떼들과 사투를 벌인다. 움직이는 연기는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시각적인 효과가 있어 감정 조절이 좀 더 빨리 되지만, 묶여 있으니 표현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더 난리 치게 되더라. 답답함이 참 힘들었다.
진기주와의 인연 드라마 <이리와 안아줘>에서 단역으로 출연했는데, 진기주 씨의 멋진 기억력이 날 소환시켰다. 첫 대본 리딩 때 <어쩌다 발견한 하루> 촬영 스케줄로 불참해 아쉬웠지만, 본 촬영에서 끈끈한 합을 보여준 것 같다.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지 말자 나의 좌우명이다. 어떤 일을 하건 뒤돌아보게 되고, 후회할 때도 있지만, 후회가 꼭 나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후회가 있기에 발전이 있는 거다. 후회로 지칠 때도 있지만, 지치면 잠시 쉬어 가면 된다. 힘들면 조금만 나를 놔버려도 된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재충전된 에너지로 다시 또 뒤돌아보고 소중함을 찾는 과정을 계속하기에, 지금의 김혜윤이 이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닐까.
사진
주용균
인터뷰
임준연
스타일리스트
김고은보미(진기주) 김정미(위하준) 노주희(김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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