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타당한 최다니엘

최다니엘은 이상이나 환상보다는 늘 현실과 실제에 더 마음을 기울인다. 연기 역시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는, 개연성 있는 지점에 관심이 많다. 보편성을 사랑하는 그는 보기에 편안한 배우가 되고 싶다고 했다.
BY 에디터 장혜정 | 2021.06.28
셔츠와 팬츠 모두 펜디.
대중이 스타에게 빠지는 이유는 다양하다. 조각 같은 외모에 반했다거나, 거듭된 연기 변신이 인상적이었다거나, 긴 시간 유지한 성실한 태도가 그 이유가 되기도 한다. 숱한 이유가 있을 테지만 최다니엘의 팬 중엔 현실적인 연기를 꼽는 경우가 많다. 방영된 지 1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회자되는 <지붕 뚫고 하이킥>의 ‘지훈’을 떠올려보면 이해가 쉽다. 훤칠하고 잘생긴 레지던트 의사지만 타인에겐 무관심하다 못해 예의나 매너도 생략한다. 소개팅 자리에 나가 상대의 황달 증상을 지적하거나 소변 색을 묻는 지훈은 현실과 동떨어진 인물이지만 이상하게 최다니엘의 연기엔 공감이 갔다. 억지스럽지 않아 좋았다. 저런 유형의 사람이 어딘가에는 있어 주변 사람들로부터 이해나 애정을 받으며 살아갈 것 같았다. 대본의 힘일까 싶은데 드라마 <동안미녀>를 연출한 이진서 PD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그의 장점을 짚은 적이 있었다. 리얼한 연기, 실제 같은 연기, 연기하는 것 같지 않은 연기를 해 로맨틱 코미디를 현실에서 꿈꿀 수 있는 판타지로 만들어냈다는 찬사였다. 이번 인터뷰를 진행할 무렵, 그는 촬영 중인 JTBC 드라마 <날아올라라 나비>의 ‘광수’로 살아가는 중이었다. 미용실을 중심으로 한 작품인 만큼, 리얼리티를 위해 손수 커트 기술을 배웠다며 씨익 웃는다. 연두를 지나 점차 초록빛으로 물들어가던 나무 사이에서 그는 자주 웃었다.
재킷과 팬츠 모두 모스.
오늘 화보 촬영을 마친 소감은. 거미가 무서웠다(웃음). 아까 살짝 꽃을 모아 쥐는 듯한 포즈가 있었는데, 많은 꽃 중에 내가 하필 거미가 들어 있던 봉오리를 골랐더라. 순간 너무 놀랐지만 호들갑을 떨면 촬영에 방해가 될 것 같아서 꾹 참았다. 한 공간에 있었으면서도 전혀 몰랐다. 역시 배우는 다르다. 현재 촬영 중인 <날아올라라 나비>는 어떤 작품일까? 헤어숍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그곳을 채우는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다. 이제 막 사회에 나온 20대 스태프들이나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30대 디자이너 등이 등장하는데 인생의 시기마다 오는 각자의 고민들, 그 속에서 느끼는 자기에 대한 애정과 미움, 앞날에 대한 희망이나 걱정 같은 복합적인 감정들이 섬세하게 그려진다. 드라마가 꼬집어 인생의 답을 줄 순 없지만 다각도로 생각해볼 여지는 준다.
리넨 수트와 니트 피케 셔츠 모두 토즈, 스트랩 샌들 렉켄.
맞다. 시기에 맞는 고민이라는 게 있는지, 친구들과 비슷비슷한 고민을 하며 성장한 것 같다. 20대의 최다니엘은 어떤 고민을 했을까. 배우로서 방향이나 갈피를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 생각이 많았다. 예를 들어 <지붕 뚫고 하이킥> 이후 갑자기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아졌는데 그렇게 스타가 되길 기다렸으면서도 막상 인기를 얻고 보니 힘든 면이 있었다. 막차가 끊기면 첫차가 다닐 때까지 지하철역에서 잠도 자고, 포장마차에서 친구들과 2500원 하는 잔치국수를 먹으며 즐거웠던 기억이 선한데 그런 삶에서 자꾸 멀어지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힘들었다. 쉼 없이 계속해서 다음 작품에 들어갔기 때문에 이게 과연 맞는 길인가? 하는 의문은 있었지만 뭔가를 깊이 고민할 시간도 별로 없었다. 우울한 채로 잠들었다가 일어나 헤어 메이크업을 받고 또 현장에 가서 연기를 하는 날들의 반복이었지.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게 위기였더라. 내가 그런 경험을 하고 보니 갑자기 확 뜬 스타들을 보면 저 친구도 지금 행복한 한편 두려운 마음이 들겠구나 싶다.
니트 톱 겐조, 쇼츠 준지.
지금은 무척 편안해 보인다. 어떻게 위기를 극복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일에서 생긴 고민을 일로 풀었다. 그만둘까 하는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닌데 연기를 접는다고 생각하니 자신이 없었다. 어떤 일을 새로 시작하든 이 정도의 어려움은 느낄 텐데 지금 나와의 싸움에서 한번 이겨봐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래서 주어진 일을 묵묵히 했다. 그 과정에서 일에 대한 책임감이 결국 내 자존심이나 자존감을 지켜준다는 걸 알았다. 못 참고 일을 그만뒀다면 아마 어두운 감정에서 쉽게 빠져나올 수 없었을 거다. 배우에게 고정적인 이미지가 득이 되기도, 실이 되기도 한다. 최다니엘은 젠틀하고 스마트한 이미지가 강한데 이 점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 어릴 때 정말 즐겁게 서커스를 구경했던 기억이 난다. 외줄을 잘 타는 사람, 인간 탑 쌓기를 잘하는 사람, 저글링을 잘하는 사람 등 개성이나 장기가 모두 다른 사람들이 모여 하나의 공연을 완성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연기도 비슷하지 않을까. 카리스마 있는 연기가 잘 어울리는 배우가 있는가 하면 부드럽고 젠틀한 모습이 어울리는 배우가 따로 있을지 모른다. 그게 꼭 나쁜 것만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점에서 최다니엘로부터 비롯되는 특정 이미지가 있다는 건 오히려 반가운 일이다. 그만큼 선명하게 나를 기억할 키워드가 있다는 얘기처럼 들려서 기쁘다. 매 작품 내가 파격적으로 바뀌길 기대하는 분도 있겠지만, 애초에 느꼈던 인상이 그대로 유지되길 기대하는 쪽도 분명 있을 거라고 본다. 나 좋자고 연기를 하는 것만은 아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다. 부드럽고 스마트한 이미지를 기본 바탕에 두되, 작품 속에서 그때그때의 캐릭터에 맞게 모습을 바꾸는 일도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본다. 그게 배우의 기량 아닐까.
코트와 조거 팬츠 모두 벨루티, 니트 톱 기뮤어, 플립플랍 겐조.
그런 유연한 사고방식 때문일까. 카메오나 게스트 출연을 흔쾌히 수락하는 배우로도 유명하다. 큰 배역 작은 배역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전체 완성도를 100%라고 본다면 내가 맡은 1%에 따라 완성, 미완성이 갈리기도 한다는 믿음이 있다. 한편 나를 지키기 위해 꼭 주연을 고집하지 않는 면도 있다. 좀 더 젊고 회복력이 좋을 때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는 삶을 겪으며 마음의 근육을 키운다면 훨씬 더 편안하고 만족스러운 인생을 살 수 있다. 오래전부터 꼭 번쩍번쩍하지 않아도 좋다는 생각을 해왔다. 확실히 현실을 추구하는 사람 같다. 인터뷰마다 일관되게 현실적인 것, 보편적인 것들을 좋아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맞다. 확실히 평범하고 소시민적인 얘기에 관심이 간다. 열심히 출퇴근하는 직장인, 한 집안의 가장, 누군가의 형 역시 개개인의 인생을 놓고 보면 모두 인생 드라마의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예사로만 보이지 않는다. 예전부터 주변 사람들의 행동이나 말투를 관찰하면서 심리나 행동의 이유를 상상해보는 일을 즐겼는데, 학창 시절 여러 유형의 친구들을 골고루 사귈 수 있었던 환경이 배우 인생에서 큰 도움이 된다. 한 반에도 여러 성향의 아이들이 있지 않나. 장난기 많은 친구 옆자리에 늘 과묵한 친구가 앉아 있기도 하고 공부에 영 관심이 없는 친구 옆에 쉬는 시간에도 책 펴놓고 공부하는 친구가 있듯 다양한 아이들이 모여 있는데, 나는 그 모든 친구들과 어울리는 학생이었다. 점심은 얘랑 먹고 축구는 쟤랑 하고 수다는 A와 떨고 놀러는 B와 가는 그런 학생이라면 설명이 될까. 이 사람 저 사람의 성향을 다양하게 접하며 맞춰가다 보니 자연히 사람에 대한 이해가 조금씩 쌓였다. 그런 과정을 익숙하게 겪으면서 현실적인 것, 보편적인 것들을 편하게 느꼈다. 요즘엔 코로나19 때문에 기회가 별로 없지만 예전엔 도서관에서 책도 읽고 동네 놀이터에서 아이들도 관찰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기회가 된다면 아주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공감되게 연기해보고 싶다.
셔츠 펜디.
또래에 비해 성숙한 학생이었을 것 같다. 그래서 데뷔 때부터 노안 소리를 들었을까?(웃음). 어릴 땐 어른스러워 보인다는 말이 듣기 좋았다. 그 또래에게는 흔치 않은 장점을 가졌다는 얘기처럼 들려서 좋았는데 지금은 젊어 보인다는 소리가 더 반갑다. 사람은 늘 이렇게 갖지 못한 것들을 갈구하며 산다. 쓸데없이 너무 진지해지는 경향이 있어서 의식적으로 게임, 애니메이션, 농담 같은 즐거움을 찾기도 한다. 사소해 보여도 그런 노력이 감정이나 생각의 밸런스를 잡아주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밸런스를 의식하며 산다는 말이 와닿는다. 나를 지키기 위해 기울이는 또 다른 노력이 있을까? 함께 촬영 중인 정재성 선배가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살다 보면 우여곡절이 있을 텐데, 좋은 루틴을 만들어 꼭 붙들고 있으면 그 어려운 시절이 또 지나간다고. 거창할 필요도 없다. 일어나 샤워부터 하기, 아침은 꼭 챙겨 먹기처럼 사소하지만 꼭 지킬 것들을 만들어두면 나를 붙잡고 사는 데 도움이 된다는 말인데 일리가 있다. 나도 요즘은 끼니때마다 가볍게라도 영양분을 섭취하는 루틴을 실천하고 있다.
피케 셔츠 산드로 옴므, 데님 팬츠 겐조, 슬라이드 육스.
이루고 싶은 꿈으로 ‘행복한 사람’을 꼽은 적이 있다. 행복의 기준은 저마다 다르다. 나는 지금 나만의 기준이 뭔지 계속 찾는 중이고. 확실한 건 시행착오를 반복하며 예전보다는 많이 편안해졌다. 과거엔 왜 좀 더 잘하지 못했는지 자책하거나 그때 이렇게 했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후회로 스스로를 괴롭혔는데 지금은 나를 좀 더 봐주고 이해할 여유가 생겼다. 이번 드라마의 주제가 ‘자기애’이기도 한데 어떻게 하면 나를 더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 수 있을지 계속 고민하겠다.

사진

오재광

장소협조

파주 벽초지 수목원

스타일리스트

정혜진 김선영(msgseoul)

메이크업

태인(vin)

헤어

김혜연(vin)

어시스턴트

김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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