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은수가 하고 싶은 말
햇살 좋은 여름날, 배우 서은수를 만났다. 그녀는 처음처럼, 언제나 최선을 다하고 싶다는 얘기를 정성 들여 했다.
BY 에디터 송혜민 | 2021.07.27
리넨 셔츠 코스.
막연한 꿈을 꾸던 고등학생은 어느새 어엿한 필모그래피를 가진 배우가 됐다. TV 드라마 데뷔작 <질투의 화신>에서 중국 연변 출신의 리홍단을, <낭만닥터 김사부>에서는 뜻밖의 능력을 보여주는 우연화를, 인생작이라 할 수 있는 <황금빛 내 인생>에선 주인공의 이란성쌍둥이 동생 서지수로 모습을 바꿨다. 2019년엔 <리갈하이>, 2020년엔 <미씽: 그들이 있었다>에 출연하며 배우로서 입지를 다져왔다.
단역부터 조연, 주연을 맡기까지 아주 긴 시간이 걸린 것은 아니지만 나름의 고군분투는 분명 있었으리라. 시원시원한 발걸음으로 스튜디오에 들어선 서은수는 아직도 화면 속의 자신이 어색하다며 민망해했다. 그런 그를 다독이기라도 하듯 기분 좋은 햇살이 창으로 쏟아졌다. 어색함은 잠시,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며 긴장을 풀어낸 그는 이윽고 춤추듯, 연기하듯 자유롭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서은수는 차기작으로 영화 <킹메이커: 선거판의 여우> 작업을 마치고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1970년대, 대통령을 꿈꾸는 정치인과 그를 도와 선거 전략을 짜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는 코로나19로 개봉이 미뤄져 아쉽다면서도 2년이나 지난 현장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영화 <불한당>을 정말 재미있게 봤어요. 변성현 감독님의 작품이라는 이유만으로도 꼭 참여하고 싶었어요. 정치, 선거라는 키워드만 보면 무겁고 심각한 이야기일 것 같잖아요. 그런데 오히려 유쾌하고, 따뜻한 영화라서 마음이 더 움직였죠.” 설경구, 이선균, 유재명, 조우진, 박인환, 배종옥… 이름만 들어도 우러러볼 대선배들 사이에 있는 것만으로도 그에겐 성장의 기회였을 테다.

케이프 원피스 레하,
스트랩 샌들 렉켄.
영화에서 서은수가 맡은 ‘수연’이라는 인물은 선거 캠프의 막내로, 남성이 대다수인 선거판에서 당찬 존재감을 드러낸다. “정치는 남성들의 영역이었던 시대잖아요. 그런 상황에 목소리를 낼 줄 아는 수연이 매력적이었어요. 그래서 작품 속에서 중요한 위치에 서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했고요.” 그에겐 여러 가지 면에서 이번 영화가 새로운 시도이자 도전이었다.
시대극도, 고향 사투리로 연기하는 것도 난생처음이다. 원래는 특별한 설정이 없던 캐릭터였는데, 사투리를 쓰겠노라 변성현 감독에게 먼저 제안했다. 극 중 다른 지역의 사투리를 쓰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여기에서 힌트를 얻었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조화를 표현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제가 부산 출신이기도 하고, 마침 부산 사투리를 쓰는 역할은 없었거든요.” 설정이 바뀐 탓에 대본 수정도 상당 부분 도맡아 해야 했지만 수연과의 접점이 많은 덕에 연기는 더 즐겁게 할 수 있었다.
지난 작품 가운데 자신과 닮은 캐릭터는 거의 없었다. 그래서 연기가 늘 어렵다. 실제의 서은수와는 너무 다른 선택을 하는 인물을 이해하기 위해 영화, 유튜브 가리지 않고 찾아보며 공부해왔다. “예전에는 어떻게든 닮은 점을 찾으려 했어요. 그게 맞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앞으로는 아예 다른 인물이라도 도전해보고 싶어요. 마음의 준비도 됐고요.” 그러면서도 이제는 완전히 의외의 캐릭터도 연기할 용기가 생겼다고 덧붙인다.

니트 베스트
더오픈프로젝트.
만 5년째 부지런히 영화, 드라마 현장을 누볐기에 꺼낼 수 있는 자신감이다. “예전엔 현장에서 누군가를 일일이 기억할 겨를조차 없었어요. 특히 첫 작품 땐 제작진들 얼굴도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긴장을 많이 했어요. 지금은 한 분 한 분 성함을 외울 수 있을 정도의 여유는 생겼죠. 그렇다고 베테랑이라곤 할 수 없지만, 주연을 맡기 시작하면서 책임감에 대해서도 많이 배워요. 제가 어려움을 겪을 때 영웅처럼 나타나 구해주셨던 선배들도 계셨고요.”
배우로서 서은수는 의젓하게 성장 중이다. 그렇다면 그의 일상은 어떨까. 그의 내면엔 어떤 즐거움이 자리하고 있을까. 평소엔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지, 취미는 있는지 질문을 쏟아냈다. 요즘 가장 몰두하고 있는 건 치킨이라며 목소리를 높인다. “촬영을 할 땐 바쁘기도 하고, 식단 관리도 해야 하니까 저만의 ‘먹킷리스트’를 만들어놔요. 그리고 작품이 다 끝나면 리스트를 하나씩 지워가면서 먹어치우죠. 현재 최대 관심사는 치킨이에요. 오늘도 집에 가면 양념치킨을 시켜 먹을 거예요.” 작품 이야기를 할 때와는 또 다른 눈빛으로 이야기를 잇는다.

최근엔 시간이 날 때마다 화방에 가서 그림을 그린다. 평소 머릿속에 있던 색깔이나 모양, 식물들을 캔버스에 옮긴다. 가만히 한자리에 앉아 집중하는 시간이 좋다. 그림 그리는 것은 새로운 영감을 얻기 위한 일이라기보단 오히려 비우고자 하는 행위에 가깝다. 일상 속 그리운 존재도 있다. 바로 여행이다. 작품 하나를 끝낼 때마다 멀리 해외로 떠나는 것이 스스로를 위한 선물이었다. 가장 좋아하는 도시는 파리. 똑같은 코스로 두 번이나 여행했다. “비를 맞아도 행복한 곳이에요. 파리는 공기마저 특별하게 느껴지고, 무엇보다 사랑이 넘치는 도시잖아요. 여기저기 연인들이 부둥켜안고 있고. 이번 여름 어디로든 여행을 갈 수 있다면 당장 파리로 떠나고 싶어요.”
박물관, 뮤지엄도 가야 하고, 공원에 자리를 깔고 앉아 와인도 마셔야 하고, 조명이 켜진 밤의 에펠탑 앞에서 인증샷도 찍어야 한다며 신나게 설명하는 그에게서 20대의 에너지가 뿜어져 나온다. 하지만 무거운 질문 앞에선 대번에 신중해지는 그다. 잠시 숨을 고르며 머릿속에서 조심스레 단어들을 골라 꺼냈다. 지금은 ‘처음 생각했던 길로 잘 걸어가고 있느냐’고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묻고 있다며 조심스레 말문을 연다. “촬영할 때는 그 순간에 집중하지만, 쉬는 시간이 찾아오면 뒤를 돌아보게 돼요. 그렇다고 일 때문에 지친 적은 없어요. 데뷔한 지 몇 년 되지도 않았는데요.”라며 작게 소리 내 웃는다. 배우 생활이 버거운 적이 없었다는 말은 아직은 엄살 피울 때가 아니라는 뜻이리라.

슬리브리스
니트와 스커트 잉크,
스니커즈
마이클 코어스.
뒤이어 살아가며 잊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이 있는 지 물었더니 그는 또 한 번 숨을 골랐다. 한 박자 뒤, 깊은 곳에서 건져 올린 단어는 ‘감사함’이다. 아주 어릴 때부터 마음에 품고 있던 신념이다. “감사한 마음을 잃지 않아야 제게 소중한 모든 것들도 지킬 수 있는 것 같아요.” 근사한 말이다. 서은수가 살아온 28년이란 시간을 정의하는 문장이 아닐까.
허리를 똑바로 세우고 진지하게 얘기를 하던 그는 이 일상을 지탱하기 위한 체력 관리의 중요성을 설파한다. 휴일에도 뭐든 해야 하는 성격인 데다 몸을 힘들게 해야 하루를 알차게 보냈다는 생각이 든다. 체력은 정신도 튼튼하게 해주는 법이니까. “머리를 싸매고 생각하다가도 자고 일어나면 다 잊어버리고 ‘운동 가야지’ 하는 타입이에요. 부정적인 감정이 마음속에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는 건 배우로서도, 인간으로서도 장점인 것 같아요.” 배우로서 서은수는 어디까지 내다보고 있을까. ‘당장 주어진 것을 해내는 배우’라는 담백한 대답이 돌아왔다.
사진
주용균
스타일리스트
조보민
메이크업
서옥(위위아뜰리에)
헤어
꽃비(위위아뜰리에)
어시스턴트
김지수
장소
그림 스튜디오
낭만닥터김사부
미씽
스타
질투의화신
서은수
황금빛내인생
화보
인터뷰
킹메이커
리갈하이
스타화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