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 잘하는 법

욕이 상스럽고 저속하다고? 당신이 몰랐던 욕의 ‘뜻밖의 효과’.
BY 에디터 장혜정 | 2021.09.21
욕은 종류가 많다. 운전 중 갑자기 끼어든 차 때문이라면 ‘놀라서 하는 욕’이고 문턱에 엄지발톱을 찧어서라면 ‘아파서 하는 욕’이다. 개그 프로그램을 볼 때 같으면 ‘웃겨서 하는 욕’인데 골치 아픈 일로 머리를 감싼 채 읊조렸다면 ‘화나서 하는 욕’이 된다. 공공의 적 하나를 상정해 신나게 뒷담화를 했다면 심지어 ‘유대감을 쌓는 욕’으로까지 발전한다. 욕만으로도 인간의 희로애락을 다 표현할 수 있다니 이 얼마나 다채롭고 무한한 세계인가. 심지어 언어를 담당하는 뇌의 특정 부위를 제거해도 평소 욕할 때 쓰던 근육의 움직임이 뇌의 곳곳에 저장돼 즉흥적으로 욕이 튀어나올 수 있단다. 이쯤 되면 인간과 욕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욕은 또 무엇일까? 길거리에 침을 찍찍 뱉으며 ‘씨발’ ‘존나’ 하는 불량배의 쌍욕도 욕이지만, ‘싸게 싸게 처먹어라 이놈들아’ 하는 욕쟁이 할머니의 구수한 입담도 욕이다. 나라마다 욕의 특징도 다르다. 영국 BBC 방송국의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청취자들에게 욕에 대한 의견을 묻자 “스페인 사람을 정말 화나게 하면 주어, 동사, 목적어가 전부 욕으로 구성된 완전한 문장을 듣게 될 것” “중국은 대대손손 조상까지 거슬러 올라가 욕하는 특징이 있다”는 식의 흥미로운 내용이 등장했다. 무엇을 욕으로 볼지에 대한 의견은 조금씩 갈리지만 너무 더럽거나, 너무 야하거나 누굴 비하하기 때문에 함부로 입 밖에 내기 꺼려지는 ‘금기의 언어’를 대체로 욕으로 본다. 욕의 역사는 곧 언어의 역사이기도 하다. 당연히 그 옛날 사람들도 시원시원하게 욕했다. 이렇게 욕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을 이어가는 건 욕을 좀 다르게 보자는 취지에서다. 잘 쓰면 ‘약’, 못 쓰면 ‘독’이 욕이다. 상스럽고 저속하다고만 생각하지 말고 ‘삶의 기술’이자 ‘관계의 묘약’처럼 욕을 활용할 여지도 있다.
아프거나 짜증날 땐 내질러라
욕의 효능에 대한 유명한 실험이 있다. 영국 킬대학교 심리학과에 재직 중인 리처드 스티븐스 박사는 둘째 딸을 출산하던 부인이 육두문자를 남발하며 산고를 견디는 모습을 보고 욕과 고통의 상관관계를 떠올렸다. 그리하여 얼음 양동이에 손을 집어넣은 채, 한 집단에겐 ‘저런’ 같은 순한 표현을, 또 다른 집단에겐 ‘젠장’ 같은 욕을 하며 버틸 것을 주문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흥미롭게도 자유롭게 욕한 그룹이 더 추위를 오래 견뎠다. 욕을 하면 기분이 통쾌해지기 때문에 진통에 도움을 주는 엔도르핀이 분비된다는 것이다. 갑작스럽게 부딪히거나 넘어졌을 때 나도 모르게 ‘에이 씨’ ‘아 진짜’ 같은 볼멘소리가 튀어나오는 이유가 있었다. 욕은 통증뿐 아니라 짜증이나 화에도 효과가 있다. 당장 꼬인 문제를 해결해주진 않지만 스트레스를 줄여주고 정서적인 불균형을 어느 정도 바로잡아주는 효과가 있다니 애먼 곳에 화 풀지 말고 조용히 나만의 대나무 숲을 찾아 소리치자.
함께 욕하며 친밀도를 쌓아라
아침에 만난 동료와 어제 본 막장 드라마의 주인공을 욕하며 기분 좋은 활력을 느낀 적이 있을 것이다. 뇌 연구에 대한 다양한 정보와 사례를 담은 <뇌, 인간을 읽다>(마이클 코벌리스, 반니)에 따르면 언어를 통해 경험을 공유하는 과정에서 전두엽과 해마가 활성화된다. 나는 이랬는데 너는 어땠어 하며 경험을 공유하는 것 자체를 뇌가 이득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쑥덕거리며 험담하길 좋아한다는 것이다. 타인의 뇌에 ‘나와의 대화가 이득’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은 유쾌한 일이다. 그러니 누군가와 친해지고 싶다면 적당한 욕을 매개로 경험을 공유하자. 이때는 함께 공감할 법한 주제를 택해야 역효과가 나지 않는다. 나 혼자만 못마땅해하는 사람이나, 정치 신념, 젠더 이슈 등의 민감한 사항을 잘못 짚었다간 외려 관계를 망칠 수 있다.
남발하면 약발이 떨어진다
과거 전쟁터에서 ‘씨발 소총 챙겨’ 하면 다들 건성으로 듣지만 ‘다들 소총 챙겨’ 하면 위급 상황으로 받아들였다는 웃지 못할 얘기가 있다. 목숨이 넘나드는 전쟁터에서 극한의 스트레스를 이기고자 욕을 남발하다 보니 욕이 더 이상 욕처럼 들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욕이 스트레스를 줄여주고 긴장을 완화하긴 하지만 너무 오·남용하면 약발이 떨어진다. 뇌는 늘 어제보다 더 강력한 자극을 원하기 때문에 효과적으로 욕을 활용하려면 자제하며 아껴둬야 한다. 그래도 못 참겠다면 차라리 하하하 웃어버림으로써 지금 행복해 죽겠다고 뇌를 속이자. 그게 정신 건강에 더 나은 선택이 될 수 있다.
욕에도 TPO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 드라마’로 꼽는 노희경 작가의 <디어 마이 프렌즈>는 산전수전 다 겪은 인생 선배들의 우정이 유독 아름답게 그려진다. 주름이 자글자글한 할매들이 모여 서로 이년 저년 하며 ‘뒤져’ ‘처먹어’ ‘지랄이야’ 같은 막말을 내뱉지만 하나도 상스럽지 않다. 기저에 깔린 서로에 대한 애정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래 저 상황에서는 저럴 수 있어’ 하는 개연성 있는 욕을 했기 때문이다. 개연성 있는 욕은 주장에 힘을 실어주거나 자신의 뜻을 강조하며 커뮤니케이션을 돕지만 맥락이 없는 욕은 분위기를 냉랭하게 만들거나 괜한 상처를 남긴다. 그러니 모쪼록 상황을 봐가며 내 욕이 플러스가 되는지 마이너스가 되는지를 잘 따져보자. 선뜻 판단이 잘 되지 않는다면 안 하는 편이 백 번 낫다. 욕은 주워 담기가 힘들다.

일러스트

김가빈

참고서적

<뇌, 인간을 읽다>(마이클 코벌리스, 반니) <우리는 왜 위험한 것에 끌리는가>(리처드 스티븐스, 한빛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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