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싱 선수 윤지수의 담담한 자신감
타고난 민첩성과 패기를 지닌 윤지수가 2020 도쿄 올림픽에서 역전극의 주인공이 된 건 숙명일지도 모른다.
BY 에디터 차진주 | 2021.09.28
재킷 손정완,
이어링 골든듀.
0.1초로 승부를 가르는 펜싱에서 빠른 순발력은 중요한 자질로 손꼽힌다. 윤지수는 어릴 때부터 민첩성이 남달랐다. 체구는 왜소하고 체력은 약했지만 중학교 시절 체육 선생님은 윤지수의 재빠른 반응속도를 보고 펜싱부에 합류할 것을 권유했다. 운동을 좋아했던 그녀는 설레는 마음으로 펜싱부에 입단했다. 그렇게 펜싱과의 뗄 수 없는 인연이 시작되었다. 허약한 체력을 단련하기 위해 펜싱 훈련과 웨이트트레이닝을 병행했다. 탄탄해진 체력을 바탕으로 중학교 때부터 국가대표 선수가 되기 전까지 주로 남학생들과 한 훈련은 지금의 파워풀한 공격 스타일의 윤지수를 만들었다.
사브르는 플뢰레, 에페보다 속도가 빠르고 박진감이 넘치는 종목이다. 찌르기뿐 아니라 베기가 허용이 되어 다른 종목보다 거친 편이다. 어릴 적부터 자연스럽게 몸에 밴 그녀의 과감한 공격 스타일과 딱 맞아떨어졌다. 단순한 호기심으로 시작했던 펜싱에 제대로 빠져든 건 승부의 짜릿함 때문이었다. 0.1초의 순간에도 득실이 오가는 펜싱은 이기다가도 어느 순간 질 수 있고 예상치 못한 역전승이 가능하다. 승부욕이 강한 윤지수에게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닌 펜싱은 배울수록 재미 그 자체였다.

블라우스 문탠, 톱과
이어링 모두 코스, 스커트
오들리워크샵, 링 폴브리알.
윤지수의 끈질긴 승부사 기질은 아버지에게 물려받았다. 윤지수의 아버지는 롯데 자이언츠의 에이스이자 한화 이글스의투수 코치로 활약했던 윤학길이다. 투수였던 아버지의 운동 DNA를 닮아서 어깨와 팔 힘이 세다. 파워를 실은 찌르기와 베기가 전매특허가 될 수 있었던 이유다. 운동을 하면 근력이 빠르게 붙는 체질도 아버지에게 받았다고 생각한다. 타고난 운동 기질을 갖추었지만 처음 운동을 시작한다고 했을 때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다. 운동선수 생활이 얼마나 고되고 힘든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막내딸인 그녀가 거친 운동 세계에서 잘 버틸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컸다. 하지만 윤지수의 펜싱에 대한 애정과 일취월장하는 실력 그리고 귀족 스포츠라는 펜싱의 특성에 마음을 돌렸다.

블라우스 자라, 재킷과 스커트
모두 오들리워크샵,
링 폴브리알.
시작은 순조로웠지만 펜싱이 운명이라고 생각한 그녀에게 도 예상치 못한 시련은 찾아왔다. 윤지수는 만 18세라는 나이에 국가대표로 선발되었다. 당시 그녀는 부산의 펜싱 천재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펜싱계의 유망주로 이름을 알렸다. 2014년에는 인천 아시안게임 여자 사브르 단체전에서 최초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당시 팀의 막내였던 그녀는 패색이 짙었던 결승전에서 예리한 공격으로 8포인트를 뽑아내며 역전을 이끌어냈다.
승승장구하던 윤지수에게 슬럼프가 찾아온 건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이다. 올림픽에 출전하기 위해 선수들끼리 치열한 경쟁을 했고 단체전에 출전했지만 허무하게 8강전에서 탈락했다. 경기가 끝나고 그렇게 허전하고 쓸쓸했던 순간이 없었다. 앞으로 예정된 올림픽을 위해 4년이라는 시간을 또 어떻게 견디고 올림픽 출전은 다시 할 수 있을까에 대한 불투명한 생각들이 앞서 눈앞이 캄캄했다. 그때 힘든 시간을 물 흐르듯 흘려보내자는 어머니의 조언은 그녀에게 큰 힘이 되었다. 이후 윤지수의 좌우명은 ‘힘든 시기도 하나의 과정이므로 잘 견뎌내자’가 되었다.
몇 번이고 흔들리는 마음을 추스르며 훈련에 집중하던 2018년에 두 번째 시련이 찾아왔다. 반월상 연골판 파열이라는 무릎 부상이었다.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 두 달 전 무릎 상태가 이상하다고 느낀 그녀는 병원을 찾아갔고 담당 의사는 아시안게임에 나갈 수 없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윤지수는 포기하지 않았다. 훈련을 위해 선수촌에 들어갔고 아시안게임에 출전했다. 그녀의 간절함과 달리 무릎 상태는 점차 악화되었고 무릎을 고정하는 붕대를 칭칭 감고 결승전에 올라가야 했다. 두 번째 단체전 금메달을 획득했지만 경기가 끝나자마자 수술을 받아야 했다. 인내와 끈기가 반복되는 시간이었다.

타이 아더에러,
재킷 더오픈프로덕트,
스커트 45번가, 슈즈 잉크.
큰 부상에도 메달을 획득할 수 있었던 바탕에는 팀워크가 있었다. 무릎 재활과 올림픽 훈련을 병행하던 그녀는 2020 도쿄 올림픽 개막 한 달 전 또 한 번의 무릎 수술을 감내해야 했다. 아찔한 부상 투혼을 펼친 건 윤지수뿐만이 아니었다. 김지연은 아킬레스건 파열, 최수연은 8강 헝가리전에서 어깨 탈골 부상을 입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펜싱 여자 사브르 단체전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 수 있었던 건 탁월한 팀워크였다. 팀의 리더인 김지연 선수와 윤지수는 펜싱 국가대표팀에서 10년을 함께했고 최수연 선수는 그녀의 대학교 선배로 오랜 시간을 서로 지켜봐왔다.
서지연 선수는 비슷한 나이로 항상 경쟁을 하던 친구였기 때문에 서로의 특성과 기술에 대해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었다. 힘든 시간을 함께한 만큼 동료애가 강했고 서로에 대한 전적인 신뢰에 이겨야 한다는 절실함까지 녹아 있었다. 이탈리아와의 경기에서 10점차로 지고 있을 때 드는 생각은 오로지 하나였다. 이 경기에서 지면 내가 아닌 우리가 메달을 따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누구 한 명은 침체되어 있는 분위기를 반전시켜야 한다고 되뇌던 그때 상대편 선수가 불안해한다는 걸 감지했다. 빈틈을 노린 그녀가 빠른 발놀림으로 단숨에 11점차를 냈고 김지연의 마지막 한 방으로 경기는 승리로 마무리되었다.

톱 문탠, 뷔스티에 카프리슈,
이어링 앵브록스, 링 어빗모어.
당당한 패기를 보여주는 윤지수는 알고 보면 소박한 생활을 좋아하는 평범한 29살이다. 쉬는 날에는 주로 집에서 종일 넷플릭스를 보며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딱히 소비욕도 없어 지출은 하루 세 잔의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대부분이다. 코로나19로 지금은 잠시 쉬고 있지만 윤지수는 열정 캠핑러다. 그녀가 손수 구매한 캠핑 장비를 싣고 지인들과 캠핑을 다닌다. 텐트부터 타프까지 모두 직접 설치하고 요리도 한다. 아끼는 사람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캠핑에 빠지게 된 이유라고 말한다.

재킷과 톱 모두 잉크,
팬츠 노피셜오피스.
경기에서는 냉철한 승부사지만 순수함을 지닌 그녀에게는 한가지 바람이 있다. 배구, 야구와 같은 구기 종목처럼 펜싱도 대중적으로 큰 사랑을 받았으면 하는 것. 아시안게임 여자 단체전 최초, 올림픽 여자 단체전 최초처럼 ‘최초’라는 수식어를 계속 갱신하고 있는 만큼 펜싱이라는 스포츠를 더 널리 알렸으면 좋겠다. 아직 무릎 부상이 숙제로 남아 있지만 윤지수의 꿈은 진행형이다. 내년 아시안게임과 3년 후 파리 올림픽에서 단체전뿐 아니라 개인전에서도 메달을 획득하는 것이 목표다. 어떤 시련에도 멈추지 않고 계속 나아가고 성장하는 선수가 되고 싶다고 말하는 그녀의 눈빛은 흔들림 없이 단단했다.
사진
류경윤
스타일리스트
심예빈
메이크업
황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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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호
어시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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