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성과 렌이 건네는 헤드윅의 세계
헤드윅이라는 목표를 동력으로 골몰한 고민은 헤드윅의 세계를 확장한다.
BY 에디터 김정현 | 2021.09.29
렌 가죽 재킷 리바이스,
티셔츠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고은성 니트 미하라 야스히로
by 매치스패션.

니트 미하라 야스히로 by
매치스패션.

무톤 라이더 재킷과 블랙 진,
실버 네크리스 모두 생 로랑
by 안토니 바카렐로.
탈피의 시간,고은성

수트와 터틀넥 모두 디올맨.
“헤드윅을 만나기 위해 9년 11개월을 기다렸나 싶어요.” 데뷔 10주년을 맞은 고은성은 커리어의 전환점이 된 작품을 묻는 질문에 거침없이 <헤드윅>을 꼽았다. <싱글즈> 화보 촬영일 기준 5회 차 공연을 마친 고은성에게는 헤드윅의 회로가 따로 장착되어 있는 것 같았다. 눈빛과 말투, 행동과 표정은 헤드윅과 고은성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오갔다. 눈물 대신 웃음을 택하고 절망 대신 무대를 정복하는 헤드윅은 고은성에게 연기의 신세계를 열어줬다.
“처음 출연을 제안받았을 때만 해도 도저히 할 수 없다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어요. 헤드윅은 지금까지 제가 맡았던 캐릭터와는 완전히 결이 다른 인물이었어요. 미지의 세계로 다가왔죠.” <머더발라드>의 탐, <그레이트 코멧>의 아나톨 등 그의 필모그래피에 비교적 최근 안착한 캐릭터와 헤드윅의 접점은 희미하다. 지인들에게 고민을 토로하자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제가 갖고 있던 이미지의 벽을 깨고 싶었어요. 그런 시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기도 했고요. 도전해보자는 마음으로 헤드윅을 마주했어요.”
헤드윅은 확실히 달랐고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민낯과 치부를 가감 없이 드러내는 인물의 매력에 금세 빨려들었다. 표현에 한계가 없다는 점에서 연기의 묘미를 확장하기도 했다. “배우에게 인물이 어떤 걸 담고 있느냐는 굉장히 중요해요. 대본에 존재하는 것을 입체적으로 표현하는 건 배우의 몫이지만 대본에 없는 부분을 억지로 만드는 건 선을 넘는 행위예요. 헤드윅은 그런 면에서 표현의 범위가 무한한 인물이죠.”
연기를 통해 경험한 헤드윅 찬양은 끝도 없이 이어진다. “헤드윅은 절망 속에서도 사랑을 노래해요. ‘Midnight Radio’ 가사를 자세히 들어보세요. 현실을 깨닫고 가발을 벗으면서도 이츠학에게 너는 저 하늘을 나는 발레리나다, 별이다, 서로 안고 끌어주자는 메시지를 전해요. ‘Wig in a Box’ 또한 슬픔을 감추기 위한 노래처럼 들리고요. 처절한 상황에서 그런 노래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영웅적인 면모가 느껴지기도 해요. 마음의 그릇이 어마어마한 인물이죠.” 결과와 목적을 향하지 않는 헤드윅의 행동에서 오는 위로는 관객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진다.

수트와 터틀넥 모두 디올맨.
고은성은 <헤드윅>이라는 작품 자체가 해석의 여지가 무한하고 촘촘하기 때문에 매번 다른 공연을 펼치게 된다고 했다. 공연을 하면 할수록 몰입의 수위가 높아지는 건 헤드윅이 민낯을 드러내고 난 뒤의 모습이다. “어떤 공연에서는 ‘Midnight Radio’의 마지막 소절을 부르지 못했어요. 이츠학에게 단 한 번도 살가운 소리를 해본 적 없는데 갑자기 따뜻한 말을 하려니까 순간적으로 너무 민망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날은 이츠학을 오랫동안 꽉 안아줄 수밖에 없었어요. 이츠학과 헤드윅이 아닌, 크리스탈 낙흐트와 한셀 슈미트의 포옹처럼 느껴졌어요.” 이 대답을 들으니 해석의 여지가 분분한 <헤드윅>의 결말에 대한 그의 생각이 궁금해졌다.
“사람마다 해석이 아주 다르죠. 감히 단언할 수는 없지만 제가 생각하는 <헤드윅>은 결과적으로 해피엔딩이에요. 문을 걸어 나가 자신의 삶을 살았을 거예요. 스스로 감정을 정제할 줄 아는 사람이고 절망의 상황에서도 지금까지 살아남아 무언가를 했잖아요. 결코 쉽게 쓰러지지는 않았을 거예요.” 그는 회차를 거듭할수록 <헤드윅>이 자신을 바꿔가고 있다고 말한다. “지금까지 수없이 무대에 올랐지만 요즘 너무 행복해요. 뮤지컬 무대에서 배우로서 인물과 만나 노래했을 때 오는 쾌감과 행복의 확신이 그 어느 때보다 선명해요. 뮤지컬 배우 하기 진짜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고은성이 헤드윅의 서사를 쌓아가며 가장 신경 쓴 부분은 인간의 불완전함이다. “인물 간의 관계와 해석은 나름대로 정리되어 있지만 무대에 오를 때 완벽하게 설계를 하지 않아요. 헤드윅 또한 그랬을 테니까요. 매일같이 공연하던 헤드윅이 어느 날 무대에 오를 때 옷과 가발을 벗고 토마토를 터뜨릴 계획을 세우지는 않았을 거란 말이에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공연 당일 대기실에서 나눈 이야기로 생긴 기분, 불안, 불편함을 안고 가요. 그날의 무대에 부딪히는 게 재미있어요. 떨리고 긴장되고 무섭지만 덕분에 재미있고 가슴 벅찬 순간을 마주할 수 있어요.”
고은성은 작품을 준비하며 모든 경우의 수를 대입해 철두철미하게 작품을 이해하려 노력했다. 골몰하는 과정에서 헤드윅과 동화되는 경험도 있었다. 상황은 다르지만 연기를 위해 헤드윅의 궤적을 쫓아갈수록 자신의 과거에 도달해 공감과 연대의 순간을 마주하기도 한다. 무대 위에서 누가 버튼을 누른 것처럼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2011년 <스프링 어웨이크닝>으로 데뷔한 그는 10년을 가열차게 달렸다. 2016년 출연한 <팬텀싱어>를 보고 누군가는 그를 향해 ‘혜성처럼 등장했다’고 표현하지만 그는 차곡차곡 자신의 서사를 쌓았다. 지난 10년을 응축할 수 있는 단어로 ‘사랑’을 꼽은 그에게 뮤지컬은 달콤씁쓸한 존재다. “사랑은 100을 줘도 0이 올 수 있는 공식이에요. 뮤지컬이 제게 그랬어요. 정말 좋아했는데 현실은 녹록지 않았죠. 데뷔하고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어요. 배달 아르바이트는 너무 오래 해서 ‘맛있게 드세요’가 입에 붙었어요. 요즘도 가끔 배달 음식을 받을 때 그 말이 튀어나와요. 그래도 마냥 행복했어요. 10년이 지난 지금은 뮤지컬이 제게 더 거대한 행복을 선사하네요. 앞으로 이 사랑을 포기하지 않고 유지하는 게 중요할 거예요.”
고은성은 지난 4월 10주년 기념 앨범을 발매했다. 자신의 이야기를 녹여낸 타이틀곡 ‘START OVER’의 가사는 ‘자신을 믿는 순간 인생의 마법이 시작된다’로 끝이 난다. 성장형 배우로 기회를 쟁취해온 고은성은 앞으로도 찬란하게 훨훨 날아갈 것이다.

더블 브레스트 코트와 니트 톱
보테가 베네타.
도전의 궤도, 렌

가죽 재킷 리바이스, 티셔츠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니트 카디건 Y/프로젝트
by 피어, 데님 팬츠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지난 4월 발매된 뉴이스트의 두 번째 정규 앨범 [Romanticize]에는 멤버들의 솔로곡이 수록되었다. 각자의 낭만을 담은 곡에서 렌은 로켓을 떠올렸다. 발매 쇼케이스에서 그는 ‘ROCKET ROCKET’에 자신이 꿈꾸는 화려함과 에너지를 그렸다고 밝혔다. 염원하면 이루어진다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렌은 전방위적 엔터테이너로 활약하고 있다. 가수, 예능, 뮤지컬 등 ‘대기만성’이라는 수식이 붙는 그룹 뉴이스트로서 아이돌 그룹의 궤도에 오른 후 렌은 마치 자신의 조각을 완성해나가듯 활동 영역을 넓혀가는 듯 하다. 지난해 뮤지컬 <제이미>로 드래그 퀸을 꿈꾸는 고등학생 제이미 역을 완벽히 소화하며 보컬리스트와 퍼포머로서의 저력을 보여준 그는 2021년 뉴 헤드윅에 이름을 올렸다.
“<헤드윅>은 제 안에 벽을 깨고 나올 수 있게 해준 작품이에요. 출연을 확정하기까지 큰 용기가 필요했어요. 워낙 유명한 작품이다 보니 두려움과 압박이 상당했거든요. 내가 과연 잘해낼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어요.” 데뷔 이후 두 번째 작품에서 2시간의 무대를 오롯이 책임져야 하는 작품에 출연한다는 것, 현역 아이돌로서는 최초로 헤드윅 역할을 맡는다는 것에 대한 고민의 깊이는 당사자가 아닌 이상 감히 재단할 수 없는 영역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드윅>은 그가 여러 인터뷰에서 누누이 밝혀온 화려한 퍼포먼스의 정수를 보여 줄 수 있는 기회였다.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던 건 설렘과 노력의 가치다. 렌은 헤드윅을 통해 노력하면 안 되는 건 없다는 걸 몸소 경험하는 중이다.
오만석, 조승우, 이규형 등 쟁쟁한 선배들 사이에서 그가 존재감을 드러내는 방법은 캐릭터에 미치는 것이다. “무대에서 헤드윅이 되기 위해 미쳐야만 제가 준비한 것을 모두 보여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평소에도 화려한 퍼포먼스를 좋아하는데 광기 어린 헤드윅의 모습을 표현할 때마다 희열이 굉장해요.” 실제로 그의 무대를 관람한 관객의 후기 중에는 몸이 부서져라 열연하는 렌의 모습에 건강을 걱정하는 글이 심심찮게 보인다. 고은성 또한 리허설로 렌의 무대를 접했을 때 ‘쇼킹’이라는 감정을 경험했다. “얌전했던 아이가 ‘Angry Inch’를 부르며 폭발하는 에너지가 충격적이었어요. 렌의 움직임과 동선, 크고 작은 손동작에서 느껴지는 헤드윅의 느낌이 인상 깊었죠. 저도 보고 많이 배웠어요.”

니트 카디건 Y/프로젝트
by 피어, 데님 팬츠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캐릭터가 부각되는 작품인 만큼 하나의 레퍼런스로 기억되기를 바라는 ‘렌드윅’의 이미지를 묻자 렌은 ‘크레이지한 헤드윅’이라는 답을 들려준다. 전무후무한 미모를 자랑하며 순수한 광기가 폭발하는 ‘렌드윅’의 열기는 무대 위에서 생생하게 흘러넘친다. 화려한 퍼포먼스의 만족도 높지만 <헤드윅>의 주옥같은 넘버 중 렌은 ‘Wicked Little Town(Reprise)’을 부를 때마다 몰입이 깊어짐을 느낀다. “어렸으니까 잘 모르지 않았겠냐, 용서해달라는 내용이 저 스스로에게 해주는 말 같아요. 가수라는 꿈을 안고 혼자 서울로 올라와 지냈던 시간이 쉽지만은 않았어요. 하지만 그것 또한 제가 선택한 길이니 감내해야 하는 부분이잖아요.” 꿈을 향한 치열했던 여정이 겹쳐 보이며 감정은 무르익는다.
무대 위 관객과 함께할 때면 연습실에서는 느낄 수 없던 감정이 차올라 노래를 이어가지 못할 정도로 벅차오른 적도 많다. 오랜 시간 배우들과 합을 맞추고 무대에 올라 에너지를 주고받을 때면 전율이 느껴지기도 한다. 뮤지컬 무대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매력이다. 뮤지컬 배우이자 아이돌로서 아티스트 최민기는 완전하게 차오르고 있다. ‘렌드윅’이 더 뜨겁게 타오르는 이유 또한 그가 해석한 헤드윅의 엔딩과 관련이 있다. 헤드윅은 극의 말미 무대를 이츠학에게 넘겨준 뒤 빛이 스며드는 문으로 퇴장하며 막을 내린다. 그는 헤드윅의 끝을 해방으로 해석했다. “헤드윅의 상징과도 같은 가발과 화려한 옷을 벗고 토마토를 터뜨리는 모습을 보면서 자기 자신을 다 내려놨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터벅터벅 문을 향해 걸어가는 뒷모습이 자신의 끝을 향해 가는 느낌이었어요. 비로소 자기 해방을 하는 거죠.”
완전하게 타오른 헤드윅의 뒷모습에서 미련이나 후회 따위는 찾을 수 없다. 뮤지컬 무대를 통해 렌이 새롭게 발견한 모습은 용기다. “제 안의 용기를 발견하게 됐어요. 보기와 달리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었는데 두 편의 작품을 경험하며 자존감을 높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정말 못할 거라고 생각했던 일을 이렇게 하고 있잖아요. 책임감도 강해졌어요.” 안 그래도 큰 눈을 더욱 반짝이며 말하는 렌의 말에 속도가 붙고 목소리가 한 뼘 커졌다.
뮤지컬을 시작하고는 체력 관리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장시간 무대 위에서 몸을 움직이기 위해서 체력은 필수다. 비타민도 신경 써서 챙겨 먹고 유산소운동도 꾸준히 한다. “뮤지컬을 시작하고 적당히 때우던 끼니도 제때제때 거르지 않고 있어요. 제일 자주 찾는 음식은 삼계탕이에요. 먹고 나면 힘이 달라지는 게 느껴져요.” 두려움을 앞지른 설렘으로 가득 찬 렌의 도전은 여전히 뜨겁게 끓고 있다.

스웨이드 코트 존 비바토스.

렌 데님 재킷과 팬츠
Y/프로젝트 by 피어,
셔츠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고은성 스웨이드 코트
존 바바토스, 체크 셔츠
올세인츠.
사진
오재광
스타일리스트
이종현
메이크업
김부성
헤어
권도연
어시스턴트
김지수
장소
호텔 크레센도 서울
고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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