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호가 드러내는 색

펜싱 국가대표 선수 김준호는 2020 도쿄 올림픽에서 당당히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BY 에디터 전수연 | 2021.09.30
트렌치코트, 톱, 레더 팬츠 모두 보테가 베네타.
김준호가 처음 펜싱을 시작한 건 초등학교 5학년 때다. 부모님의 지인을 따라 우연히 펜싱 사브르 경기를 본 뒤 바로 이거다 싶었다. 마냥 생소했던 운동이지만 검을 가지고 상대와 맞서 싸우는 박진감 넘치는 플레이를 보고 홀리듯 빠져들었다. 펜싱에는 3개의 종목이 있다. 그중 김준호 선수가 택한 ‘사브르’는 상체 부위와 얼굴, 팔 부분을 공격해야 득점할 수 있다. 다른 펜싱 종목인 플뢰레나 에페와는 달리 사브르에서는 검날로도 득점이 인정되기 때문에 펜서들의 움직임과 공격이 매우 빠르게 이루어진다. 그만큼 순간의 집중력과 스피드를 갖춰야만 포인트를 딸 수 있다. 김준호는 펜싱의 상대성을 중요하게 설명한다. 종합 점수가 아닌 토너먼트 형태로 순위를 매기기 때문에 64강부터 어떤 선수를 만나느냐에 따라 승패가 판가름 난다는 것. 대진운도 따라야 하고 그날의 ‘수’도 굉장한 변수다. 생각했던 수가 맞았을 때의 쾌감은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짜릿하다고. 김준호가 16년이라는 긴 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위기의 순간은 있었다. 펜싱은 찰나의 빠른 움직임이 더해진 격한 동작들이 많다 보니 피로가 쌓였거나 훈련의 강도가 높으면 인대나 연골이 끊어지기 쉽다. 2011년 무릎 부상을 당한 그는 재활 기간까지 꼬박 1년의 공백기를 가졌다. 대학교에 가기 위해 고등학교를 유급하고 훈련을 해보자는 제의도 있었지만, 남들의 도움 없이 스스로 노력했다. 그렇게 혼자 펜싱 대학부 감독님을 찾아가 자신의 패기를 어필했다. 그렇게 오기가 가득 찬 상태로 대학교에 들어가서일까. 김준호는 펜싱 대학부 전체에서 1등을 독차지하며 그다음 해에 바로 국가대표에 합류했다.
니트 톱 코스, 서스펜더와 로퍼 프라다.
그의 강단은 이미지 트레이닝에서 온다. 김준호는 무엇이든 걱정을 한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지지 않는다고 믿는다. 그날 컨디션과 그날의 수에 모든 걸 맡긴다. 경기 후에 아쉬움도 물론 있다. 하지만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결과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다. 슬럼프를 대하는 자세도 마찬가지다. 경기력이 떨어져 무리하면 부상을 당하고, 부상을 당해 연습을 하지 못하면 경기력이 떨어진다. 그땐 그냥 내려놓는다. 열심히 했으니 좀 쉬라는 뜻이라고 생각하며 온전히 휴식에만 집중하고, 다시금 마음가짐을 다잡는다. 그에게 있어 가장 든든한 버팀목은 가족과 동료 선수들이다. 금메달을 딴 이후 가장 먼저 통화를 했던 그의 아내는 현실적인 조언을 한다. 펜싱 사브르 단체전에 함께한 동료 선배들은 대표팀에서 10년 넘게 쌓은 노하우를 그에게 스스럼없이 전수해줬다. 덕분에 그랜드슬램을 단기간에 이룬 편이다. 김준호가 지금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큰 도움을 준 은인과도 같은 존재들이다.
풀오버 니트, 레더 팬츠, 스니커즈 모두 돌체앤가나.
김준호는 이번 올림픽 금메달을 포함해 ‘펜싱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펜싱의 주요 4대 국제 대회인 올림픽, 아시아경기대회, 세계선수권대회,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모두 금메달을 따야 이룰 수 있는 엄청난 성과다. 실감하느냐는 질문에 김준호는 고개를 내젓는다. 연말쯤, 그랜드슬램을 달성해야 받을 수 있는 체육훈장 청룡장을 받으면 조금 와닿지 않을까라고 덧붙인다. 청룡장은 체육훈장 중 가장 높은 상에 속하며 펜싱계에서 수상한 선수가 아직은 많지 않다. 그만큼 김준호는 마지막 관문인 올림픽에 모든 걸 쏟아부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간절했다. 선배 선수인 김정환의 복귀로 4위로 밀린 김준호는 3위까지만 출전할 수 있는 개인전에 참여하진 못했지만 그에 대한 아쉬움은 없다. 그 선수가 있었기에 단체전 금메달도 획득했고, 경기 내용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김준호 역시 상대방의 공격을 방어함과 동시에 다음 동작으로 빠르게 역공하는 ‘플레시’ 동작으로 4개의 포인트를 따 단체전 메달을 따는 데에 큰 역할을 했다.
데님 팬츠 비언더바 by 비이커, 베스트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올림픽이 끝난 이후 김준호를 향한 러브콜이 끊이지 않는다. 화보 촬영은 물론,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그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금메달 획득 이후 엔터테인먼트와 전속 계약도 맺었다. 많은 사람들이 연예계로 전향하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도 한다. 당연히 가질 수 있는 궁금증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전혀 없다고 답한다. 김준호를 제외한 펜싱 사브르 단체전 멤버들은 모두 스포츠 에이전시에 소속되어 있다. 몸담고 있는 소속사는 다르지만, 그가 본업인 펜싱 선수로서 운동에 집중하는 것은 여전하고 또 다른 기회가 주어졌을 때 그것도 열심히 하기 위해 내린 결정이다. 그의 입담은 원래 방송인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뛰어나다. 수많은 카메라 앞에서는 것에 대한 부담도 없어 보인다. 그는 미디어 방송을 통해 본인의 생각이나 행동을 솔직하게 표현한다면, 화보 촬영은 사진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출할 수 있는 매력이 있다고 말한다. 평소 시도해보지 못했던 옷을 입고 촬영을 하고 모니터링을 할 때면 ‘이런 모습이 있었구나’ 하며 자신에게서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는 것이 사뭇 흥미롭다. 촬영 시간 내내 본인의 표정과 포즈를 연구하던 그의 모습은 이미 낯선 환경에 적응한 듯하다.
데님 재킷과 팬츠 셋업 모두 코스.
휴식 없이 이어진 스케줄에 힘든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는 다방면의 활동을 통해 펜싱의 가치 그리고 본인의 밸류를 높이는 것을 우선순위로 꼽았다. 최근 그는 패션그룹 형지와 함께 꿈나무 클래스를 진행하고 있다. 아이들에게 펜싱을 가르치고 후원도 한다. 비인기 종목 특성상 어린 시절부터 어려운 환경에서 훈련했고 그런 과정에서 뛰어난 실력을 가진 선수가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보고 안타까웠기 때문. 그때부터 김준호는 커리어를 탄탄히 다진 뒤에 저변 확대를 위해 노력하기로 다짐했다. 펜싱 선수로서 운동에 몰두해야 하는 것은 기본이고, 틈틈이 그 외 다른 활동에서 기회를 놓치지 않고 펜싱을 대중화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계기다. 당연히 후배 선수들이 조금 더 좋은 조건에서 운동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마음도 있다. 그는 운동에 지장이 가지 않는 선에서 연예 활동을 병행한다면 더 좋은 시너지가 날 것 같다고 판단한다. 어떤 이미지의 김준호가 되고 싶다는 것은 정해놓지 않았다. 의도한다고 해서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고, 대중들이 보는 펜싱 선수 김준호의 색이 자연스럽게 생길 거라 생각해서다. 종잡을 수 없는 매력으로 펜싱과 이를 알리는 활동으로 가득 찰 그의 앞날은 어떤 색으로 채색될지 그려보게 된다.

사진

주용균

스타일리스트

고윤진

메이크업

유혜수

헤어

이일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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