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만 로맨스>의 마지막 신
영화 <장르만 로맨스>의 개봉을 앞두고 감독과 배우 3인을 애프터 파티에 초대했다.
BY 에디터 류현경 송혜민 | 2021.11.19
(왼쪽부터) 조은지 체크 수트 마이클 코어스. 김희원 블랙 수트 아더에러. 류승룡카디건과 티셔츠 모두 코스. 오나라 퍼프 숄더 원피스 딘트.
우리는 모두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핏줄로, 일로, 유대와 연대로, 팽창하거나 축소하는 무수한 감정들로, 우리 일상은 매 순간 타인의 일상과 뒤엉킨다. 그러니 때론 관계가 서로 부딪히다 끊어지기도 하고 날카로운 감정의 모서리에 베어 다치기도 한다. 그럼에도 그 끈을 쉬이 놓을 순 없다. 관계를 통해 기뻐하고 또 상처받으며 관계 속에서 여물어가는 것이 삶인 까닭이다.

그레이 코트 가윤, 블랙 티셔츠 코스.
조은지 감독의 <장르만 로맨스>는 이러한 관계의 속성을 감각적으로 파고드는 영화다. 주인공 현을 중심으로 모든 관계가 첨예하게 얽혀 있어, 하나가 꼬이면 일도, 사랑도, 인생도 함께 꼬여버린다. 다만, 성장의 순간이란 언제나 그렇듯 엉겁결에 내달린 벼랑 끝에 숨어 있는 법이다. 실제로 조은지 감독은 “관계 속에서 성장하는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다”고 밝혔다. 배우로서 무수한 감정들을 벼리고 다듬어온 긴 시간 덕분일까, 그의 첫 장편 연출작은 언뜻 가볍고 발랄해 보이지만 들여다볼수록 한없이 깊다.
“전 어떤 관계가 틀어지는 건 상대방에게 뭔가 바라는 바가 충족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니 상대에게서 내가 원하는 걸 찾기보다는 그냥 그 사람 자체를 좀 더 인정해주면 좋지 않을까 싶어요. 그러면서 나 자신도 성장하게 되고요. <장르만 로맨스>만 봐도, 딱히 누가 누구에게 상처를 주는 이야기는 아니거든요. 모두가 충분히 당연할 수 있는 관계들이죠.”
류승룡은 처음 현 역할을 제안받았을 때 감독이 관계를 바라보고 표현하는 방식에 끌렸다고 했다. “시나리오가 굉장히 독특하면서도 공감이 갔어요. 가벼운 터치로 극을 끌어가지만, 그 안엔 상처도 있고 치유와 성장도 있었죠. 우리 삶 속 많은 관계들을 너무나 잘 표현해냈더라고요.”

조은지 셔츠와 팬츠 모두 르베이지. 오나라 컷아웃 니트 톱과 플리츠스커트 모두 조나단 심카이 by 네타포르테.
오나라 역시 마찬가지다. “제가 연기한 미애만 봐도 이혼한 남편과의 관계, 전남편의 절친과의 관계, 그리고 뒤늦게 사춘기를 겪는 아들과의 관계까지, 여러 관계 설정이 복잡하면서도 흥미로웠어요. 잘만 표현하면 정말 재미있겠다, 독특한 작품이 하나 나오겠다 싶었죠.”
한편, 김희원은 영화가 무수한 관계를 통해 건드리는 사회적 화두들에 좀 더 집중했다. “처음 대본을 받았을 때 이거 예술영화냐고 물었어요. 난 아무리 봐도 예술영화 같으니 진지하게 연기하겠다고 했죠. 영화가 이렇게 유쾌하게 나올 줄 몰랐어요.”
이유야 어쨌든 결국 이들이 한자리에 모인 시작점에는 ‘관계’가 있었다. 감독이 느껴온 관계, 배우가 시나리오 속에서 발견한 관계. 그것에 서로 공감하고 이입한 순간, 감독과 배우들의 새로운 관계도 시작됐다.

재킷과 데님 팬츠 모두 인스턴트 펑크.
실제 <장르만 로맨스>의 촬영은 2019년에 이뤄졌다. 감독과 배우, 스태프들이 모여 마지막으로 편집본을 확인한 것만 해도 벌써 1년 전이다. 어수선한 시국 탓에 개봉이 미뤄지긴 했지만, 오랜만에 다시 만난 이들은 마치 어제 본 사이처럼 친근했다. 특히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자처하며 화보 촬영 현장에서도 시종 웃음을 뿌린 이는 류승룡이다. 실제로 촬영 당시 가장 참기 힘들었던 웃음 유발자가 누구인지 묻자 모두의 시선이 약속이나 한 듯 그에게 쏠렸다.
이번 작품을 통해 그를 처음 만난 김희원의 반응이 가장 뜨거웠다. “지금껏 진지한 배우라고만 생각했어요. 제가 본 거의 모든 영화가 그랬거든요. 근데 딱 만나보니까 아니, 사람이 왜 이렇게 밝아? 너무 밝고 또 아주 유연하더라고요. 그래서 깜짝 놀랐어요.” 사실 그런 모습이 오히려 익숙했던 이는 오랜 시간 알고 지낸 조은지 감독이다. 그는 류승룡의 장난스러움과 진지함을 오가는 평소 모습이 주인공인 현과 무척 닮아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 각색 작업 때부터 이미 그를 염두에 두고 쓰기도 했다. 한편, 감독과 배우들이 꼽은 가장 강렬한 반전 매력의 주인공은 김희원이었다. “정말 멜로가 체질이던데요? 왜 지금까지 총칼만 들고 연기했나 싶어요. 사람 냄새 나는 캐릭터가 너무 잘 어울리더라고요.” 오나라의 감탄에 류승룡이 한목소리로 거들었다.

도트 패턴 드레스 H&M.
“그간 워낙 사랑스러운 악역을 많이 맡아서 개인적으로 무척 궁금했고, 같이 작업해보고 싶었어요. 실제로 만나보니 엄청나게 순수한 면이 내재돼 있더라고요. 인간미도 넘치고, 뭣보다 가식이 없어요. 그게 어마어마한 장점인 것 같아요.” 서로서로 개인적 친분의 차이는 있지만, 결국 감독으로서 조은지와의 작업은 모두가 처음이다. 오나라는 같은 여성이고 배우기 때문인지, 촬영 초반만 해도 굉장히 부끄러웠다. 마치 연기하는 매 순간을 동료 배우가 보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때까진 마음속에서 감독으로 완전히 인정하지 못했나 봐요. 그런데 회차를 거듭할수록 점점 더 의지하게 되더라고요. 특히 대화가 잘 통했어요. 몰래몰래 와서 부족한 부분에 대해 코멘트도 해주시고, 그 길을 따라가다 보니 저도 모르게 꽤 독특한 대사의 뉘앙스가 나오기도 했죠. 나중에는 정말 많이 의지하며 따랐어요.” 김희원에게 조은지는 “무척 집요한” 감독. 처음엔 그런 면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저 유리알 같은 부분이 자신 때문에 깨지면 어쩌나, 고민도 많았다.
다만 그렇게 부딪히며 서로의 폭을 좁혀가는 과정 덕분에 ‘살아 있는’ 장면이 나왔다고 털어놨다. 뒤따른 류승룡의 말처럼, 그런 굴곡진 시간이 “결과적으로는 양질의 과정”이 되었던 것.

블랙 수트와 터틀넥 모두 코스, 부츠 아쉬.
“저의 경우 그간 <7번방의 선물>이나 <최종병기 활> <명량> 같은 장르 영화를 주로 했기 때문에 평범한 일상생활 연기에 대한 갈증이 컸어요. 그래서 시나리오를 받고는 감독님에게 도움을 청했죠. 좀 편한 연기를 하고 싶었거든요. 그러니까 음표로 따지자면 저는 정확한 음을 내는 편인데, 조은지 감독이 거기에 샵(♯)을 3개 붙여주기도 하고 플랫(♭)을 2개 붙여주기도 하고, 낮은음자리표를 넣었다가 피아니시모를 넣어주기도 했죠. 그런 순간마다 정말 짜릿했어요. 한번도 그렇게 연기해본 적이 없거든요. 그런 변주를 줘서 너무 고마웠고요.”
사실 조은지 감독은 배우 역할과 감독 역할이 결국 비슷한 선상에 있다고 느꼈다. 배우로서 경험이 연출에 도움이 된 부분도 물론 있겠지만, 그 반대 효과에 대해 더 분명히 체감했다. “오히려 <장르만 로맨스>의 경험이 이후 연기할 때 큰 도움이 됐어요. 배우로서 대사라든지 극의 흐름을 좀 더 자세히 살피게 됐죠. 내 역할 자체가 전체 흐름 안에서 어떻게 표현되어야 하는지 고민하게 됐다고 할까요? 예전엔 그렇게까지 깊게 파고들지 못했거든요.”

류승룡그레이 수트 코스, 김희원 브라운 수트 플리즈헤이트미.
영화 속 세 사람의 관계는 배우들끼리 관계가 단단해질수록 점점 더 복잡하게 꼬여간다. 베스트셀러 작가인 현은 무려 7년째 슬럼프를 겪고 있고, 그의 전처인 미애는 아들의 뒤늦은 사춘기 때문에 속이 터질 지경이며, 그의 절친인 순모는 미애와 아슬아슬한 비밀 연애 중이다. 누구 하나 순탄한 일상을 보내는 이가 없는데, 관계가 한 줄 엉키니 다른 관계까지 줄줄이 엉망이 된다.
실제 류승룡은 현이 고등학생 아들을 둔 아빠라는 점에서, 김희원은 순모의 불평불만 많고 우유부단한 성격에서, 오나라는 미애의 쿨하고 완벽주의자적인 면모에서 각각 배우 자신의 모습을 찾아 꺼냈다. 모두가 대본 속 무수한 관계에 현실적으로 공감했고, 배우로서 캐릭터의 고난과 성장에 깊이 이입했다. 무엇보다 이 내공 높은 배우들은 서로가 서로의 관록을 믿기에 자신만의 속도와 호흡을 조절해나갈 수 있었다.

류승룡 재킷과 팬츠 모두 H&M. 오나라 벨트 재킷과 팬츠 모두 딘트. 김희원 카키 수트 지이크.
이를테면 극 중 순모와 미애가 치킨을 먹다 싸우는 장면에서 두 배우가 만들어내는 기이한 템포는 김희원의 회상에 따르면 “상대 배우가 어떻게든 내 시간을 지켜줄 거라는 믿음”에서 비롯한 것이다. 끊어질 듯 교묘히 이어지는 대화의 리듬감, 예기치 못한 지점에서 폭발하는 관계들 사이의 케미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류승룡이 꼽은 <장르만 로맨스>의 관전 포인트 역시 케미. 더불어 독특하지만 충분히 공감하고 이입할 수 있는, 그렇기에 누구든 웃으면서 보다가 한번쯤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이야기라는 점을 강조했다.
김희원은 등장인물들이 지닌 지극히 현실적 감각으로, 오나라는 귀를 즐겁게 하는 맛깔스러운 대사로 이 영화의 강점을 전했다. 캐릭터와 연기가 살아 움직인다고 느끼는 순간, 전혀 다른 이에게서 나 자신을 발견하는 순간, 그리하여 함께 벼랑 끝에 내몰리고 함께 성장하는 순간. <장르만 로맨스>가 개봉하는 11월 17일 이후부터는 우리 모두가 그 순간을 공유할 수 있다. 설레는 마음으로 그 순간을 기다리는 건 감독과 배우들 역시 마찬가지다.
사진
주용균
스타일리스트
문승희
메이크업
김부선
헤어
김우준
장소
소피텔 앰배서더 서울 호텔 & 서비스드 레지던스
감독
스타
11월17일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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