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에게 전하는 위로

매 순간 벽을 허물고 판을 전복하며 EBS 디지털 콘텐츠만의 좌표를 만들어가고 있는 이슬예나 PD를 만났다.
BY 에디터 류현경 | 2021.12.08
과거 <딩동댕 유치원>을 보며 자란 MZ세대는 요즘 유튜브로 ‘딩동댕대학교’를 본다. 달라진 가치관과 생활 방식 속에서 혼란을 겪는 어른이들에게 정규 교육 과정에는 없던 여러 삶의 ‘찐’ 지식을 전하는 EBS 디지털 콘텐츠다. 실제 코끼리(낄희 교수)와 부엉이( 철 조교) 캐릭터가 진행하는 교양 강좌에는 ‘이모지 심리학’부터 ‘실전 성교육’까지 2030세대의 온갖 고민거리가 거론된다. 특강을 통해 오은영 박사, 표창원 프로파일러 등 여러 일일 교수들이 다양한 상담을 해주기도 한다. 이 독특한 콘텐츠를 처음 기획한 이는 일명 ‘펭수 엄마’로 알려진 펭TV&브랜드스튜디오의 이슬예나 PD다. 사실 딩동댕대학교는 펭수의 전무후무한 성공 이후 EBS의 디지털 특화 부서로 독립한 펭TV&브랜드스튜디오가 처음 선보인 콘텐츠라는 점에서 의미 깊다. 자이언트 펭TV가 ‘초등학교 5학년 이상’을 타깃으로 삼았다가 팬덤이 자체적으로 확장된 경우라면, 딩동댕대학교는 애초부터 ‘어른이’를 겨냥해 기획한 프로그램이다. 이슬예나 PD에게 최초의 의도를 묻자, 오히려 “혹시 주변에서 진짜 어른스러운 어른을 본 적 있느냐”는 날카로운 질문이 돌아왔다. 그의 생각처럼 실제로 사람들은 아무리 나이가 많고 정신적으로 성숙해도 대부분 내면 깊은 곳에 조금씩은 어린이의 마음을 숨긴 채 살아간다. 신입 연습생 주제에 회사(EBS) 사장 이름을 막 부르는 당돌한 펭귄 캐릭터가 지금처럼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 이슬예나 PD는 펭수로 쌓은 데이터에 평소 일상에서 품어온 질문들을 더해 본격적으로 MZ세대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펭TV&브랜드스튜디오 자체가 EBS의 디지털 콘텐츠를 계속 양산해보자는 차원에서 만들어진 팀이에요. 그런데 디지털 콘텐츠의 주요 소비층인 MZ세대는 지금껏 EBS에서 놓쳐온 세대이기도 하거든요. 그 빈 공간을 공략해보려는 시도였어요.” 초창기 아이디어와 콘셉트는 이슬예나 PD가 기획했고, 함께 자이언트 펭TV를 이끌던 박재영 PD가 연출을 맡아 기획을 발전시켰다. 딩동댕대학교라는 이름을 처음 제안한 이도 박재영 PD다.
정답이 없는 소통의 장
딩동댕대학교의 정수는 ‘정답이 아니라 생각할 시간을 주는’ 프로그램이라는 데 있다. 이슬예나 PD에 따르면 그건 “자신도 정답을 모르기 때문”이다. “요즘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 잠들 때까지 수많은 정보를 접하며 살아가잖아요. 그러다 보니 어떤 이슈의 한 단면만 보고 편견을 갖게 되는 경우가 많죠. 무심코 지나치기 쉽지만 알고 보면 우리에게 무척 중요한 정보도 적지 않고요. 그런 것들에 대해 스스로 생각해보고 또 다른 사람들과 의견을 나누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느껴요.” 실제 딩동댕대학교 시즌1은 이러한 ‘생각의 장’을 모티프로 출발했다. 발랄한 캐릭터와 형식 덕분에 표면적 무거움은 덜하지만, 매회 던진 화두는 꽤 시의적절하고 사회적인 성격이 강했다. 다만 기준이 있다면 ‘우리 삶과 닿아 있어야 한다’는 것. “EBS가 교육방송이다 보니 무언가 교훈이나 정답을 주는 게 맞는 역할이라 여길 수도 있지만, 저는 그런 식의 접근이 오히려 교육적이지 못하다고 늘 생각해왔거든요. 특정 계층이 아니라 대중이 함께 공유하며 공론화하는 과정 자체가 더 교육적이고 공영방송의 본질에도 가까운 것 같아요. 대단히 선진적인 이론이나 견해보다는 우리 일상과 맞닿아 있으면서도 깊이 생각해보지 않으면 놓치거나 편견을 갖기 쉬운 주제들을 다뤄보고 싶었어요.” 한편, 여름부터 시작한 시즌2는 새로 투입한 황광희가 과거의 ‘뽀미 언니’ 역할을 맡으며 본격적인 웹예능 프로그램으로 거듭났다. 이 급격한 포맷 변화는 한정된 자원 안에서 좀 더 빠르게 대중과 가까워지기 위한 선택이었다. “아예 새로운 세계관과 새로운 생명체를 만들어 쓰다 보니 구독자들이 빠르게 채널에 접근하기가 어렵더라고요. 저희는 좋은 콘텐츠라 생각하며 열심히 만들고 있는데, 실제 많은 사람들에게 가닿고 이슈가 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쉬운 마음에 전략적으로 택한 방식이에요. 예능적이라고 해서 꼭 비교육적인 건 아니니까요. 오히려 더 쉽고 재미있는 형태로 의미 있는 주제를 충분히 다룰 수 있죠. 제가 맨 처음 떠올린 그림은 <딩동댕 유치원>처럼 작은 동물 친구들 사이에 사람이 들어가 있는 조합이었어요. 그래서 박재영 PD를 포함한 스태프들과 논의 끝에 황광희 씨를 초대하게 됐고요.” 그는 과거 펭수를 기획할 때도 유튜브 크리에이터들의 방송 문법을 참고했다고 밝힌 바 있다. 단, 근본적으로는 방송사 콘텐츠가 1인 크리에이터들의 콘텐츠를 따라갈 수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무척 슬픈 일인데, 사실은 PD가 없어야 해요. PD가 있고 대본이 있는 순간, 콘텐츠의 리얼리티가 줄어들기 때문이죠. 자발적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쪽이 당연히 더 진정성 있을 수밖에 없잖아요. 그러니까 유튜브 세상에서 방송사가 오리지널 콘텐츠로 승부를 본다는 게 어떤 면에서는 굉장히 불리해요. 더 많은 자원과 인력을 갖고 있음에도 그것들이 오히려 마이너스가 되는 경우가 많죠.” 그렇기에 놓치지 말아야할 요소는 최대한 날것의 감성을 지킬 것. 콘셉트나 메시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고민하되, 캐릭터들이 그 세계 안에서 자유롭게 말하고 움직일 수 있도록 만들어줄 것. 그러려면 우선은 하나의 세계를 완벽하게 세운 뒤 아주 디테일한 부분까지 철저히 고민하며 시뮬레이션해봐야 한다. “기본적으로 유튜브의 감성이란 게 있잖아요. 제작비와 상관없이 누구든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판이라는 거죠. 구독자와 동등한 선상에서 재잘재잘 편안하게 이야기하며 서로 소통할 수 있다는 느낌을 주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무엇보다 이슬예나 PD에게 소중한 키워드는 ‘위로’의 감수성이다. 처음 EBS 입사 면접 당시 ‘왜 PD가 되고 싶은가’란 질문에 답했던 것처럼, 콘텐츠를 통해 “위안과 감동을 주고 싶다”는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이성적인 부분보다는 감성적인 부분에서 미디어의 역할이 더 크다고 생각하거든요. 어쨌든 EBS이다 보니 다른 채널의 예능처럼 초 단위로 자극을 주는 데 한계가 있기도 하고요. 결국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가 필요한 것 같아요. 꼭 이 시대가 아니더라도 사람은 사회적 존재인지라 살다 보면 위로를 받고 싶어 하는 욕구가 생길 수밖에 없으니까요. 한순간의 웃음이나 킬링 타임 요소도 물론 굉장히 가치 있지만, 그런 것들은 관계를 쌓는 과정이 되어주지 않아요. 그런데 위로를 나누고 나면 콘텐츠와 대중이 서로 유대감을 키우며 관계를 쌓아갈 수 있죠. 그 힘이 무엇보다 강력하고요.” 그런 의미에서 그가 유독 아끼는 캐릭터는 ‘이번 생은 선인장’의 인장선. 딩동댕대학교의 다른 콘텐츠에 비해 크게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있으면 있는 대로 살고 없으면 없는 대로 사는’ 이 103세의 선인장 캐릭터가 주는 메시지는 무척 선명하다. 이슬예나 PD는 지금이라는 시간과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는 캐릭터를 보여주고 싶었다며, 실제 콘텐츠를 만드는 과정에서 스스로 위로받아온 시간에 대해 꽤 오래도록 이야기했다.
지속 가능성에 대한 숙제
이제 딩동댕대학교는 새로운 시즌 준비에 돌입했다. 전체적으로 시즌2의 콘셉트를 유지하면서 좀 더 공감을 끌어낼 수 있는 주제, 실생활과 맞닿은 이야기를 계속 찾아나갈 예정이다. ‘이번 생은 선인장’의 경우 냉정한 평가를 토대로 전면 개편의 가능성도 열어두었다. “개인적으로는 좀 더 커뮤니티화되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엄밀히 말하면 구상 단계부터 그려둔 그림이기도 하고요. 유튜브라는 게 처음엔 단순히 보는 것에만 만족하다가 점점 이야기에 개입하고 댓글도 달며 구독자들끼리 소통하게 되잖아요. 딩동댕대학교도 그렇게 MZ세대의 커뮤니티로 자리 잡으면 좋겠어요.” 그는 펭수를 기획하기 전부터 늘 대중이란 존재에 목말라 있었다. EBS가 마치 교양 있는 사람들이 모여 우아한 이야기를 나누는 외딴섬처럼 인식되는 데 답답함도 적지 않았다. 사람들이 실제로 관심을 갖는 화두에 대해 같이 이야기하고, 대중과 유대감을 형성하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었다. 다만 디지털 플랫폼의 특성상 지속 가능성에 대한 고민이 숙명처럼 따라붙었다. 유튜브 내 수익 구조가 EBS 같은 방송사 입장에서는 그리 안정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펭TV&브랜드스튜디오는 바로 그 ‘지속 가능성’을 찾아 헤매는 팀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변화의 속도가 빠른 디지털 플랫폼 안에서 성인을 타깃으로 하면서도 EBS적인 콘텐츠를 계속해서 만들어내는 것이 책임 프로듀서로서 이슬예나 PD의 숙제다. 펭수가 기존 세계관을 해치지 않으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방법이라든지 딩동댕대학교를 안정적 궤도로 끌어올리는 방법에 대해서도 꾸준히 고민하고 있다. 사실 가장 어려운 건 디지털 플랫폼에 어울리는 B급 감성과 EBS만의 정체성 사이에서 밸런스를 지키는 일이다. “정말 어려워요. 여러 기준점도 애매하고요. 결국엔 매번 새로운 것을 시도하며 직접 확인하는 방법밖에 없죠. 대신 초기 아이디어나 콘셉트를 짤 때는 최대한 자유롭게 펼쳐본 뒤 실제 만드는 과정이나 후반에 ‘선’을 조율하려고 해요. 저희 콘텐츠가 MZ세대를 타깃으로 하는데 어쨌든 저는 Z세대는 아니잖아요. 그 세대 안에서 통하는 무언가가 있을 텐데 나도 모르게 그걸 컨트롤하고 있지는 않는지 늘 고민하고 있어요. 다른 PD들에게도 자주 물어보는 편이에요.” 그가 콘텐츠를 기획하며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요소는 진정성과 의외성. 어떤 형태로든 꾸며진 모습보다는 본연의 감성과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게 중요하다고 믿는다. 워낙 사방에서 콘텐츠가 넘쳐나다 보니 그 안에서 주목을 받으려면 의외성도 필요하다. 자이언트 펭TV나 딩동댕대학교 모두 EBS의 한계를 오히려 역이용해 주목받은 콘텐츠들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EBS가 지녀야 할 ‘선한 영향력’에 대해 이야기한다. 다만 이슬예나 PD는 그 선한 영향력이란 걸 키우려면 일단은 영향력이 있어야 한다고 믿어왔다. “선함이라는 단어는 좀 모호하잖아요. 시대마다 사람마다 기준도 다르고요. 개인적으로 EBS가 지켜야 할 정체성이 있다면 그건 평생 친구로서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그는 PD로 살아온 시간을 “계속해서 자신의 한계를 발견하는 과정”이라 정의한다. 물론 즐거움도 크고 직업적 만족도도 높지만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내며 스스로의 성격이나 인격, 감각의 한계와 끊임없이 대면하게 된다. 다만 모두가 그러하듯 한계를 발견했기에 성장도 가능한 법이다. 매 순간 부딪히고 성장하며 늘 새로운 도전을 해온 이슬예나 PD의 지난 걸음이 우리로 하여금 그의 다음 프로젝트를 계속해서 기대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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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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