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무대로 돌아간 배우들
배우 오영수는 말했다. “나의 종교는 연극이다.” 쏟아지는 갈채를 뒤로하고 그는 묵묵히 다시 연극 무대에 올랐다.
BY 에디터 장혜정 | 2022.03.08
‘스크린과 연극을 종횡무진 누비다.’ 한 배우의 다재다능을 수식하는 흔한 표현이지만 한 번도 그들이 왜 스크린과 연극을 종횡무진 오갔는지 궁금한 적은 없었다. 그런데 원로 배우 오영수의 행보를 지켜보면 새삼 배우에게 연극 무대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1963년 극단 ‘광장’에서 연극을 시작해 평생 200편이 넘는 연극, 드라마, 영화를 거친 그에게 지난해는 참 특별한 ‘생의 마디’였을 것이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깐부 할아버지’로 단박에 셀럽이 된 뒤 전에 없는 관심과 찬사가 쏟아졌고 당연한 수순처럼 각종 광고, 방송 출연 요청이 쇄도했다. 분명 큰돈과 명예를 얻을 수 있는 기회였지만 오영수는 대다수의 제안을 마다한 채 뚜벅뚜벅 자신의 고향과 다름없는 연극 무대로 향했다. <오징어 게임>의 다음 행보로 연극 <라스트 세션>을 택한 그에게 출연 계기를 묻는 질문이 쏟아지자 “(대중의 관심으로) 중심이 흩어지지 않을까 염려하던 차에 좋은 연극을 만나게 돼 중심을 잡게 됐다.
나에게 종교는 연극이다”라는 말을 남겼을 뿐이다. 그저 담백하게 자기 궤도를 찾아가는 노배우의 족적이란 얼마나 깊고 선명한 가. <라스트 세션>을 통해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로 분한 그는 3월 초까지 대학로에서 열연을 펼칠 예정이다. 1월 초 공연 시작과 함께 그의 골든글로브 수상 소식이 발표되자 전석 매진 행렬이 이어지는 등 모처럼 연극계에 단비가 내리기도 했다.
한편 연극계에 활력을 불어넣은 또 다른 스타는 국민배우 황정민이다. 2018년 이후 4년 만에 또다시 연극 <리차드 3세>의 주인공을 맡게 된 그는 이번 연극 출연의 이유 중 하나로 ‘공부’를 꼽았다. 고전 작품은 시 같아서 대사를 소화하기가 무척 어렵다는 것. 그 어려운 걸 해내고 나면 다른 건 쉽게 느껴질 만큼 연기력이 는다는 게 발언의 요지였다. 과거 선배들이 그랬듯, 자신 역시 후배들에게 공부가 될 만한 작품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그의 말에는 연기에 대한 열정, 책임이 고스란했다.
그 밖에도 배우 이상윤, 이희준, 이시언 등이 최근 연극 무대로 회귀하고 있는 상황. 앞서 오영수의 ‘중심’이나 황정민의 ‘공부’ 같은 맥락에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지금껏 많은 스타들이 긴 준비 기간과 만만찮은 고생, 비교적 적은 출연료와 소수의 관객이라는 곤란함까지 감수해가며 연극 무대에 선 까닭이 궁금해지는데, 이에 대해 연극배우로 출발해 한평생 연기에 헌신한 배우 이순재는 본지에 직접 이런 답변을 들려줬다.
“배우들은 크게 영화, TV, 연극을 통해 연기를 합니다.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고 드라마는 작가의 예술이며 연극은 배우의 예술이라고 하는데 이런 점에서 좋은 배우는 감독, 작가 그리고 자신에게까지 만족을 줄 수 있도록 어느 한쪽 치우치지 않고 경험을 쌓아갑니다.” 결국 완성도 있는 연기를 위해 연극 무대 경험이 필연적이라는 뜻이다.
사실 영화와 달리 대단한 특수효과나 편집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오로지 표정과 몸짓, 대사로만 극을 이끌어가는 연극 무대의 특성을 떠올려보면 연기력을 키우기에 이보다 더 좋은 환경이 없다. 난이도 ‘상’쯤에 해당하는 무대에서 연기력 하나로만 관객의 평가를 받아보고 싶은 마음은 배우라면 한 번쯤 가져볼 법한 욕심이 아닐까? 물론 많은 스타들이 여러 매체를 통해 밝힌 ‘내가 연극 무대를 사랑하는 이유’야 한두 가지로 수렴되지 않는다.
윤석화는 “영화는 기다림이 필요하지만 연극은 즉각적인 반응이 와 보람과 희열을 느낀다”고 고백했고, 배성우는 “연극은 배우가 책임을 지는 부분이 큰 만큼 조금 더 연기가 자유롭다”는 말로 연극의 장점을 설명한 바 있다. 그런가 하면 장영남은 “드라마는 장면별로 감정을 응축해서 보여주지만 연극은 하나의 호흡으로 간다. 그런 생생한 현장에서 숨 막힐 것 같은 짜릿함을 느낀다”며 무대의 매력을 표현하기도 했다.
어떤 배우에게는 자신의 근본, 뿌리이며 또 어떤 배우에게는 도전, 성장, 관객과의 교감이기도 한 연극 무대. 어떤 이유로든 배우들의 주기적인 연극행은 대중문화 발전에 선순환을 일으킨다. 일단은 배우 자신에게 새로운 활력이 될뿐더러 출연 소식 자체가 연극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환기시키는 면이 있기 때문. 좋아하는 배우와 한 공간에서 호흡할 수 있는 기회가 점점 많아지길 기대해 본다.
일러스트
김가빈
나는신을만났다
연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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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대학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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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호선세입자
비누향기
라스트세션
오영수
리차드3세
황정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