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 거래의 도약

내로라하는 유통사가 중고 거래 시장을 탐한다. 새 제품을 판매해 수익을 내는 구조에서 중고품 거래에 눈독 들인 이유는 무엇일까?
BY 에디터 김정현 | 2022.04.14
쇼핑 채널이 변했다. 소비 리그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옮겨온 이후 쇼핑 플랫폼은 촘촘하게 진화했다. 주기적으로 사는 생필품은 A를 이용하고, 식재료는 B에서 구입하며 해외 직구와 럭셔리 제품은 C앱에서 고르는 루틴도 더는 낯설지 않다. 재화와 서비스의 종류로 구분되던 쇼핑의 기준에 몇년 전 ‘중고 거래’라는 새로운 장르가 끼어들었다. 일부 카페, 발 빠른 마니아들의 전유물로 여겼던 중고 거래는 쉽고 빠르게 일상으로 파고들었다. 2021년 번개장터의 연간 거래액은 1조7000억원을 달성했고 당근마켓은 지난해 누적 가입자수 2200만 명을 기록했다. 순간의 유행인 줄 알았던 중고 마켓의 지속적 선전은 리커머스 산업의 가치를 확 끌어올렸다. 그리고 이러한 흐름은 지금 유통 시장을 견인하는 기업의 움직임이 또 한 번 증명하고 있다. 백화점, 홈쇼핑, 마트와 같은 탄탄한 유통 채널을 보유한 회사들이 중고 마켓에 투자를 결정했기 때문이다. 신세계는 번개장터 투자에 참여했고, 롯데쇼핑은 중고나라의 지분을 94%가량 인수하는 사모펀드에300억원을 투자했다. 네이버는 한정판 리셀 플랫폼 ‘크림’을 자체적으로 운영한다. 기본적으로 유통사는 새 상품을 판매해 수익을 내는 구조다. 그런데 이에 반하는 중고 거래 시장으로 적극적인 투자가 이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MZ세대의 소비는 빈도보다 강도가 중요하다. 하나를 사더라도 내 마음에 쏙 드는 것을 택한다. 가격이나 출시일 같은 객관적인 요소는 중요하지 않다. 가치소비라 불리는 이 문화는 모든 유통사의 타깃인 MZ세대에게 핵심적인 기준이다. 타깃이 변하면 시장도 변해야 한다. 번개장터는 이러한 변화에 기민하게 대처한 플랫폼이다. 앱에만 접속해도 ‘취향을 잇는 거래’라는 번개장터의 슬로건이 물씬 느껴진다. 찾는 물건을 몇 번 검색하면 알고리즘이 계속해서 내게 맞는 물건을 추천해준다. 이 전략은 객관성보다 주관성이 앞서는 소비 기준을 가진 소비자를 끌어모으며 프리미엄 시장에서도 입지를 굳혀가는 중이다. 지난해 번개장터는 스니커즈에 프리미엄 가격을 붙여 되팔 수 있는 오프라인 매장 ‘브그즈트 랩’을 개장했다. 더현대 서울에 위치한 1호점은 1년 사이 누적 방문자 수 20만 명을 기록했다. 번개장터의 투자를 주도한 신세계 밴처캐피탈 시그나이트파트너스 역시 리커머스 플랫폼 중 번개장터를 택한 이유로 “명품, 스니커즈, 골프 등 브랜드 중고품 거래에 특화되었기 때문”이라 밝혔다. 중고품의 위상이 ‘N차 신상’으로 달라져 백화점 신상 부럽지 않은 가치를 갖게 된 건 이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한편, 대기업이 리커머스에 투자하는 타당한 이유로 많은 전문가들은 ESG를 꼽는다. 팬데믹 이후 가속화되는 환경·사회·지배구조와 같은 요소를 고려했을 때 리커머스는 가치소비의 주요 요소가 된다. 소비자 입장에서도 빠르게 생산되고 쉽게 버려지는 흐름을 탈피하고자 리커머스 플랫폼을 선택하는 것은 환경을 위한 안전하고 편리한 실천인 셈이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점은 리커머스 플랫폼이 찾아낸 수익 모델에 있다. 사실 리커머스 시장은 어마어마한 가입자 수에도 불구하고 그간 적자를 면치 못하는 신세였다. 개인 간 거래를 중개하는 플랫폼으로서 수익 모델이 부재했기 때문인데, 최근에는 나름의 전략이 쏠쏠한 성과를 가져오고 있다. 예를 들어 자체 결제 시스템인 번개페이의 비중을 늘리고 포장 택배와 같은 부가서비스 기능을 만든 번개장터는 지난해 거래액 1조7000억원 중 번개페이를 통해 3000억원이 거래되는 성과를 얻었다. 거래액의 18%에 달하는 금액이니 수수료를 따져본다면 꽤 성공한 수익 모델로 볼 수 있다. 당근마켓 역시 지난 2월 간편결제 서비스 당근페이를 출시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동네 가게 홍보 서비스인 ‘비즈프로필’로 소상공인의 광고 서비스도 전개한다. 중고나라의 경우 투자처인 롯데와 합작해 수익성 개선에 몰두하고 있다고 밝혔다. 롯데의 온·오프라인 유통망과 중고나라 서비스를 결합해 새로운 모델을 창출한다는 계획이다. 오늘날 나름의 생태계를 구축한 리커머스 플랫폼의 움직임은 기업 입장에서 꽤 탐나는 형태일 수밖에 없다. 새로운 파이프라인을 창출하는 동시에 포트폴리오를 확장하는 데도 수월한 덕분이다. 결국 변화하는 사회 문화는 시장을 움직인다. 내로라하는 유통사들의 투자와 협업도 어쩌면 시기의 문제였을 뿐 소비자의 변화에 따른 당연한 선택이었을지 모른다. 리커머스 플랫폼 덕분에 안전하고 편해진 중고 거래는 앞으로 다양한 유통채널의 노하우가 더해져 더 맛있고 거대한 파이를 완성할 것이다. 이들이 어떤 방식으로 시너지를 발휘할지, 그 혜택과 편의가 소비자에게 어떻게 돌아올지 흥미진진하게 지켜볼 일이다.

일러스트

김가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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