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가 된 라이프스타일 편집숍

남다른 취향과 전략으로 편집의 기준을 하나의 브랜드로 확장한 편집숍의 이유 있는 성공.
BY 에디터 김정현 | 2022.04.29
그릇에도 ‘급’이 있다는 걸 이 일을 시작하고 깨달았다. 에디터의 업무를 배우는 어시스턴트로 일을 시작한 첫 달 선배의 촬영장에서 생애 처음 70만원짜리 그릇을 마주했다. 조금 전 에어캡으로 돌돌 말아 들고 온 제품이 내 한 달 용돈보다 비싸다는 사실은 꽤 충격적이었다. 유명 디자이너의 작품이라서, 재료가 특별해서 비싼 줄로만 알았던 그릇은 보면 볼수록 스스로 가치를 증명했다. 조명에 따라 달라지는 그림자, 빛에 따라 조금씩 밝기를 달리하는 영롱함, 유려한 곡선의 조화를 넋 놓고 바라봤다. 제품의 가치를 알고 난 뒤 나는 협찬받은 물건을 픽업하기 위해 편집숍을 방문할 때마다 제품에 상처를 내지 않을까 가슴을 졸였다. 당시 챕터원, 이노메싸, HPIX와 같은 편집숍이 서울 곳곳에 둥지를 틀었고 몇 년 새 ‘라이프스타일 편집숍’이라는 부제를 내건 매장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이제는 온·오프라인 할 것 없이 어딜 가나 편집숍을 만날 수 있고 경험할 수 있는 세상이 됐다. 하지만 다양해진 시장에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편집숍은 극히 제한적이다. 감각적인 가구로 집을 꾸민 이들은 대개 1~2개의 편집숍 제품으로만 공간을 완성하고, 편집숍 대표는 인플루언서로서 영향력을 끼친다. 편집숍이 브랜드를 선택하는 취향과 감성 자체가 이미 하나의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편집숍은 어떻게 브랜드로 확장되어 새로운 형태로 진화하게 된 것일까?
편집의 의미
책을 닮은, 책을 담은 타월북 <노인과 바다> 시리즈. 핸드풀드 프린트 포스터와 프린팅 기법을 적용한 파르베샵의 오브젝트. 도형을 분해, 해체, 재조합해 나타나는 형태를 탐구한 구보도자기공방 머그컵.
편집숍은 다양한 브랜드의 제품을 판매하는 매장을 뜻한다. 시장에 존재하는 여러 브랜드 중 상품 기획자 혹은 대표가 어떤 기준 아래 제품을 선택해 판매하는 곳이다. 셀렉트 숍이라고도 하는데 특정 브랜드 매장이 아니라면 사실상 재화를 판매하는 대부분의 매장이 편집숍이다. 따지고 보면 개인이 운영하는 동네 마트 역시 편집숍이 될 수 있다. 문제는 편집의 기준이다. 얼마나 새롭고 명확하며 예리할 것인가. 파리를 대표하는 편집숍으로 1997년부터 명맥을 이어온 콜레트는 2017년 창업자 콜레트 루소의 은퇴와 함께 문을 닫았다. 패션계에서 가장 힙하거나 성장 가능성이 있는 제품을 모아 판매하기 시작한 콜레트는 20년간 세계적인 디자 이너의 사랑을 받았다. 칼 라거펠트는 생전에 한 인터뷰에서 “쇼핑하러 가는 유일한 장소”라고 표현했으며 그 이유에 대해 “그 누구도 팔지 않는 제품을 판매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편집숍의 가치를 결정하는데 편집의 기준은 전부인 셈이다. 난잡하고 복잡한 수집이 아닌잘 짜인 맥락 있는 콘텐츠 말이다. 동시에 편집은 영감과 인사이트를 제공해야 한다. 콜레트 역시 매주 다양한 디자이너와 독점 컬래버레이션을 진행하고 발칙한 선물을 구성하는 등일상에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콘텐츠를 기획했다. 쓸모없는 것을 덜어내고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해주는 기획은 편집이라는 콘텐츠가 사랑받는 가장 큰 이유다. 하나의 콘텐츠를 정교하고 섬세하게 전략적으로 설계한 결과 자체가 ‘편집’이라는 하나의 과정이 된다. 잘 정리된 편집이 때로는 취향이라는 이름으로 트렌드를 주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같은 편집이라도 진심이 담긴 큐레이션일 때 편집의 의미가 살아난다. 최근 대부분의 온라인 편집숍은 AI를 기반으로 사용자의 취향에 맞는 제품을 추천해주는 기술을 장착했지만 이렇게 구매한 물건이 큰 감동을 주지 못하는 이유와 같다.
자본주의 키즈의 취향 소비
서촌에 위치한 오에프알 서울 매장 전경. 핸드풀드 프린트 포스터와 프린팅 기법을 적용한 파르베샵의 오브젝트.
누구에게나 취향이 있다. 유독 눈길이 가는 물건과 질리지 않는 색, 이유 없이 마음과 손길이 가는 펜 그 자체가 하나의 취향인 셈이다. MZ, 자본주의 키즈라 부르는 새로운 세대는 이러한 취향에 적극적이다. 취향에 죽고 취향에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원하는 것을 사는 일에 편견이 없고, 소비를 통해 행복을 추구하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다. 관대한가 싶지만 오히려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구축한 이들의 무궁무진한 취향을 저격하기란 쉽지 않다. 편집숍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 여러 매장중 이들의 사랑을 받는 곳은 단순히 좋은 물건을 갖춘 곳이 아니다. 같은 물건이라도 어떤 것과 함께 어떻게 보여주며 나름의 세계관을 구축하는지에 달렸다. 편집의 과정으로 구축한 세계관에 입장한 이들은 편집 콘텐츠에 팬덤을 형성하기도 한다. 새로운 세대를 맞이한 편집숍의 진정한 가치는 얼마나 입체적인 세계관을 쌓느냐에 있다. 그 편집숍의 물건이라면 일단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브랜드로 진화한 편집숍의 비결은 과연 무엇일까?
오에프알 서울 대표 박지수
견고한 취향을 위한 성실함
서촌에는 작은 프랑스라 불리는 공간이 있다. 60~70년 된 주택은 세계 각지에서 모인 책과 형형색색의 소품으로 채워져 있다. 팬데믹 상황임에도 주말이면 발 디딜 틈 없이 줄을 서서 쇼핑해야 할 정도로 인기다. 4년 전 서울에 상륙한 오에프알 서울의 이야기다. 오에프알 서울은 프랑스 파리 마레 지구 에서 20년 이상 사랑받고 있는 예술 독립 서점 오에프알 파리의 분점으로 덴마크 코펜하겐에 이은 두 번째 매장이다. 수십 년간 여러 예술가들과 다양한 협업을 진행하며 쌓은 25년의 역사를 품은 곳이다. 삼성물산의 편집숍 비이커와 프랑스 명품 브랜드 발망의 MD로 근무한 박지수 대표는 교환학생으로, 이후 유학으로 파리에 머물며 오에프알 파리 대표 알렉스와 친분을 다졌고, 이후 서울에서 오에프알의 정체성을 펼쳐 보였다. 오에프알 서울에는 박지수 대표가 단독으로 전개하는 셀렉트 숍 미라벨도 함께 있다. 매장 1층은 오에프알의 서적과 에코백, 티셔츠 등을 판매하고 2층 매장에서는 미라벨의 세계를 보여준다. 미라벨의 경우 프랑스 유학 시절 좋아하는 것을 판매하자는 생각으로 시작한 일이 어느새 편집숍의 형태를 갖추게 된 케이스다. 오에프알과 미라벨은 타인의 취향을 탐닉하는 것 같은 분위기로 파리의 감성을 완성한다.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 같은 아이템을 공수해 판매하는 박지수 대표는 오에프알 서울×미라벨의 정체성을 다음과 같이 설명 한다. “오에프알의 정체성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파리 본점과의 연결성이에요. 매주 신간과 새로운 물건을 보내줄 정도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요.” 그가 이야기하는 연결 성은 비단 제품뿐 아니라 공간의 위치, 디스플레이 방식과 같은 부가적인 요소로도 이어진다. 하나의 정교한 상품을 보여 주기보다 다양한 상품을 친숙하게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 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식이다. 이러한 경험은 팝업과 이벤트로 확장되기도 한다. “오에프알 서울에서 처음으로 판매하기 시작한 한국 서적이 <아무샹>이에요. 프랑스 아무샹 지역을 여행한 김모아·허남훈 부부의 기록인데 작가 부부와 함께 책과 관련된 음악과 영상을 제작해 지하에 상영실을 만들어 전시하고 북 콘서트도 진행했어요. 날씨 좋은 날에는 요리를 잘하는 친구를 데려와 다이닝 팝업을 열기도 했죠. 자연스럽게 미라벨의 제품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였어요.” 본점의 대표 알렉스가 써준 문구를 실크스크린으로 에코백이나 티셔츠에 찍어주는 등의 이벤트도 진행하며 박지수 대표는 편집숍을 보여주는 방식을 보다 다채롭게 구성했다. 하지만 브랜드로서 편집숍의 정체성을 견고하게 완성하는 데 무엇보다 중요한 건콘텐츠인 제품이다. 새로운 걸 발견하고 그 안에서 취향에 맞는 물건을 찾아내는 건 결국 경험을 바탕으로 한다. “한결같이 매일 바쁘게 부지런을 떨어야 해요.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일에 지치지 않는 게 편집숍에 가장 필요한 동력이라고 생각 해요.” 끊임없이 새로운 브랜드를 추적하고 좋은 물건을 찾아 파고드는 과정은 박지수 대표에게 일상과도 같은 일이다. 브랜드가 고유의 아이덴티티를 쌓아가기 위해서는 꾸준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박 대표는 강조한다. “언제든 다시 왔을 때 ‘이런 점은 그대로인 것 같은데, 또 아주 새로운 게 있네’라고 느낄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해요. 방문할 이유를 만들어주는 게편집숍이 존재하는 가치죠. 새로운 것을 보여주기 위한 꾸준한 노력이 중요해요.” 취향을 우직하게 밀고 끊임없이 성실함을 유지해야 편집숍의 역사를 구축해나갈 수 있다는 걸 그는 몸소 보여주고 있다.
찹스틱스 대표 서강석
명료한 비즈니스 모델 전략
찹스틱스의 시작은 서강석 대표의 개인적인 경험에서 싹텄 다. 삼성전자 영국 지사 생활가전 부문의 서비스팀에서 일한 그는 가구 디자인을 전공하는 친구의 졸업 전시회에 초대받 았다. 그리고 당시 그가 목격한 장면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전시에서 조금 전 감상했던 친구의 작품이 순식간에 팔리더 라고요. 작품을 구매한 사람은 컬렉터도 아닌 일반인이었죠. 예술 세계에 대해 잘 알지 못했지만 대학교 졸업 전시회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다는 점, 이렇게 쉽게 작품이 팔릴 수있다는 점이 충격이었어요.” 반면 그는 한국으로 돌아와 멋진 작품을 만들고도 유통과 비즈니스의 한계에 부딪혀 괴로워하는 지인의 이야기를 들었다. 예술품에 대한 두 나라의 극명한 온도 차가 창작자를 발굴하고 유통하는 온라인 편집숍 ‘찹스 틱스’의 출발이었다. 찹스틱스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예술품을 판매하는 곳으로 독특한 오브제를 찾는 MZ세대의 보물창 고로 통한다. ‘오늘부터 아트테리어’를 슬로건으로 소품을 중심의 아트테리어 커머스 플랫폼을 구축했다. MZ세대를 중심 으로 유례없는 부흥을 맞이한 예술시장에서 창작자와 소비 자를 만족시키기 위해 필요한 채널이라 생각했다. 예술의 대중화를 꿈꾸며 독창성과 심미성, 실용성을 비롯해 서강석 대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셀렉트 기준은 가격이다. 예술품을 집으로 들이는 문화를 안착시키기 위해서는 접근 가능성을 낮추는 것이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숙제라고 생각했다. 현재 찹스틱스에 입점한 아티스트는 250팀 정도로 장르와 규모는더 확장할 예정이다. 그는 가장 좋아하는 편집숍으로 메이드닷컴과 카바 라이프를 꼽는다. “메이드닷컴의 경우 다양한 디자이너와 흥미로운 협업을 진행해요. 브랜드의 규모나 창작자의 유명세 여부는 개의치 않죠. 사회적 지속 가능성을 실현하는 문화를 잘 실천하고 있는 곳이에요. 카바 라이프는 웹사이트를 비롯해서 NFT 제작 등 아티스틱한 콘셉트에 맞는 마케팅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로워요.” 철저한 계획과 서사를 쌓아 제품을 소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임을 서강석 대표는 알고 있다. 제품을 구매한 사람들의 후기를 갤러리 형태로 전시한 ‘ARTroom’, 작가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제품의 비하인드 스토 리를 꺼내놓는 것도 찹스틱스를 중심으로 창작자와 소비자를 긴밀히 연결하기 위한 장치다. 창작자를 위한 판로 구축이라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시작한 사업은 어느새 MZ세대에게 친숙한 브랜드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현재 서강석 대표는 찹스 틱스의 글로벌 시장 진출까지 내다보고 있다. 젓가락을 뜻하는 영어 단어 찹스틱스를 브랜드명으로 채택한 것 역시 아시아 시장을 위한 선택이다. “디자인이나 예술 분야에서 유명한 플랫폼이 구축된 유럽이나 북미와 달리 아시아는 아직 잠재된 시장이에요. 일본, 홍콩, 대만 등 아시아의 예술 분야를 아우를 수 있는 플랫폼을 개발하고자 아시아 문화를 상징하는 젓가락을 떠올렸죠. 여러 국가의 아티스트 제품을 소개하고 협업의 기회를 만들 예정이에요.” 온라인이라는 공간의 한계를 극복하고 하나의 문화를 만들어가는 선한 영향력의 미래는 기대해봐도 좋다.

사진

이기현 장진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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