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봇의 최후

말을 하는 족족 질문하는 상대를 대하는 일은 쉽지 않다. 질문에도 수위와 눈치가 필요하다.
BY 에디터 류창희 | 2022.06.14
사랑하는 조카가 말을 하기 시작했다. “이모, 이건 왜 그런 거야?” 검색을 해가며 성심성의껏 답변했는데 대답은 듣는 것 같지도 않다. 그런 후 다시 돌아오는 말은 같다. “이모, 이건 뭐야?” 정말 궁금해서 하는 질문이 아니라 질문을 위한 질문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말끝마다 ‘왜?’라는 질문을 하는 조카와 2시간 놀아주다 집에 오니 귀에서 ‘왜’라는 단어가 계속 맴돈다. 질문 폭격에 시달리면 키즈 카페에서 열심히 몸으로 놀아준 것만큼의 피로도가 쌓인다. 자, 여기까지는 사랑스러운 조카니까, 아직 세상을 향한 호기심이 충만한 나이니까 참을 수 있는 수준이다. 하지만 말이 끝남과 동시에 ‘왜, 왜?’라고 하는 성인을 대하는 일은 상당한 인내심을 필요로 한다. 세상의 모든 질문봇이여, 이제 질문에도 수위와 눈치가 필요하다는 것을 학습하자. 방법을 잘 모를 때는 배우면 된다. 대화 주제에 따라 해야 할 질문과 하지 말아야 할 질문을 구분하는 눈치 장착하는 법을 알려준다.
solution 1 궁금증은 궁금증으로 남겨두자
‘물어볼까 말까’ 헷갈리는 질문은 일단 하지 말자. 생각보다 당신의 뇌는 매우 똑똑해서 주인의 위험신호를 감지하고 한 번 더 생각해보라고 말리는 것이다. 질문봇들이 끓어오르는 질문을 참지 못하고 질문을 토해 내서 결국 상대방의 마음을 상하게 했을 때 꼭 하는 말 중 하나는 “궁금한 걸 참을 수 없었어”다. ‘어른이 되는 과정은 인내’라고 누군가 그랬다. 궁금증, 호기심을 참지 못해서 친구에게 손절당하는 사람이라면 가족, 더 나아가 회사에서는 대체 얼마나 많은 질문을 쏟아낼 것인지 짐작 가능하다. 상대에게 묻지 말고, 차라리 팩트를 알려주는 검색 엔진에 물어 보자. 원하는 답을 얻지 못했다 해도 그냥 시원하게 포털 사이트 욕을 하는 편이 낫다.
solution 2 질문도 타이밍이다
질문을 많이 한다고 무조건 질문봇이 되는 것은 아니다. 누가 봐도 질문이 많은 친구인데 주변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은 경우도 있다. 이럴 때는 그 사람의 질문 타이밍을 먼저 파악해야 한다. 사랑만 타이밍에 민감한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에서 타이밍은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소다. 상대방의 기분과 현재 이 공간의 흐름, 공기를 잘 파악하고 질문을 던지면 상대에게서 답을 들을 수 있다. 그것도 제법 원하는 답변을 말이다. 시도 때도 없이 궁금하다고 물어보지 말고, 타이밍을 엿볼 것. 하지만 회사에서는 타이밍만 엿보다가 일을 그르칠 수도 있다. 사수 중에는 간혹 “모르는 게 있으면 찾아보지 말고, 그냥 물어봐”라고 하는 꽤 합리적인 사람도 존재한다. 신입사원이 뭘 모르는지도 모르면서 엉뚱한 정보의 바다에서 헤매는 시간을 절약해서 업무 효율을 높이겠다는 의지다. 함께 일하는 동료가 어떤 사람인지 파악한 후 접근하자.
solution 3 선의는 반드시 통하지 않는다
월요일에 출근을 해 물티슈로 책상을 닦는다. 주말 내내 쌓였던 먼지를 닦으며 이번 주도 잘 해보자며 스스로에게 다짐한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그때 옆자리 선배가 출근한다. 출근한 지 이제 일주일, 아직 제대로 된 일감을 받지 못했고 언제까지 책상이나 닦고 있을 순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렇게 선배에게 “선배, 도울 일 있으세요?”라는 질문을 던졌다. 지난주 월요일에 첫 출근해서 이번 주 월요일까지 6일째 같은 질문을 던지는 중이지만 그 선배는 약간의 미소를 보여줄 뿐 별다른 리액션을 하지 않았다.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바빠 보이는 선배를 돕고 싶었는데 오늘은 지난 일주일 동안 한 번도 본 적 없던 선배의 싸늘한 표정을 보게 됐다. “가만히 좀 있어요. 도와줄 것없냐고 그만 좀 묻고.”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었을 뿐인데 선배 나름으로는 나를 귀찮고 부담스러운 존재로 인식했던 것이다. 시간이 흘러 그 선배와는 술잔을 기울이며 그날의 일을 에피소드 삼아 얘기할 수 있을 정도로 친해졌지만 그때는 정말 야속했다. 하지만 지금은 알게 됐다. 잘 모르는 사람이 계속 웃으면서 도와줄 것 없냐고 묻는 것이 얼마나 속 터지는 일인지.
solution 4 최선이 전부는 아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면접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는 답변은 면접관들에게 신뢰감을 심어줬다. 어떤 일이든 맡겨만 주면 뭐든 최선을 다해 해내겠다는 당찬 포부를 밝히는 면접자를 보면서 면접관들은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세상은 달라졌고, 최선보다는 ‘잘’ 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회 초년생의 경우 가장 흔하게 하는 실수 중 하나가 일거리를 찾아 어슬렁거리는 한 마리의 하이에나가 되는 것이다. 당신이 신입사원이라는 걸 모두가 알고 있다. 일부러 일거리를 주지 않는 게 아니라 선배들에게는 걸음마도 떼지 못한 당신에게 업무 프로세스를 설명할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뭐라도 해야 할 것 같고, 선배들은 바빠 보이는데 그저 책상에서 인터넷이나 할 수밖에 없는 지금 이 순간이 너무 답답하더라도 일단은 기다리자. 괜히 순회공연하듯 선배들 한 명, 한 명에게 다가가 “선배님 뭐 시키실 일 없으세요?”라는 질문을 하며 상대방을 곤란하게 하지 말고. 당신의 도움이 필요하면 이제 제발 그만이라고 해도 일을 떠넘길 테니 질문에 최선을 다하지 말자. 질문하는 것에 최선을 다하기엔 세상엔 최선을 다해야 할 일들이 너무나 많다.
solution 5 두 번 말하게 하지 말 것
주변에 사람이 많고 인기 있는 사람은 세심함이 특징인 경우가 많다. 상대의 말을 귀 기울여 듣고, 그 내용을 잘 기억했다가 다음 만남에 지나가듯 툭 묻는 것이다. “그때 말하던 그 일은 잘 해결됐어?” 이런 식으로 말이다.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찰나의 순간에 흘린 말을 기억해 무심하게 챙겨주는 듯한 질문을 받으면 상대방에게 내가 꽤 소중한 사람이라는 인식이 생긴다. 세심함이 몇 번 반복되면 상대는 어떤 잘못을 해도 어느 정도는 용서되는 ‘까방권’을 획득하게 된다. 반대의 경우엔 역시 손절각이다. 영혼 없는 질문인지도 모르고 성심성의껏 답했는데 다음에 똑같은 질문을 또 한다면 상대방에 대한 감정이 한순간에 비호감으로 변한다. 기억력이 안 좋으면 메모를 하든지, 그것도 아니면 미안한 척이라도 해야 하는데…. 보통 이런 유형의 사람들은 얼굴이 몹시 두껍다. 상대방의 말을 듣는 척만 했다가 꼭 되묻는다. 더 최악은 되물은 후에도 답변에 집중을 하지 않는다. 두 번, 세 번 똑같은 질문을 반복하는 것은 무관심이라기보다는 습관이다. 무관심은 관심으로 바뀔 수 있지만 습관은 하늘이 무너지는 경험을 하지 않으면 바꾸기 어렵다. 그게 나쁜 습관이라면 더더욱.
solution 6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
특히 회사 생활에서 가슴에 새기고 뼈에 새겨야 할 말이다. 물론 총학생회장 재질로 먼저 나서서 조직의 ‘인싸’가 되고 싶다면 말리진 않겠다. 하지만 본인에게 그런 인싸력이 있는지 차분히 생각해보자. 먼저 나서서 괜히 나대는 이미지를 심어주기보다는 주어진 일부터 하는 편이 현명하다. 큰 칭찬은 받을 수 없지만 큰 손해도 없는 회사 생활을할 수 있을 것이다. 본인의 목표가 가늘고 길게 회사에서 오래 살아남는 것이라면 우선 주위를 살피고 가만히 있어볼 것. 시키는 일만 기계적으로 하는 것과는 다르다. 주어진 일에는 최선을 다하고, 일에 있어서 몸을 사린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저것 다 할 수 있을 것처럼 사내를 쑤시고 다니더니 정작 자기 일은 데드라인 하나 지키지 못하는 사람보다는, 조금은 남들에게 무신경해 보여도 본인 업무만큼은 깔끔하게 해내는 사람이 훨씬 낫다. 그렇게 자기 일을 꾸준히 하다 보면 좋은 기회가 올 가능성이 커진다.
solution 7 의도는 빼고, 의견은 넣는다
간혹 아이에게 책을 읽어줄 때 답을 정해놓고 묻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면 이렇다. “‘곰돌이가 사과를 들고 뛰었어요. 봐봐, 곰돌이가 사과를 들고 있지? 사과가 영어로 뭐지?” 이런 식이다. 아이는 곰돌이가 사과를 들고 ‘왜’ 뛰었는지, 혹은 왜 다른 과일도 아닌 하필 사과였는지 궁금할 수도 있는데 갑자기 영어 문제를 내는 것은 엄마가 ‘애플’이라는 답을 듣고 싶어서가 아닐까. 명확한 답을 기대하며 묻는 질문은 아이는 물론 어른에게도 큰 부담이다. 상대의 대답이 무엇인지가 궁금한 것이 아니라 ‘자, 나는 질문을 했어. 너는 내가 원하는 대답을 해’라는 식의 질문은 대화의 흐름은 물론 관계까지 단절될 가능성이 커진다. 의견을 묻는 질문을 할 때 가장 좋은 태도는 내 의견을 먼저 밝히는 것이다. 간혹 눈치를 많이 보는 타입의 사람이라면 제대로 본인 의견을 내지 못할 가능성도 있지만 일단은 내 생각을 먼저 말한 다음 상대방의 생각을 묻는 것이 올바른 대화 방식이다. 대뜸 상대방에게 “넌 어떻게 생각해?”라고만 물으면 상대방은 어떤 대답을 해야 당신의 마음에 들지를 고민하게 되거나 테스트를 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돼 기분이 상할 수도 있다. 질문의 의도는 넣어두고, 의견은 더해 질문 해보자.

일러스트

김가빈

타이밍
대화
인간관계
궁금증
질문
질문봇
의견
0
SINGLES OFFICIAL YOUTUBESINGLES OFFICIAL YOUTUBE

같이 보면 좋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