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예술의 경계 앞에 서다
과연 AI가 만든 창작물은 예술일까, 아니면 기술에 기댄 모방일까?
BY 에디터 류현경 | 2022.11.18
오래 전 유럽의 미술관에서 렘브란트의 초상을 처음 마주했던 순간을 기억한다. 집요하게 흩트린 색의 경계와 유령처럼 화폭을 떠돌던 빛과 그림자, 켜켜이 숨어 있던 굴곡진 생의 단편들. 고백하건대 그보다 아름다운 초상화를 본 일은 이후에도 없었다. 2016년 렘브란트미술관이 마이크로소프트, 델프트 공대와 함께 ‘넥스트 렘브란트’라는 AI를 개발했다는 소식은 그래서 더 충격적이었다. 이 AI는고작 18개월 만에 렘브란트의 화풍 그대로 초상화를 만드는 데 성공했는데, 거장의 붓질 습관, 캔버스에 올린 물감의 높낮이까지 정밀히 묘사해 전문가들을 경악시켰다. 물론 찬사만큼 비난도 쏟아지며 예술은 아직 ‘인간계의 영역’이라는 사실을 공고히 했다. 그로부터 고작 6년, 이제 AI의 인간계 진입은 단순히 호사가의 입방아에서 끝나지 않은 거대한 사회적 담론을 끌어내기에 이르렀다.
미술은 물론 문학, 음악, 무용 등 인간의 창의성에 기반한 모든 분야에 AI가 깊이 침투해 있기 때문. 2018년에는 사람이 전혀 개입하지 않은 AI 소설 <1 the Road>가 출간됐고, 지난해 말에는 도이치텔레콤의 ‘베토벤 프로젝트’를 통해 AI가 미완성으로 남은 베토벤의 10번 교향곡을 완성시켰다. 얼마 전 AI 시인의 작품을 엮은 한국 최초의 AI 시극 <파포스>가 대학로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가장 강력한 논란의 불씨는 최근 미국 콜로라도 주립 박람회 미술대회에서 디지털아트 부문 대상을 차지한 ‘스페이스 오페라 극장’이 지폈다. 출품자인 제이슨 앨런이 “작품 제작에 미드저니를 사용했다”고 밝힌 탓이다. 미드저니는 문장이나 단어를 입력하면 그에 맞는 일러스트를 생성하는 AI 그림도구다. 문제는 이 툴만 있으면 누구든 붓에 물감 한 방울 묻히지 않고도 전시에 내놓을 만큼 완성도 높은 대작을 완성할 수 있다는 사실. 주최측은 대회 규정에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이미지 편집을 허용한다고 명시했으니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이지만, 당장 순수예술계에서는 부정행위나 다름없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논란의 핵심은 분명하다. 과연 AI가 만든 창작물이 작품으로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가? 이에 대해선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예술로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 순수예술에 대한 모독이라는 입장이 여전히 첨예하게 대립 중이다. 사실 AI 작품이 ‘첨단 기술에 기댄 표절’이라는 주장에도 일리는 있다. 기본적으로 AI의 훈련을 위해서는 수많은 기존 예술 작품이 필요하다. 즉, 타인의 창작물을 허가 없이 수집하고 학습한 뒤 알고리즘에 따라 혼합한 결과물인 셈이다. 여기엔 우리가 소위 명작과 모작의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도 한몫한다. 거장의 작품이 숱한 모작과 구분되는 이유는 단순히 작품 자체가 지닌 미학의 차이만은 아닐 터. 많은 이들이 주장하듯 예술의 중요한 창조적 근원은 예술가 자신의 삶과 사유이며, 그로 인한 작품이 시대적 환경, 역사적 맥락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배제할 순 없다. 또 다른 문제는 ‘과연 누가 작업한 것인가’에 관해서다. 실제 AI 작품의 경우 창작의 경계가 굉장히 애매하다. 완성된 작품을 놓고 인간과 AI의 역할 지분을 가르기가 쉽지 않은데, 이는 곧 저작권의 문제로 이어진다.
한국을 포함해 대부분의 국가에서 통용되는 저작권법은 저작물을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로 정의한다. 당연히 저작물의 주체도 인간에 한정한다. 그러므로 AI 작품의 저작권이 AI의 개발자에 있는지 혹은 사용자에 있는지, 인간과 AI의 협업 작품이 과연 저작물로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선 앞으로도 치열한 논의가 불가피해 보인다. 최근 게티이미지가 AI 작품의 업로드 및 판매를 전면 금지한 것도 바로 이 저작권 문제 때문이다. 로봇이 개입함으로써 인간의 1차적 창의력보다 뛰어난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으니 AI를 사용하는 창작자와 순수 창작자들 사이의 공정한 경쟁에도 의문이 제기된다. 뉴그라운즈(Newgrounds)나 퍼어피니티(Fur Affinity) 등 세계적인 온라인 예술 커뮤니티들이 AI 작품 게시를 금지하기 시작한 이유다. 퍼어피니티 측은 “아티스트와 그들의 콘텐츠를 지원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인 만큼 AI 생성 콘텐츠를 허용하는 게 커뮤니티에 최선의 이익이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강조한 바 있다.
물론 변화의 조짐도 보인다. 가장 먼저 총대를 멘 건 2012년부터 AI 인격에 대한 논의를 시작한 유럽연합. 특히 영국, 아일랜드 등 일부 국가에서는 이미 저작권법에 관련 정의를 세운 뒤 창작을 위해 직접 AI를 다룬 사람을 저작권자로 규정하고 있다. AI 작품에 냉담했던 미국 역시 지난 9월 미드저니로 완성한 SF 만화 <새벽의 자리야>의 저작권을 처음으로 인정했다. 단, 미 저작권청은 AI가 아닌 작업자에게 저작권을 부여했는데, 이 결정이 향후 다른 분야에 어떻게 적용되고 확장될 것인가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중이다. 당장 AI 합작물로 공개된 영화, 음악, 뮤직비디오 등 관련 분야의 저작권 문제가 쏟아지는 상황이기도 하다. ‘스페이스 오페라 극장’을 출품한 게임 기획자 제이슨 앨런은 “기술을 미워하기보다 이제는 강력한 도구임을 인정하고 사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새벽의 자리야>를 기획한 작가 겸 프로그래머 크리스 카시타노바 역시 “AI로 무언가를 창작할 때 저작권을 소유하는 선례를 만들고 싶었다”며 “사람들이 새로운 기술을 활용한 창의성에 집중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사실 기술의 발전은 지난 수세기 동안 알게 모르게 예술 시장을 끊임없이 변화시켜왔다. 마치 철도 교통의 발달이 인상주의를 꽃피우고 TV의 발명이 미디어아트의 새 영역을 개척한 것처럼. AI의 진입이 인류의 창의적 세계를 얼마나 뒤흔들지는 아직 미지수지만, 분명한 건 이제 더 이상 ‘불편하다’며 고개를 돌릴 수만은 없는 현실이라는 것. 전문가들은 AI의 창작물에 대한 규정이 인문, 사회, 과학, 예술 등 광범위한 분야의 전문가 논의를 통해 심도 있게 다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술은 끝없이 진화할 것이고 인간과 AI의 노동력을 구분해 가치를 매기려는 시도 역시 앞으로 점점 더 심화될 터이다. 많은 이들의 우스갯소리처럼 AI 아티스트의 등장이 ‘이미 닥친 미래’라면, 그 미래를 어떻게 활용하느냐는 결국 인간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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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가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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