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순간, 노상현

인생의 중요한 순간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저 믿을 뿐이다. 노상현은 지금 더 유연한 마음으로 나아가는 중이다.
BY 에디터 송혜민 | 2022.12.26
셔츠, 팬츠, 슈즈 모두 드리스 반 노튼.
오버사이즈 풀오버 이자벨 마랑 옴므.
가장 바쁜 한 해를 보냈다. 요즘의 바쁨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나. 사실 정신없이 촬영이 이어질 땐 생각할 겨를도 없다. 눈앞의 일을 해내기도 빠듯하다. 잠시 쉬는 시간이 있을 때 오히려 바쁨을 실감한다. 물론 버거울 때도 있지만 대체로 감사하다. 바쁜 건 시간이 지날수록 적응되기 마련이니까. 2022년은 배우 인생에서도 중요한 해로 기록될 것 같다. 지난 1년을 되돌아보면 어떤지. 열심히 했고, 고생했고, 또 잘했다. 당장 떠오르는 단어는 이런 것들이다. 어느 때보다 결과물을 많이 확인한 해이기도했다. 내 연기를 보면 늘 아쉬움이 남고, 생각이 깊어져서 마냥 마음 놓고 보지는 못하는 게 사실이다. 그것과 별개로 2022년엔 현장 안팎에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그것만으로도 의미 있었다. 쉬지 않고 작품을 이어갈 수 있었던 노상현의 매력은 무엇일까? 사실은 진짜로 모르겠다. 스스로에게서 장점보다는 단점을 더 많이 발견한다. 타고나기를 자기 비판적이며, 좀처럼 만족할 줄 모른다. 부족한 것만 보는 나 자신이 때로는 괴롭다. 예전엔 그런 감정에 쉽게 매몰되곤 했는데 이제는 내가 나를 끌어내리지 않도록 노력한다. 일을 대하는 자세도 많이 바뀌었겠다. 아쉬운 부분이 보여도 ‘괜찮다’ 고 스스로를 다독인다. 그리고 그 순간을 넘기고 넘기면서, 지금의 아쉬운 부분을 반복하지 않으려 노력하지. 일에 있어서도 결과보다는 과정, 과정 속의 성장이 중요하다는 걸 배웠다. 이제는 ‘최선을 다했다면 넘어가자’고 생각한다.
퍼 코트, 레터링 티셔츠 모두 돌체앤가바나, 팬츠 렉토.
리사이클링 니트 베스트 르쥬, 팬츠 렉토.
그렇다면 지금의 노상현은 유연해지는 과정에 있다고 볼 수 있을까. 조금은. 예측할 수 없이 변하는 상황에 자연스레 올라타는 연습을 하 고 있다. 도전해보고 싶은 것이 있으면 그냥 해보고, 생각하지 않았던 방식으로도 시도하고. 그런 것들은 해보지 않으면 배울 수 없으니까. 내 안에 갇혀 있지 않으려고, 바깥으로 시선을 넓히려 하는 중이다. 매번 새롭게 바뀌어야 하는 배우라는 직업이 잘 맞겠다. 맞다. 이 직업 만이 가질 수 있는 매력이다. 그래서 더 재미있고, 더 하고 싶어진다. <파친코>의 이삭, <연예인 매니저로 살아남기>의 상욱, <커튼콜>의 문성까지. 올해만 세 명의 인물을 만났다. 캐릭터를 선택하는 판단 기준이 궁금하다. 내가 할 수 있을지 직관적으로 판단하는 편이다. 대본을 읽으면서 캐릭터와 내 모습이 겹쳐지는 부분이 본능적으로 상상될 때가 있다. 평소 어떤 일을 결정할 땐 걱정도 생각도 많다. 그런데 작품 은 오로지 캐릭터만 보고 결정하는 건 아니니까, 직관을 믿는다. 직관을 믿고 선택한 올해의 세 인물은 기억에 어떻게 남아 있나. 각각 의 캐릭터로부터 얻은 즐거움이 너무 달랐다. 우선 이삭은 가치관이나 작은 생각까지도 너무 소중히 대하고 싶은 사람이었다. 가장 순수하고 소중한 존재처럼 느껴졌다고 할까? 상욱은 촬영 현장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편안했고, 재미있었고, 곽선영 선배와의 호흡도 좋았다. 매회 시청자들의 반응이 터지는 걸 보면서 짜릿하기도 했겠다. 아무래 도 아무 반응이 없는 것보다는 좋았지. 다음에도 기회가 있다면 로맨스를 해보고 싶다. <커튼콜>의 문성은 어땠나. 문성은 내게 도전이었다. 북한 사투리나 액션 모두 처음 시도하는 것들이었거든.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것들을 짧은 시간에 해내야 하는 역할이었기 때문에 도전이라 표현하고 싶다. 한계를 깨는 경험을 준 인물이다. 새 드라마 <피타는 연애> 공개를 앞두고 있다. 촬영은 오래전에 끝마쳤다고 들었는데, 어떤 작품인가. 남북한이 통일을 앞두고 DMZ 부근에 부 대를 결성한다. 그곳에 한국의 아이돌 가수가 입대해 북에서 온 간부와 의 로맨스를 그린 작품이다. 나는 한국계 미국인 존 킴으로 등장한다. 파 병 온 미군인데, 남북한 병사들 사이의 갈등을 완화하는 역할을 한다. 본격적으로 영어로 연기하는 모습을 볼 수 있겠다. 존 킴은 오히려 한 국말이 서툰 사람이다. 그래서 재미있었다. 이 인물에 나를 선택한 이 유가 명확했고, 내가 뭘 해야 하는지도 분명히 보였다. 출연 결정까지 고민의 시간도 짧았다.
셔츠 드리스 반 노튼.
처음 배우 활동을 시작할 때, 그렸던 미래가 있는지 궁금하다. 그때도 모르겠고, 지금도 모르겠다. 그냥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지? 어떻게 해야 잘 하는 거지?’라는 생각만 한다. 유명한 시상식에서 상을 받는 배우가 되는 것도 좋겠지만 그걸 목표로 연기하진 않는다. 노상현이 계속 연기하게 만드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내가 온전히 캐릭터와 작품의 순간에 살 수 있게끔 만드는 시간. 즐겁기도 하고 어떨 땐 고통스러운데 그보다 희열이 더 크다. 내가 지금 100% 몰입했었다는 확신이 들거든. 최근 그런 희열을 느낀 순간이 있나. <파친코> 촬영 현장에서 드물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배우가 자유롭게 이끌어나갈 여지가 많은 현장 이었다. 그걸 만드는 건 오롯이 배우의 몫은 아니더라. 현장의 수많은 스태프들이 얼마나 많은 준비를 했는지 안다. 배우가 혼자서 노력한다 고 해서 되는 일은 아니라는 걸 배웠다. 배우로서 중요한 성장의 모멘텀이겠다. 적응인지 성장인지 알 수 없으나 더 나아지고 있다는 추상적인 느낌만은 확실하다. 작품이 끝날 때마 다 개인적으로 겪는 변화나 감정도 다르니까. 그 변화들이 성장이었는지 알기 위해선 시간이 좀 더 필요하겠지. 맞다. 그런데 좋은 쪽으로 가는 거라고 믿고 있다. 항상. 2023년을 맞이하는 마음가짐도 궁금하다. ‘잘 해오고 있다. 하던 대로 열심히 하자. 네가 가는 길이 맞는 길이다. 그냥 가자.’ 이런 생각들을 한다. 최선을 다하는 걸로 만족해야지.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어떻게 될지는 사실 아무도 모른다. 간절히 원했던 무언가를 갖지 못했을 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알기 때문이다. 불행한 삶을 사는 것 같은 기분 은 내가 만드는 것 같다. 주어진 환경에서 최대한의 노력을 해내는 것. 거기에 의미를 두며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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