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한 신발의 반란

값비싼 신발로 치장해야 인정받던 시대는 옛말. 부담 없이 손에 넣을 수 있는 ‘흔한 신발’이 거리를 점령했다.
BY 에디터 임나정 | 2023.02.24
1 선명한 레드 슬랙스에 베이식한 블랙 컬러 가젤을 더한 김나영. 2 모델이자 배우 정호연 역시 아디다스 삼바의 매력에 푹 빠져 있다. 3 18만9000원 아디다스 오리지널스.
모두가 한정판 신발에 열광하던 때가 있었다. 특정 스니커즈의 발매일 마다 텐트를 치고 줄을 서는 진풍경은 아무렇지 않은 일상이 되었고, 래플 기간이면 경쟁률이 수백 대 일일 것이라는 흉흉한 소문과 함께 너도나도 SNS에 좋고 나쁜 결과를 전시했다. 고배를 마신 자들이 비싼 웃돈을 얹으면서까지 기어코 ‘플미 슈즈’를 손아귀에 넣는 광경도 그다지 생경한 모습은 아니었다. 차익으로 수익 창출을 노린 리셀러들 간의 경쟁이 아니었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으나, 분명한 것은 이토록 갖기 어려운 신발을 팔지 않은 채 직접 신고 활보하는 이들에 대한 선망의 시선이 존재했다는 점이다.
1 R블랙핑크 로제는 레더 재킷에 카무플라주 패턴의 팬츠, 플랫폼 어그로 스트리트적인 면모를 과시했다. 2 모터사이클 재킷과 브리프, 어그 부츠까지 예측 불가한 스타일을 완벽히 소화해 회자된 벨라 하디드의 룩 3 크롭트스웨트 셔츠에 트레이닝 팬츠, 그리고 어그까지 편안하면서도 사랑스러운 무드를 연출한 제니.
하지만 유행은 늘 예기치 않게 전복되는 법.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한 번씩 당첨되어도 내 것은 없을 것이라는 자조 섞인 ‘현실 자각’ 때문이었을까, 혹은 신발 하나에 전전긍긍하는 자신의 모습에 대한 염증 때문이었을까? 지금의 트렌드는 이전과는 사뭇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동네 스포츠 브랜드 매장 어디서나 손쉽게 구매할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한 신발이 되레 가장 힙한 아이템으로 취급받게 된 것!
1 항상 즐기는 헤드투토(Head to toe) 블랙 착장에 뉴발란스 574를 매치한 애슐리 올슨. 2 25만9000원 뉴발란스. 3 가격미정 문부츠. 4 보디라인이 오롯이 드러나는 보디 슈트와 상반된 형태의 벌키한 문부츠로 극적인 스타일링을 연출했다.
이 극적인 신분 상승은 사실 언제나 우리의 패션 레이더가 향하고 있는 할리우드 셀러브리티들로부터 조금씩 전파되고 있었다. 대표적 스타일 아이콘인 애슐리 올슨이 유년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뉴발란스 574를 신고 뉴욕 거리를 성큼 걸어 나서거나, 슈퍼모델 카이아 거버가 오니츠카 타이거의 멕시코66을 근사하게 소화해내는 것을 목격했을 때의 신선한 충격이란! ‘튜닝의 끝은 순정’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절로 실감이 나는 순간이었다. 물론 내로라하는 패션 하우스들과 스포츠 브랜드의 성공적인 컬래버레이션 역시 이러한 현상에 크게 일조한 바 있다. 아디다스 오리지널스는 구찌, 웨일즈보너와 지속적인 협업 컬렉션을 출시 중이고, 아식스는 신예 디자이너 키코 코스타디노브와 파트너십 체결 후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기세를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다.
1 아방가르드한 스커트에 살로몬 스니커즈로 여성스러운 룩을 선보인 차정원. 2 호화스러운 퍼 코트와 버킨 백 조합에 여유를 선사한 나이키 코르테즈. 3 과감한 컬러의 룩에 스니커즈를 매치하면 부담 없이 드레스 다운 할 수 있다. 4 아식스와 키코 코스타디노브 컬래버레이션 시리즈는 컬러풀한 룩을 즐기는 이들에게 제격이다.
흔한 신발의 반란이 스니커즈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지난 겨울에는 혹독한 날씨를 대비한 ‘방한템’ 정도로 여겼던 어그가 품절 대란을 일으키며 국내외 셀럽은 물론 리얼웨이까지 완벽히 침투하는가 하면, 2000 년대 패리스 힐튼이 즐겨 신던 문부츠가 Y2K 열풍을 타고 두아 리파, 켄달 제너 등 MZ세대를 대변하는 패션 인사이더들의 인스타그램에 단골로 등장하며 화려하게 부활하기도 했다.
1 22만원 오니츠카 타이거. 2 아디다스 삼바를 즐겨 신기로 유명한 해리 스타일스의 순간을 포착했다. 3 오버사이즈 재킷과 플레어 팬츠 조합에 옐로 컬러 멕시코66으로 룩을 완성한 카이아 거버.
길고 길었던 겨울이 서서히 막을 내리며 새로운 시즌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항상 우리 곁에 존재해온 것들 중 우리는 어떤 아이템을 전과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며 탐닉하게 될까? 패션을 향한 기민한 움직임과 존재 자체의 멋을 찾아낼 줄 아는 심미안을 지녔다면 정답을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사진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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