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최초' 타이틀을 단 여성들

LCK 최초 여성 프로게이머 당무와 한국 최초 여성 비행사 김경오. 세상의 룰을 바꾸며 '최초'라는 타이틀을 단 "룰브레이커" 2인의 이야기
BY 에디터 양혜연, 장은지, 송혜민, 김나래, 김현선, 김희성, 류창희, 이지혜 | 2023.03.17
최초를 넘어 정상을 향해
당무는 구독자 25만 명의 유튜버이자 약 19만 명의 팔로어를 거느린 트위치 스트리머. 무엇보다 리그 오브 레전드 세계에서 이미 자기만의 영역을 확실히 구축한 프로게이머다. 그는 멈추지 않고 LCK 최초의 여성 프로게이머로 커리어를 확장했다. 당무는 LCK 챌린저스 리그 데뷔를 목표로 2023년 시즌을 시작한다.
리브 샌드박스 프로게이머
당무
스스로를 ‘프로게이머’라고 소개하는 모습이 멋졌다. 입단 테스트에 통과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현실감이 없었다. 지금은 숙소 생활을 하고, 프로 선수 스케줄에 맞춰 훈련하는 일상을 보내고 있다. 리그 오브 레전드(이하 ‘롤(LoL)’)에서 챌린저 티어를 달성한 뒤 프로 도전에 욕심이 생겼다고 말한 적있다. 롤은 랭크가 굉장히 세분화돼 있다. 아이언, 브론즈, 실버, 골드, 플래티넘, 다이아몬스, 마스터, 그랜드 마스터 그리고 마지막이 챌린저다. 챌린저는 대부분 프로들 혹은 롤에서도 이름난 실력자들이 모인 티어다. 게임을 시작할 때 목표로 했던 걸 이루고 나니 꿈 같았다. 사실 챌린저를 달성하면 끝일 줄 알았는데 더 체계적으로 배워 보고 싶은 욕심이 생겨서 프로에 도전하게 됐다. 포털 사이트에 ‘롤 챌린저’라고 검색만 해도 당무 선수 소식이 많이 뜬다. e스포츠 시장에서도 화제였던 사건(?)이었다. 외국에는 챌린저에 여성 유저들이 꽤 있는 걸로 안다. 그런데 한국 서버에서는 거의 최초의 일이라 더 주목을 받은 것 같다. 프로게이머의 하루는 어떻게 흘러가는지 궁금하다. 오전 11시에 출근해서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스크림’이라고 하는 연습 게임을 한다. 저녁을 먹은 뒤 10시까지 다시 스크림이 있다. 그 이후부터는 개인 랭크를 올리는 솔로 랭크를 한다. 솔로랭크를 마치면 보통 새벽 4시쯤이다. 하루 12시간 넘게 훈련한다는 말인가. 나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프로 선수들이 그렇게 한다. 프로에 입단한 게 가장 실감날 때는? 집에서 혼자 게임할 때는 온전히 내 의지로 게임을 했다면 이제는 일정한 루틴이 생겼다. 또 팀 메이트들과 계속 소통하고, 합을 맞추면서 훈련하니까 다른 선수들이 소통하는 방법, 오더를 내리는 방법 같은 걸 많이 배운다. 게임에도 타고난 재능파가 있고, 노력파가 있을 것 같다. 어느 쪽에 가깝나. 재능은 잘 모르겠고 게임에 정말 많은 시간을 들였다. 어려서부터 게임을 리플레이하며 상황을 다시 복기하는 훈련을 해왔다. 마치 오답노트처럼. 또 상대의 시선에서도 내 플레이를 본다. 그러면 잘한 점과 고쳐야 할 점 같은 것들을 발견할 수 있다. 당무의 장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선을 탄다’고 표현하는데, 상대를 자극해서 내가 유리하게 상황을 이끄는 데 강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상대의 행동을 예측하는 일종의 심리전이다. 사실 리스크가 크다. 잘 안 되는 날은 ‘트롤링’이라고 완전히 못한 플레이가 된다. 내 전략의 성공 확률을 높이는 게 프로에서 다듬어야 할 숙제다. 남성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시장이다. 여성으로서 어려운 점은 없나. 게임을 하다 보면 여성 비하 발언이나 악플을 다는 상대편도 종종 나타난다. 그런데 내가 더 잘하니까 괜찮다. 실력이 떨어져서 혹은 그냥 시비걸고 싶은 마음에 그런 행동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더라. 프로게이머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LCK 최초 여성 프로 게이머로서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많은 경험을 해보라고 말하고 싶다. 나는 한 챔피언만 주로 하던 편인데, 프로에서는 여러 챔피언을 할 줄 알아야 하더라. 다양하게 경험해두면 게임에 대한 이해도도 높아진다. 프로게이머로서 어떤 꿈을 꾸나. 좋은 기억을 남기는 선수가 되고 싶다. ‘이 사람 정말 잘한다’는 타이틀을 얻었으면 한다. 당무가 생각하는 좋은 선수란? 시야를 넓게 보고, 변수 창출을 할 줄 아는 선수. 유리한 상황에서 이기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질 것 같은 상황에서도 상황을 한 번 전환시킬 줄 아는 선수가 좋은 선수라고 생각한다. 타고난 승부사 기질이 있어 보인다. 어렸을 때부터 늘 남들보다 더 잘하고 싶은 욕심을 원동력 삼았다. 공부도 ‘쟤보단 잘해야지’ 했고, 그림도 ‘저것보단 잘 그릴래’ 하면서 열심히 그렸다. 게임도 마찬가지다. 경기에서 지고 분한 마음에 잠 못 잔 적도 있나. 남한테 밀려서 분했던 적? 없다. ‘쟤보다 잘해야지’ 했던 사람들한텐 다 이겼다. 챌린저를 달성했던 것처럼, 설정해둔 목표가 있다면. 정상이다. 프로게이머는 나이가 어릴 때 전성기라는 게 일반적인 상식인데 그렇지 않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어디가 ‘정상’이라고 생각하나. 월드 챔피언십 우승이다. 모든 게이머들의 꿈 아닐까?
한계를 모르는 비행사
“지금 이건 70년 전 이야기예요.”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최초의 여자 비행사가 된 김경오는 하늘을 날며 자신의 한계와 주위의 편견을 부수어왔다. 그는 도전 정신 하나로 여기까지 왔다고 말하며, 훈장을 달고 세상의 룰을 바꾸느라 지금도 즐겁다.
한국 최초 여자 비행사
김경오
공군 최종 합격 통지서를 받고 나서야 무슨 시험인지 알게 되었다고. 어릴 적 장래희망이 뭐였나? 초등학교 5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장래희망을 적으라고 했더니 남자아이들은 의사, 여자는 죄다 간호사라고 적었다. 한 아이만이 밀림 속 타잔이 되고 싶다고 썼다. 그 아이가 바로 나였다. 어려서부터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겠다는 꿈이 있었다. 공부에는 별 관심이 없었지만 수학과 물리를 좋아했다. 그러던 중 이승만 박사가 대통령이 되면서 수백 명의 사관 생도 중 여자를 15명 뽑으라고 했다. 여자 조종사를 홍보대사로 삼아 비행기에 태극기를 붙이고 전 세계를 다니며 한국이 독립했다는 걸 알리기 위해서였다. 거기에 내가 뽑혔다. 여자 공군이 없던 시절이었다. 주위의 반응이 어땠나?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공군에 최종 합격했지만 아버지는 결사반대했다. 여자가 군인이 되는 것은 집안 망신이라고. 내가 좀체 뜻을 굽히지 않자 방에 가두고 문을 잠가버리기까지 했다. 여기서 포기하면 나 김경오가 아니란 생각으로 창문을 넘었다. 동의서에 부모님 서명을 받지 못해 조종사 후보생 모집을 주관하는 신익희 국회의원의 도장을 받아 우여곡절 끝에 입대할 수 있었다. 여자라는 이유로 동료들이 경례도 하지 않고 전투기 조종이 아닌 정비, 기상 상황 보고만 시켰다고. 참모총장에게 ‘여자는 애국하면 안 됩니까’ 라고 했던 일화도 유명하다. 여자라는 이유로 전장에 나갈 기회가 주어지지 않더라. 진급될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나를 포함해 두 명만이 소위 계급장을 달았다. 제대하라는 무언의 압박을 견디던 중 남은 한 명의 동료마저 임신을 하며 제대했다. 어느 날 대통령이 방문한다는 소식을 듣고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으로 유서를 작성하고 다음 날 대통령 앞에 가 내 할 말을 하고 자리로 돌아왔다. “제가 여자라는 이유로 조종을 안 시켜줘서 못 하고 있습니다. 경례!” 이후 참모총장으로부터 사천 훈련장에서의 비행 훈련 지시가 떨어졌다. 첫 단독 비행을 한 순간은 어떤 기분이었나? 1952년 5월 12일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손발톱을 깎아 깨끗한 종이에 싼 다음 유서와 함께 어머니에게 전했다. 단독 비행을 하다 목숨을 잃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비밀문서를 전달하는 수송 업무를 주로 맡았다. 조종간을 잡을 때 무섭진 않나? 비행기를 보지도 못했는데 갑자기 군인이 됐고 군인 정신과 애국심 하나로 ‘죽어도 좋다’는 각오를 하는데 왜 안 무섭겠나. 자연도 그렇고 인간도 그렇고 안 되는게 있다. 그렇지만 그걸 뚫고 나간다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그것이 도전 정신이다. 도전 정신에서 죽고 사는 것을 생각하면 안 된다. 조종석에 올라가기 전에 마음을 깨끗이 비운다. 지상에서 있었던 일, 기뻤던 것, 어제까지 했던 일을 다 비워내고 ‘나는 이제부터 이 비행기를 타고 생사를 가르는 데까지 올라가야 한다’는 마음을 먹으면 잡생각이 사라진다. 비행기를 타고 몇만 피트 올라가면 딴 세상이다. 항상 파란 구름만 있는 게 아니라 갑자기 벼락도 치고 비가 온다. 하늘에서 생기는 자연 현상이 다 목숨과 관계되는 일이다. 그때의 나는 비행기를 믿고 비행기는 내가 믿는 것만큼 잘 움직여줘야 한다. 휴전 이후 뜻하지 않게 미국 유학을 가게 된 것은 인생의 또 다른 도전이겠다. 어느 날 대통령이 전쟁은 끝났으니 미국에서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돌아와 후학을 양성하는 것이 내가 할 일이라고 했다. 고단한 미국 생활에서도 고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목표는 항상 생활의 중심이 되었다. 조국을 위해, 후배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 비행기를 한 대 가지고 가야겠다는 목표가 생겼다. 백화점이나 마트에서 물건을 사고 나서 계산할 때 거스름돈 대신 주는 우표를 모아 비행기를 사야겠단 아이디어 를 떠올렸다. 당시 그린 스탬프 10장이 1센트 가치였으니 한 장에 0.1센트 인셈이다. 이후 그린 스탬프 모금 운동이 시작됐고 전국 각지에서 그린 스탬프를 보낸 우편물이 도착했다. ‘그린 스탬프의 기적’이었다. 강연 요청이 오면 멀더라도 달려가 내가 겪은 전쟁 이야기를 들려주고 한국에 대해서도 알렸다. 화제가 되자 비행기 제조회사인 파이터에서 경비행기 ‘파이터 콜트’를 기증하겠다는 연락이 왔다. 요즘에는 또 어떤 도전을 하고 있나? 나는 비행사이면서 여성운동가다. 한국여성항공협회를 만들었고 대통령을 만날 기회가 있을 때마다 공군 사관학교에 여생도를 뽑아야 한다고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그러다 김영삼 대통령이 후보이던 시절, 내가 여성단체협의회 의장이었을 때 여생도의 사관학교 입교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1997년이 돼서야 공군사관학교에 20명의 여자 조종사를 뽑았다. 48년 만에 그렇게 원하던 일이 이루어진 거다. 지금까지 25년이 흐르는 동안, 공군에서 대단히 유명한 편대장, 교육장 등 중요한 역할을 모두 여자 조종사가 도맡고 있다. 목적을 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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