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계에 등장한 여성들

한국 1호 프로야구 중계 메인 디렉터 정효진 PD와 최연소 여자 야구 국가대표인 야구선수 김라경.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는 야구계에 등장한 여성 2인의 이야기.
BY 에디터 양혜연, 장은지, 송혜민, 김나래, 김현선, 김희성, 류창희, 이지혜 | 2023.03.24
야구를 사랑하는 마음만으로도
KBS N(당시 sky KBS) 공채 1기 제작팀 PD로 입사한 정효진 PD는 지난해 한국 1호 프로야구 중계 메인 디렉터가 됐다. 야구를 너무 사랑해서 야구가 어렵고 무섭다는 그는 지금도 프로야구 여성 PD 중계 역사를 처음부터, 새롭게 쓰고 있는 중이다.
KBS N PD
정효진
프로야구 원년 삼성 라이온즈의 강타자였던 정현발 전 감독의 딸이라고. 아버지랑 친한 야구 기자들이 집에 자주 왔는데 ‘야구 기자가 되면 야구도 맨날 볼 수 있어 좋겠다’고 생각했다. 대학 때 MBC ESPN이 처음 생겼고, 졸업 후 sky KBS 스포츠 제작팀 공채 1기로 입사했다. 지난해 입사 21년 만에 프로야구 메인 디렉터 자리를 맡았다. 여성으로는 대한민국 최초다. 프로야구 메인 디렉터 자리는 적어도 15년 이상은 돼야 한다는 불문율이 있다. 23살에 입사했다 하더라도 15년 차면 38살이다. 그나이 때 여자들은 대부분 결혼을 했거나 아이가 있다. 야구는 주 6일을 경기하고, 한 시즌의 절반은 출장을 간다. 여성 메인이 나오기 쉽지 않은 종목이다. 내가 최초가 된 건 대단해서가 아니다. 버텼다는 데 의미가 있다. 메인 디렉터를 맡았을 때 주위의 관심이 뜨거웠을 것 같다. 팀장님이 야구 메인을 할 수 있겠냐고 물었을 때 “힘들 것 같은데요. 제가 너무 못해서 누를 끼칠까 봐요”라고 했더니 “그 이유가 다야? 그럼 그냥 해”라고 하셨다. 팀장님은 내가 집에서 아내, 며느리, 엄마인데 1년의 절반을 집을 비우는 상황을 감당할 수 있냐는 질문을 한 거였다. 그때 남편 반응이 더 놀라웠다. “그거 하려고 시작한 일인데 기회가 있으면 해야지”였다. 그게 꼭 ‘더 멋지게 일하라’는 말로 들렸다. ‘9 to 6’로 출퇴근하고, 본분을 다하는 엄마를 바라는 줄 알았는데 내 착각이었다. 그렇게 2022년 시즌을 준비하던 마음이 어땠나. 야구를 떠나 있던 시간 동안 신인이었던 선수가 베테랑이 돼 있고, 알고 지냈던 선수는 코치가 돼 있고, 프랜차이즈 스타가 FA로 팀이 바뀌어 있고. 모르는 게 너무 많았다. 중계진보다 야구를 더 잘 아는 팬도 얼마나 많나. 어쭙잖게 접근했다간 큰일 나겠다 싶었다. 메인 디렉터라는 자리의 무게를 실감했겠다. 입사 초기, 야구 중계 슬로모션 조연출 PD로 7~8년 정도 근무했을 땐 부산 원정을 가는 KTX 안에서 쿨쿨 잘만 잤다. 그런데 메인 디렉터가 되고 나서는 너무 긴장되고 무서워서 한숨도 못 잤다. 매 경기마다 ‘이걸 내가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했는데 정신 차려보니 시즌이 끝나 있었다. 야구 선수처럼 지키는 본인만의 루틴도 있다고. 경기가 시작하면 4시간 넘게 화장실에 못 갈 수도 있어서 아침에 커피도 안 마신다. 또 중계를 마치고 새벽 1시부터 재방송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본다. 다음 날 아침에는 타 방송사 중계를 본다. 온종일 야구 생각만 하고 산다. 현장은 어떤가. 남성 위주라 거칠다는 이야기도 많은데. 요즘은 구단 직원들도 여성이 많이 늘었다. 또 프로야구단 자체 SNS 채널 PD들도 대부분이 여성이다. 그분들을 보면 꼭 어릴 때의 나 같아서 우리 카메라 감독님에게도 “구단 PD님들 촬영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한다. 열심히 하려는 모습이 너무 예쁘고 좋아 보여서, 아무도 몰래 나만의 소소한 동료애를 갖고 있다. 여성 디렉터라서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고 생각하나. 이제 고작 두 번째 시즌을 맡는 입장에서 ‘뭘 잘한다’고 하긴 민망하다. 그저 야구 팬들에게 공감할 뿐이다. 삼성 라이온즈가 13연패를 할 때 관중석에 ‘사랑한다’고 쓴 플래카드를 든 팬이 있기에 내보냈는데, 경기 후 야구 커뮤니티에 라이온즈 팬들이 그 장면에 눈물이 났다고 글을 남겼더라. 또 선수의 부상 장면을 거듭 보여주지 않는다든가 하는 식으로, 야구인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려 한다. 스포츠 PD의 매력은. 20년 넘게 싫은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일을 한다는 건 감사한 일이다. 40대 후반을 바라보는 아줌마가 퇴근하면서 “오늘 너무 재미있었다. 아~개운하다” 할 수 있는 직업이 몇이나 될까? 같은 목표를 꿈꾸는 여성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 다른 방송사에도 능력 있는 여성 후배들이 많다. 감히 조언하기보다 당부하고 싶은 건 일희일비하지 말자는 것. ‘여자라서 더 잘할 수 있다’는 담대한 마음을 가졌으면 한다. 2023년 시즌, 정효진 PD의 각오는. 야구 선수들에게 2년 차 징크스라는 게 있다. 나도 좀 익숙해졌다고 방심하면 안 된다는 걸 계속 되뇌인다. 작년에 손에 땀이 나서 중계 테이블이 흥건했던 걸 잊지 말자고. 이번 시즌은 스토브리그부터 팔로업을 잘 했다. 팀을 옮긴 선수를 맞이하는 팬의 마음 혹은 보낸 아쉬움, 팀의 우승 혹은 탈꼴찌를 간절히 바라는 팬도 있을 거다. 그 마음을 잘 담는 중계를 하겠다. 비시즌 동안 다른 종목 중계 현장에 가 있는 카메라 감독님이 가끔 문자를 보내온다. ‘빨리 봄이 왔으면 좋겠어요’라고. 야구는 기다리는 마음마저 좋다.
취미가 아닌 직업인으로의 도전
여자 야구는 취미를 넘어 직업이 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김라경은 야구를 하고 싶다는 일념으로 없던 룰을 만들고 규정을 바꿔가며 한국 리틀야구 최초의 여자 선수, 대한민국 최연소 여자 야구 국가대표, 대학야구연맹 사상 첫 여자 선수라는 역사를 쓰고 있다.
야구 선수
김라경
여자 야구 선수도 직업이 되게 하겠다고 여러 인터뷰에서 말한 적 있다. 남자 선수는 초등학교 유소년 리그, 중고등학교 야구부, 대학교 혹은 프로 같은 다리가 있는데 여자 선수는 리틀야구단이 끝이다. 여자 야구부가 없다 보니 리틀야구단에서 중학교 1학년 때까지만 뛸 수 있다. 야구를 계속 하고 싶은데 할 곳이 없어 리틀야구연맹 감독님에게 양해를 구해 혼자 훈련을 했다. 야구를 하고 싶다는 목소리를 계속 내다 보니 여자 선수들이 중학교 3학년까지 야구를 할 수 있게끔 룰이 바뀌었다. 많은 분들이 ‘김라경 특별 룰’이라고 부른다. 룰을 바꾼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다. 어떤 힘으로 정해진 규칙을 깼나? 야구를 하고 싶다는 마음 하나였다. 앞으로도 나처럼 야구를 하고 싶어 하는 아이들이 있을 텐데 상황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종의 책임감이라고나 할까. 목소리를 냈더니 변화되는 것이 보였고 한 번 더 용기를 냈다. 여자 선수도 대학 엘리트 야구 리그에서 뛸 수 있도록 대학야구연맹의 규정도 바꿨다. 서울대학교 진학을 목표로 한 것도 야구를 하고 싶어서였겠지? 리틀야구연맹의 규정을 바꿔 그나마 중학교 3학년 때까지 할 수 있게 된 건데 그다음 루트가 없으니 중간 다리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언론 인터뷰 등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가 생길 때마다 대학에 가서도 야구를 하는 것이 목표라는 이야기를 계속해서 했다. 여자도 야구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 곳은 비선수 출신들이 모여 대학 리그에 참여할 수 있는 서울대학교가 유일하다 생각했다. 운동을 하면서 공부도 열심히 한다는 건 힘든 일이다. 힘들긴 했지만 그게 본분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선택했기 때문에 해야 하는 것 말이다. 나의 본분은 학생이고 학생으로서는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는 게 맞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두 가지를 감내해야 했다. 한국에서 여자 야구 선수로 산다는 건 없던 길을 만들어나가는 것과 동일하다. 늘 최초, 최연소라는 수식어가 붙는데 부담스럽지는 않나? 최초라는 건 맨 처음 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니 처음에는 부담스럽기도 했다. 항상 좋은 결과만 낼 수는 없기에 무서울 때도 있었지만 한번 룰을 바꾼 용기를 갖고 대학교에 진학한 경험이 쌓이다 보니 자신감도 생겼다. 경험이 쌓여 더 책임감을 갖게 되고 자신 있게 나아갈 수 있다. 여자 야구단 JDB(Just Do Baseball)를 창단한 것도 자신감이 붙어서 가능했겠다. 학생 때부터 나와 같은 꿈을 꾸는 학생들이 환경에 구애받지 않고 마음껏 야구를 할 수 있는 장을 만드는 데 기여하자는 생각을 하다 결심했다. 감독은 프로선수 출신인 우리 오빠다. 나는 단장이자 경영진, 플레잉코치를 동시에 맡다 보니 팀을 운영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도 알게 됐다. 선수들이 입을 유니폼이나 구장 후원도 필요해 제안서 작업도 정말 많이 했다. 1000만원가량의 물품 지원을 따내고, 야구 유튜버와 협력해 중계도 했다. 야구 하면서 돈을 쓰지 않게 하겠다는 철칙으로 사비도 많이 썼다. 2기 창단에 도움을 받기 위해 팀을 브랜딩하고 마스코트를 만들어 펀딩도 했다. 1기는 2000년대 이후 출생한 선수가 대부분이었다면, 2기는 범위를 넓혀 만 29세 이하의 여성 중 체계적으로 야구를 배워보고 싶은 분들을 모집하려 한다. 일본 실업팀 진출도 여자 선수 최초다. 어릴 때부터 일본 리그 진출이 꿈이었다고. 꿈을 이룬 건가? 아직 이루지 못했다. 학교도 휴학하고 1년 반 동안 몸을 만들어 연초부터 합류하는 일정이었는데 코로나로 비자를 받을 수 없어 6월에 겨우 나가게 됐다. 첫 연습 경기, 첫 번째 공에 뼈가 부러지고 인대가 끊어져 꿈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왔다. 다시 몸을 만들어 새로운 마음으로 도전하려 한다. 돌아와서는 행정 공부를 하고 싶다. 야구뿐만 아니라 다른 스포츠 선수들의 이야기나 환경을 다 알고 아우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일본에서 돌아와 재활에 힘쓰고 있겠다. 토미존 수술도 여성 최초를 기록했다.(웃음) 왼쪽에 있는 인대를 끊어 오른쪽에 이식하는, 재활 기간이 1년 정도 걸리는 큰 수술이지만 야구 선수들한테는 흔한 수술이다. 오빠도 두 번이나 했지만 여성 야구 선수 중에는 내가 처음이라 전례가 없다. 확실히 남자 선수와 여자 선수는 피지컬 차이가 있으니 내 몸과 재활 지표가 기록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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