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신영의 청춘의 조각
스물다섯 이신영의 생각과 말, 눈빛, 손짓과 목소리를 설명할 문장을 찾다가 결국 한 단어에 머무르고 만다. 누구에게나 한 조각의 기억으로 남아 있는 순간, 그가 지금 지나고 있는 건 청춘의 한가운데다
BY 에디터 문승희 | 2023.04.28.jpg)
셔츠 이에이, 슬리브리스 톱 렉토, 네크리스 돌체앤가바나.
“천기범이라는 캐릭터가 마음에 들었던 이유가 뭐예요?”라고 물었더니 이신영은 “아… 그게 뭐더라…” 하며 한참이나 단어를 골랐다. “맞아, ‘진솔함’이요!” 그리고 커닝이라도 하듯 무릎 앞에 내려놓은 종이 한 장을 뒤적여 답을 찾았다. 인터뷰에 앞서 미리 보낸 질문지에는 펜으로 밑줄 긋고, 동그라미 친 흔적이 빼곡하다.
그 순간 오버랩되는 영화 <리바운드> 속 기범의 훈련일지. 새 작품을 선보인 배우에게 ‘캐릭터와 어떤 점이 닮은 것 같아요?’라고 으레 하는 질문이 소용없어지는 순간이었다. 이토록 성실한 인터뷰이라니. 기범과 꼭 닮은 이신영의 견실함은 영화 속에서도 고스란하다.
사실 그가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농구라고는 하나도 모르는 사람이었다는 걸 누구라도 알아채지 못할 만큼. “농구는 당연하고 축구, 야구 같은 구기 종목에 전혀 관심이 없었어요. 완전히 처음부터 공부하고 몸에 익혀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죠. 그런데 그것보다 실화라는 설렘이 더 컸어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이야기가 주는 힘을 믿거든요.”
이신영은 장항준 감독의 신작 <리바운드>를 첫 영화로 만났다.
교체 명단도 없이 선수 다섯 명으로 전국대회 준우승에 오른 2012년 부산 중앙고 농구부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그는 이 영화에서 키가 자라지 않아 슬럼프에 빠진 포인트 가드, 천기범 역으로 분했다. 이신영은 오디션을 준비할 때부터 본격 촬영에 들어가기 전까지 오전 2시간, 오후 2시간 하루에 4시간씩 농구에 매달렸다. 집에 돌아오면 유튜브를 검색해 실제 천기범 선수의 자세나 말투, 목소리, 눈빛이나 사소한 제스처를 보고 또 봤다. 선수의 작은 습관까지 마치 본인 것인 듯 거듭 연습했다.
2012년 그때로 돌아간 듯한 디테일이 완성된 건 오로지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본인을 비롯한 배우들의 성실함도 눈여겨봐주기를 당부했다. 그러면서 캐릭터로의, 농구 선수로의 근육이 조금씩 자랐다. 팔과 다리에, 눈빛에, 마음에 붙은 근육들이 이신영에겐 자신감이 됐다. “작품에 대한 욕심이 강했거든요. 시간이 지날수록 스스로도 내 농구가 성장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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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더 재킷 구찌, 티셔츠 카비시, 데님 팬츠, 슈즈 디젤, 언더웨어 슈프림, 네크리스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스스로를 키운 것이 성실함이었다면, 현장에서 그를 키운 건 진짜 농구팀처럼 두터워진 동료애였다.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장항준 감독의 무조건적인 믿음이었다.
촬영을 앞두고 감독, 배우들이 함께 농구 경기를 보러 갔을 때, 공부하며 관전하느라 무의식적으로 인상을 쓴 이신영을 보고 장항준 감독이 곁에 다가왔다. 그러고는 딱 한마디를 건넸다. “신영아, 내가 널 뽑은 건 너 자체가 기범이라서야. 그렇게 심각하게 준비하려 하지 말고 동료들 사이에 섞여 들어봐. 그냥 상황 안에 살아보는 거야.” 이신영은 그 짧은 말에서 감독이 배우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배려이자 인간적인 존중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래서 현장에서 ‘더 재미있게 놀았다’. 그런가 하면 촬영 현장에서는 ‘우리’가 캐릭터로서 이야기하고 있다는 카타르시스를 경험했다. 2012년 부산 중앙고 농구부는 다섯 명의 선수로 매일 40분의 경기를 소화해냈다. 매 경기 승리 다음 오는 건 단 휴식이 아닌 더 강한 상대와의 맞대결이었다.
배우들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매일 고된 촬영을 마치고 나면 내일은 또 다른 상대와 진짜 경기 하듯 코트의 이쪽과 저쪽을 내달려야 했다. “나중엔 온몸의 근육이 뭉쳐서 한 발자국 뛰기가 어려운 때도 있었어요. 우리끼리 ‘힘내자, 힘내자’ 하지 않을 수가 없었죠. 그러다 한순간은 내가 진짜 농구 선수 같더라고요. 다른 배우들의 눈빛에서도 그게 느껴졌어요.
미리 맞춘 합을 다 촬영하고도 감독님이 ‘컷’을 외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요. ‘컷’ 소리가 날 때까지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각자의 포지션을 잡고 공격과 수비를 이어갔어요. 영화에도 그런 장면이 꽤 많이 사용됐고요.” 강양현 코치 역을 맡은 배우 안재홍과는 코트 위에서만큼은 코치와 선수처럼 사인을 주고 받았다고도 덧붙였다. ‘잘’ ‘무사히’ 해내는 것이 더 중요했던 과거도 물론 의미 있지만 이야기 속 상황에 실재하는 듯한 몰입의 경험은 배우로서도 귀했다.
언젠가 지금의 기억은 더 크게 돌아와 그의 연기를 지탱하는 기둥이 되어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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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님 재킷, 데님 팬츠 모두 프라다, 이너 톱 돌체앤가바나, 네크리스 스와로브스키, 링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이렇게 부딪히고 넘어지며 배운 것들은 어느새 몸과 피부, 생각에 남아 스스로도 모르는 새에 내 것이 되곤 한다. 이신영에게 영화 <리바운드>가 그랬다.
촬영이 진행될수록 농구의 치열함과 리얼리티, 스포츠가 주는 낭만에 대해 체득한 그는 결국 농구를 사랑하게 됐다고 고백했다. “농구라는 게 진심으로 멋진 거더라고요. 아침부터 저녁까지 운동하고 합숙하듯 촬영하면서 다음 생이 있다면 농구 선수를 해보고 싶어졌어요. 촬영이 끝난 지 몇 달이 지난 지금도 한 주에 한 번은 코트에 나가서 농구를 해요. 일상을 지치게 하는 것들로부터 잠시라도 벗어나는 시간이 되죠. 그래서 농구가 좋아요.” 꼭 농구가 아니더라도, 영화 <리바운드>가 관객들에게 열정을 쏟을 무언가를 찾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는 바람도 함께 밝혔다.
이제 5년 차, 또래 배우들보다 조금은 더 다양한 기회와 경험을 쌓아온 대신 힘에 부치는 순간도 분명히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능력의 끝에 내몰리고, 스스로를 증명해야 하는 때조차도 ‘행복하다’고 말했다.
끝이 없는 듯했던 고민의 해답을 찾는 순간, 그 후련함을 연기를 통해 배우기 때문이다. 또 ‘연기를 안다는 건 너무 방대해서 한없이 괴롭지만 더 알고 싶고, 궁금해진다’고도 했다. “배우로서 제 위치를 식물로 설명하자면 이제 씨앗을 심은 정도이지 않을까요? 새싹이 나려면 아직 멀었어요. 그만큼 저는 뭘 몰라요. 아무것도 모르는 지금도 이렇게 재미있는데, 나이가 들고 뭔가를 더 알게 된다면 얼마나 재미있어질까요? 그런 걸 상상하면 연기가 더 하고 싶어져요.”
누군가 청춘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이신영의 이 대답이 설명을 대신할 수 있지 않을까. 경쾌한 템포로 얘기를 잇는 그의 목소리에서 마저 맑고 서늘한 젊음이 느껴졌다. 다시,영화로 되돌아와 이신영 인생에서 ‘리바운드’ 같은 순간이 있었는지 물었다. “제게 리바운드는 ‘다시 하는 힘’인 것 같아요. 20대 중반인 이신영에게 중요한 건 일이거든요. 일을 할수록 ‘다시 하는 힘’은 더 크게, 많이,자주 필요하더라고요. 그래서 지금은 저의 매 순간이 리바운드라고 생각해요.”
포토그래퍼
류경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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