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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트 집업 베스트 문선, 스커트 빠투.

“가끔은 제가 질풍노도 시기의 사춘기 소녀 같다는 생각을 해요.” 소주연은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낮엔 친구들과 수다를 나누며 시간 보내는 걸 좋아하지만 밤엔 철저히 혼자이길 원하며, 강렬한 사운드의 밴드 음악을 듣다가도 어느 날엔 잔잔한 연주 음악에 폭 빠진다. 작은 행운에 행복해졌다가 사소한 실수에 금세 시무룩해지기도 하는 그는 아직도 스스로를 잘 모르겠다고 말한다. 그저 날마다 자신과 조금씩 더 가까워져 갈 뿐. 아마 앞으로도 자신의 모든 면을 완벽히 파악하는 건 요원한 일이겠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소주연이란 세계의 층위는 이 모든 순간을 통과하는 동안 한층 더 세밀하게 분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오프숄더 플리츠 드레스 에센셜앤트워프.

<낭만닥터 김사부3>의 윤아름으로 등장한다. 아름과는 시즌2에 이어 벌써 두 번째 만남이지? 
아름이를 또다시 연기할 수 있어 한없이 기쁘다. 3년 만에 같은 배역으 로, 이전 시즌에서 함께했던 배우들과 다시 연기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란 걸 알기에 감사할 따름이다.

‘만난 것이 행운’이라고 표현했을 만큼 애정이 깊은 배역이다. 
이전 시즌 종영 후 인터뷰에서 아름이를 ‘나의 이상향’이라고 표현한 적 있다. 타인에 대한 편견 없는 시선, 지켜야 할 선을 넘지 않는 균형감, 그러면서도 자신의 소신을 관철할 줄 아는 올곧음 등 닮고 싶은 부분이 많은 캐릭터다. 그때 말한 것처럼 아름이를, 그것도 두 번이나 만나게 되어 행복하다.

시즌3에서도 아름이의 이런 멋진 모습을 볼 수 있을까?
첫 대본 리딩을 마치고 작가님께 작품 후반부에 대한 이야기를 얼핏 들었다. 그때 작가님께 “아름이는 정말 멋있네요. 이렇게 멋지게 써주셔서 감사드려요”라고 말했다. 스포일러가 될까봐 구체적으로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건 지난 3년 사이 한층 성장한 아름이는 더욱 근사한 모습을 보여줄 거다. 

작품의 출연진들끼리 굉장히 친하게 지낸다는 소문을 들었다. 
맞다. 덕분에 촬영장 분위기도 화기애애하다. 예를 들면 누가 NG를 내서 다시 촬영을 하면 이번엔 다른 사람이 실수를 한다. 그리고 돌림노래처럼 다음엔 또 다른 사람이 NG를 내는 식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누구 하나 불평하지 않고 “진짜 같은 팀이 맞긴 한가봐”라고 말하며 우리끼리 유쾌하게 웃어넘긴다. 모두와 돈독하지만 특히 정지안 언니와는 취향과 성향이 잘 맞아 촬영장 밖에서도 자주 만나며 많은 영향을 주고받는다.

크롭트 니트 카디건 타미 힐피거.

최근에 받은 영향에는 무엇이 있나? 
고전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언니가 고전소설을 좋아하는데, 한번은 윌리엄 서머싯 몸의 소설 <면도날>에 밑줄을 쳐 표시한 페이지를 사진으로 찍어 보내준 적 있다. 마치 흐르는 물처럼, 일희일비하지 말고 삶을 시류에 맡겨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듯한 그 구절이 마음에 콕 와닿았다. 늘 되새기고
싶어 아이패드 배경화면도 그 사진으로 해놨을 정도다. 원래 에세이나 독립 서적, 혹은 정보성이 있는 책을 자주 읽었는데 그때 이후로 호기심이 생겨 고전소설을 차근 차근 독파 중이다.

안 그래도 <면도날>의 한 페이지를 찍은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린 걸 보았다. 그 피드를 보니 소주연의 독서 취향이 궁금해지더라. 요즘 읽는 책은 무엇인가? 
여러 권의 책을 동시에 읽는 스타일인데, 지금은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와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를 번갈아 읽고 있다.

독서를 즐겨서인지 종종 표현을 낭만적으로 한다. 예전에 연기를 사랑에 빗대 “사랑을 즐기고 싶은데 사랑하는 사람만 생각하면 괴로운 느낌이다”라고 말한 적 있더라. 요즘엔 연기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갖고 있나? 
연기를 하는 동안 내가 정말 사춘기 소녀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는 것처럼 스스로와 싸우는 날이 있는가 하면 더없이 친하게 지내기도 하고, 가끔은 거리를 두기도 하며 매일 조금씩 자라나고 있는 기분이다. 사실 연기를 할 때뿐만 아니라 일상 속 소주연도 마찬가지다.(웃음)

그래서 물 흐르듯 잔잔한 마음으로 살아도 괜찮다 말해주는 책의 구절이 뇌리에 남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게, 그럴 수 있겠다. 저 문장을 만난 덕분에 노력에 대한 보답이 반드시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 나의 부족함이 늘 나쁜 결과로만 이어지는 게 아니란 걸 머리로 이해하는 게 아닌,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예를 들어 연기를 하는 순간에는 잘한 거 같은데 막상 방송으로 보면 한없이 아쉬울 때도 있고, 현장에서는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시청자들이 호평을 해줄 때도 있는 것처럼 말이다.

톱, 재킷, 스커트 모두 막스마라, 벨보이 캡 어썸니즈.

책뿐만 아니라 전시도 자주 관람하던데 어떤 작품을 좋아하나? 
사실 취향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어떤 답변을 해야 할지 망설여진다. 예를 들면 오늘은 강렬한 사운드의 밴드 음악을 듣다가도 다음 날이면 잔잔한 연주에 심취하는 등 매일이 다르거든. 그래서 미술이나 사진 역시 좋아하는 작가나 사조를 특정 짓지 않고 좋은 전시가 열릴 때면 놓치지 않고 찾아가려 노력한다. 얼마 전에는 피크닉에서 막 시작한 프랑수아 알라르의 사진전을 관람했는데 인상 깊었다.

가장 최근의 인스타그램 피드가 그 전시를 본 날의 사진이더라. SNS는 계정 소유자의 성향에 따라 용도가 저마다 다른데, 소주연의 계정은 ‘시선을 멈추게 한 대상의 아카이브’처럼 느껴졌다. 사진을 선별하는 기준에 대해 말해달라. 
소소한 행복을 느낀 순간에 찍은 사진을 주로 올린다. 예를 들어 지금 말한 피드의 첫 사진의 피사체는 오렌지색 카펫 위에 비슷한 컬러의 구두를 신고 서 있는 나의 발이다. 나는 빈티지 제품을 좋아하는데, 그 구두는 6년간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신으며 자연스럽게 낡아 멋진 빈티지가 된 아끼는 신발이다. 때마침 그날 전시장에 구두와 비슷한 컬러의 카펫이 깔려 있었다. 내가 그 위에 서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순간 별거 아닌데 어쩐지 기분이 좋아지더라. 그래서 찍어 올렸다.

요즘엔 무엇이 소주연을 행복하게 만드나? 
지금은 <낭만닥터 김사부3>의 촬영장에 가는 것! 의학 드라마라 어려운 용어도 많고 체력 소모도 꽤 크지만 기분은 정말 좋다. 촬영이 있는 날이면 빨리 현장에 가 다른 배우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마음이 들뜰 정도다. 이렇게 말하고 나니 서로에게 사랑이 넘치는 현장에서, 작품의 구성원 중 한 명이 되어 연기할 수 있단 사실에 다시 한번 감사한 마음이 든다.(웃음)

니트 뷔스티에 로우클래식, 코듀로이 팬츠 코치.

SNS 게시물을 바탕으로 추측하건대 동물과 자연도 소주연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대상인 것 같다. 
맞다. 자연, 동물과 함께하는 낮 시간을 좋아한다.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식물을 보거나 동물 친구들과 교감할 때면 오감이 편안하고 행복해진다. 

꼭 낮이어야 하는 이유가 있나? 
밤엔 철저히 혼자가 되어 시간 보내는 걸 좋아하거든.(웃음)

아직 자신을 잘 모르는 사춘기 소녀라고 표현하기에는 이미 스스로를 너무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나와의 관계에서 겪은 여러 시행착오를 통해 알게 된 것이고, 시행착오는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다. 밤엔 혼자 있기를 좋아한다는 사실도 30대가 되며 깨달았는 걸. 아까 말했듯 연기할 때뿐만 아니라 일상 속 소주연도 매일 자신과 싸우고 화해하고, 어느 날은 애정이 넘치다가 때론 질타를 보내기도 하며 스스로와 조금씩 친해져 가는 중이다.

소주연은 자신과, 그리고 맡은 배역과 끊임없이 대화를 나눈다. 이렇게 누군가의 내면을 매 순간 들여다보며 얻은 깨달음은 무엇인가? 
기쁨이 있다면 슬픔이 따라오고, 반대로 슬픔에 잠식되는 순간이 있으면 언젠가 기쁨도 다시 찾아올 거란 믿음. 그리고 이러한 감정의 형태는 ‘기쁘다’ ‘슬프다’ ‘화난다’라는 말로 간단히 표현하기엔 부족할 만큼 무척이나 다양하다는 점이다. 누군가의 내면을 계속해서 들여다보는 과정 속에서 내 안의, 그리고 연기로 표현할 수 있는 감정의 층위가 점점 더 세밀화되는 걸 느낀다. 다만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나는 너무 복잡한 사람이구나’ 싶은데, 뭐 어쩌겠나.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인걸.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어요. 그러니 무언가에게 영원한 존속을 요구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겠죠.’ 그의 마음에 안착했다는 <면도날> 속 구절의 일부 문장처럼, 시간이 흐른 뒤 소주연은 지금과는 또 다른 모습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점이 언제가 되었건, 분명 훗날의 소주연 역시 우리가 대화를 나눈 날처럼 여전히 청아하게 반짝일 테다. 이를 확신할 수 있는 근거를 묻는다면, 답은 책 속 또 다른 문장으로 대신하려 한다. ‘똑같은 강물에 두 번 들어갈 순 없어요. 강물은 끊임없이 흐르니까. 하지만 다른 강물에 들어가도 그것 역시 시원하고 상쾌한 건 틀림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