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피해자로 만드는 '루핑효과'란?

자기연민에 빠지는 가장 쉬운 방법, '루핑효과'를 주의하라!
BY 에디터 장은지 | 2023.09.28
미디어 직종에 종사하는 A는 심각한 가스라이팅 피해자다. 교묘하게 나의 성과나 노력을 ‘내려치기’하는 직장 상사, 다툼과 질책 후 이게 전부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하는 남자친구, “착한 네가 참아”라며 화도 못 내게 하는 친구까지. A는 이러한 가스라이팅 피해로 인한 스트레스로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호소한다. 영화계에서 일하는 B는 ‘성인 ADHD’를 앓고 있다. 전문의에게 진단을 받은 적도, 정신과에 가서 상담을 받아본 경험도 전무하지만 B는 자신의 심각한 주의력 결여 사례를 나열하며 스스로 그렇게 진단을 내렸다. 약속에 늦어도, 업무 실수를 해도 “내가 주의력 결핍 환자라서”라는 변명을 늘어놓는다. 이렇듯 언제부터인가 인간관계에서는 가스라이팅이 많아지고 우리 주변엔 성인 ADHD 환자가 증가했다. 실제로 정말 그런 걸까? 비슷한 사회적·문화적 환경을 공유하는 동시대 사람들에게서 비슷한 특질이 발현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루핑 효과(Looping Effect)’로 인한 것이라 보는 것이 좀 더 설득력 있다. 저명한 과학철학자 이언 해킹 교수가 정립한 개념으로 특정 사실이 언론매체를 통해 이슈화되면서 관심이 집중되고,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이를 확대시키는 것을 루핑 효과라고 한다. 그는 <만들어진 사람들>이란 논문에서 사람들이 평소 관심을 보이지 않던 특정 사실이 언론 매체를 통해 보도되면 사람들이 인식하고 새로운 사실로 받아들여 이를 확대 재생산한다고 설명했다. 예컨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고 젊은이들의 자살이 확산된 ‘베르테르 효과’ 역시 소설이란 매체가 있었기 때문이고, 소설을 읽고 자살한 사람들을 언론이 연이어 보도하면서 모방 자살이 일어난 것도 루핑 효과의 일종이란 것이다. 다양한 매체에서 가스라이팅이란 단어를 언급하기 시작한 이후부터 가스라이팅 사례가 증가하고, 한 방송에서 성인 ADHD 증상에 대해 비중 있게 다룬 후부터 성인 ADHD를 호소하는 환자가 늘어나는 현상도 루핑 효과로 설명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우리가 상황 판단과 독립적인 사고 이전에 미디어에서 자주 언급하는 단어를 먼저 떠올려 일종의 가설을 제시하고, 이 명제를 현상에 대입하는 연역적 사고를 하기 때문이다.이언 해킹 교수는 해당 논문에서 “현실을 보도하는 것만이 언론의 역할이 아니라, 언론이 보도한 현실은 또 다른 현실을 만들어낼 수 있다”며 언론의 책임 의식과 신중한 보도 태도를 강조하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날 미디어 환경에서는 레거시 미디어뿐 아니라 SNS, 유튜브, 1인 미디어 등 다양한 형태의 채널이 언론의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이에 따라 사실관계가 정확히 파악되지 않은 정보가 무분별하게 퍼지며 대중이 더욱 동요하기 쉬운 것이 사실. 특히 가스라이팅처럼 자신을 피해자로 만들거나 자기 연민을 갖게만드는 유의 자극적인 콘텐츠는 조회수가 높다. 요즘 뉴미디어와 유튜브 채널에서 가장 트래픽이 몰리는 것은 MBTI에서 T와 F를 구분하고 편을 가르는 콘텐츠다. 이러한 인기 급상승 키워드는 ‘사이버 렉카’ 같은 뉴미디어의 역기능으로 인해 더욱 빠르게 확산된다. 뿐만 아니라 요즘에는 AI 조작으로 인해 사실과 완전히 다른 잘못된 정보가 걷잡을 수 없이 퍼지기도 한다. 이러한 ‘혼돈의 루프’에 빠지지 않고 올바른 사고를 하기 위해서는 자극적인 기사에서 추출한 특정 단어에 매몰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혹시 상황을 명백하게 판단하기 이전에 단어 위주로 가설을 세우고 있지는 않을까? 그로 인해 나를 둘러싼 상황을지나치게 오해하고 스스로를 피해자로 대상화하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일러스트

조성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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