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비안 웨스트우드를 추억하며
타탄체크부터 미니스커트까지 많은 브랜드의 2023 F/W 컬렉션에는 그녀의 흔적이 곳곳에 묻어있다. 마치 그녀의 영향력과 존재감을 대변해주는 것처럼.
BY 에디터 최윤정 | 2023.10.02
펑크 문화를 선도했던 디자이너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1970년대 모습.
뒤늦은 추모 글을 쓰는지도 모르겠다. 2023 F/W 시즌을 조용히 관망하면 곳곳에 깃든 여왕의 존재감을, 또 그의 부재를 체감하게 된다. 지난해 12월 29일 디자이너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81세 나이로 패션 세계에 작별을 고했다. ‘세상’이 아닌 ‘패션 세계’에 방점을 두는 이유는 수많은 사회적 활동으로 축적된 정치적 영향력을 뒤로하고, 오로지 패션 신에 남긴 여왕의 자취만을 늘어놓고 싶어서다. 이것만으로도 깊고 방대한 그의 존재감을 확인할 수 있으리라.

(왼쪽)비비안 웨스트우드1993년 앵글로마니아 컬렉션의 모습.

시즌이 시즌인지라 체크 패턴의 기세를 무시할 수 없다. 특히 비비안의 DNA와도 같은 타탄체크가 마치 클리셰처럼 주요 브랜드의 주인공 역할을 자처했다. 리카르도 티시에 이어 버버리의 수장으로 새로 임명된 다니엘 리는 브랜드의 전체적인 톤앤무드는 물론 로고까지 갈아치우며 디렉터로서의 저력(?)을 과시하는 중이다. 리카르도가 적정한 선(?)은 넘지 않으면서 절제된 미감과 반항적인 애티튜드를 동시에 어필한 반면, 다니엘 리는 좀 더 급진적인 방향으로 브랜드를 재정립해나가고 있다. 펑크의 여왕 비비안의 영혼이 빙의됐는지 의심될 정도로 기존의 실루엣을 해체하고 한층 대범해진 프레임 안에 총천 연색의 체크무늬 등을 동원해 영국의 헤리티지와 쿨한 펑크 무드를 시각화한 것. 에트로의 경우도 사정이 비슷하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마르코 드 빈센조의 시선으로 구성한 에트로의 2023 F/W 시즌 컬렉션을 보면 타탄체크가 아이코닉한 페이즐리 패턴과 비슷한 비중을 차지할 만큼 주요한 디자인 요소로 등장한다.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1993년 앵글로마니아 컬렉션만큼은 아니지만 미묘하게 다른 체크무늬를 상충시키고 여기에 복잡한 레이어드 스타일링을 접목했다는 지점에서 그의 상징적인 패션 공식이 읽힌다. 비비안 웨스트우드라는 브랜드 안에는 펑크 무드를 비롯해 코르셋, 크리놀린 페티코트 등으로 대표되는 섹슈얼 무드가 공존한다.

1985년 미니 크리니 컬렉션


아이코닉한 부셰 코르셋. 로코코미술 경향이 짙게 묻어 있다.
1985년 미니 크리니 컬렉션을 떠올려보자. 펑크 패션에 눈을 뜨게 한 연인 말콤 맥라렌과 헤어진 이후 파리에서 발표한 이 컬렉션을 통해 20세기 여성의 자유를 상징하는 미니스커트와 과거 여성의 신체를 구속하던 크리놀린을 결합시킨 ‘미니-크리니’를 선보이며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2023년 버전의 미니-크리니 스커트를 파리 베르사유 궁전에서 열린 자크뮈스 쇼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자유를 향한 의지는 여성을 억압했던 코르셋을 패션 아이템으로 승화시켰던 1987년 S/S 시즌 컬렉션에서도 드러나며, 이번 시즌 블루마린이 그 후발주자를 자처한다. 비비안이 주도권을 잡았던 1980년대의 패션 신을 직접 언급한 마크 제이콥스는 란제리 원피스와 오버 숄더, 하렘 팬츠와 각종 패턴 등 작정이라도 한 듯 비비안이 전성기 때 다뤘던 패션 요소를 이식했다.

1993 F/W 시즌 비비안 웨스트우드 쇼. 모델 나오미 캠벨이 역사상 가장 유명한 플랫폼 힐 ‘길리’를 신고 런웨이에서 넘어진 건 유명한 일화다.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빈티지 피스를 즐겨 입는 뮤지션 FKA 트위그스.

부셰 코르셋으로 Y2K 스타일을 연출한 모델 벨라 하디드.
런웨이를 벗어나 리얼웨이로 시선을 옮겨도 마찬가지다. 일찍이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빈티지 아이템을 수집하는 마니아층은 존재했다. 프랑수아 부셰의 그림을 프린트한 부셰 코르셋과 과거 슈퍼모델 나오미 캠벨이 즐겨 신던 길리 플랫폼 슈즈가 대표적인 인기 아이템이다. 그의 부재 이후 이처럼 유니크하고 희소성있는 빈티지 아이템이 더 큰 주목을 받게 됐고, 특히 뮤지션 FKA 트위그스와 모델 벨라 하디드처럼 독보적인 패션 스타일을 지닌 셀러브리티의 선택으로 부셰 코르셋은 1987년 때보다 더욱 접근하기 쉬운 아이템으로 각광받고 있다.

그의 남편 안드레아스 크론탈러가 선보인 첫 비비안 웨스트우드 쇼는 창립자이자 펑크의 여왕 그리고 연인 비비안을 향한 찬사의 메시지로 가득했다.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얼굴이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길리 플랫폼을 신은 오프닝 모델을 보며 곧바로 쇼의 의미를 직감했을 터. 코르셋부터 타탄체크, 페티코트 스커트와 트위드 소재까지 브랜드의 아카이브를 버무린 리믹스 펑크 룩이 줄을 이은 가운데, 안드레아스와 비비안의 손녀 코라 코레가 엄숙한 표정으로 클로징을 장식했다. “일부러 혁명을 일으키고자 했던 것은 아니다. 왜 한 가지 방식으로만 해야 되고, 다른 방식으로 하면 안 되는지 알고 싶었을 뿐이다.” 이렇게 정답을 좇기보다 매번 색다른 과정에 몸을 내던진 사람은 이에 응당한 대가를 얻는 법. 대체 불가한 그의 패션 유산은 다음 세대를 이어 두고두고 회자되며, 오래도록 자신을 상기시키는 매개체가 될 것이다. 모델 나오미 캠벨이 전한 추모사에 공감을 보태며! “여왕님, 당신이 마땅히 누려야 할 왕좌에서 편히 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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