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비의 농담
색의 농담처럼 이유비는 연약하면서 강인하고, 유연하면서 단단하다.
BY 에디터 양혜연 | 2023.10.24
블랙 드레스 아우름 드레스. 송인범 작가의 화병 솔루나리빙.
이미 드라마 <7인의 탈출> 시즌2 촬영 중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시즌1 촬영이 끝나고 3주 정도 휴식기를 갖고 바로 다음 시즌 촬영을 시작했다. 시즌1 첫 촬영이 작년 9월이었으니 벌써 1년 넘게 촬영하고 있는 셈이다. 한 작품을 이렇게 오래 붙잡고 있어보긴 처음인데, 앞으로도 4~5개월 정도 더 찍어야 한다. 촬영을 중심으로 스케줄을 맞추기 시작한 지 1년이 넘으니 원래의 일상이 어땠는지 가물가물하다.(웃음)
극 중 캐릭터인 ‘한모네’는 보통내기가 아니다. 모네로 1년 넘게 살기 쉽지 않겠다. 캐릭터 해석도 어려웠을 듯하고.
모네의 행동은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고, 이해해서도 안 된다. 다만 모네가 되어야 했기 때문에 모네의 행동은 이해할 수 없어도 과거의 상황과 감정을 상상하고 공감하려 노력했다. 모네에게 가장 큰 감정은 불안감과 간절함이다. 자신의 과거와 추악한 행동이 낱낱이 밝혀지지 않을까 두려워하고, 아이돌이 되어 반드시 시궁창을 탈출하겠다는 절박함.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불안감과 간절함은 누구나 살아가며 한번쯤은 가져본 감정이지 않나.

셔링 리넨 슬릿 원피스 보헤미안서울, 시폰 랩 스커트 그레이스유, 슈즈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김현주 작가의 부채 김현주스튜디오.
이유비에게 가장 간절한 순간은 언제였는지 궁금하다.
지금 이 순간이다. 연기로 인정받고 싶다는 열망이 그 어느 때보다 크다. 그렇다고 이전에 허투루 했다는 건 아니다. 함께 일하는 스태프와 소속사 식구들 등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 열심히 하고 잘해야 하는 건 늘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다만 예전에는 최선을 다했다면 원하는 만큼 결과가 나오지 않아도 ‘그래도 최선을 다했으니까. 괜찮아. 다음엔 더 잘하자’라고 생각했다. 또 열심히 하는 것만큼 즐겁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그러나 지금은 이전과 좀 다르다. 최선을 다했다고 해도 결과가 원하는 만큼 나오지 않으면 될 때까지 더 고민하고 파고들어 어떻게든 해내야 한다는 마음이다.
왜 하필 지금 이 순간일까.
이전에 맡았던 캐릭터들은 대부분 밝고 통통 튀는 성격이었다. 원래 내 모습과 비슷한 부분이 조금씩 있었기에 캐릭터 위에 나의 색을 입힐 수 있었다. 그러나 모네는 이유비라는 사람이 지닌 특성을 모두 지우고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 나를 백지 상태로 만들고 그 위에 새로운 그림을 그리는 느낌이랄까. 그렇기 때문에 ‘이유비란 배우는 이렇게 연기한다’를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이고, 인정받고 싶기 때문에 간절하다.
그렇다면 지금의 마음은 모네를 만난 덕분에 생긴 거라 할 수 있나?
모네 덕분이지만 그보다 시기가 잘 맞은 덕이 더 크다 생각한다. 데뷔한 지 어느덧 10년이 넘었는데, 작년쯤부터 앞으로 연기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기존에 맡았던 캐릭터들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기도 했고. 그 와중에 모네를 만났다. 게다가 큰 인기를 끈 <펜트하우스>의 김순옥 작가님의 작품이다 보니 시청자들의 기대치가 얼마나 높겠나. 정말 잘하고 싶더라. 작가님이 생각한 모네의 모습에서 한층 더 업그레이드된 캐릭터를 보여주고 싶었다.
특별한 의미를 지닌 배역이겠다. 모네를 통해 많은 것을 배웠을 듯한데.
무언가를 배웠다기보단 욕심과 자신감이 생겼다. 예전에 내게 너무 어려운 배역이 주어지면 ‘이걸 내가 할 수 있을까?’ 걱정하며 작아졌다면 지금은 아니다. 물론 잘하고 못하고는 대중이 평가하지만 아무리 어려운 배역이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할 수 있다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있다.

핑크 플라워 시폰 톱 욜란크리스,
이유비가 생각하는 최선의 기준은 무엇인가.
스스로에게 떳떳할 때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본인은 알지 않나. 나는 남들이 아무리 잘했다고 말하더라도 스스로가 납득할 만큼 충분히 하지 못하면 괴롭더라.
그동안 매체를 통해 이유비를 볼 땐 밝고 긍정적인 기운이 넘치는 사람 정도로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심지가 굳다.
약해질 때는 없나? <7인의 탈출> 첫 방영을 기다릴 때 스스로가 약하다고 느껴졌다. 너무 떨려서 잠들지 못한 건 데뷔 이래 처음이다. 1년 동안 모든 연기자와 스태프가 고생하며 찍은 작품이고, 정말 잘하고 싶었고, 열심히 했기에 긴장되더라. 시청자들이 부디 재미있게 봐주시길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그만큼 간절했다는 증거다. 대중의 평가에 민감한 편인가?
배우는 평가받는 직업이고, 그 평가는 실제의 내가 어떠하든 보이는 모습을 기반으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선입견이나 편견이 있어도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는 편이다. 그러나 함께 일하는 주변 사람이나 내가 사랑하는 지인들이 해주는 조언이나 평가에는 민감하다. 그들에게 인정받는 걸 우선순위에 둔다.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이고, 내가 어떻게 했는지 직접 본 사람들이니까. 주변 사람들에게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이기도 하고. 감정이 쉽게 전이되는 타입이라 주변에 좋은 사람만 두려 한다. 그래서 누군가를 처음 만날 때 약간의 경계심도 있다.
주변 사람들에게 영향을 많이 받는 것도 의외의 모습이다.
그러나 나에 대한 부분은 확고하다. 예를 들어 연기를 할 때 더 좋은 연기를 위해서 감독님과 주변 동료들과 함께 상의한 후 그 의견을 수용하지만, 만족에 대한 스스로의 기준치는 확실하며 이는 주변인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래서 더 자신에게 떳떳한 걸 중요하게 생각하는 듯하다.

레드 드레스 앤아더스토리즈.
지금의 이유비는 이렇게나 단단하지만 자신의 솔직한 모습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로 인해 고뇌하던 시기도 있었다고.
30대에 접어들 무렵이니 얼마 지나지 않았다. 나의 솔직함에 거부감을 가지는 사람들을 보며 고민이 많았다. 어쨌든 세상은 혼자 살아가는 게 아니니까. 오랜 시간 고민했지만 그래도 가장 중요한 건 결국 ‘나 자신은 스스로를 어떻게 받아들이냐’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물론 나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들이 잘못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 같이 살아가는 세상이기에 나의 이런 면이 불편했다면 조심하는 게 맞다. 그러나 안 좋은 평가들 때문에 나 자신을 잃어버려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 사이의 균형을 잘 맞추려 노력한다.
모든 인간에게는 양면성이 있고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이유비는 그 중심을 잘 맞추는 듯하다.
어렸을 때부터 모든 것엔 명과 암이 있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다.(웃음) 그냥 자연스럽게 나의 상황이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만약 다른 입장이라면 오히려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이 부러울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슬픈 일이 있어도 깊게 우울해지지 않는다. 기쁠 때도 마찬가지다. 그 순간에만 충분히 기뻐하고 그 감정에 매몰되지 않으려 노력한다.
배우 이유비와 인간 이소율 사이의 밸런스를 맞추려는 노력도 하나.
배우로서의 자아와 한 사람으로서의 자아를 분리시키려 하는 편이다. 예를 들어 시상식에서 상을 받으면 당연히 기쁘다. 그러나 그 감정을 집에까지 가져오려 하지 않는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배우로서의 목표와 한 사람으로서의 목표도 다르겠다.
물론이다. 한 사람으로서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다 건강하고 행복하길 바란다. 나 역시 큰 행복은 없더라도 매일 소소하게 웃을 일이 많은 삶을 살고 싶다. 배우로서는 음… 큰 꿈이 있긴 한데 지금은 말하지 못하겠다. 굉장히 크다는 것만 알아달라.(웃음)

플리츠 컷아웃 드레스 맥두갈.
아까부터 느낀 건데, ‘사랑’이란 단어를 자주 사용한다.
인생을 살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인 듯하다. 연기를 열심히 하는 이유도 일상을 열심히 살아가는 까닭도 모두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서다. 인정받고 싶다는 욕심을 갖는 것도 결국은 나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삶의 가장 큰 동력인 셈인데, 사랑은 무한하기 때문에 지치지 않고 계속 나아갈 수 있게 한다. 그러고 보니 사랑은 연기와 비슷한 면이 있다. 연기도 내가 얼마나 고민하고 노력하냐에 따라 무한하게 확장될 수 있지 않나.
무한한 것들을 좋아하나?
그렇다. 사랑, 연기, 꿈 등 100%에 도달할 수 없는 것에 마음이 끌린다. 유한한 것보단 끝이 없는 걸 좇는 게 훨씬 재미있으니까.
이유비는 온 마음을 다해 준비한 작품의 첫 방영을 앞두고 대중의 반응을 걱정하면서도 결과의 평가 기준은 스스로에게 둔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기쁨과 슬픔을 쉽게 흡수하지만 결코 그 감정에 매몰되진 않는다. 우리는 흔히 여러 면모를 지닌 사람을 다채롭다고 말한다. 자신 안에 깊게 닻을 내린 이유비의 색은 하나다. 그러나 한 가지의 모습으로 귀결되진 않는다. 연약하면서도 강인하고, 유연하면서도 단단한 이유비란 색이 표현할 수 있는 농담(濃淡)은 무한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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