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카세와 거지방 사이, 앰비슈머

플렉스 가고 절약형 징검다리 소비가 뜬다?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요즘은 오마카세와 거지방 사이를 줄타기하는 ‘앰비슈머’의 시대다.
BY 에디터 장은지 | 2023.11.06
드라마 <더 글로리>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분수에 맞게 입고, 한도에 맞게 들자.” 이는 지난 몇 년간 플렉스 소비를 일삼던 요즘 세대에게 마이동풍과도 같은 이야기였다. 그러나 얼마 전부터 젊은 세대에게서 한 푼이라도 더 아끼기 위해 번거로움을 감수하고 여러 단계를 거치는 징검다리 소비나 무지출 챌린지 등의 소비 패턴이 감지되기 시작했다. 전문가들은 청년층의 소비 트렌드가 과시적인 ‘플렉스’에서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지출 이외에는 한 푼도 쓰지 않는 ‘짠테크’로 바뀌었다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그런데 이 분석은 절반만 사실이다. 2030세대에게 올 한 해는 한 끼에 20만원을 호가하는 오마카세를 즐기는 플렉스 소비와 고정비로 공과금 정도만 내고 그 밖의 항목에서 허리띠를 졸라매는 무지출 소비가 번갈아 존재했기 때문이다.
소비 트렌드가 바뀐 이유 지난해 주요 명품 브랜드는 한국 시장에서 기록적인 매출을 달성했다. 루이 비통 코리아의 경우 전년 대비 1년 만에 매출이 40%나 증가했다. 이러한 매출 증가를 이끈 것은 바로 20대와 30대다. 2030의 경제력이 그만큼 성장했다는 말이 될까? 인플루언서, 유튜브 진출을 통해 이른 나이부터 경제활동을 하는 10~20대가 증가한 것은 사실이지만실제 청년들의 금융 생활을 살펴보면 눈을 의심할 만큼 사태가 심각하다. 40대 이상 중장년층에 비해 30대 이하 세대의 부채가 눈에 띄게 급증하고 있다. 특히 300만원 이하 소액대출 상품에서 유독 연체율이 증가했는데 이는 10만원도 안 되는 소액 이자 비용조차 감당하지 못할 만큼 경제적으로 취약한 사람이 늘어났다는 뜻이다. 청년들을 금융 취약계층으로 만든 배경에는 고금리라는 거시경제의 변수가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 부동산 호황기에 ‘영끌’ 담보대출을 통해 주택 등 목돈이 들어가는 자산을 구매한 이들이 적지 않다. ‘영끌’을 하지 않은 청년층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부동산 가격이 오르면 전·월세 같은 임대차 가격도 비싸진다. 2022년에는 전세가가 오르면서 20대와 30대의 전체 대출 중 전·월세 보증금 마련 대출 비율이 30%나 됐다. 이런 상황에서 금리가 오르면 이자 비용이 늘어나는만큼 내 마음대로 소비할 수 있는 잉여 자금인 가처분소득이 줄어든다. 실제로 금리 인상에 따른 소비 감소 금액은 청년층이 가장 컸다. 요즘의 청년들은 자신의 취향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소비층이다. 젊은 세대에게 인기를 끈 <우리가 돈이 없지, 안목이 없냐?>라는 책 제목이 말하듯 이들은 상품이 자신의 관심사나 가치관에 부합하면 가격을 따지지 않고 소비하는 패턴을 보인다. 하지만 쓸 수 있는 돈이 줄어들면 결국 소비를 줄일 수밖에 없다. 요즘 2030세대는 점심에 집밥을 먹고 커피를 끊는 등 다른 곳에서 극단적으로 지출을 줄여나간다. 그리고 ‘챌린지’란 이름을 붙여 동기부여를 한다. 또 징검다리 소비 패턴도 보인다. 징검다리 소비란 플랫폼별 최저가를 따져가며 구매하거나 앱테크로 모은 포인트를 사용해 구매하는 등 물건을 최저가로 사기 위해 징검다리 건너듯 세심하게 사전 절차를 거치는 소비 스타일이다. 이렇듯 절약 소비하는이들 사이에서는 한동안 ‘거지방’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기도 했다. 익명의 사람들이 모인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으로 서로의 지출을 공유하고 쓸데없이 돈을 쓰면 다른 사람에게 욕을 먹는 방이다.
신인류 앰비슈머의 등장 젊은층의 소비 패턴이 얼마나 양극단으로 몰렸는지, 최근에는 ‘앰비슈머(Ambisumer)’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앰비슈머는 양면성(Ambivalent)과 소비자(Consumer)의 합성어로 최저가 소비와 고가 소비를 동시에 보여주는 소비자를 뜻한다. 앰비슈머는 명품을 소비하고 오마카세에 드나든다. 이렇듯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나 관심사에 부합하는 품목에서 큰돈을 쓰기 위해 다른 영역에서는 무지출 챌린지, 짠테크, 징검다리 소비를 통해 최대한 아끼는 경향을 보인다. 각종 할인 프로모션이나 이벤트, 공동구매 등을 활용하는 것은 필수다. 현금으로 물건을 살 때보다 조금 더 저렴하게 살 수 있는 상품권이나 기프티콘을 구매하는 플랫폼과 생필품 공동구매 플랫폼도 이용한다. 국내 여행을 갈 때는 출발 전, 해당 지역에서 할인율이 높은 지역화폐를 구매하기도 한다. 신용카드 발급에서도 마찬가지다. 큰 소비가 예정돼 있다면 관련 혜택을 제공하는 신용카드를 발급받아 사용한 뒤 목적을 달성하면 해지하고 또 다른 매력적인 혜택을 제시하는 신용카드를 찾아 나선다. 소비의 가치관 자체를 바꾸지는 않겠지만 아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최대한 아끼겠다는 것이다. 카드업계는 앰비슈머를 공략하기 위해 생활비 절약에 포커스를 맞추거나 각종 할인 바우처를 제공하는 상품을 내놓고 있다. 고정 지출인 대중교통비와 통신비, 공과금을 절약할 수 있는 카드도 출시됐다. 노년층만 사용한다고 여겨졌던 알뜰폰도 지난해 ‘0원 요금제’가 등장하면서 젊은층의 가입 비율이 커졌다. 현재 알뜰폰 사용자의 절반이 2030 고객인 것으로 나타난다.
앰비슈머가 소비하는 법 앰비슈머의 양면적인 소비 방식은 이들이 명품을 고르는 취향에서도 드러난다. 요즘 2030은 기성세대에게도 익숙한 전통적인 하이엔드 브랜드 대신 새로운 해외 명품 브랜드에 눈을 돌린다. 자크뮈스나 아미, 디젤 등 주력 상품이 100만원대로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에 살 수 있으면서도 기성세대에게 ‘덜 알려진’ 브랜드가 스타일리시한 명품으로 꼽히고 있는 것. 해당 브랜드 매출의 약 80%를 차지하는 2030세대의 소비가 지난해와 올해 국내 패션업계 매출 증가의 배경이다. 이렇듯 새로운 명품 브랜드를 구매하는 행위도 징검다리 소비의 연장선일 수 있다. 금리가 오르고 경기가 침체되자 금액과 효율, 기업이 소비자에게 주는 혜택 등을 모두 따져 도출한 절충안, 최선의 선택일 수 있기 때문이다. 중고 명품 시장과 중고 명품 구매 플랫폼의 급격한 성장도 앰비슈머의 징검다리 소비 패턴 일부다. 백화점에 가서 지불한 돈에 걸맞은 최고급 서비스를 누리는 것도 좋지만, 어차피 핵심은 명품을 착용하는 것이므로 조금 더 합리적인 가격에 명품을 갖겠다는 것이다. 중고 명품은 이벤트에 따라많게는 절반의 할인율도 노려볼 수 있다. 소유 그자체보다는 경험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2030세대는 구매한 중고 명품을 깨끗하게 사용하고, 다시 판매하는 경우가 많다. 중고거래 플랫폼을 이용해 개인과 개인이 직접 거래하며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데도 익숙하다. 이러한 중고거래·직거래 소비 모델은 앞으로도 크게 활성화될 전망이다. 네이버 같은 대형 플랫폼들이 중고거래 커뮤니티 분야에 지속적으로 투자하고 있는 이유다.
낭만일까, 낙관일까? 플렉스, 징검다리, 무지출, 어느 하나로는 지금 2030세대의 소비 경향을 규정할 수 없다. 요즘은 양단의 오마카세와 거지방을 오가며 최고가와 최저가 상품을 선택적으로 가치소비하는 앰비슈머의 시대다. 이들은 통 큰 소비를 통해 거대한 소비재 산업을 주도하고, 어느 한편으로는 금융 취약 계층으로 휴지 한 조각도 아껴 사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같은 세대 내에서도 노력이나 의지로 해결되지 않는 자산 격차를 보여주지만, 양극단의 소비 패턴은 그런 자산 격차에서 비롯되기보다 이들 특유의 가치관에서 왔다고 보는 것이 더욱 당위적이다. 2023년 현재 청년들은 ‘나 자신에 집중하기 위해’ 비혼주의를 주장하거나, 결혼을 해도 아이를 낳지 않는 경향을 보인다. 그만큼 자산 축적의 필요성을 적게 느낄 수 밖에 없다. 나 자신의 삶의 질에만 소비를 집중한다고 생각하면 저축을 적게 해도 되니, 이전 청년들보다 가처분소득이 커질 수밖에 없다. 같은 소득의 기성세대와 비교했을 때 소비 성향이 더 높은 이유다. 앰비슈머는 요즘 청년층의 가치관이 드러나는 독특한 현상이지만 마냥 흥미로운 일만은 아니다. 이는 요즘 청년들이 자신의 경제 상황을 객관적으로 직시하거나 현명한 소비를 못하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린 후 제때 갚지 못해 금융채무 불이행자로 등록된 30대 이하 청년층이 빠른 속도로 늘고있다. 한국신용정보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과 비교했을 때 올 6월 집계된 30대 이하 금융채무 불이행자는 1만7000명이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난다. 계속되는 고금리에 경기 회복도 더디니 이를 견디지 못하고 결국 개인회생으로 눈을 돌리는 청년층도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청년층의 빚 부담은 금융 전반의 부실로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앰비슈머는 편견 없이 존중받아 마땅할 요즘 세대만의 가치관이기만 할까? 낭만일지, 낙관일지. 넓게는 사회적인 고민도 필요해 보인다.

김정인(<어피티>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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