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림 플레이션의 시대, 당신의 선택은
OTT 플랫폼은 구독료 인상이 생존 전략이라 말한다. 하지만 우리 소비자에겐 계속할 것인지, 그만둘 것인지 선택할 권리가 있다.
BY 에디터 송혜민 | 2023.12.28
하다 하다 디지털 세상에까지 인플레이션의 악마가 세력을 뻗쳤다. 스트리밍과 인플레이션을 합친 ‘스트림플레이션’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한 건 최근의 일이다. 안 그래도 오르고 또 오르는 물가에 시름이 깊은데, 아직도 더 오를 것이 남았다니. 이 모든 건 최근 도미노 넘어지듯 요금 인상을 강행한 OTT 플랫폼들 때문이다. 최근 오리지널 시리즈 <무빙>으로 최대 실적을 달성한 디즈니+(이하 ‘디즈니플러스’)는 월 구독료를 4000원 올렸다. 넷플릭스는 한집에 살지 않는 사용자들이 계정을 공유하면 한 사람당 5000원을 추가로 내도록 했다. 해외 OTT 플랫폼들의 요금 인상은 미국 할리우드 파업의 여파가 컸다.

할리우드의 배우, 방송인 노동조합과 미국작가조합, 영화·TV 제작자 연맹 등은 지난 몇 달간 최저임금 인상, 스트리밍 플랫폼의 재상영 분배금 등을 요구하며 파업에 들어갔다. 파업 결과 이들은 더 나은 수익을 얻도록 구조 개선에 성공했다. 이에 부담을 느낀 대형 콘텐츠 스튜디오들은 파업 이후 요금제 인상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디즈니플러스와 넷플릭스 외에도 훌루, ESPN+ 등이 인상에 동참한다. 한편 이런 분위기를 살피던 국내 OTT들도 인상 카드를 매만졌다. 티빙은 12월 1일부터 등급별로 차등을 둔 금액을 인상한다. 신규 가입자 기준 베이직 상품은 1600원, 스탠다드는 2600원, 프리미엄은 3500원을 인상할 예정이다. 또 내년 1분기에는 광고 요금제도 도입한다. 구독료가 저렴한 대신 콘텐츠 시청 중 광고를 보게 하는 요금제다. 웨이브나 왓챠는 구독료 인상 계획은 없다고 밝혔지만 광고 요금제는 도입할 것으로 보인다. 스트리밍 구독 영수증이 갈수록 길고 무거워진다. 이미 시작된 스트림플레이션 시대, 소비자는 어떤 선택을 할까?

OTT 위기, 예견된 일이다
최근 OTT 시장이 정체기를 맞은 건 예견된 수순이었다. 어떤 산업이든 가파른 성장 뒤엔 한계에 맞닥뜨리게 마련이다. 넷플릭스가 지난 3분기 3년 만에 가장 많은 이용자를 유치했지만 전문가들은 구독 정책 변경에 따른 일시적 현상이라고 분석한다. OTT 시장의 절대 강자인 넷플릭스를 향한 평가도 이렇게나 박한데, 국내 OTT 플랫폼들의 처지는 더 위태롭다. 국내 유통을 중심으로하는 OTT들은 콘텐츠 제작마저 버거운 상황. 2022년 기준 국내 OTT 시장점유율 2위와 3위를 기록한 티빙과 웨이브는 각각 1191억원, 1213억원의 적자를 냈다. 지난해 연말 티빙이 KT 시즌과 합병하며 몸집 불리기에 성공했을 뿐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해외 OTT 플랫폼의 요금 인상을 눈치 보던 국내 OTT 플랫폼들이 잇따라 구독 정책을 변경하고 나선 것 또한 자연스러운 수순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누누티비와 같은 불법 스트리밍 사이트들도 기승을 부리고 있어 장외 싸움까지 치열해졌다.

이미 시작된 구독료 공포
앞으로도 OTT 플랫폼이 과거와 같은 눈부신 성장의 영광을 누리기는 결코 쉽지 않아 보인다. 2023년 1월 KCA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이 발표한 기획 리포트 <국내 OTT 산업 및 기업의 주요 현황과 시사점>에 따르면 한국의 OTT 이용률은 2022년 72%까지 성장했다. 매월 돈을 내고 보는 OTT 플랫폼의 수는 평균 2.7개였다. 하지만 <싱글즈> 설문조사 응답자 10명 중 8명이 더 이상 OTT 플랫폼을 추가 구독할 의향이 없었다.


가장 큰 이유는 더 이상의 구독료는 부담되기 때문(56%)이었다. 현재 이용 중인 OTT 플랫폼에서 가장 불만족인 점 또한 구독료(40%)였다. 따라서 10명 중 8명의 응답자는 앞으로 구독료를 줄일 생각이라고 했
다. 상황이 이런데 너도나도 요금 올리기에 앞다투는 OTT 플랫폼들이 앞으로도 구독자를 유지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구독 수익으로 서비스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OTT 플랫폼의 한계가 여기서 드러난다. 기존 미디어처럼 광고로 돈을 벌어들이는 구조가 아니고, 콘텐츠가 다양화, 거대화될수록 콘텐츠 제작비는 높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OTT 플랫폼의 구독료 인상은 선택이 아닌 필수일 것이다. 어차피 올릴 거라면 이용자를 설득하는 과정이 절실해졌다. 더 나은 콘텐츠 혹은 스트리밍 품질, 편리한 사용자 경험, 고도화된 콘텐츠 큐레이션 등 이용자를 설득할 방법은 많다. 하지만 사용자들은 벌써부터 스트림플레이션의 피로를 느끼고 있다. 구독료 인상을 건 줄다리기는 이제 시작인데 말이다.


계정 공유 금지는 반대, 광고 요금제는 글쎄?
게다가 최근 OTT 플랫폼들이 내놓은 구독 정책 변경 방침은 가입자 유지에 치명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예측된다. 우선 무려 94%의 응답자가 구독료 인상이 가입 유지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고 답했다. 현재 구독 중인 플랫폼이 구독료를 올리면, 상황에 따라 이탈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게다가 인상 범위에 대한 수용 폭도 매우 보수적이었다. 75%가 1000원 미만의 인상일 때만 구독을 유지하겠다고 했다.

계정 공유 금지 조치에 대한 반응은 유독 차가웠다. 넷플릭스처럼 계정 공유를 금지할 경우 80%가 넘는 응답자가 구독을 유지하지 않겠다고 했다. 다만, 기존 요금제보다 저렴하지만 광고를 봐야만 하는 광고 요금제에 대한 인식은 비교적 느슨했다. 응답자 중 절반은 광고 요금제를 선택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많은 OTT 플랫폼들이 광고 요금제를 주목하고 있다. 우선 해외 사례를 보면, 2021년과 2022년에 각각 광고형 상품을 내놨던 워너브러더스 디스커버리(이하 ‘워너브러더스’)는 외부에서 돌파구를 찾을 것으로 보인다. 두 플랫폼은 미국의 통신회사 버라이즌을 통해 월 10달러의 통합형 광고 요금제를 출시할 계획이다. 월 10달러를 내면 두 플랫폼의 콘텐츠를 광고 시청 조건하에 이용할 수 있는 형태다. 2023년 초 워너브러더스의 최고경영자 데이비드 재슬러브는 해당 모델이 OTT 산업의 미래라고 평가하며 사업 출범을 예고하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티빙이 처음으로 광고 요금제를 도입한다. OTT 콘텐츠를 합리적인 가격에 볼 수 있었던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광고 요금제에 대한 호불호는 크게 갈렸다. 하지만 심화되는 스트림플레이션 속에 ‘구독료 아끼기’에 관심이 생긴 사용자들에게 광고 요금제의 저렴한 가격은 큰 매력 포인트다. OTT 플랫폼 입장에서는 낮은 가격으로 가입 진입 장벽을낮출 수 있어 구독자 유치에 효과적일 수 있다. 플랫폼의 숙명인 가입자 확보를 위해 어떤 전략을 쓸지 치열한 눈치 싸움이 필요하겠다.

하지만 기회는 있다
담배도, 술도, 커피도 한번 스며든 기호 식품은 쉽게 끊을 수 없는 것처럼 콘텐츠도 마찬가지다. 지난 10월 건국대학교 천종성 교수는 이라는 논문을 발표하고 20대 OTT 장기 이용자들이 구독을 유지하고 사용하는 데는 만족보다 습관이 더 큰 영향을 끼친다고 분석했다. 천종성 교수는 이런 경향은 OTT 플랫폼 이용 습관이 형성된 후에 더 강화된다고 봤다. 팬데믹을 거치며 자연스레 디지털 소비가 늘어났고, 습관처럼 OTT 플랫폼을 사용하게 된 이용자도 늘어났을 거라는 분석이다. <싱글즈> 설문조사에서도 이와 같은 흐름은 포착됐다. 실제로 OTT 플랫폼 서비스를 해지해본 적 있는 경우는 50%가 채 되지 않았다.

구독료가 부담스러워서, 더 이상 볼 콘텐츠가 없어서, 다른 OTT 콘텐츠를 보고 싶어서 서비스 해지를 고민해본 적은 있지만 실제 이탈로 이어지는 경우는 적은 것이다. 한편 쿠팡플레이의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프랑스 리그앙, 스포티비 나우의 프리미어리그, UEFA 챔피언스리그, 티빙의 분데스리가 등 스포츠 콘텐츠로 저변을 넓히는 시도도 고무적이다. 소비자 타깃이 명확해서 안정적인 구독자 확보가 가능하고, 광고 유치에도 용이하다.

<싱글즈> 설문 응답자들도 스포츠나 다큐멘터리 등 새로운 OTT 콘텐츠에 대한 기대감이 높았다. 그러니까 오히려 지금이 기회일 수 있다. 충성까진 아니어도 시장이 일정 궤도에 오른 지금이 앞으로의 전략을 설정하기에 더 유리한 때가 아닐까. 눈앞의 성장이냐,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냐를 선택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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