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정의의 날개
웅크린 날개에는 아직 기회가 있다. 얼마나 넓게 펼쳐낼 수 있는지 아직 아무도 모르기에. 이제 날아오를 준비를 하는 노정의의 날개.
BY 에디터 송혜민 | 2024.01.26
코르셋 톱, 팬츠 모두 규리킴, 플라워 장식 부츠 썬룸, 네크리스 질 샌더
촬영은 쉬지 않았다고 들었는데 2년 가까이 공백이 있었다. 덕분에 올해 적어도 두세 편의 작품 공개를 앞두고 있다. 2024년을 맞이하는 기분이 남다르겠다.
많이 설렌다. 작품을 선보이지 않는 해에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열심히 살았다. 그럼에도 결과물을 남기지 못하고 마무리하는 한 해가 늘 조금씩 아쉬웠다. 그런데 올해는 한두 작품이라도 보여드릴 수 있다는 생각에 새해를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당장 넷플릭스 오리지널 <황야>가 공개된다.
<황야>를 기다리면서 두 가지 감정이 떠올랐다. 설렘과 걱정. 가장 큰 마음은 설렘이다. 그런데 촬영한 지 무려 2년이나 지나서 걱정도 적지 않다. 지금보다 여러모로 더 부족한 점이 많았을 때니까. 얼마 전에야 내부 시사를 했는데 내 눈엔 그 부족한 모습이 너무 명쾌하게 보였다. 물론 그때의 나는 최선을 다했을 거다. 그저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달라졌을 뿐, <황야>가 아니라 다른 작품을 볼 때도 결국은 아쉬운 부분을 발견하게 되더라. 앞으로도 ‘완벽이란 단어를 쓸 일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만족에 대한 기준이 높은 편인가 보다.
만족이나 최선에 대한 마지노선이 없다. 오늘 이만큼의 최선을 했으면 다음엔 그보다 더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최선’의 끝이 없으니까 완벽의 끝도 보이지 않는다고 할까. 그래서 아쉬움이 늘 과제처럼 남는다.

샤 재킷 썬룸, 시스루 퍼프 톱 아바바브 by 엠프티, 팬츠 로크, 워커 지미추.
<황야>에 합류한 건 마동석 배우의 영향이 컸다고.
마동석 선배를 평소에 너무 좋아하고, 동경했다. 어떤 작품이든 그가 있다면 무조건 하겠다는 마음이 있었다. 그런데 너무 좋은 기회가 온 거다. 고민도 없었다.
시간이 꽤 지났지만 이 작품을 하면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처음부터 끝까지 다 좋았다. 연기자가 편안하게 연기하도록 모든 게 보장된 현장이었다. 액션 신을 촬영할 때는 부상에 대비해서 물리치료사 선생님까지 있었다. 밥도 맛있었고, 현장에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다들 합이 잘 맞았던 거지. 그런 현장에선 필연적으로 좋은 작품이 나온다고 믿는다.
촬영하기 고된 장르이기도 했을 텐데, 선배들로부터 배운 점도 많았겠다.
마동석 선배는 촬영이 없는 날에도 자주 현장에 나와 새벽까지 함께 있어 주었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란 걸 안다. 그리고 <황야>를 찍을 때 <마녀> 출연을 고민하고 있었다. 너무 탐나는 역할이었는데, 나이나 성격 같은 인물의 기본 설정이 나와 맞지 않았거든. 마 선배에게 말했더니 “작품에서 그런 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람마다 살아가는 방식이 다 다르듯이 캐릭터도 배우가 만들어가는 거다. 나이 같은 설정을 떠나서 캐릭터를 바라 보면 많은 것이 달라진다”고 하더라. 내가 갖고 있던 고정관념이 깨지는 말씀이었다. 이후로 <마녀> 출연을 결심했고, 자신감도 붙었다.
많은 것을 남긴 작품이었네. ‘수나’는 어떤 인물인가.
수나는 오로지 하나 남은 가족인 할머니를 위해 삶의 선택을 한다. 최근 영화 <노량>을 봤는데, 작품 속 인물들이 지키고자 하는 조국을 위해 기꺼이 전장에 뛰어드는 모습에서 수나를 겹쳐 봤던 것 같다.
노정의라면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나라도 그랬을 것 같다. 이루고 싶은 무언가가 있을 때 꼭 이뤄야만 하는 성격이라.

드레스 셀프포트레이트.
<황야>부터 <마녀> <하이라키>까지. 올해는 작품 공개만으로도 바쁜 한해를 보내겠다.
너무 설렌다. 출연 결정부터 쉽지 않았던 <마녀>는 어느 때보다도 많이 연구하고, 얘기하며 만들었다. 이전에는 주로 배우고 따라 가는 위치였다면 <마녀>에선 이끄는 쪽에 속했다. 게다가 학창 시절부터 좋아했던 강풀 작가의 웹툰을 원작으로 하다니. 너무 멋진 일이었다. 촬영을 준비하며 웹툰을 몇 번이고 다시 정주행했다. 2023년에 촬영했던 <하이라키>도 마찬가지다. 이 작품들이 공개된 이후가 기대된다.
일 얘기를 할 때 유독 즐거워 보인다.
일할 때 즐겁거든. 일을 하지 않는 건 길어도 한 달이면 족하다. 평소엔 집순이에 가까운데 일할 때만큼은 에너지를 최대치로 쓴다. 그래서 퇴근길 차에 타자마자 기절해서 일하지 않을 땐 대체로 침대에 있는다.
그토록 좋아하는 연기를 평생의 절반이나 해왔다. 이제는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 됐을 것 같다.
사실 지금도 자연스럽다고 느끼진 못한다. 어떤 일이든 반복하고, 시간을 쏟으면 익숙해지는 때가 오지 않나. 하지만 적어도 내게 연기는 긴장이자 짝사랑 같은 존재다. 적지 않은 세월을 함께 하면서 다른 걸 도전하고 싶은 때도 있었다. 그런데 다른 어떤 호기심도 연기를 포기할 정도는 되지 못하더라. 내게 연기라는 책임이 있는데, 딴 곳에 눈을돌리는 건 욕심이고 이기심이란 생각을 한다.
짝사랑이라 비유한 것처럼, 어렵고 힘들 때도 있을 텐데.
아직도 선배 연기자들처럼 자유롭게 의견을 내는 게 어렵다. 어릴 때부터 현장에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빨리 나이 들고 싶기도 했다가 한편으론 20대의 어리숙함을 더 즐기고 싶기도 하다. 조금 더 나이가 들면 연기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더 편해질 수 있을까? 아직은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그 때가 더 빨리 오길 바라는 두 가지 모순적인 생각이 내 안에서 늘 싸운다.

드레스 듀이듀이, 퍼 부츠 더티스,
<마녀>나 <하이라키>처럼 주연급으로 출연한 작품을 통해 갈증 해소가 됐나.
완전히 해소했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이건 환경의 문제라기보단 내 마음의 문제인 것 같거든. 한 가지 의견을 얘기하기까지 열 번, 스무 번 단어를 고르게 되더라. 좀 더 편하게 얘기해도 될 텐데.
아직은 신중한 거네.
미래에 마침내 내가 편안해졌을 때 ‘노정의가 변했다’고 오해하시는 분들이 계실까봐 걱정되기도 한다. 그래서 굉장히 조심스럽게 다가가는 측면도 있다. 이렇게 소통의 방식을 찾아가는 것 아닐까? 내게서 그런 모습이 보일 때, ‘노정의가 성장했구나’ 하고 받아들여주셨으면 좋겠다.
반대로 어른이 됐다고 생각하는 순간도 있나.
집 밖에선 일부러 애처럼 행동하지 않으려고 자기 검열을 한다. 이 나이를 벗어나면 하지 못하는 것들을 놓친다는 생각에 아쉽기도 하지만 ‘아직 애구나’ 하는 시선을 더 경계하게 된다. 하지만 집에선 아직 ‘베이비’다.(웃음) ‘온앤오프’ 스위치가 확실하다.

드레스 듀이듀이
언젠가 ‘연기를 하며 감정을 해소한다’고 한 적 있다. 여전히 유효한가.
웃고, 화내고, 기뻐하는 연기도 해소의 경험을 주지만 우는 연기를 할 때 가장 후련하다. 평소 감정 표현이 크지 않은 편이기도 하고, 애써 외면하고 누르려 하거든. 혼자서 울 때, 사람들 앞에서 엉엉 소리 내 울 때 감정의 크기가 다르다는 걸 아나? 연기지만 울 수 있을 때 울고 평소의 슬픔까지도 털어버린다. 그래서 연기자라는 직업이 내게 더 필요하고, 소중하다. 절대 포기하기 어려운.
2024년을 맞이하며 이루고 싶은 것들을 떠올려보자.
우선 연기자로서는 연말 시상식에서 상을 받고 싶다. 일단 작품이 공개돼야 수상의 기회도 주어지는 거니까 올해는 기대해볼 일이 많지 않을까? 상을 바라고 연기를 한다고 하면 순수하지 않아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한 해의 마무리를 상을 받는 것으로 하는 것만큼 멋진 일이 없더라.
<그 해 우리는>을 찍고 그해 신인상을 받았었지. 아주 좋은 기억으로 남았나 보다.
처음 받는 상이었으니까. 나는 당연히 청소년 연기상부터 시작할 줄 알았다. 그런데 그 꿈을 못 이루고 성인 연기자로 넘어오면서 약간의 상실감이 있었다. 그런데 뜻밖의 신인상을 받으면서 ‘꿈은 이렇게 이뤄지기도 하는구나’ 하고 또 다른 성취를 맛봤다. 앞으로도 그런 성취를 쌓아가고 싶다.

톱 나타샤 진코 by 엠프티, 드레스 규리킴, 레더 부츠 지방시.
연기자가 아닌 노정의로서 도전하고 싶은 건?
계획 덜 하고 살기. 원래는 하루, 일주일, 매 시간 단위로 계획을 짜고 움직이는 ‘파워 계획형’ 인간이다. 그러면 마음은 편한데 몸이 너무 힘들었다. 2024년은 여러모로 여유를 되찾는 해였으면 좋겠다. 또 푸바오를 보러 중국에 갈 거다. 올해 푸바오가 중국으로 가야 하거든.
역시 남다른 푸바오 사랑.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사랑스럽고, 물만 마셔도 귀여운 존재가 있다면 푸바오다. 내가 굿즈를 사 모은다고 해서 푸바오가 알아주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이렇게 사랑할 수 있을까? 푸바오를 좋아하면서 어렴풋이 팬들의 마음도 이해하게 된 것 같다. ‘팬들의 사랑이 이런 거구나’ 하고.
무조건적인 사랑인 거지.
맞다. 그래서 반대로 되돌려드리는 방법에 대해서도 많이 고민한다. 덕질의 순기능이지 않을까?

톱 나타샤 진코 by 엠프티, 드레스 규리킴, 레더 부츠 지방시.
그럼 2024년을 넘어서 앞으로 연기자로 살아갈 무수한 날 동안 잊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다면 무엇일까.
정말 포기하려던 순간에 포기하지 않았던 이유를 잊지 않았으면 한다. 이게 아니면 다른 건 보이지도 않았던 시절의 뜨거움을. 그 마음만 잊지 않는다면 언제든 어디서든 다시 일어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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