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TI 말고 BDSM
소셜 데이팅 앱에서 BDSM 테스트 결과를 공유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자신의 성적 취향을 당당하게 드러내고 이를 기준으로 관계를 맺는 것이 요즘 세대의 연애 방식이다.
BY 에디터 김희성 | 2024.02.15
‘집-회사-집-회사’로 반복되는 동선에서 새로운 만남을 기대하긴 어렵다. 출퇴근하느라 기력이 쇠해버려 모임에 나가거나 소개팅을 하는 대신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의 늪에 빠진다. 헛헛한 마음을 달래주는 건 과몰입하고 있는 연애 예능 프로그램들이다. <환승연애>를 보며 ‘구남친들은 잘 사나’ 싶다가도 ‘그들 중 한 명이 <환승연애> 출연을 제안하면 나가는 게 좋을까, 아닐까’ 하는 망상을 펼친다. 그러다 <나는 솔로>의 하이퍼리얼리즘에 현실로 소환돼 고독한 나와 마주한다. 그런 일상이 반복되면 소셜 데이팅 앱이나 해볼까 싶은데, 방구석에서도 손쉽게 새로운 이성을 찾아 나설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와 억지로 커피를 마시거나 밥을 먹으며 시간을 보낼 필요도 없고, 그들이 올려놓은 프로필을 보며 마음에 안 들면 취소, 마음에 들면 선택 버튼을 터치하면 그만이다. 대부분의 만남에서 서로의 첫인상이 앞으로의 관계를 결정짓는 8할의 지분을 차지하듯 소셜 데이팅 앱도 마찬가지다. 프로필 사진으로 느껴지는 그 사람의 분위기, 센스 있는 자기소개 문구 등 상대방에 대한 단서를 낱낱이 뜯어본다.
본격적인 만남 전 나와 잘 맞는 사람인지 여부를 판별하는 한 가지 수단이 더 있다. 소셜 데이팅 앱에서 사람들이 올려두는 BDSM 테스트 결과지다. BDSM은 구속(Bondage), 훈육(Discipline), 가학(Sadism), 피학(Masochism)의 단어를 합한 것으로 인간의 다양한 성적 취향 중 가학적이거나 피학적인 성향을 통틀어 일컫는다. ‘나는 플레이 중에 상대방을 주도하는 쪽이고 싶다’ ‘나는 상대방이 내 지시나 명령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보고 싶다’ 등 가벼운 질문으로 시작해 ‘나는 상대방이 도구를 사용해서 나를 움직이지 못하도록 속박할 때 더 흥분된다’ 등 상당히 세밀한 물음으로 이어지는 다양한 항목에 답하면 된다. 이 테스트를 통해 평소 막연히 알았지만 확실히는 몰랐던 자신의 성적 취향을 보다 세세하게 알게 되기도 하고, 모두가 과몰입하고 있는 MBTI 이상으로 풀이도 상세해 자신의 성향을 낱낱이 분석해보는 재미도 있다. 결과는 텍스트로 복사해 프로필에 사용할 수 있고 이미지로 캡처해 저장하는 이들도 많다. 이제 새로운 짝을 찾을 때 MBTI만큼이나 흥미로우면서도 중요한 질문은 BDSM 테스트 결과가 된 셈이다.
성적 취향은 외모나 말투처럼 겉으로 드러나지 않기에 스스로 밝히지 않는 이상 내밀한 사이가 되어도 알기 어렵다. 그렇지만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인지, 취미가 뭔지를 공유하는 것만큼 중요한 소재다. 그동안 BDSM에 관한 이야기는 음지에서 이뤄져왔지만 요즘엔 이야기가 다르다. 소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가 사회적인 반향을 일으키며 여자들의 포르노라 불리던 것도 옛말. 이제는 유튜브, OTT, 웹툰 플랫폼 등을 통해 BDSM을 다룬 드라마, 영화, 예능, 웹툰, 웹소설을 손쉽게 접할 수 있다. 서현, 이준영 주연의 영화 <모럴센스> 포스터에도 이런 문구가 쓰여 있다. “초보 플레이어 돔돔이 지우, 배운 플레이어 섭섭이 지후.” 우리 사회에서 자신의 성적 취향을 드러내는 것은 더 이상 금기시되는 일도 부자연스러운 일도 아니다. MZ세대의 연애는 솔직하고 당당하다. 자신의 성적 취향을 상대방이 이상하게 보진 않을까 두려워 숨기는 대신 주체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말한다. 자신의 욕망을 숨기고 상대에게 맞추는 것이 아닌 즐거운 섹스를 추구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19금 콘텐츠를 유쾌하게 즐기는 문화와 비대면으로 데이트 상대를 찾을 수 있는 소셜 데이팅 앱의 유행은 우리들의 솔직한 욕망을 끌어내는 데 한몫했다. 무엇이든 ‘가성비’를 추구하는 시대 풍조가 ‘자만추(자고 나서 만남 추구)’족을 낳은 것처럼 BDSM 테스트 결과를 프로필에 명시하는 것 또한 불필요한 관계 맺기로 인한 소모를 줄이기 위함이기도 하다. 모든 것이 다 완벽했지만 서로의 성적 취향이 맞지 않는다면 불타오르던 애정마저 식어버리는 것이 현실. 침대 위에서의 쾌락이 중요한 사람이라면, 자신과 취향이 꼭 맞는 상대를 만나고 싶은 사람이라면 처음부터 자신의 섹스 취향까지 충족할 수 있는 반쪽을 찾아나서는 것이 효율적일 것이다. 요즘은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냉장고 파먹기를 하며 ‘짠테크’를 하고 자기계발과 ‘엔잡’을 하느라 ‘갓생살기’에 바쁜 시대 아닌가.
BDSM 테스트는 MBTI가 혈액형의 지위를 차지한 시대에 각자 자신의 성적 취향을 공유하는 가장 편리한 방법이기도 하다. MBTI가 유행이라 가장 좋은 점은 평소 성격과 타고난 성향에 관해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가 줄었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던 인간군상을 MBTI를 통해 너그러이 이해할 수 있기도 하다. “내 MBTI는 ㅇㅇ 야”라는 한마디로 달라도 너무 다른 서로의 모습을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어 스스로도 왜 그런 줄 도무지 몰랐던 자신의 난감한 모습까지 서로 공감하며 터놓고 얘기할 수 있다. MBTI보다 더 설명하기 어려운 자신의 BDSM 성향도 테스트 결과지 캡처를 공유하는 것으로 이러쿵저러쿵 말할 필요를 대신할 수 있으니 이 얼마나 편리한가. 당신은 BDSM 취향이 전혀 아니라고? 평범한 섹스 취향을 가진 이들에게도 상대방의 BDSM 테스트 결과를 미리 확인하는 것은 도움이 된다. 소셜 데이팅 앱을 통해 오랜만에 마음이 잘 통하는 상대와 매칭돼 깊은 관계로 발전했지만 둘의 사랑이 무르익고 난 후 상대방의 BDSM 성향을 아는 것만큼 당황스러운 일도 없으니 말이다. BDSM 성향을 밝히는 이들을 향해 바람직하지 않다는 시선을 보내는 이도 많다. 그렇지만 편견을 거두고 잘 생각해 보면 BDSM 결과를 공유하는 것은 ‘저는 집에 있는 것보단 밖에서 액티비티한 활동을 하는 것을 좋아해요. 함께 등산을 하거나 헬스를 하며 데이트를 할 사람 없나요?’ 혹은 ‘저는 카페에서 책 읽는 걸 좋아해요. 함께 책 읽을 사람 찾습니다’와 비슷한 언어이지 않을까 싶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알고 이를 당당히 드러내고 함께할 사람을 찾으며 서로에게 폭력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사랑하는 것. 진정한 사랑의 기쁨은 자유롭고 주체적인 연애를 즐길 줄 아는 이들의 것이다. 방법은 어렵지 않다. 지금 검색창에 ‘BDSM 테스트’만 입력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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