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욱과 이재욱 사이

음과 양, 정과 반. 어떤 이념에도 속하지 않은 이재욱을 마주했다. 작품과 작품 사이, 이재욱과 또 다른 이재욱 사이, 선을 흐리고 경계를 지울수록 선명해지는 오직 사이의 이재욱.
BY 에디터 최윤정 | 2024.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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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숄더 톱과 팬츠는 우영미.
<로얄로더>가 종영했다. 요즘은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 넷플릭스 드라마 <탄금>을 촬영하고 있다. 한 작품의 방영이 끝날 즈음엔 항상 다음 작품을 준비하다 보니 작품이 끝났다는 실감은 잘 안 든다. <로얄로더>의 한태오는 자신의 야망을 실현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움직이는 인물이다. 한태오를 보내는 기분이 어떤가? 평소 작품을 촬영할 때 되도록 캐릭터와 일상을 분리하려고 하는 편이다. 물론 감정을 많이 쓰는 신을 찍고 나서는 카메라가 꺼지고도 좀 힘들지만 늘 캐릭터의 감정을 붙들고 있지는 않는다. 태오는 속으로는 치열할 때도 있겠지만 외적으로는 감정을 숨기고 최대한 절제하는 친구다. 그때 생긴 습관을 좀 덜어내려는 노력하고 있다. 나도 모르게 평소에 입을 가리고 말하는 제스처가 나오더라. 과거 인터뷰를 보니 강렬하고 화려한 빨간색이나 굉장히 진한 검은색 같은 캐릭터를 하고 싶다고 했더라. 태오를 색으로 표현하면 어떤 색이라고 생각하나? 진한 회색 같다. 선과 악도 아니고 흑도 백도 아닌. 태오는 완벽하려고 하지만 스스로 남기는 결점이 굉장히 많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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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 니트 베스트는 알릭스, 글로시 가죽 장갑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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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워 아플리케를 단 포플린 셔츠는 프라다.
데뷔 이래 비교적 빠르게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다. 누군가는 큰 어려움이나 고민이 없을 거라 생각할 수도 있을것 같다. 실제로는 어떤가? 아직까지 현장에 가면서 굉장히 긴장하고 불안해하는 스타일이다. 잘하고 싶은 욕심 때문인 것 같다. 시간이나 공간, 의상이나 소품 같은주어진 환경 안에서 내가 준비한 것들을 다 보여줄 수 있을지를 생각하다 보니 긴장이 된다. 현장에선 예측대로 흘러갈 수도, 완전히 다르게 흘러갈 수도 있다. 첫 촬영은 더할 것 같다. 첫 촬영은 의미가 정말 남다르다. 한 캐릭터가 시작되는 촬영이니까. ‘연출자가 생각하는 캐릭터를 내가 잘 잡았을까’ ‘싱크를 잘 맞췄을까’ 혹은 ‘내가 표현하고 싶은 캐릭터는 이게 맞나?’ ‘놓치고 있는 건 없을까’ 하는 고민이 계속된다. 만약 연출자의 의도와 배우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들에 차이가 있을 때, 어느 쪽을 더 따르는 편인가? 어떤 상황이냐에 따라 다르지만 연출자의 말에 더 귀 기울이려 한다. 아직 영화는 많이 접해보지 않아 드라마로만 얘기하자면 대부분 드라마는 대본이 온전하게 다 나온 상태에서 촬영에 들어가지 않는다. 그래서 전체적인 맥락에 대한 연출자의 비전을 신뢰하려고 한다. 또 연출자가 나를 캐스팅함으로써 보여주고 싶은 캐릭터의 모습이 분명히 있을 거다. 내 전작들을 보고 “이재욱의 이런 모습을 꺼내 쓰고 싶다”고 말씀하는 감독님도 많다. 연출자가 나로부터 발견한 모습, 사용하고 싶은 모습,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 이재욱이란 배우가 내면에 갖고 있는 모습. 배우로서 내 욕심을 앞세우기보다는 연출자의 그런 기대까지 충족시킬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연출자에 의해 나도 몰랐던 전혀 다른 내 모습이 발견되고 추출되기를 바란다. 훤칠하고 잘생긴 이재욱 같은 배우가 하루아침에 못난 캐릭터를 맡을 순 없겠지만 잘나고 멋진 캐릭터만 하다보니 생기는 연기적 갈증은 없나? 물론 욕심나는 역할은 있다. 그러나 지금 내가 갑자기 사연이 많은 형사 같은 인물을 연기할 수는 없다. 나이가 들고 내공이 더 쌓여야 할 수 있는 역할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하고 지금의 환경을 최대한 즐기고 흡수하려 한다. 꼭 지금만 할 수 있는 역할도 있다. 맞다. 어쩌다 한 번씩 작품 속에서 교복을 입게 되더라도 아직은 시청자분들이 너그럽게 용서해주신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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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가죽 베스트는 르메테크, 블랙 팬츠는 페라가모, 슈즈는 보테가 베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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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배색의 화이트 티셔츠는 꾸레쥬, 가죽 스커트는 베르사체, 삭스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나이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배우가 워낙 슈트가 잘 어울려서인지, 아니면 작품 속에서 진지하고 절제된 모습 때문인지 사실 조금 더 나이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이에 비해 성숙하다, 좀 어른스럽다는 말씀을 주변에서 많이 해준다. 아무래도 평소에 워낙 말을 신중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인 것 같다. 내 의도나 표현을 명료하게 잘 전달하려다 보니 말이 느리고 조심스럽다. 말의 무게를 체감하게 된 계기가 있나? 글쎄, 딱히 기억나는 계기는 없고 경험적인 게 아닐까? 배우가 되기 전 아르바이트를 많이 했는데 그때 좀 느꼈던 것 같다. 내가 어떤 실수를 하면 그 실수가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겉잡을 수 없는 상황이 생기기도 한다는 것을. 더구나 지금은 많은 사람이 나를 알아보기도 하고, 내 모습이 녹화되는 현장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다 보니 신중하게 말해야겠다는 생각이 점점 더 강해진다. 책임감이 강한 편인 것 같다. 아르바이트에서 실수를 하더라도 남 탓이나 상황 탓을 하기 쉬운데 그 어려운 길을 간다. 그런가.(웃음) 사고의 차이 같다. 나중에 후회할 만한 작은 실수가 안 생기게끔 노력하는 것도 하루의 목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카메라가 꺼지면 끝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잘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것까지가 나의 일이자 일과가 된 것 같다. 그럼 평소에 거짓말은 안 하나? 할 때도 있다. 위로를 해야 할 때는. 그런데 아끼는 사람일수록 직언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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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워 패턴 셔츠와 브라운 쇼츠는 발렌티노, 락스터드 로퍼와 이어 커프는 발렌티노 가라바니, 블랙 삭스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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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라이프 니트 셔츠와 가죽 타이, 가죽 팬츠와 가죽 스커트, 슈즈는 모두 보테가 베네타.
새로운 역할에 들어갈 때마다 향수를 바꾼다고 들었다.지금도 여전한가? 물론이다. 새로운 배역에 들어갈 때 뭔가 리프레시하는 것처럼 그 캐릭터와 매치되는 향수를 고른다. 향수는 내가 캐릭터에 대한 설렘을 풀어갈 수 있는 방식이자 내 캐릭터가 가진 액세서리, 또 캐릭터에 대한 소속감을 갖게 하는 장치기도 한 것 같다. 현장에 내가 머물렀다 가면 다른 배우나 스태프들이 ‘여기 재욱이 왔다 갔구나’ 한다더라. 나의 재미있는 취미가 됐다. 오늘 화보 촬영을 보니 비주얼적으로 과감한 시도에 열려 있는 것 같다. 화보도 결국 이재욱이란 배우의 아카이브에 쌓이는 하나의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내 모습을 계속 발견하고 싶으니까 과감한 콘셉트라도 ‘일단 한번 해보자’가 되는 것 같다. 해보고 아니면 덜어내면 되니까. 과할수록 덜어낼 수 있는 게 많지 않나. 아예 시도조차 안 하면 뭐가 좋은지 알 수 없다. 연출자가 이재욱에게서 꺼내 쓰고 싶은 모습이 있듯, 화보에서 콘셉트를 기획하는 에디터도 마찬가지다. 스스로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과 오늘 콘셉트는 얼마나 닮았다고 느꼈나? 오늘 화보에선 나도 처음 시도해보는 것들이 많았는데 너무 잘 나와서 놀랐다. 나도 몰랐던 내 안에 있던 모습을 보았다. 그게 얼마나 원래의 나와 닮았는지, 얼마나 다른지를 알려면 ‘나다운 것’에 대한 정의가 먼저인데, 어떤 게 ‘나답다’고 콕 짚어 말하기 어렵다. 지금 인터뷰를 하는 나, 끝나고 밥 먹으러 가는 나, 집에 가서 쉬는 나, 쉬다가 엄마를 만난 수많은 내가 전부 다르다. 누군가 나를 보고 어떤 걸 표현하고 싶다면 그것 또한 나의 일면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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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프 디테일의 블랙 재킷은 와이프로젝트 by 지 스트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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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라이프 테일러드 베스트와 드레이프 팬츠는 준지.
지금까지 진행했던 이재욱의 인터뷰를 읽고 왔다. <환혼> 때의 이재욱, <이재, 곧 죽습니다>의 이재욱, 수많은 이재욱을 만나고 왔다. 그런데 인터뷰마다 자주 언급한 단어가 있더라. 연기 얘기를 할 때 ‘완벽’과 ‘만족’이 라는 말을 자주 한다는 걸 알고 있나? 연기에서만큼 완벽과 만족같이 절대적인 건 결코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워딩인데, 역설적으로 그게 완벽에 대한 열망처럼 들리더라. 그런가. 완벽에 한 발짝 더 가까워지길 계속 추구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벽할 수 없는 현실.(웃음) 이게 정답이라는 게 없는 직업이라 더 그런 것 같다. 촬영 현장에서 아직도 한 번씩 그런 느낌을 받는다. 달릴 준비는 다 됐는데 못 뛰는 느낌. 무슨 의미인가? ‘연기를 했다’를 만약 ‘걷는다’라고 표현한다면 이 직업을 선택한 뒤 나는 걷는 것만 해도 감사했던 사람이다. 그렇게 걷고 있는데 옆에서 다른 사람들이 막 뛰는 걸 보는 거다. 나도 막 달리고 싶어서 허벅지 근육도 늘리고 달리기 연습도 하고 준비는 이만큼 했는데 막상 현장에 가면 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상황이 제한될 수도 있고 또 캐릭터적으로 절제도 분명히 필요하니까. 준비는 다 돼 있고 잘하고 싶은 욕심도 가득한데 마음만큼 못 달리니까 자꾸 ‘완벽하지 않아’ ‘만족하지 못해’라는 말들을 내뱉게 되는 것 같다. 작품에 들어가기 전 캐릭터가 할 수 있는 표현의 다양성을 최대한 많이 구축한다고 했는데, 작품이 끝나고 나면 미리 생각하고 준비한 디테일이나 레퍼토리를 얼마나 사용했다고 느끼나? 1부터 10까지라고 하면 3~4개 정도밖에 못 사용하는 것 같다. 물론 전부 다 사용하는 게 능사는 아니다. 표현이 너무 많으면 캐릭터가 조잡해진다고 느낄 때도 있다. 이 캐릭터가 가진 상징적 표현을 만들기 위한 노력도 있고 또 동시에 캐릭터에 일관된 모습도 가져가야 한다. 그래서 연기가 끝나면 연기에 대한 후회가 아니라 오늘 3과 7을 꺼내 썼다면 5를 사용해볼걸 그랬나 하는 류의 아쉬움이 든다. 그렇다고 3과 7이 틀렸다는 건 아니다. 현장 상황과 심지어 그때 날씨, 온도, 공간 같은 여러 요소의 개입 속에서 최선의 판단이었다 믿는다. 누군가 연기는 뭐라고 정의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배우가 자기 물음에 스스로 답하는 과정인 것 같다고 했다.지금 이재욱에게 연기란 어떤 건까? 예전에 어떤 캐릭터를 내가 대변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도 그 생각엔 변함이 없다. 어쩌면 그래서 본래의 나를 버릴 수 없다고 생각한다. 어떤 캐릭터도 완전히 새롭게 창조된 것이 아니라 ‘나라면 여기서 어떻게 행동할까’ ‘어떤 표정을 지을까’처럼, 나로부터 비롯되고 내가 아는 것들로부터 구축되는 거니까. 그래서 캐릭터랑 일상의 이재욱을 잘 분리하는 게 더욱 중요한 가보다. 맞다. 그런데 분리한다는 게 결코 캐릭터에 집중하지 못했다는 말이 아니다. 배우마다 배역을 대하는 방법이 다른 것 같다. 나는 캐릭터의 감정과 일상은 좀 평행하게 두려는 편이다. 연기를 할 때 몰입해 촬영하다 보면 이 장면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까먹을 때도 있는데 그럴 때 캐릭터와 이재욱이 각자 자기 할 일을 잘하고 있구나, 밸런스를 잘 맞춰가고 있구나 하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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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가죽 베스트는 르메테크.
오늘 화보 콘셉트가 ‘남성성의 재정의’였다. 부드럽고 강직하고, 섬세하고 때론 거칠기도 한 다양한 질감을 넘나드는 이재욱이 가진 성질을 표현했다. 이재욱이 생각하는 자신의 성질을 하나로 표현하자면? 불 같다. 어떠한 형식이나 모양 하나로 정형화하기 어렵고 불처럼 타올랐다 금방 식기도 한다. 배우라는 직업을 선택한 것도그래서인 것 같다. 새로운 사람과 다른 환경, 예측하지 못한 상황에 접촉하는 일이 내게 잘 맞는 듯하다. 작품을 할 때는 온 열정을 쏟고 주변을 다 태울 것처럼 활활 타오르지만 끝난 작품에 미련이나 후회는 두지 않는다. 잘끓고 잘 식는다. 불은 한 번 꺼지면 되살리기도 어렵다.

인터뷰

장은지

포토그래퍼

목정욱

스타일리스트

임혜임

메이크업

문지원

헤어

안홍문

세트스타일리스트

김민선

어시스턴트

김영아, 허세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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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 곧 죽습니다.
이재욱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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