셔누, 정택운, 고은성의 아나톨
뮤지컬 <그레이트 코멧>에서 치명적인 매력의 ‘아나톨’로 분한 셔누, 정택운, 고은성을 만났다. 3인의 아나톨이 이번엔 서로의 ‘연적’이 되었다.
BY 에디터 장은지 | 2024.04.20
재킷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팬츠는 리바이스.
뮤지컬 <그레이트 코멧>의 아나톨로 함께하고 있다. 뮤지컬 <그레이트 코멧>은 어떤 작품인지 간단한 소개 부탁한다.
셔누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중 제2권 5장에 해당하는 70페이지 분량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어진 성스루(sung-through) 뮤지컬이다. 국내에서는 2021년에 첫선을 보였고 이번이 재연이다.
택운 대사가 거의 없이 오직 노래로만 진행되는 성스루 뮤지컬이라는 점도 흥미를 끌 수 있겠지만 <그레이트 코멧>은 무대와 객석의 구분이 없고, 관객이 작품의 일부일 정도로 관객의 참여도가 높은 이머시브공연이라는 점에서 더욱 특별하다.
관객 참여도가 높은 이머시브 공연이다 보니 배우의 애드리브를 보는 재미도 있다.
은성 애드리브를 하려고 해서 한다기보다 즉흥적인 상황이 만들어지면서 배우들의 센스가 발휘되기도 한다. 다른 뮤지컬은 객석에 있는 관객이 플랫한 화면을 보듯 무대를 일방적으로 바라보며 공연을 즐긴다면 이머시브 뮤지컬에선 VR처럼 공연을 경험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어느 정도의 인터랙티브도 가능한 거다.
고은성은 2021년 공연에서도 ‘아나톨’을 맡았다. 당시에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된 때라 무대에 제약이 많았다.
은성 맞다. 그때는 모든 관객이 마스크를 쓰고 일정한 거리를 둬야 했다. 그때는 관객들이 배우와 좀 더 가까운 거리에서 공연에 참관하는 정도였다면 이번에는 정말 다 같이 어떠한 공기를 나누고 있다는 느낌이 확실히 든다. 이번 공연이 진짜 재미있다.
셔누는 이번이 첫 뮤지컬이다. ‘경력직’ 아나톨에게 어떤 조언을 구했나?
셔누 아나톨에 대해 심도 있는 조언을 구했다기보다 뮤지컬 자체가 아예 처음이다 보니, 하나부터 열까지 전반적이고 근본적인 질문이 많았다. 택운이 형에게는 뮤지컬을 시작할 때 중요한 마음가짐이나 뮤지컬 배우로서의 애티튜드에 대해 조언을 구했고 은성이 형에게는 어떻게 소리를 내는지, 무대 위에서 어떻게 걷고 호흡하는지를 물었다. 내가 표현하는 아나톨의 80% 이상이 형들을 따라 하는 것에 가깝다.

은성 티셔츠는 알써틴, 재킷은 발리, 팬츠는 리바이스,슈즈는 SGWL.
택운 재킷은 골든구스, 팬츠는 아크네 스튜디오, 슈즈는 요위, 네크리스는 아티스트 소장품.
따라 한다고 아무것도 아닌 건 아니다. 예술은 모방에서 시작한 것이기도 하니까.
은성 나도 처음 시작한 몇 년 동안은 온전한 내 것이 없었다. 선배들이 하는 걸 보고 배우고 묻고 시도했다. 기본적인 것을 찾아가려고 노력하다 보면 자연스레 자기 것이 생긴다.
택운 처음 뮤지컬을 할 때 가장 어려운 게 무대 위에서 걷는 법이라고들 한다. 이머시브 형식이라도 객석이 있다 보니까 관객을 향해 몸을 어떻게 여는지, 걷는지에 대해 셔누와 대화를 나눴다.
무대에서 걷는 것이 가장 어렵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택운 무대 위에서 정택운이 평소 습관대로 걸으면 굉장히 어색하다.
은성 맞다. 무대 위에서 걷는다는 건 캐릭터에 대한 이해도를 요하는 일이다. 캐릭터에 대한 이해도와 그걸 피지컬적으로 얼마나 표현해낼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캐릭터와 내 몸의 ‘연결’을 얼마큼 고민하느냐, 그걸 몸에 적용하고 실험하며 결과적으로 어떻게 구현해내느냐의 싸움인 것 같다. 정답은 없다. 공연이 끝날 때까지 항상 고민하고 조율해야 하는 부분이다.
정택운은 서인국의 유튜브 채널에서 아나톨이라는 인물을 ‘병맛’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택운 극중 아나톨은 배우자를 두고 나타샤라는 다른 여성에게 사랑을 약속하는 인물이다. 쾌락적인 나르시스트. ‘금사빠’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그냥 보이는 게 다인 사람인 것 같다. 결혼반지를 계속 빼지 않는 이유도 그걸 심각하게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보는 아나톨은 사회적 규범이나 시선을 개의치 않고 옳고 그름에 대한 어떠한 정의도 내리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아나톨 캐릭터를 연구할 때 내 주변의 어떤 인물을 떠올렸다. 혀를 끌끌 차게 만드는 인간.(웃음)

셔츠와 팬츠는 모두 지용킴.
확실한 레퍼런스가 있었나 보다. 다른 배우들은 아나톨을 어떻게 생각하나?
셔누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보이는 게 다인 사람. 좋게 말하면 자유로운 영혼이지만 그냥 실없다.
은성 아나톨은 분명 나쁘지만 꼭 나쁘다고만 하기도 어렵다. 아나톨은 매력이 넘치는 미남이고 사람들을 웃게 만드는 유쾌한 사람이다. 나쁜 남자지만 좋은 친구다. 아나톨이 저버린 결혼도 그때만큼은 진심이었을 거다. 그런데 누나를 만나러 간 모스크바에서 자기가 지금껏 만난 여성들과는 전혀 다른 정말 순수한 영혼을 만난 거지. 나타샤를 보고 ‘이번엔 달라’ ‘이번이야말로 진짜야’라고 생각했을 거다. 결국 그 사랑의 맹세도 저버리고 말지만. 비겁한 남자지만 연약해서 연민도 간다. 근데 이건 어디까지나 드라마니까. 실제 상황이라면 매가 아까운 인간이라는 데 동의한다.
각자 해석한 아나톨의 면면이 다르다 보니 표현 방식에서도 조금씩 달랐을 것 같다. 그 해석을 몸에 어떻게 적용하고 표현했나?
택운 나타샤와 나타샤가 아닌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 차이를 두려 했다. 우리도 어필하고 싶은 대상 앞에서 평소와는 조금 다른 모습을 장착하지 않나. 사실은 별볼일 없는 남자지만 나타샤를 대할 때만큼은 과장된 말투나 멀끔한 걸음걸이로 어필하는 모습을 보여주려 했다.
은성 뮤지컬의 배경이 발레로 유명한 러시아이기도 하고, 사람들이 아나톨의 걸음걸이와 자세를 보며 발레리노를 떠올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견갑골을 내리고 가슴을 딱 들어 코르셋을 찬 것처럼 곧추선 모습. 첫 등장부터 불면 날아갈 것처럼 가벼운 모습을 보여주기보다, 반할 만한 우아하고 절도 있는 형상에서 뒤로 갈수록 조금씩 밑천이 드러나도록. 그게 극에도 긴장감을 주고 역설적으로 캐릭터를 더욱 매력적으로 만들 거라고 생각했다.

이너 티는 코페르니, 재킷은 본봄, 팬츠는 디스퀘어드, 슈즈는 발렌시아가.
배우들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캐릭터와 작품이 굉장히 다면적이고 다층적으로 읽히는 것 같다.
은성 묻고 싶다. 아나톨만 나쁘고 나타샤는 가련할까? 나타샤도 전쟁에 나간 약혼자를 두고 아나톨과 사랑에 빠진다. 과연 누가 더 나쁜 것 같나?
누가 더 나쁜지는 모르겠고 둘 다 다른 사람의 감정이나 관계보다는 자기 감정을 우선하는 인물인 것 같다.
셔누 둘 다 정상은 아니다.
택운 누가 누구한테 잘못했고 누가 더 잘못했다기보다 둘 다 ‘어리석다’고 생각한다.
은성 피에르가 마지막에 말하지 않나. “정말 사랑했나요? 그 나쁜 남자를?” 나타샤는 “나쁘지 않아”라고 답한다. 사랑에 눈이 멀어서일까, 정말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서일까? 나조차도 공연을 하면서 그 지점이 계속 고민되고 생각이 바뀌다 보니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배우들이 한 캐릭터에 대한 해석과 입장을 정립하고 무대에 오르는 게 아니라 공연 내내 딜레마를 느끼고 질문을 던지는 게 흥미롭다.
은성 특히 <그레이트 코멧>이 그런 것 같다. 대부분의 관객들이 작품을 보며 어떤 명쾌한 결론에 다다르고자 한다. 그래서 착한 사람들이 결국 행복한 결말을 맞았다거나, 과욕이 참사를 불러 다 죽었다거나 하는. 그런데 <그레이트 코멧>은 관객들이 함께 신나게 뛰놀고 나서는 ‘그래서 어쨌다는 건데?’ 하는 질문을 던질 수도 있는 작품이다. 근데 사실 그 인간적인 고민들 안에 답이 있을 수도 있다. 삶이란 흐르는 거고 극은 그중 아주 짤막한 일부를 비출 뿐이다.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고민할 수 있게 하는 것만으로도 때론 충분한 것 같다.

톱, 팬츠, 스카프는 모두 아크네 스튜디오.
그러고 보니 셔누는 오늘 말을 많이 아끼는 것 같다.
셔누 이제 막 데뷔한 뮤지컬이고 형들에게 조언을 구하면서 배우는 입장이다 보니 어떤 작품에 대한 해석을 논하기 민망한 단계다.(웃음) 선배들과 형들을 좇아가며 내 것을 찾고 있다.
택운 저렇게 겸손하게 말하지만 정말 잘하고 있다. 셔누만의 캐릭터가 있다.
평소와는 창법도 다르고 퍼포먼스를 준비하던 것과도 달랐을 것 같은데.
셔누 물론 처음이라 어려움과 부담감이 있다. 그런데 나에게 필요한 건 그걸 얼마나 어렵게 생각하느냐가 아니었다. 어렵게 생각하면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한다. 내 성격 자체가 그렇다. 그래서 어렵다는 생각 자체를 안 해버렸다. 창법을 애써 바꾸지 않고 내 느낌대로 불렀다. 선배와 형들에게 질문하고 배우고 연습하며 숨가쁜 날을 보냈다. 아직 얼떨떨하다. 어렵다고 인지할 정도로 충분히 편안해지지 못한 것 같다.(웃음)
처음 무대를 마치고 무슨 생각을 했나?
셔누 배고프다? 아, 웃기려고 한 말인데 별로 안웃겼다. 미안하다.
택운 괜히 저런 말을 하는 게 아니다. 평소에 셔누가 진짜 관리를 열심히 한다. 좋은 모습을 보여주려고 밥도 간식도 잘 안 먹는다. 무대 위에서 격정적으로 뛰놀고 다 끝나고 나면 그제야 마음이 편해지면서 허기가 드는 거다.
은성 뛰어난 뮤지컬 배우 중에 쾌락주의자처럼 사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대부분이 자기 몸이 허락하는 최상의 수준으로 기량을 발전시키기 위해 단련하면서 수행자, 운동선수처럼 산다. 직업 특성상 자기관리가 정말 중요한데 셔누에게선 벌써 자질이 보인다.

은성 티셔츠는 알써틴, 재킷은 발리, 팬츠는 리바이스, 슈즈는 SGWL.
택운 재킷은 골든구스, 팬츠는 아크네 스튜디오, 이너웨어는 캘빈클라인 언더웨어, 슈즈는 요위.
셔누 재킷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팬츠는 리바이스, 글로브는 돌체앤가바나, 슈즈는 SGWL.
극중에선 셋 모두 동일 인물을 연기하지만 오늘 화보에선 한 여자를 동시에 사랑하는 세 남자라는 가정으로 콘셉트를 잡았다. 서로가 서로의 연적이라면, 가장 견제하는 상대의 매력은 뭐라고 생각하나?
셔누 은성이 형은 분위기 메이커고 무엇보다 추진력이 좋다. 우리를 한꺼번에 모으고 어딘가 장소를 예약하는 것도 늘 은성이 형이다. 잘생겼고 남자가 봐도 섹시하다. 택운이 형은 정말 젠틀하고 따뜻하고 섬세하다. 주변 사람들을 정말 잘 챙긴다. 그런데 섹시하다.
은성 셔누는 외모부터가 정말 매력적이다. 말이 많지도 않고 딱 할 말만 한다. 성격은 서글서글한데 또 몸은 좋고, 이성이 봤을 때 가만 있어도 저절로 웃음이 흘러나올 것 같다.
셔누 형, 그거 전부 치밀한 전략이다.(웃음)
은성 그런데 사실 그게 제일 나쁘다. 사람을 무장 해제시켜놓고 책임을 안 진다.
셋의 티키타카를 보니 모두에게 조금씩 아나톨의 매력이 느껴지는 것 같다.
은성 농담이고.(웃음) 누가 셔누를 나쁘다고 생각하면 그 사람이 이상한 거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나에게 데려와라.
어떻게 할 생각인가?
은성 <그레이트 코멧> VIP 티켓을 주고 초대하겠다. 우리 뮤지컬을 보고 생각을 바꾸라고.
마지막으로 묻고 싶다. <그레이트 코멧>을 보러 올 관객들을 위해 세 배우가 가장 좋아 하는 파트를 하나씩 꼽자면?
택운 ‘발라가(Balaga)’. 제일 힘들고, 제일 살아 있음을 느낀다.
셔누 나도 ‘발라가’. 가장 격정적이라 뜨겁다. 그 곡을 할 때 정말 배우와 관객이 하나가 돼 모두가 땀으로 뒤범벅된다.
은성 물론 ‘발라가’다. 발라가야말로 <그레이트 코멧>의 정체성과 같은 곡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거짓말 조금 보태면 발라가가 끝나고 분장실에 들어가 땀으로 젖은 신발을 두 손으로 짠 적도 있다.(웃음) 그만큼 재미있으니까 얼른 예매를 서두르시라. 꼭 경험해보았으면 한다.

셔누 셔츠와 재킷은 모두 보테가베네타.
택운 셔츠와 재킷은 모두 크리스챤 디올, 타이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은성 셔츠는 발렌티노, 재킷은 베르사체
사진
김형상
스타일리스트
정설
메이크업
손희원(셔누), 김수연(정택운), 이영재(고은성)
헤어
염섭주(셔누), 소피아(정택운), 김부성(고은성)
어시스턴트
기찬민
뮤지컬
그레이트 코멧
아나톨
셔누
고은성
정택운
몬스타엑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