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라의 새로운 물결
유희라가 패션계에 일으키는 새로운 파동. 이건 하고많은 사랑 노래가 아니다. 그저 사랑이다.
BY 에디터 장은지 | 2024.06.24
페더 포인트 셔츠와 팬츠, 슈즈는 모두 발렌티노, 러브 디자인 이어링, 네크리스는 스와로브스키.
넷플릭스 <슈퍼리치 이방인>에 출연해 대중적인 인지도를 높였지만 패션계에서는 이미 유명한 인사다. 유희라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어떻게 소개하겠나?
패션에 미친 사람?(웃음) 패션은 어린 시절부터 내 취미였다. 내 나름대로 옷에 대한 지식도 풍부하고 철학도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미국 코넬대를 휴학하고 하이엔드 브랜드의 클라이언트 앰배서더로 활동하고 있다.
국내 유일의 클라이언트 앰배서더라고 들었다. 클라이언트 앰배서더라는 느낌이 새롭다.
새롭게 생겨난 개념이다. 지금껏 하이엔드 브랜드들은 중요한 고객들을 그들의 패션위크에 초청했는데 팬데믹 때 그게 여의치 않아 각 나라마다 극소수의 특정 고객을 선정해 해당 국가에서 열리는 브랜드 이벤트에 초청되는 기회를 줬다. 그러다 다시 오프라인 쇼가 재개되면서 한 국가의 이벤트 호스트 격인 극소수의 고객을 그들의 쇼에 초청하기 시작했다. 한 나라를 대표하는 고객이다보니 앰배서더라는 개념을 붙여 클라이언트 앰배서더라 부른다.
구매력만 있다고 모두 클라이언트 앰배서더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들었다.
물론이다. VIP 고객의 구매력은 어느 수준 이상부터는 거의 비슷하다. 그렇기 때문에 구매력이 절대적인 판단의 척도가 되진 않는다. 얼마나 브랜드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는지, 또 글로벌 행사에 초청됐을 때 한 나라를 대표하는 고객으로서 얼마나 임팩트와 영향력이 있는지 등 다양한 조건을 고려해 선정한다.

시스루 소재의 글리터 드레스와 글리터 숄은 조르지오 아르마니. 앤티크한 촛대 모양의 유리 조명은 글로리홀.
처음 해외 패션위크에 초청받았을 때 기분이 어땠나?
지금이야 K팝 스타들의 위상이 높다 보니 해외 쇼에서도 한국인을 많이 볼 수 있지만 내가 처음 해외 쇼에 초청받았을 때만 해도 한국인 클라이언트 앰배서더에 대한 글로벌 패션계의 인식이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다. 미국이나 일본은 클라이언트 앰배서더가 많게는 4명이 선정되기도 하는데 한국 고객들은 아예 제외된 시기도 있었다. 그러나 내가 패션위크에 초청된 이래, 주목을 받으면서 한국 클라이언트 앰배서더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있는 것을 느낀다. 패션에 대한 나의 진심과 열정이 인정받은 듯한 느낌이다.
얼마 전엔 칸 국제 영화제의 레드카펫에 등장해 화제를 모았다. 그 밖에도 수많은 오트 쿠튀르 쇼와 VIP 파티에 초대받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감흥이 컸을 땐 언젠가?
인생의 명장면으로 기념할 만한 경험은 역시 칸 국제 영화제 ‘우먼 인 모션’에 참석했을 때다. 우먼 인 모션은 케어링 그룹이 문화계에 기여한 여성의 공로를 기리는 유서깊은 행사다. 나는 알렉산더 맥퀸의 셀럽으로서 세계 최초로 케어링의 초청을 받아 참석하게 됐다. 동시대의 위대한 여성들과 동등한 자격을 얻어 같은 장소에 있었다는 것도 고무적이지만, 더 감격스러운 건 알렉산더 맥퀸의 전 수석 디자이너인 사라 버튼이 은퇴작으로 제작한, 세상에 단 하나뿐인 드레스를 내가 입었다는 사실이다! 난 어린 시절부터 그녀의 엄청난 팬이었다. 그녀의 마지막 작품을 함께해서 정말 영광이었다.


플라워 포인트의 시퀸 미니드레스는 셀프포트레이트, 슈즈는 쥬세페 자노티, 버터플라이 디자인 이어링은 스와로브스키. 촛대와 티웨어 세트는 불필요상점, 유리 오브제는 모두 글로리홀.
사람의 장기를 형상화한 붉은 실 디테일의 드레스는 사라 버튼의 지명을 받은 유희라만을 위해 제작된 드레스였다. 한국의 고전미를 살린 헤어스타일은 본인의 아이디어였나?
한국 대표하는 클라이언트 앰배서더로서 한국의 멋과 아름다움을 전해야 한다는 일종의 책임감과 문화적 자긍심이 있었다. 드레스가 가진 본연의 아름다움을 살리면서도 어떻게 하면 그 연장선에서 한국 고유의 고전미를 녹여낼 수 있을지 고민했다. 고민 끝에 쪽머리에 붉은색 머리 장식을 얹고 배씨댕기를 착용했다.
얘기를 들을수록 패션에 대한 ‘찐사랑’이 느껴진다.
나는 정말 진심이다. 거의 모든 쇼를 모니터링하며 다음 행사 때 입을 룩에 대한 영감과 아이디어를 얻는다. 알면 알수록 보이는 게 패션이다. 어떤 자리에서 어떤 룩을 입을지 구상하고 치밀하게 설계할 때 가장 보람차다.

프린지 디테일 미니드레스와 슈즈는 톰포드, 볼드한 디자인의 뱅글은 스와로브스키, 헤어핀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쇼에 서는 패션 모델은 디자이너가 입을 룩을 결정해준다면, 유희라는 거꾸로 자신이 어떤 옷을 입을지 선택하고 자신의 해석을 더해 능동적으로 표현한다. 어쩜 자신만의 예술적인 표현을 이어나가고 있는 것 같다. 그것도 아주 집요하고 헌신적으로.
그렇게 봐주니 고맙다. 사실 <슈퍼리치 이방인>에 출연을 결심한 것도 내가 진심과 열정을 쏟는 패션 업계의 중심부와 더욱 긴밀하게 상호작용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쇼
의 프런트 로에 앉는 건 언제나 인플루언서와 셀럽들이다. 충격적이었던 건 맥퀸 쇼에 입장하던 유명 셀럽이 “Who’s Kim Jones?”라고 말했을 때다. 내가 사랑하고 존경해마지 않는 디자이너와 패션하우스에 대한 이해나 애정이 전혀 없는 사람이 쇼의 프런트 로를 차지하는 모습을 보며 내가 막 서럽고 가슴이 저릿하더라.
듣고 보니 ‘덕질’ 기질도 보이는 것 같다. 유희라는 하고많은 패션 아이템 중에서 옷을 가장 좋아한다고 했다. 왜 특별히 꽂힌 게 옷일까?
질문을 듣고 생각해보니 이유가 있는 것 같다. 나는 어릴 때부터 늘 과한 행동을 조심하고 겸손하고 절제해야 한다고 배웠다. 원체 성격이 밝고 쾌활한데 항상 조금은 억눌리고 위축된 날이 많았다. 그러다 패션위크를 경험하면서 일종의 봉인 해제가 된거다. 패션위크에서는 정말이지 과잉의 최상급을 경험 할 수 있다. 그 속에 있다 보면 내가 아무리 화려한 옷을
입고 방방 뛰놀아도 평범하게만 느껴진다. 그런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내가 좋아하는 옷을 마음껏 입으면서 행복감을 느낀다. 옷은 나에게 사랑이고 위로다.

스팽글 재킷과 미니스커트는 셀프포트레이트, 이어링과 네크리스는 타사키, 슈즈는 쥬세페 자노티. 미니백 형태의 유리 화병은 불필요상점.
한 번 입은 룩은 절대 다시 입지 않는다고 말했다. 패션에 대한 자기만의 고집과 철학이 있는 것 같다.
어떤 이벤트에 서든 나는 한 착장을 선보일 때 그 착장을 몇 달간 옷방에 묵혀두며 어떻게 완벽하게 표현할지에 대한 아이디어를 구상한다. 그렇게 몇 달의 치열한 고뇌의 시간을 보내고 난 뒤 마침내 의도한 만큼의 임팩트를 줬다면, 다시는 착용하지 않는 것이 그때의 임팩트를 보존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이벤트가 끝난 뒤 드레스는 어떻게 되나?
길게는 8개월이라는 긴 시간 동안 한 드레스를 매일 보며 준비하다 보면 그 옷이 마침내 제 임무를 다한 것 같아 미련 없이 보내줄 수 있다. 입기 직전까지는 아무도 못 만지게 하고 나 자신보다 애지중지 여기지만 그 뒤로는 아예 내버려둔다. 예전에는 입고 난 드레스를 완벽하게 유지하는 데 엄청나게 집착했었다. 그런데 배우 블레이크 라이블리가 언젠가 말하길, 웨딩드레스에 실수로 쏟은 와인 얼룩이 너무 속상했는데 그 뒤로 얼룩을 볼 때마다 그때의 추억이 떠올라 더욱 의미가 생겼단다. 그 말을 듣고 생각이 달라졌다. 세탁도 안 하고 강아지가 뜯어 먹어도 수선하지 않았다. 그것 나름대로의 아름다움이 있는 것 같다. 추억이 한 겹 쌓여 더 소중해진다.

니트 소재 카디건, 골드 디테일의 롱 플리츠 스커트, 로고 포인트 네크리스, 로고 벨트, 슈즈는 모두 발렌티노.
올해 유희라가 기대하고 있는 쇼가 있다면?
돌체앤가바나의 오트 쿠튀르 쇼인 알타모다이다. 알타모다는 나에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준 이벤트다. 이런 쇼는 세상에 없다. 작년에는 이탈리아 남부지역 풀리아에서 개최했는 데 그 장소에서 쇼를 하기 위해 돌체앤가바나에서 그 도시를 리노베이션했다. 고객이 머무는 호텔을 전부 돌체앤가바나의 가구로 바꾼 것은 당연하다. 쇼가 열리는 한 시적 시간, 그 장소는 패션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겐 정말 천국 같은 공간이 된다. 벌써 쇼에 참석할 계획을 다 짜놨다. 어떤 룩을 입을지, 어떤 액세서리와 매치할지, 1년 동안 짜낸 아이디어가 내 아이폰에 빼곡하게 적혀 있다.
유희라가 생각하는 진정한 럭셔리는 과연 무엇인가?
편안함이다. 전부 말이 되어야 한다. 아주 약간의 불편함이나 부자연스러움도 없어야 한다는 거다. 조금이라도 타협한다면 그건 럭셔리가 아니다.
그렇다면 유희라 기준 최고의 럭셔리는?
돌체앤가바나 알타모다이다. 계속 말해서 미안하지만 정말 요즘엔 그 생각밖에 없다.(웃음)
사진
양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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