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증언(TESTAMENT OF YOUTH) - things
뜨거웠던 청춘의 시간을 지나온 사람, 그리고 그 열렬한 시간을 통과하고 있는 사람, 서로 다른 타임라인을 가진 사람들이 물건으로 자신의 청춘을 증언했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관통한 그 찬란한 청춘의 기록물.
BY 에디터 장은지, 김화연, 이유진 | 2024.08.218월 12일은 UN이 선정한 세계청소년의 날이다. 1990년에 제정되고 1998년에 개정된 한국의 청소년 헌장은 청소년의 책임에 대해 이렇게 표기하고 있다. ‘청소년은 앞 세대가 물려준 지혜를 시대에 맞게 되살려 다음 세대에 물려줄 책임이 있다.’ 오늘날 청소년과 청년들은 자신만의 확고한 삶의 방식과 취향을 여러 형태로 표현하며 동시대의 어른들과 문화에 영향을 주고 지금 이 순간에도 미래의 초침을 한 뼘씩 움직이고 있다. 지금의 청춘들, 그리고 청춘의 열렬한 시간들을 이미 지나 보낸 성숙한 어른들이 자신의 청춘을 관통하는 물건을 꺼내 그로부터 배운 저만의 지혜를 나열했다. 내가 빠져 있던 것,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치, 나라는 존재를 완성한 것,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하면 반짝였던 것들. 저마다의 타임라인과 역사를 가진 이들이 타임캡슐에 고이 접어 넣은 ‘나의 청춘의 유산’, 그 찬란한 기록을 펼친다.
고은비(이너시아 대표)
큐브

물건에 담긴 이야기.
어릴 적부터 과학이 제일 재밌었다. 10대 내내 영재고와 카이스트 입시를 준비하며 치열한 배움의 시간을 보냈다. 당시 수학, 과학을 하는 친구들이라면 한 손에 큐브가 ‘국룰’이었다. 언뜻 보기엔 절대 풀 수 없는 뒤죽박죽 엉켜 있는 조각들이지만 몇 가지 법칙만 이해하면 깔끔하게 정렬된다. 이는 과학에서 얻을 수 있는 희열과 비슷하다. 쉬는 시간마다 모여서 기록을 재가며 큐브를 맞추고, 누군가 새롭고 비싼 큐브를 가져올 때면 구경을 했던 기억도 생생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열심히 노력해서 ‘정답’을 얻을 수 있다는 것, 그건 학생의 특권이었다. 10대의 나는 ‘정답’에 가까워지기 위해 내내 치열하게 노력했고 가끔은 실패하면서 세상에는 ‘정답’이 없다는 것을 배웠다.
청춘을 보내며 얻은 것과 잃은 것.
맞춰진 큐브와 같은 순간순간의 성취감을 얻었다. 어떤 문제의 정답에 이르는 과정부터 원하는 곳에 합격하는 것까지 간절했던 만큼 짜릿했다. 그러나 잘 맞춰진 큐브가 금방 뒤섞이듯이 어떤 성취가 주는 쾌감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 과정에서 ‘안정감’을 잃었다. 결과에 너무 매몰된 나머지 불안에 떨며 보낸 시간이 많았다.
청춘으로부터 내가 배운 지혜.
이제는 성취의 결과보다 경험 자체가 중요하다는 것을 안다. 큐브 맞추는 법은 이제 기억도 나지 않지만 노력하면 해낼 수 있다는 경험은 남아 있으니까. 성취와 실패의 시간을 겪으며 나를 믿는 법을 차차 알아가는 중이다. 시험 문제 하나에 울고 웃던 10대를 지나 박사 과정을 그만두고 여성용품으로 창업을 하는 모험에 도전할 정도로 용기 있는 20대가 됐다. 세상은 불확실성으로 가득차 있고, 아무리 노력해도 예상치 못한 어려움을 마주하겠지만 실패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누구보다 나 스스로를 믿는다면 어떠한 성취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임재린(세이투셰 대표)
사진집

물건에 담긴 이야기.
24살에 첫 개인전을 열며 제작한 사진집. 당시 몇 년째 상업 포토그래퍼로 활동하던 중 어떤 변화의 계기가 필요하다고 느껴 모든 상업활동을 중단하고 중형카메라로 캐릭터가 강한 주변의 친구들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이때 촬영한 사진으로 첫 개인전 ‘CHARACTERS’를 열었고 이때 전시된 사
진들을 엮어 책으로 만들었다. 이 책이 내 청춘의 한 권이다.
청춘을 보내며 얻은 것과 잃은 것.
얻은 것은 경험, 잃은 것은 무모함.
청춘으로부터 배운 지혜.
실패와 과정을 잘 구분할 것. 둘은 엄연히 다르다.
빵먹다살찐떡, 양유진(크리에이터 겸 배우)
종이와 펜

물건에 담긴 이야기.
처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데 도움을 준 물건이다. 학창시절 혼란스러웠을 때, 내 마음을 알기 위해 흰 도화지 위에 내면의 이야기를 적으며 지금의 나에게 사춘기가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이후 처음 ‘루푸스’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두려움에 떨던 나는 속마음을 종이 위에 적는 행위로, 두려움으로부터 해방됐다. 이후 기쁘거나 슬프거나 생각의 정리가 필요할 때마다 이 행위를 반복하며 나의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진다.
청춘을 보내며 얻은 것과 잃은 것.
많은 일을 겪어오며 ‘일단 하면 된다’는 용기, 앞으로 다가올 일을 담대하게 마주할 수 있는 지혜와 어떤 일이 오더라도 중심을 잡아줄 나만의 주관을 얻었다. 잃은 것은 어릴 때만 가질 수 있는 순수한 생각, 때묻지 않은 활기다.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겠지만.
청춘으로부터 내가 배운 지혜.
아직 26살밖에 되지 않아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조금 민망하지만, 적당함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얻었다. ‘중용’을 지키는 것. 시간이 지날수록 무엇이든지 상황과 지금의 나에 맞게 적당히 조절하며 생활하는 것이 과거, 현재, 미래의 나에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럼에도 여전히 그것을 지키지 못해 실패하곤 하지만.
이준익(영화 감독)
자화상

물건에 담긴 이야기.
사진은 고등학교 2학년 때의 나와 내가 그린 자화상을 촬영한 거다. 미술학도였던 나는 10대 시절부터 자화상을 그렸다. 그림을 잘 그려서가 아니다. 자화상을 그리면 자신의 이미지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자화상을 그리는 행위가 내 내면으로 들어가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한다. 셀카가 카메라가 보는 나의 모습, 남이 보는 나를 보여주는 것이라면 자화상은 내가 보는 나다. 내가 어떤 모습을 스스로 창조해낼 수 있음을 알게 된다. 자화상을 그리는 사람은 자신 내면의 깊숙한 곳까지 들여다보게 된다. 나이가 들었을 때 더 성숙해질 수밖에 없다. 나이가 들어 성숙한 사람들에겐 자연스러운 매력이 풍긴다. 물감이든 아이패드를 사용하든 뭐든 좋다, 자화상을 그려보시라.
청춘을 보내며 얻은 것과 잃은 것.
얻은 것은 세상과 한 판 붙어보겠다는 막연한 패기. 사진에도 보여지듯 10대 때 내 표정은 세상에 대한 두려움은 조금도 없다. 지금도 나는 천진함 속에서 막연한 패기를 잃지 않으려고 한다. 때때로 실패하고 실수도 하지만 계속해서 도전할 수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내가 청춘을 지나며 잃은 것은 소중한 사람들에게 온전히 마음을 다할 기회. 부모님이란 원초적으로 나의 태생의 어떤 전제라고 생각한다. 나에게 생명을 준 분들에게 보답하는 것을 충분히 하지 못했다는 것이 안타깝다. 젊을 때는 당장 내 눈앞에 닥치는 파도를 밀고 나가는 것만으로도 바쁘다. 나이가 들고 나서야 비로소 소중한 사람들이 옆에 있을 때 온전하게 정성을 다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느낀다.
청춘으로부터 내가 배운 지혜.
젊어서 실패해야 한다는 것. 인생의 3대 비극 중 첫 번째가 초년 성공이라고 하더라. 초반에 승승장구하다 실패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무너지는 사람들이 있다. 반면 많이 실패한 사람은 노년에 더욱 깊고 강해진다.
송주온(BT&I 대표)
주판

물건에 담긴 이야기.
어릴 적 나는 부모님의 권유로 주산을 배웠다. 당시만 해도 계산기보다 주판이 대중적인 시대였다. 주산을 배우며 자연스럽게 암산 실력도 늘었다. 이후 학창 시절을 미국에서 보냈는데 주위에서 내 암산 실력에 모두가 깜짝 놀랄 정도였다. 세월이 흘러 내가 20대 때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도 암산 실력은 나에게 큰 자산이 됐다. 남들처럼 계산기를 두드릴 필요 없이 빠르게 필요한 숫자를 알아낼 수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내게 소중한 추억을 안겨주고 사업가로서 어려운 길을 헤쳐나갈 수 있도록 도와준 손때 묻은 낡은 주판.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이다.
청춘을 보내며 얻은 것과 잃은 것.
열여섯 살 때부터 미국에서 많은 아르바이트를 하며 직접 겪어봐야만 알 수 있는 사람과 일, 삶에 대한 지혜를 터득했다. 그러나 살기에 바빠서였는지 남들이 다 가진 10대 첫사랑 경험이 없다.
청춘으로부터 내가 배운 지혜.
‘Get out of your comfort zone!’ 안주할 수 있는 상황에서 벗어나야 한다. 가능한 한 빨리. 삶의 현장에 일찍 뛰어들어 간절함과 절박함으로 몸부림치고 체험하는 사람들은 인생에서 성공할 확률이 훨씬 높다.
최승옥(FMK 페라리 차장)
야구 모자

물건에 담긴 이야기.
2005년 대학교에 입학하면서 구입한, 이제는 거의 20년이 되어가는 학교 야구 모자. 이제는 많이 해지고 더러워졌지만 나에게는 가장 소중한 물건 중 하나다. 오랜 세월을 나와 함께한 모자는 지금도 여전히 내 일상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나의 청춘을 관통한 상징적인 물건이다.
청춘을 보내며 얻은 것과 잃은 것.
얻은 것과 잃은 것이 복합적이라 한 가지씩만 꼽긴 힘들다. 다만 나는 이 모자를 통해 과거 대학시절의 다양한 순간을 상기한다. 처음 학교 기숙사에 들어가던 날의 긴장감, 친구들과 함께한 즐거운 시간, 감동적인 순간까지. 이후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긴 더 많은 시간을 이 모자와 함께했다. 모자는 계속 낡아가지만 나는 그 낡아가는 시간들을 소중히 여기며 내 청춘의 열정과 열의를 떠올린다. 또 모자가 해지면서 생긴 빈티지스러운 연륜은 지금의 내 모습을 비추는 것이기도 하다.
청춘으로부터 내가 배운 지혜.
어릴 적 테네시 주의 시골에서 공부하며 소년에서 청년으로 성장하는 시기를 보냈다. 이때의 경험은 빠르고 복잡한 도시의 삶보다는 시골의 여유로움과 슬로우 라이프를 동경하게 만들었다. 그 시절이 그립고, 언젠가는 그렇게 살리라는 다짐도 하게 된다. 그때의 여유로움은 지금의 내겐 많이 사라진 듯하지만 모자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경험을 했는지 늘 기억하게 하는 증인이다. 내가 누군지 기억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지 않을까.
시니어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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