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주라는 자연

지구로부터 온 여자. 신비롭고 비범한 장윤주라는 자연.
BY 에디터 장은지 | 2024.08.22
장윤주 싱글즈 20주년 기념 화보. 장윤주, 장윤주 화보, 장윤주 싱글즈 화보. 장윤주 유튜브. 장윤주 윤주르
블론드 헤어를 엮어 만든 코트는 김해김.
시대의 메가폰이 쏟아낸 유무형의 것들 중에 극히 소수만이 아이콘이라는 지위를 갖는다. <싱글즈>는 2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패션계의 아이콘 장윤주를 소환했다. 지난 20년간 눈부신 성취를 이룬 한국 패션계에서 장윤주는 가장 가운데에 있었을 뿐 아니라, 그 성장의 밑거름이 된 비옥한 땅이 되었다. 한국 패션사와 장윤주는 필요충분조건 같은 영락없는 관계다. 오늘의 한국 패션 모델 업계가 잘 숙성된 와인이라면 장윤주는 와인의 맛과 풍미, 품질에 영향을 미치는 테루아, 바로 자연이다. 자연은 부지불식간 사람을 굴복시키고 다른 물질들을 부식시킬 만큼 압도적이지만 사람 역시 숭고한 자연의 일부다. 대지미술처럼 신비롭고 비범한 장윤주라는 대지, 미술, 그리고 위대한 자연. <싱글즈>의 20년사위로 장윤주라는 풍경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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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조털 드레스는 제이든초, 블랙 부츠는 아크네 스튜디오.
20주년을 맞은 <싱글즈>의 얼굴로 패션계에서 가장 아이코닉한 인물을 초대하고자 했다. 제일 먼저 떠올린 사람이 장윤주였다. 한국의 로컬 패션 매거진으로 20주년을 맞은 매거진은 <싱글즈>가 최초인 것으로 안다. 정말 자긍심을 가질 만한 일이다. <싱글즈>의 20년이라는 시간을 곁에서 관심 있게 지켜보고 또 함께 걸어온 사람으로서 정말 기쁘고 지금까지 끈기 있게 이끌어준 분들에게 감사하단 마음이 든다. 20주년을 기념하는 의미 있는 자리에 초대해주어 고맙다. 장윤주는 패션 산업의 중심에서 <싱글즈>의 연대기를 지켜본 인물이다. 매거진이 호황을 누리던 2004년 창간 때의 <싱글즈>는 당시만 해도 국내의 여러 로컬 매거진 중 하나였지만 그 사이 정말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지금 <싱글즈>는 해외 라이선스 매거진에 견줄 만한 감도와 퀄리티를 뽑아내고 있다. 한국의 로컬 패션 매거진이 20년이라는 시간을 버틴다는 것이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더 의미가 남다르고, 이를 축하하는 자리에 동참할 수 있어 기쁘다.
장윤주 싱글즈 20주년 기념 화보. 장윤주, 장윤주 화보, 장윤주 싱글즈 화보. 장윤주 유튜브. 장윤주 윤주르
자수 디테일이 놓인 튤 맥시 드레스는 디젤.
장윤주를 뮤즈로 화보 콘셉트를 고민하며 그동안 장윤주의 다양한 모습을 복기했는데 보면 볼수록 정말 ‘자연’스럽다는 느낌을 받았다. 편안하면서도 비상하고, 일상적이면서도 압도적인 게 바로 자연이다. 그렇게 대지 미술이라는 키워드를 떠올리게 됐다. 요즘은 패션 모델들이 배우나 엔터테이너로 활동하고 해외로 진출하는 일이 많은데 장윤주는 그것의 초석을 쌓은 그야말로 대지 같은 인물이다. 지금 패션 모델의 입지가 올라가고 또 활발하게 활동하는 모습을 보면 참 기쁘고 감사하다. 물론 좀 더 공격적으로 해외에 진출하지 않았거나 개인적으로는 아쉽게 끝난 페이지가 있었지만 내가 커리어를 쌓은 것 이상으로 후배들이 잘하고 있어 그 덕을 내가 보고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은 개인 유튜브를 운영하고 있는데 예전 <도전! 슈퍼모델 코리아>에 참가한 친구들이 출연한 영상이 조회수가 가장 높았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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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수 디테일이 놓인 튤 맥시 드레스는 디젤.
남자 모델은 배우로 성공적으로 전향하는 경우가 많은데, 여자 모델 중에서 배우로 성공한 케이스는 많지 않다. 계속 선구자의 위치에 있으면서 후배들에게 좋은 길을 닦아주어야 한다는 부담감은 없나? 내가 누군가를 책임지고 이끌 만한 자리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에 부담감은 전혀 없다. 그래도 앞으로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성에 대해서는 항상 고민한다. 얼마 전 <손석희의 질문들>에 김태호 PD가 나온 편을 봤다. 거기서 김태호 PD가 자신은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 중 “망망대해에 떠다니는 배 위에서 어디로 갈지 고민하는 사람 같다”고 말했다. 그러니 손석희 진행자가 자기는 “(방향은 모르겠고) 배에 함께 타고 있는 위협적인 호랑이밖에 기억나지 않는다”고 받아친다. 서로 MBTI가 다른 것 같다며.(웃음) 그 장면을 보면서 나 역시 김태호 PD처럼 어떤 실패의 두려움보다는 방향성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배에 호랑이와 둘이 계속 대치하며 긴장 상태로 있는데 이 배가 어디로 갈지가 더 걱정된다고? 물론 리차드 파커(호랑이)가 무섭긴 하지, 호랑이 때문에 죽을 것 같고 두렵겠지. 그럼에도 그런 공포와 긴장 덕분에 정신을 바짝 차리고 계속 살게 되지 않나. 그래서 어떤 벽을 마주했을 때 당장은 괴롭지만 지나고 나면 또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했던 자극이고, 필요한 대상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어디로든 갈 수 있는 평형의 상태다. 언제든 지금 하는 것들을 내려놓고 어딘가로 갈 수 있길 소망한다. 어딘가로 늘 떠날 수 있는 상태는 어떤 건가? 아무것도 장담하지 않고 계획하지 않는 상태? 물론 일을 하다 보면 어느 정도의 계획을 갖고 움직여야 하지만 내 시간이나 공간을 빈틈없이 채우려 하지는 않는다. 내가 늘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는 것도 우연히 들어오는 기회를 열어두기 위해서다. 남편과도 그런 대화를 많이 나눈다. 내 인생에 우연히 들어오는 것들에 항상 ‘웰컴!’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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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적인 형태의 아트피스, 블랙 투피스는 지혜쵸이.
그러고 보면 작품 활동에서도 장윤주가 말하는 ‘공간’이 느껴진다. 분명 <베테랑>이 끝나고 많은 작품이 들어왔을 텐데 다음 영화가 6년 뒤인 2021년의 <세자매>다. 작품을 고르는 기준이 있을까? ‘이 대사 내가 뱉어보고 싶다’는 원초적인 느낌이 중요하다. 사실 아직까지도 어려운 게 대사를 하는 거다. 모델은 밖으로 꺼내는 소리 없이 안으로만 대사를 하고 눈빛과 행동으로만 표현을 하는데, 그 사람이 되어 말을 한다는 게 아직 많이 낯설다. 어떤 작품을 하려고 결심했을 땐 그럼에도 ‘이 대사 뱉어보고 싶다’거나 작품이 담은 메시지가 내 안의 어떤 한 지점과 딱 맞물린다면, ‘아, 이 작품은 하고 넘어가야겠다’고 본능적으로 느낀다. <세 자매>라는 작품이 그랬고 올해 말에 개봉하는 작은 독립 영화도 그렇게 선택하게 됐다. <베테랑 2>의 개봉이 얼마 남지 않았다. 또 얼마 전 드라마 <눈물의 여왕>을 통해서도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 요즘은 배우 활동을 더 활발하게 하는 것 같다. 내가 이번에 유튜브를 새롭게 시작하게 된 이유와도 연결되는 부분인데, 물론 원래 나라는 사람과 큰 이질감 없는 배역을 골라 연기를 하긴 했지만 요즘 작품을 연달아서 하다 보니 내가 원래 어떤 사람이었는지 잘 모르겠더라. 모델의 경우, 표현이라든가 내가 좀 더 주도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요소가 많은데 연기 같은 경우 더 많은 디렉션을 따라야 하고 또 전체 그림 안에서 움직여야 하다 보니 점점 내가 가지고 있는 본연의 자연스러움을 잃어버리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시작하게 된 게 유튜브다. 큰 회사와 함께하며 어떤 콘셉트 안에서 움직이기보다 내가 직접 제작을 하자 생각했고 평소 오랜 친구로 지내던 감독님과 함께하게 됐다. 최근엔 배우나 유튜버로서의 모습을 많이 봤는데, 오늘은 모델 장윤주의 진면목을 본 것 같다. 이곳이 내가 가장 편하다고 느끼는 필드다. 물론 오늘 촬영에 대해서는 조금 부담을 갖긴 했지만, 그 부담이 ‘오늘 특별히 더 잘할 거야!’라기보다, 내가 모델로서 이어왔던 커리어나 정체성에 누가 되지 않기 위해 가져야 하는 기본적인 태도라고 생각한다. 오늘은 나와 오래 함께 작업해온 익숙한 스태프들과 정말 즐겁게 촬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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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팔 칼라 니트 톱은 준지.
촬영하는 모습을 보니 ‘동물적’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더라. 포토그래퍼와 교감하면서 표정과 포즈를 바꾸는 모습을 봤고, 또 새로운 옷을 입을 때마다 옷의 실루엣과 질감과 마치 연결이라도 된 듯 장윤주의 표현과 액팅이 달라지는 걸 봤다. 그런 동물적인 감각이 연기할 때도 유리하게 작용할 것 같은데. 맞닿은 부분은 분명히 있지만 내가 모델로서 자유자재로 쓸 수 있는 기술이나 근육처럼 숙련된 감각이 배우로서는 아직 한참 부족하다 느낀다. 그럼에도 연기를 할 때 나라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나 동물적인 돌발성은 계속 가져가려고 한다. 모델이나 연기 무엇을 하든 자연스러움은 절대 죽으면 안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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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방가르드한 형태의 재킷, 슈트, 부츠, 글러브는 모두 릭오웬스.
모델로 처음 데뷔한 지 거의 30년이 다 돼간다. 30년이면 거의 장인이다. 지난 30년 동안 장윤주가 가장 열렬했던 시간은 언젠가? 패션에도 열렬했었고 음악에도 열렬했다. 그때도 열렬했고 지금도 열렬하다. 원체 성격이 안 하면 안 했지 뭐든 시작했다면 영혼까지 갈아넣을 만큼 열렬해야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지난 30년간 레전드로 꼽히는 톱모델이면서 배우로도 안정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또 장윤주는 ‘LISA’라는 곡을 딸에게 선물할 정도로 섬세한 감성을 가진 싱어송라이터이기도 하다. 한 분야에서 레전드라 불리는 위치에 있다면 새로운 도전을 하기 망설여질 수도 있는데 장윤주는 실패의 경험이 없는 사람처럼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것 같다. 실패의 경험이 왜 없겠나.(웃음) 사실 새로운 것에 대해 도전한다기보다 그냥 계속 물 흐르듯 확장하는 것에 가깝다. 여기서 더 확장해야 한다는 욕심은 없고 늘 언제 어디로든 갈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하다 보니 그런 확장도 자연스레 하게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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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플 톱은 막스마라, 언밸런스 스커트는 모스키노.
언제 어디로든 떠나기 위해 준비해야 하는 것이 있을까? 모델을 예로 들면 어떤 각도에서 촬영하고 어떤 포즈를 취해도 결과물이 잘 나오려면 군살이 없어야 한다. 그래서 끊임없이 체중 관리를 하게 된다. 같은 맥락에서 새로운 기회가 왔을 때 좀 더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도록 운동과 체력 관리는 꾸준히 하는 편이다. 옷을 고를 때 내가 생각하는 내 단점을 커버하려다 보면 계속 같은 옷만 찾게 되지 않나. 변화하려면 늘 준비가 돼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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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스팽글 미니 드레스는 발렌티노, 펌프스는 알라이아
몸을 단련하는 것 외에 정신적으로는 어디에서 힘을 얻고 영감을 얻나? 아무래도 가족인 것 같다. 남편과 대화를 많이 나누기도 하고 성장하는 아이에게서도 영감을 얻는다. 아이가 있다 보니 학부모들도 만나고 새로운 관계를 경험하면서 배우는 것도 많다. 또 다른 영감을 주는 존재가 있다면 그건 음악이다. 남편이 이상순 씨와 굉장히 친하게 지내는데 최근엔 이상순이라는 사람이 궁금해져 그의 음악을 많이 들었다. 하나에 꽂히면 그 음악을 무한 반복해서 듣고 또 너무 좋은 음악은 혼자 카피해보기도 한다. 내가 여러 가지 면에서 영감을 얻고 그게 표현까지 연결되는 건 음악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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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플 톱은 막스마라, 언밸런스 스커트는 모스키노.
변화무쌍한 장윤주라는 기록은 계속 쓰여지고 있다. 장윤주란 기록의 다음 페이지가 궁금하다. 장르는 뭐였으면 좋겠나? 기본적으로 로맨틱과 코미디는 있었으면 한다. 그리고 거기에 리얼리티가 더해지면 더 좋고.(웃음) 지금 장윤주는 어떤 상태일까? 지나간 것에 미련을 두지 말고 그때도 맞았다고 인정하자, 어떤 캐릭터를 연기하든 그것도 내 모습이고 지금도 나다, 더 이상 혼란을 갖지 말자는 의미로 내 유튜브의 시작을 알리는 첫 콘텐츠의 제목을 지었었다. 아마도 그런 상태? 제목이 뭐였나? 그때도 맞고, 지금도 맞다.
반팔 칼라 니트 톱은 준지.

포토그래퍼

김희준

비주얼 디렉터 및 스타일리스트

SWV(김석원, 김기현)

세트 스타일리스트

김민선

메이크업

이나겸

헤어

조소희

인턴 에디터

이유진

장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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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의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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