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재의 이성과 감성

‘헌신이 아니고, 직업이 아니고 그냥 요리사의 삶을 살아간다’는 안성재 셰프의 말은 철저히 이성적이고 실용적이지만 어쩐지 낭만적으로 들렸다
BY 에디터 장은지 | 2024.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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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이 터지며 셰프들과 외식업계가 주목받고 있다. 이런 인기를 예상했을까? 예상하거나 의도하진 않았다. 내가 모든 외식업계를 대변할 수는 없겠지만 나나 내 주변의 셰프들 그리고 비즈니스를 둘러봤을 때 어떤 새로운 종류의 활기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예능적이고 쇼적인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초반에 제작진과 논의할 때 재미를 위해 과장되거나 짜여진 각본은 없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나는 음식을 굉장히 심각하게 다루는 사람이라 셰프들이 웃음을 주는 사람이 되는 걸 원하지 않는다. 고집 세고 집요한 요리사들의 모습이 고스란히 비춰지면 좋겠다고 했고 외식업계까지 도움이 되는 멋진 프로그램이 만들어지길 바랐다. 고맙게도 제작진들이 내 의견을 충분히 이해하고 수용해줬다. 안성재 셰프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 ‘모수 서울’의 현상황에 대한 내용도 기사화됐다. 그동안 모수에 투자하던 대기업에서 나와 이전 오픈을 준비하고 있지. 새롭게 시작하는 모수를 더 많이 알리기 위해 방송 출연을 결심하게 됐나? 외식업계에서 ‘모수’가 가지는 의미는 상당히 중요하다. 공간 이전을 위해 휴업한 지도 꽤 되지만 많은 사람이 계속 관심을 가지고 기대하고 있다. 모수의 오너 셰프로서 모수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나는 당연히 해야 하는 입장이다. 그러나 애초에 파인다이닝이 대중적인 요구를 전부 만족시킬 수 있는 식당이 아니기 때문에 인지도를 높이거나 더 유명한 브랜드가 되겠다는 마케팅적 마인드는 전혀 없었다. 마침 휴업 중이라 타이밍이 맞았고, 제작진들이 나의 의견을 수용해줬기 때문에 출연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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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이고, 한 끼에 30만원이 넘는 코스 요리를 파는 식당이라고 하면 넉넉한 자본으로 운영될 거라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텐데, 파인다이닝 신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 접시 위에 올라가는 손가락 두 마디 남짓한 포션 하나에도 그 식재료를 발굴하고 공수하고 요리에 맞게 다듬고 조리하고 구성하고 장식하는 온갖 섬세한 기술과 노동이 압축돼 있다. 사실 파인다이닝에 들어가는 인풋이나 인력이 말도 안 돼 마진이 얼마나 될까 싶다. 마진율이 굉장히 낮다. 파인다이닝은 맛있는 식사이기도 하지만 총체적인 경험이다. 우리는 우리의 음식과 문화를 즐기러 오는 고객에게 레이어 레이어마다 풍부하고 압착된 경험을 선사하기 위해 많은 공을 들인다. 음식의 테크닉은 당연하고 그 밖에 여러 요소까지 섬세하게 조율한다. 이를 위해 더 복잡한 과정을 거치고, 더 많은 인력과 비싼 돈을 쓴다. 그런 가치를 알아봐주는 사람이 100명 중에 단 한 명밖에 없다고 해도 한 명의 고객을 위해 기꺼이 정성을 쏟는다. 그게 파인다이닝의 매력이고, 우리의 방식이다. 파인다이닝은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이나 미식가 같은 소수가 즐기는 문턱 높은 문화다. 그런데 지금 모수 서울이 오픈한다면 다양한층의 새로운 고객이 모수를 찾게 될 거다. 파인다이닝의 높은 가격이 타당한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분명 있을 거다. 지갑을 열어 돈을 내는 사람들은 가치를 따질 수밖에 없다. ‘새로운 경험이고 다 좋지만 좀 비싸다’라고 말한다고 해서 틀렸다고 할 수 없다. 파인다이닝이라는 장르의 가치를 어떻게 매길지는 개인의 몫이다. 모수에서의 식사가 수준 높은 경험이었다면 그 가치를 높게 쳐줄 수도 있지만 모두가 그럴 거라 기대할 수는 없다. 다만 하나 말하고 싶은 건 파인다이닝이 단골이나 소수의 미식가들만 향유하는 문화는 아니라는 거다. 기억에 남는 고객이 있다. 그 고객은 평소 파인다이닝에 드나들지는 않지만 회사 사람들과 모수에 방문했다가 너무 좋은 경험을 했다며 어머님의 칠순 잔치를 예약했다. 다른 값비싼 선물 대신 어머니가 지금껏 접해보지 않았을 새로운 미식 경험을 선물한 거다. 이렇듯 파인다이닝은 행복의 새로운 관점을 제시할 수 있다. 그런 중요한 문화를 나누고 이어가는 게 우리의 목표 중 하나다. 다시 <흑백요리사>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처음 프로그램 콘셉트가 공개됐을 때, 외식업계와 요리사들이 재조명받을 수 있는 기회라는 건 반갑지만 계급을 흑과 백으로 나눈 것에 대한 우려도 있었다. 모든 요리사가 같은 조건에서 불티나게 경쟁하는 게 더 재미있고 ‘페어’할 수 있겠지만, 흑백 계급을 나눈 건 여경래 셰프님, 최현석 셰프님 같은 외식업계 대선배들과 자신을 어떻게든 증명한 셰프들의 위치를 존중해주는 방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제작진에게 “외식업계에 대한 예의는 지켜주세요”라는 이야기를 했었거든. 그걸 굳이 왜 흑과 백으로 표현했는지는 제작진의 영역이다.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내 입장에서는 외식업계와 셰프들에 대한 쇼의 리스펙트였다. 그게 마침 대중에게도 재미있는 콘셉트가 된 거고.
셀럽, 싱글즈 셀럽 화보, 안성재
급식대가나 이모카세 요리와 파인다이닝을 어떻게 동등한 선상에 놓고 비교하고 심사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있었다. 추구하는 바가 완전히 다른 장르이지 않나. 어느 쪽을 더 맛있게 느끼는지는 굉장히 주관적일 텐데. 요리에 맞는 심사를 하려고 했다. 일상적으로 먹는 백반이라면 대중의 기준에 전문가로서 나의 이해도를 접목해 판단했다. 다이닝 콘셉트의 요리를 내놓았다면 다이닝의 기준으로 어떤 테크닉을 썼는지, 그 테크닉이 의도에 맞게 구현됐는지를 봤고, 또 테크닉이 얼마나 세련됐는지도 평가했다. 테크닉이 얼마나 세련됐는지는 왜 중요했나? 이 프로그램을 통해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과 셰프들에게 한국의 다이닝 수준을 보여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국내 유일의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 셰프라는 사람이 요리사의 낡고 투박한 테크닉에 감동해서는 안 되는 거다. 그래서 다이닝 콘셉트의 음식을 내놓거나 테크닉이 들어가면 더욱 엄격하게 심사하려고 했다. 그것까지 고려했을 줄 몰랐다. 안성재 셰프는 심사할 때 인터뷰하듯 음식을 만든 의도에 대해 묻더라. 다들 필살기를 가지고 나왔을 텐데 맛은 당연한 거고 이상의 변별성을 찾기 위해 의도를 물었다. 어떤 의도로 음식을 만들었고 또 의도한 바를 잘 표현했는지가 중요했다. 맛이 없으면 아예 물어보지도 않는다. 맛이 있어야 이야기가 시작되는 거다. “오케이, 뭘 하시는 겁니까? 어떻게 하시는 겁니까?” 의도가 왜 그렇게 중요했나? 너무 많은 장르의 음식이 있지 않나. 아무리 내가 전문가라고 해도 내 평가가 절대적인 건 아니다. 내가 요리사의 의도가 무엇인지 듣지도 않고 한입 먹고 맛있다, 맛없다로 판단해버리면 요리사들에게 정당한 기회를 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요리사에게 이 요리에 대해 설명할 기회를 주는 거다. 조금 싱겁다고 느꼈는데 이건 원래 약간 싱겁게 먹는 음식이라고 하면 요리사가 그걸 잘 구현한 거다. 또 밥에서 약간 탄내가 났는데 누른 밥을 만들려고 한 거라면 요리사가 이를 정확히 수행한 거다. 누른 밥이 다른 것들과 어울리지 않을 때는 또 다른 문제겠지만 어쨌든 누른 밥이 된 걸 실패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상상으로 그리는 것을 일련의 작업으로 실행시키고 파이널 프로덕트로 만드는 게 셰프인데 의도를 묻는 건 너무나 당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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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시골밥상에도 계절감을 담는 등 요리사의 의도가 담기지만 파인다이닝에는 셰프의 의도가 더 치밀하게 구현된다. 의도가 강조되는 건 예술이 그렇다. 예술은 수용자의 해석에 따라 달라지지만 그 전에 주체자의 확실한 의도가 있다. 파인다이닝이 모던 아트와 유사해진다는 생각에는 동의하나? 파인다이닝에서는 손님 앞에 놓이는 음식의 얼굴도 중요하고 아름다워야 하다 보니 예술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내 생각은 완전히 다르다. 시작하면 너무 지루하고 심오해질 수 있는 이야기다.(웃음) 그럼에도 셰프의 생각을 들어보고 싶다. 일단 내가 생각하는 파인다이닝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프랑스의 궁중요리가 현대에 와서 파인다이닝이 됐고 또 궁중요리가 서민화되면서 ‘파이’ 같은 음식이 됐다. 전통에서 비롯하는 건 같지만 어떤 상상력을 더하지 않고 흔히 구할 수 있는 식재료로 만드는 대중적인 음식이 있는가하면, 파인다이닝은 계속 새로운 걸 만들어내고 문화적으로 앞서나가야만 한다. 나는 그렇게 뻗어나간 파인다이닝도 다시 전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새로운 개념을 사람들이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삶 속에 넣으면서 전통이 되는 건데 지금의 파인다이닝에서 풀어내는 새롭고 창의적인 요리도 많이 따라 하고 삶 속에 넣다 보면 언젠가 전통이 될 수 있다. 바라건대 20년, 30년 후에는 모수의 음식이 한국의 전통이 됐으면 한다. 그건 나에게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이다. 이를 위해 모수라는 일관된 정체성을 만들어야 한다. 나는 음식을 만들 때 콘셉트나 의도하는 바를 손님에게 명확하게 전달하는 것을 매우 중요시한다. 의도는 말로 할 수도 있지만 ‘크래프트맨십(Craftsmanship)’으로도 전달할 수 있다. 파인다이닝의 본질은 결국 ‘식사’고, 완성도 있는 식사를 만들려면 크래프트맨십이 필요하다. 그런데 음식을 예술이라 여기면 자아도취에 빠질 수 있다. 이는 장인정신을 쌓는 데 위험한 요소다. 파인다이닝이 가진 느낌이 예술과 비슷하다고 볼 수는 있겠지만, 셰프가 예술가는 아니다. 셰프들을 보면 거의 개인 생활 없이 일만 하고 좋은 식재료를 찾거나 음식에 대해 연구하며 시간을 보낸다. 헌신은 요리사의 숙명일까? 나는 ‘Chef is Lifestyle’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남들이 밥 먹는 시간에 일한다. 그게 불공평하다고 생각하면 요리사가 되면 안 된다. 남에게 음식을 대접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말하는 요리사들이 많이 관두는 이유 중 하나가 이 일을 헌신, 희생이라고 생각해서다. 사실 그건 요리사가 관두는 다른 이유들에 비하면 좋은 이유긴 하다. 그렇지만 셰프로서는 충분하지 않다. 요리하는 행복을 이해하지만 헌신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면 나는 냉정하게 취미로만 요리를 하라고 말한다. 물론 내 가족 생일을 챙기지도 못하고 식당에서 손님의 생일을 축하하는 것이 서운할 수는 있지만 그건 불합리하거나 희생하는 게 아닌 요리사의 선택이다. 그런 선택들을 계속하면 그게 결국 라이프스타일인 거지. 헌신이 아니고 직업이 아니고 그냥 요리사의 삶을 살아가는 거다. 내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요리사로서 자존심과 고집이 센 거다. ‘요리사를 예능적으로 풀거나 함부로 다루지 마세요’라고 단호하게 선을 긋는 것도 그래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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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각한 이야기를 나눴으니 조금은 가벼운 이야기로 환기해보자. <흑백요리사>에 나온 셰프의 모습을 편집한 밈들을 좀 봤나? 안 보고 싶어도 주변에서 하도 보내줘서 봤다.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며)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지? (웃음을 참으며) 최현석 셰프를 떨어뜨릴 생각에 신난 안성재 셰프의 밈? 안 그래도 그게 제일 억울하다. 절대 그런 생각을 가지고 한 행동이 아니다. 정말 다양한 맛이 난다는 내 나름의 애정 섞인 표현이었는데. (한술 더 떠) 그리고 최현석 셰프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미소 짓는 사진도 있었지 않나. 그건 정말로 내 마음속에서 셰프님 정말 열정을 다하신다, 대단하고 멋지다, 그리고 이런 요리 서바이벌이 굉장히 익사이팅하다, 그런 생각이었다. 근데 그걸 그렇게 이어버리더라고. 그만큼 안성재 셰프의 인기가 뜨겁다는 거지. 새로운 모수는 언제쯤, 어떤 모습으로 오픈하나? 목표로 삼은 오픈 일정은 많이 지연됐다. 그래서 많이 기다려준 분들에게 죄송하고 감사할 따름이다. 오픈 시기는 내년 2월 정도가 될 것 같다. 위치는 이전의 모수 서울보다 좀더 한적한 이태원동이다. 공사중인데 이미 알 만한 사람은 다 알더라. 정보가 샜다. 이전 모수를 그대로 재현하는 데 중점을 뒀을까, 아니면 좀 다르게 풀어내려고 하나? 좀 다를 것 같다. 일단 공간이 달라지면 분위기나 느낌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지금 새로운 모수의 공간 디자인은 세계적인 건축가인 조민석 소장이 담당하고 있다. 그 밖에도 감각이 뛰어난 여러 전문가가 합심해 개인 식당으로서는 존재하기 힘든 퀄리티의 공간을 만들고 있다. 여러 방면에서 디테일을 업그레이드하고 있지만 기존 모수가 가진 아이덴티티는 여전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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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요리사> 시즌 2 제작이 확정됐다. 시즌 2에 또 심사위원으로 섭외가 된다면 받아들일 건가? 그때 돼서 생각해볼 거다. 타이밍이 맞고 또 조건이 맞아야 하니까. 그럼 <흑백요리사>든 아니면 또 다른 글로벌 요리 서바이벌에서 참가자로 섭외가 들어온다면 응할 의향은? 이미 많이 왔었다.(웃음) 늘 하는 이야기지만 그런 방송에 출연할 때 내가 기준으로 삼는 것들이 충족되는지 볼 거고 또 나는 요리사의 삶을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스케줄이 맞냐, 아니냐를 봐야 하겠지. 타이밍과 내가 원하는 조건들이 맞고 내가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물론이다.

사진

양중산

인턴에디터

황보나현

스타일리스트

김성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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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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