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도 100% 후루츠패밀리
아카이빙 마니악 젠지는 요즘 후루츠패밀리에 푹 빠져 있다. 시즌, 디자이너, 시대정신까지 아카이빙하는 중고 패션 거래 플랫폼, 후르츠패밀리가 뜨는 이유.
BY 에디터 양윤영 | 2025.08.04
옷을 좋아한다. 동대문에서 사입을 하던 엄마를 닮아 그런가. 어렸을 때부터 옷을 보고, 입고, 사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그래서 나는 지금 패션에디터로 일한다. 트렌드의 최전방에서 컬렉션을 보고, 시중에 풀린 물건들을 입어보고, 가끔은 허리띠를 졸라매며 사기도 한다. 이 직업의 장점은 예쁘고 반짝거리는 걸 누구보다 가까이서 구경할 수 있다는 점이고, 단점은 눈만 높아진다는 것이다. 에디 슬리먼 시절의 생 로랑, 마크 제이콥스가 이끌던 루이 비통 제품은 여전히 갖고 싶지만, 내 월급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이럴 때 좋아하는 아카이브 피스를 현실과 적당히 타협하며 소유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바로 중고 플랫폼을 이용하는 거다. 중고 플랫폼의 성장은 이미 예견된 흐름이다. 글로벌 중고 플랫폼 스레드업(ThredUP)은 2024년 전 세계 중고 의류 시장 규모가 약 2390억 달러, 한화로 약 338조 원에 이른다고 밝혔다. 빅데이터 분석 솔루션 와이즈앱은 국내 중고 플랫폼 앱 사용자 수가 2025년 기준 약 2366만 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스레드업 CEO 제임스 라인하트는 중고 패션 시장의 성장 핵심 동력을 가치 소비, 환경 의식, 세대 전환으로 꼽는다. 단지 가격 때문이 아니라 지속 가능성과 취향 소비를 모두 만족시키는 구조라는 의미다.
본래 변화를 몸소 체감하는 건 거대한 숫자나 통계보다 실생활을 통해서다. 옷 좀 입는 이들에게 “요즘 쇼핑 어디서 해?”라고 물어보면 돌아오는 대답은 하나다. “뭐, 대충 후루츠패밀리?” 2019년 이재범, 유지민 공동대표가 창립한 후루츠패밀리는 국내 최초의 세컨드핸드 패션 전문 중고 거래 플랫폼이다. 단순히 의류를 사고파는 장을 넘어 트렌디한 브랜드 기반의 카테고리, 스타일 큐레이션 기능, SNS형 커뮤니티까지 갖춘 디지털 아카이빙 커머스로 자리 잡았다.
후루츠패밀리 통계에 따르면 2025년 기준 월간 활성 사용자(MAU)는 150만 명을 기록했고,거래 건수는 전년 대비 133%로 폭발적인 증가를 보였다. 플랫폼 내 ‘좋아요’ 수는 월 200만 건 이상이며, 상품 회전 속도와 전환율도 함께 상승했다. 전체 사용자 중 약 70%가 MZ세대로, 성별 비율도 균형적이다. 후루츠패밀리가 주목받는 이유는 패션에 중점을 맞춘 큐레이션, 감도 높은 사용자 인터페이스, 경험 디자인(UI/UX) 설계, 사용자들 간의 건강한 거래 문화 조성 등에 있다.
기존 중고 플랫폼이 모델명 검색을 전제로 한 가격 경쟁에 집중했다면, 후루츠패밀리는 패션 맥락에 바탕을 둔 탐색 경험을 제공한다. 예컨대 ‘2004 F/W 메종 마르지엘라 재킷’이나 ‘2000년 대 헬무트 랭 팬츠’ 등 시즌, 디자이너, 시대정신까지 반영한 검색이 가능하다. 이러한 큐레이션 기반 탐색은 잘 짜여진 사용자 인터페이스, 경험 디자인 설계와 맞물려 시너지를 낸다. 셀러의 피드는 그 자체로 잘 차려진 온라인 편집숍 같고, ‘좋아요’ ‘팔로우’ ‘채팅’ 등의 SNS 기능은 쇼핑을 커뮤니티 활동처럼 느끼게 한다. 후루츠패밀리의 영민한 설계는 앱 내 평균 체류 시간을 늘리는데 기여하며, 개인의 취향을 반영한 알고리즘 추천 기능은 사용자가 꾸준히 앱에 머물도록 유도한다. “찜한 상품이 할인됐다는 문구가 뜨는 순간 홀린 듯 접속을 하게 돼.” 월급의 절반을 후루츠패밀리에 성실히 납부 중인 앱 사용자 A가 말했다. 릭 오웬스와 라프 시몬스를 좋아하는 그는 새 상품보다 저렴한 가격에 단종된 매물까지 구매할 수 있다는 후기를 보고 후루츠패밀리에 입문했다.
“가입하는 순간 알림 설정을 할수 있는데 그러면 이제 후루츠 노예가 되는 거야….” 셀러들의 피드에서 좋아요를 누른 상품이 가격 인하될 때, 다른 사용자들이 그 상품을 클릭할 때마다 앱에서 알림이 발송된다. 본래 빈티지가 매력적인 이유는 단 하나밖에 없는 피스라는 점이고, 팔리는 순간 극심한 후회만 남으니 망설임 없이 상품을 구매하게 된다고 A는 덧붙였다. 크롬하츠 비니에 어나니머스 클럽 부츠. 좀 놀 줄아는 B는 후루츠패밀리의 파워 셀러다. 옷을 좋아해 패션 블로거, 인스타그래머로 활동 중인 그는 처치 곤란한 옷을 판매하기 위해 후루츠패밀리를 시작했다.
“보통의 중고 플랫폼은 셀러가 수수료를 부담하도록 돼 있어서 옷을 팔아도 돈을 떼이는 느낌이라 지인들에게 팔곤 했는데, 후루츠는 달라.” B는 지난해 11월 후 루츠패밀리가 도입한 선택형 수수료 제도가 셀러 활동에 부담을 줄였다고 말한다. “상품을 등록할 때 거래 수수료를 셀러인 내가 부담할지, 구매자에게 부담시킬지 선택할 수 있는데, 다른 앱보다 유연하게 거래가 가능해서 주로 사용하게 돼.” 실제로 이 제도를 도입한 후 후루츠패밀리의 신규 판매자 수는 월평균 36% 상승했고, 재구매율은 47%를 기록했다. 소비자의 본인 부담 비중 역시 70%라는 이상적인 결과치를 보였다. C는 패션의 ‘패’자도 모르는 패알못이다. 최근 그에게 변화가 생겼다. 바로 오랜 모태 솔로 생활을 청산하고 연애를 시작하게 된 것. 옷장에 검은 티, 트레이닝팬츠밖에 없는 그는 첫 데이트를 앞 두고 트렌드를 익히고자 앱을 깔았다. “후루츠 검색 순위 1위에 선정된 브랜드 옷을 구매했는데, 성수동에 가니 힙스터들이 비슷한 옷을 입고 있더라고. 성공했다 싶었지.” 후루츠패밀리는 월간 800만 건이 넘는 검색 데이터를 분석해 매달 라이징 브랜드 큐레이션을 발표한다.
번개장터는 2024년 8월 안전결제 시스템의 전면 도입 이후 소비자 간 거래 건수 299% 증가, 거래액 116% 증가, 구매자 수 138% 상승을 통해 구조적 전환에 성공했다. 중고나라는 ‘중고나라 페이’ 도입 이후 연평균 거래액 110% 이상 성장, 누적 거래자 수 145만 명, 2025년 2월 거래액 전년 동월 대비 73% 증가라는 기록을 세웠다.
실제 검색 1위 브랜드로 꼽힌 베이프는 지난해부터 다시 붐을 일으키고 있다. 더불어 사용자들이 직접 올리는 스냅사진 콘텐츠를 통해 프로필에 접속 시 그들의 좋아요 리스트를 확인할 수 있어 트렌드 지침서로도 유용하다. 후루츠 패밀리 외에도 국내 중고 플랫폼 앱들의 성장세는 계속된다. 한국인터넷진흥원의 자료에 따르면 2025년 2월 기준 국내 주요 중고 거래 플랫폼의 월간 활성 사용자는 당근마켓 1813만 명, 번개장터 293만 명, 크림 151만 명, 중고나라 96만 명으로 총 2353만 명이나 된다. 국내 인구 절반 가까이가 이용하는 셈. 플랫폼별 성장세도 가파르다.
이 흐름의 중심에는 젠지의 가치 소비가 있다. 서울대 소비자학과 김난도 교수는 Z세대를 “윤리적 소비자이자 강력한 자기표현자”라고 설명한다. 젠지는 단순히 예쁜 옷을 입는 것을 넘어 그 옷이 어떤 맥락을 가졌는지, 환경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까지 고려한다. ‘내가 이 옷을 왜 입는가’가 중요한 세대다. 후루츠패밀리는 이러한 Z세대의 욕망을 정확히 겨냥한다. 중고 소비를 통해 윤리적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고, 희소한 아카이브 피스로 정체성을 표현한다. 무신사가 최근 중고 플랫폼 ‘무신사 유즈드’를 출시하며 본격적인 순환 소비 시장에 진입한 것도 이 흐름을 반영한 전략이다. 지금 패션 소비 시장은 단순한 소유에서 벗어나 공유와 순환, 표현과 윤리의 시대로 전환 중이다. 앞으로 중고 플랫폼 시장은 신뢰성, 취향 반영 추천, 안전한 시스템 설계를 기반으로 더욱 커질 전망이며, 누가 더 잘 큐레이션하고, 신뢰받느냐가 생존의 핵심 기준이 될 것이다. 후루츠패밀리는 중고 플랫폼의 성장 속에서 새로운 질서를 만들고 있다.
사진
박종원, ⓒFruitsFam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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