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NA’S 10 : 혁신의 기록, 뎀나와 발렌시아가의 10년
발렌시아가에서의 10년, 뎀나는 어떻게 패션의 룰을 전복했나.
BY 에디터 양윤영 | 2025.09.1801. 2016 F/W
데뷔, 혁신의 시작
2015년 10월, 발렌시아가는 베트멍의 뎀나 그바살리아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했다. 이듬해 3월 파리에서 열린 2016 F/W 여성복 컬렉션은 기존의 발렌시아가와 전혀 다른, 과장된 실루엣으로 패션 신에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의 건축적인 요소를 베트멍의 색채가 가득한 뎀나식으로 해석한 것. 오버사이즈, 과장된 어깨선, C자 곡선, 실험적인 소재가 돋보였다. 전통적인 럭셔리 브랜드의 공식을 깨는 접근은 ‘뉴 발렌시아가’의 서막과도 같았다. 뎀나는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 특유의 조형미를 재해석하며, 로고 대신 실루엣으로 브랜드를 각인시키는 시대를 열었다.
02. 2017 S/S, F/W
첫 남성복, 트리플 S의 등장
2017 S/S 남성복 컬렉션은 발렌시아가 역사상 첫 맨즈 웨어 런웨이를 선보였다.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의 아카이브 코트를 해체, 확대해 만든 박스형 테일러링으로 문을 열었고, 더블 슈렁큰 슈트와 과장된 플랫폼 부츠로 기존 남성복의 비율을 무너뜨렸다. 슬림 팬츠와 부피감 있는 상의의 대비, 사제복 원단을 사용한 과장된 라펠 등은 전형적인 비즈니스 슈트를 한 끗 비튼 유머가 돋보였다. 같은 해 여성복과의 통일성을 위해 명시적 로고를 줄이고, 과장된 어깨와 구조적 라인으로 브랜드를 인지시키는 전략이 한층 강화된 시도였다. 2017 F/W 컬렉션에서는 브랜드의 상징이 된 ‘트리플 S(Triple S)’ 스니커즈가 처음 등장했다. 세 겹의 두툼한 미드솔과 2kg에 가까운 무게가 특징인 트리플 S는 럭셔리 스니커즈 시장의 규칙을 변화시켰다.
03. 2018 F/W
레이어링 3D 재킷, WFP 협업
2018년 봄, 파리에서 열린 발렌시아가의 첫 남녀 통합 쇼. 뎀나는 모델의 체형을 3D로 스캔해 몰드로 성형한 재킷을 선보였다. 절개선을 최소화한 매끈한 전면, 곡선형 허리 라인은 하나의 조형적인 작품에 가까웠다. 룩은 터틀넥, 셔츠, 후디, 재킷, 코트를 겹겹이 쌓아 올린 과감한 레이어링으로 볼륨과 무게감을 더했다. 해당 시즌에서 뎀나는 WFP(유엔세계식량계획)와의 협업을 확대해 WFP 로고 후디, 토트백, 벨트 백을 등장시켰다. 판매 수익 일부를 기부하는 구조로, 로고 플레이를 사회적 메시지의 매개로 변모시킨 쇼라 더욱 의미가 깊었다.
04. 2021 HAUTE COUTURE
발렌시아가 오트 쿠튀르의 부활
2021년 7월, 뎀나는 파리 조르주 생크에 위치한 메종의 오트 쿠튀르 살롱을 복원하고, 53년 만에 발렌시아가 쿠튀르를 부활시켰다. 런웨이 없는 살롱 프레젠테이션 형식을 택해 초청객들은 등장하는 모델을 가까이에서 마주했다. 전통적인 쿠튀르 테크닉에 고어텍스, 나일론, 데님 같은 스포티한 소재를 결합한 것이 핵심. 고어텍스 재킷 위에 얹은 실크 드레스, 필립 트레이시가 제작한 조형적인 모자, 그리고 과감한 비율의 테일러드 슈트가 과거와 현재를 연결했다. “박물관 속 쿠튀르를 해방시킨 쇼”라는 외신의 평론과 함께 하우스의 유산이 동시대적 언어로 재탄생한 순간이었다.
05. 2021 F/W
AFTERWORLD! 패션, 게임이 되다
2020년 말, 뎀나는 팬데믹 상황 속에서 런웨이 대신 언리얼 엔진으로 제작한 비디오 게임 ‘Afterworld: The Age of Tomorrow’를 통해 2021 F/W 컬렉션을 공개했다. 플레이어가 2031년을 배경으로 한 가상 도시를 걸으며, 5개의 구역을 지나고 그 속에서 50개의 룩을 접하는 방식이었다. 가죽 아머 재킷, 메탈릭 드레스, 부츠 컷 팬츠, 그리고 발렌시아가 특유의 과장된 숄더 라인이 미래적 배경과 맞물린 것. 이는 현실과 디지털 경계를 허문 시도로 런웨이를 ‘보는 것’에서 ‘경험하는 것’으로 전환시켰다.
06. 2022 S/S
심슨 가족 × 발렌시아가

2021년 10월, 파리 테아트르 뒤 샤틀레 앞. 발렌시아가의 2022 S/S 쇼는 전통적인 런웨이가 아니었다. 초청객과 모델이 구분 없이 같은 레드 카펫을 밟았고, 그 직후 스크린에는 10분짜리 애니메이션 <더 심슨×발렌시아가> 에피소드가 상영됐다. 심슨 가족이 발렌시아가 쇼에 초대돼 파리로 가는 이야기 속에서 실제 컬렉션 룩을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그대로 입고 있었다. 블랙 드레이프 가운, 오버사이즈 파카, 각진 숄더 라인의 슈트가 만화와 현실을 오갔다. <심슨 가족>만의 유머, 풍자, 시대 반영 등의 요소가 발렌시아가의 디자인 철학과 어우러져 시너지를 내면서 패션 신에서 또 한 번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07. 2022 F/W
눈보라, 우크라이나를 향한 저항의 언어
2022년 3월, 파리 르 부르제 전시장에 세워진 거대한 유리 아레나. 쇼가 시작되자 인공 눈과 강풍이 무대를 휘감았다. 모델들은 눈보라를 뚫고 맹렬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컬렉션은 오버사이즈 코트, 두터운 니트 드레스, 스톰프 부츠 등 혹독한 환경을 견딜 법한 아이템으로 채워졌다. 좌석 위에는 우크라이나 국기를 프린트한 티셔츠가 놓였고, 뎀나는 패션쇼 시작 전 확성기를 통해 우크라이나 시를 낭송했다. 1993년 고국에서 같은 일이 벌어져 피난민이 된 자신이 겪은 두려움, 절박함, 그리고 깨달음에 관한 것이었다. 러시아 침공 이후 열린 해당 쇼의 말미에는 노란색 트랙 슈트와 블루 가운이 등장했다. 우크라이나의 국기 색깔이다. 뎀나는 자신이 '영원한 난민'이라 말했고, 그의 컬렉션은 현실의 비극을 담담하게 비췄다.
08. 2023 RESORT
월 스트리트를 점령한 마스크 군단
2022년 5월, 뉴욕 증권거래소 한복판에서 열린 2023 리조트 컬렉션. 얼굴 전체를 마스크로 가린 모델들이 증권가 회사원, 뉴요커, 파티 걸의 모습으로 등장했다. 날카로운 테일러드 슈트, 드레이프 저지 드레스, 그리고 바이커 재킷과 발목까지 오는 레더 부츠가 차례로 런웨이에 올랐고, 아디다스와 협업한 트랙 슈트와 드레스 등이 이목을 집중시켰다. 얼굴을 가린 마스크와 대비되는 서류 뭉치와 커피잔은 기묘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뎀나는 쇼에 대해 이렇게 덧붙였다. “사람들의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제품을 만드는 게 중요해요. 패션, 창작자가 해야 할 일은 바로 그것입니다.”
09. 2023 S/S
머드 쇼, 진흙탕에서 피어난 메시지
2022년 10월, 파리 빌 드 파리 아레나. 관객 앞에 펼쳐진 것은 거대한 진흙 웅덩이였다. 스페인 예술가 산티아고 시에라가 설계한 머드 쇼 세트에서 모델들은 진흙탕을 걸었다. 발목까지 휘감은 물과 흙이 튀는 가운데 가죽 보머, 스팽글 드레스, 헤비 아우터, 레더 팬츠가 등장했다. 일부 모델은 손에 가방을 들거나 소품을 짊어진 채 런웨이를 질주했다. 이는 팬데믹 이후 불안정한 세계, 그리고 현실을 직시하는 패션의 은유였다. 마치 우리가 사는 세상은 깨끗하지 않다는 의도적인 메시지가 진흙탕 위에 펼쳐진 듯 보였다.
10. 2025 F/W HAUTE COUTURE
처음으로 돌아간 피날레
2025년 7월, 파리 조르주 생크 살롱에서 뎀나는 자신의 마지막 발렌시아가 쿠튀르 쇼를 선보였다. 무대는 최소한의 장치만 두고, 오롯이 옷에 집중했다. 실크 새틴 가운, 구조적인 오간자 핑크 드레스, 정교하게 드레이프된 블랙 이브닝 룩까지 모든 의상은 장식보다 재단과 비율, 소재의 물성을 드러냈다. 과거 몇 년간 이어진 스펙터클한 쇼맨십을 뒤로하고, 하우스의 테일러링 전통과 쿠튀르 기술로 회귀한 장면이었다. 쇼 직후 케링 그룹은 피에르파올로 피촐리를 차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했고, 뎀나는 구찌로 향했다. 10년 동안 디지털, 대중문화, 사회 이슈를 넘나든 그의 실험은 마지막에 이르러 절제된 기술이라는 한 문장으로 귀결됐다. 발렌시아가에 뜨거운 안녕을 고한 뎀나는 혁신이란 결국 옷의 본질에서 시작한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사진
ⓒ Balenciaga, ⓒ Launchmetrics/spotlight, ⓒ Gettyimages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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