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 김종성의 힐튼, 그리고 서울
도시는 기억 없이 진화할 수 없다. 힐튼 서울의 유산과 사라지는 건축이 남기는 질문들.
BY 에디터 김초혜 | 2025.10.28서울 중구 남산 자락. 고도를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도시의 정서적 지층 위에 조용히 스며들던 ‘힐튼 서울’은 이제 그 자리에 없다. 2022년 부지 매각 이후 철거가 확정됐고, 건축의 마지막 흔적은 피크닉에서 열린 전시 《힐튼서울 자서전》으로 옮겨졌다. 이번 전시는 건축의 ‘삶과 죽음’을 조명하며, 철거라는 운명 속에서도 끝내 남겨진 잔해를 통해 우리가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지 묻는다.
힐튼 서울을 설계한 건축가 김종성은 이번 전시를 계기로 뉴욕에서 서울을 다시 찾았다. 그는 <싱글즈>와의 단독 인터뷰를 통해 한 시대를 함께한 건축이 사라진 자리에서 도시와 기억의문제를 되짚었다. 지금 이 순간 서울이란 도시는 어떤 기억을 지우고, 어떤 논리에 굴복하고 있을까. 그리고 우리는 그 속에서 무엇을 지켜가야 할까.

© 피크닉
전시의 출발점이 궁금합니다.
피크닉 쪽에서 힐튼 서울에 대한 전시를 기획하고 싶다고 제안해서 좋다고 했어요. 정다영, 김희정, 정성규 세 사람이 함께하는 CAC라는 큐레이터 집단과 기획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 팀이 베니스 비엔날레 전시도 기획하게 됐어요. 우연히 피크닉 김범상 대표를 비롯한 직원들과 베니스에서 모이게 됐고, 1차로 촬영 이후 전시의 큰 골격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습니다. 이후 각자 집으로 돌아가 뉴욕과 서울에서 긴 시간 작업을 이어갔습니다.
건축의 자서전이라는 개념이 흥미로웠습니다.
‘자서전’은 건축의 생애를 기록하는 방식입니다. 힐튼 서울은 김중수 당시 사장의 제안으로 설계가 시작됐고, 40년 동안 우여곡절을 겪으며 운영됐습니다. 그리고 3년 전 매각이 돼 철거가 진행 중입니다. 태어남과 죽음 사이의 시간을 기록하는 방식의 건축의 자서전인 셈입니다.

© 최용준, 〈힐튼 서울 프로젝트〉, 2023.
이번 전시는 건물의 잔해부터 시작됩니다. 건축물이 철거되는 영상 앞에서 건축가가 어떤 마음이었을지 생각해봤습니다.
건축하는 입장에서 자유 경제 논리에 의해 철거된다는 사실을 승복했습니다. 저의 결론은 그곳의 부지가 너무 크다는 겁니다.600%의 용적률을 부여받은 부지에 350%의 건물만 지었습니다. 그러니까 힐튼 서울은 더 큰 건물을 짓기 위해 매각이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던 겁니다. 올림픽 개최하기 5년 전, 힐튼은 한국 사회가 성장하는 시대 흐름을 상징하는 하나의 건축적 성취입니다. 힐튼 서울에 있던 그랜드 스테어와 에이트리움을 재구성해 지금 힐튼 부지에 들어가는 판매 시설 옆쪽에 다시 짓기로 했습니다. 힐튼을 구성 했던 녹색 트래버틴, 청동 손잡이 등으로 건축적인 성격이 그대로 살아날수 있게 돕고 있습니다. 원상에 접근하게 된다면 차선의 선택이 될겁니다.
1983년 힐튼이 완공됐을 즈음 한국 건축 신은 어땠나요?
올림픽을 앞두고 한국 사회 전체가 가파르게 상승 곡선을 타고 있었습니다. 해외 수주가 활발해지고, 건설 기술이 발전하며 새로운 건축 언어가 도입되던 시기였습니다. 태평로에 있는 삼성의 옛 본사 사옥이 일본식으로 설계됐는데 당시 그것이 가장 잘 된 한국의 건축적 성취였어요. 콘크리트를 하나씩 찍는 프리캐스트에 유리가 매입된 소재를 쓴 건물이 주종을 이뤘죠. 몇 년 앞서서 김중업 선생이 이룩한 삼일빌딩은 알루미늄과 유리로 된 대표적인 건축이었습니다. 저는 국제적인 첨단 기술을 한국에서 실현해보자는 목표를 세웠고 그 결과가 힐튼이었습니다.
«힐튼서울 자서전»은 내년 1월 4일까지 피크닉에서 열린다.
‘한국 근대 건축’의 마일스톤이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어떤 의도로 설계하셨습니까?
남산 기슭에 앉기 때문에 호텔이 아주 높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보통 뉴욕에서 짓는 호텔의 로비 천장 높이가 10m 정도거든요. 그런데 저는 그런 걸 원하지 않았습니다. 한국 사람들에게 익숙한 인간의 척도에 맞추겠다는 게 제 목표였어요. 영주 부석사의 무량수전, 예산 수덕사의 대웅전 이런 건축물이 우리의 시각적인 이상향이죠. 무량수전 천장 높이가 4.5m 정도이고 힐튼의 로비는 6m입니다. 한국의 감각이 느껴지는 인간 척도가 있는데, 저는 건축적으로 현실화해보고 싶었습니다. 호텔에 들어서는 국내외 투숙객이 우리의 감각에 순응하게 하고자 했습니다.
선생님께선 이번 철거가 한국 근대의 건축물 보호에 대해 문제 제기를 했다고 말했습니다.
맞습니다. 불행히도 힐튼은 철거되지만, 이번 사례를 계기로 해방이후 지어진 건축물 중에도 선별적으로 보호할 가치를 지닌 것이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일제강점기가 끝난 지 80년이 지났지만, 우리는 여전히 해방 후에 지어진 건물은 철거해도 된다는 이율배반적인 논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지난 80년 동안 우리는 사회 전반에서 팽창과 성장을 계속해왔고, 건축역시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10년쯤 지나면 철거하고, 그 자리에 더 크고 높은건물을 짓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로 여겨지죠. 해외 도시 설계에는 ‘공중권(Air Rights)’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성당처럼 용적률이 낮은 건물의 경우에도 남은 용적률을 인근 부지에 이전해 그 공간을 보존하면서도 전체 도시의 밀도를 유지할 수 있게 하는 거죠. 이러한 방식을 우리도 수용해야 합니다.
지금 서울이란 도시가 어떤 건축적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시나요?
서울 한복판, 그러니까 사대문 안은 지금도 ‘적정한 스케일’을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믿기 어려우실 수도 있지만, 제가 1999년도에 설계한 36층짜리 SK빌딩이 아직까지도 사대문 안에서는 가장 높은 건물입니다. 물론 테헤란로처럼 동서로 뻗은 축을 따라 건물이 높이 올라가는 것은 도시의 구조상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중요한 건 구역마다 그 맥락에 맞는 균형을 찾는 일입니다.

위_© 정지현, 〈밀레니엄 힐튼 호텔 서울_볼룸〉, 2025. 아래_© 정지현, 〈밀레니엄 힐튼 호텔 서울_홀〉, 2025.
이번 전시 《힐튼서울 자서전》은 선생님께 어떤 의미였습니까?
힐튼이 철거된 이후 그 잔해를 통해 건축의 가치를 되묻는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해방 이후 지어진 건물도 건축적인 가치가 있다면 보존돼야 한다는 메시지죠. 피크닉에서 아주 밀도 높게 기획한 전시고, 한 번에 가서 다 보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좋아하는 친구하고 반쯤 보시고, 3주 후쯤 다시 한번 들러봐도 좋겠습니다. 아마 <싱글즈> 독자분들도 재미있게 보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릴 적 크리스마스 시즌에 힐튼에서 자선 기차 봤던 기억이 있는 분이라면 더 반가우실 거예요. 고장 났던 기차를 전시장에 복원해 놓았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개방성 공간 개념에 관한 책을 집필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60년 가까이 건축을 가르쳐왔고 이런 작업이 지금의 제가 젊은 세대에게 줄 수 있는 작은 선물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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